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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다큐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우수리스크의 독립투사 최재형을 만나다

1920년대 서울

  • 박윤석│작가 unomonoo@gmail.com

우수리스크의 독립투사 최재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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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의 독립투사 최재형을 만나다

러시아 우스리스크에 있는 독립투사 최재형 선생의 집.

떠났던 최재형은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스무 살 아들 파벨, 최성학은 아버지와 헤어져 빨치산 부대로 갔다고 했다. 집안은 시가전을 앞둔 민가처럼 암운에 휩싸였다. 딸 올가는 먼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거리는 벌써 어두워졌다. 저녁 식사 후 아버지는 어머니와 출가 전인 우리 네 딸을 불러 모으고 말했다.

‘내가 떠나면 일본인들은 어머니와 너희들 모두를 체포하고 때리고 고문하고, 나를 배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나는 이미 늙었고 많이 살았다. 나는 죽을 수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살아야 한다. 나 혼자 죽는 편이 낫다.’

우리는 모두 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와 작별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최재형은 사업을 크게 벌이는 한편으로 연해주의 조선독립운동을 지원해왔다. 그는 세 차례 거주지를 옮겼다. 1905년 을사년과 1910년 망국의 해, 그리고 1918년 러시아에 내전이 시작되고 일본이 시베리아에 군대를 파병해 들어오던 때였다. 무장투쟁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지난해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교통총장에 추대된 국민의회의 문창범과 마찬가지로 부임하지는 않았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해 러시아 종교를 가지고 러시아 이름을 지닌 그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신의 기여는 어디까지나 러시아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지원하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보였다.



불타는 신한촌

올가가 잠에서 깨고 5분쯤 지나 현관에 무기를 든 일본군이 보였다. 찬바람이 한꺼번에 불어닥쳤고 식구들은 옷을 걸치고 서둘러 현관 계단을 뛰어나갔다. 저 멀리 손이뒤로 묶인 채 걸어가는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밤사이 극동 연해주 전역에서 러시아 혁명 세력에 대한 공격과 무장해제가 진행되었다. 소총 기관총 대포를 동원해 방화 파괴 학살이 벌어졌다. 그와 함께 한인들에 대한 대량 검거가 실시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볼셰비키의 기관들이 섬멸되었고 한인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新韓村)의 학교와 신문사, 가옥들이 불탔다. 신한촌에 있는 대한국민의회, 한인사회당, 노인단, 애국부인회의 활동가들은 도피했다. 처음으로 일본군에 장악된 신한촌은 노령 한인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해온 구심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니콜리스크-우수리스크에서 일본헌병대에 붙들려 간 한인은 최재형 외 70여 명이었다.

4월 참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앞서 3월에 북방 아무르 강 하구의 니콜라예프스크에서 이틀간 벌어진 또 하나의 참변에 대한 보복을 겸해 일어났다. 러시아인 한인 중국인의 연합 빨치산이 이 북양어업의 중심 겸 전통의 군항 도시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그곳 주둔 러시아 백군과 일본 육군수비대 및 일본 거류민을 대거 학살하고 마을을 불살랐다. 일본 영사관이 소실되고 영사는 살해되었다. 일본 상품 배척 운동이 벌어지고 일본인과의 관계를 단절하자는 배일운동이 번져가던 때였다. 그러잖아도 러시아 혁명 세력과 한인들 간의 연대 강화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던 일본군은 이에 격앙했다. 그리고 무자비한 반격의 구실을 얻게 되었다.

요사이 세상이 하도 소란하고 뒤숭숭하니까 조선 안에서도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만치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더구나 해외에 나가있는 조선 사람의 안부는 교통이 불편하여 잘 들을 수가 없으므로 친척 중 해외로 건너간 사람이 있는 사람은 항상 근심에 쌓여 있다. 태평통 제생당(濟生堂) 주임 김제현 씨의 아우와 매부가 최근에 해삼위(海參威) 신한촌에서 무참히 죽었단 말을 듣고 김씨를 제생당으로 방문한즉 김씨는 답하되…

제생당은 장안에서 손꼽히는 약국이다. 남대문 안 태평통 2정목에서 위장약 판매를 석권하고 있다. 신한촌을 비롯한 연해주 동포들의 참변 소식이 신문을 통해 전해진 것은 7일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기사에 따르면 김 주임의 아우는 10년 전 인천 살 때 상선을 타기 시작해 항해술을 배워 일본사람의 배도 타다가 돈을 모아볼 작정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가 철도 기관수가 되었다고 한다. 해삼위는 극동 군항이자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역이다.

“매년 한 번씩은 집에 다니러 나왔습니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벌이를 하면 돈 몇 만 원은 벌어가지고 나오겠다더니 그 후 러시아 돈의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져서 거기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번대야 여기 돈으로 몇 푼 되지 못하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고 항상 편지에 그런 말을 쓰더니 이번에 그 지경으로 죽어버렸습니다. 식구라고는 처와 어린 딸들뿐인데….”

기사는 김씨의 말을 그렇게 전하고 있다. 매부 되는 사람은 헌병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 관계로 변을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원래 그 해삼위라는 땅은 살기가 매우 위험한 곳이올시다. 이야기를 들으니까 밤에는 불량한 도적놈들이 칼과 올가미를 가지고 다니면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한다 합니다. 그런데다 저렇게 질서 문란하게 과격 적위파가 횡행한 후로는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러시아 백성들에게는 어떤지 모르나, 조선에서 건너간 이민들의 처지에서 볼 때 좋은 시절은 제정 러시아와 더불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내전의 혼란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이야 말할 것도 없고 볼셰비키 급진정부에 저항하는 백러시아 정권이 무너지면서 한인들의 생활 여건에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한 조짐은 1920년에 들어서며 더욱 뚜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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