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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사유재산처럼 낭비했다”

이동주 前 ‘안철수 진심캠프’ 국민소통자문위원 육필 토로

  • 이동주│전 안철수 진심캠프 국민소통자문단 자문위원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사유재산처럼 낭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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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을 친정으로 여긴 安 캠프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사유재산처럼 낭비했다”

지난해 11월 21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TV토론 장면.

정치인 안철수에겐 출발부터 ‘새 정치’라는 짐이 지워져 있었다. 안철수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언제나 ‘기존 정치인과 뭐가 다른가’에 관한 것이다. 오랜 세월 국민 마음속에 끓어온 그런 잠재적 갈망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안철수는 정치권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가령 자연인으로서 안철수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자. 정치 행보를 시작하기 전 그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교수 가운데 제법 우수한 편에 속했을 것이고, 넘쳐나는 벤처기업인들 가운데 얼마간 성공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남모르는 고통과 노력이 있었겠지만 비교적 평탄한 성장배경을 감안한다면 그의 인생은 모범적이긴 해도 위대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라는 ‘사회적 부채의식’도 고상하되 존경을 표할 만큼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엔 김밥할머니처럼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으며 가진 걸 다 내주는 진짜 천사가 수두룩한데, 사회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고백만으로 국민적 존경을 바랄 순 없다. 더구나 안 전 교수를 가까이에서 접해봤던 인사들 중에는 과연 그의 삶이 그토록 헌신적이었는지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가망 없는 한국 정치를 구원해낼 메시아처럼 부각됐던 이유는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기득권 정치에 견주어봤을 때 상대적 우위 덕분일 것이다. 물론 대학생 수준의 지능을 매료시킬 만한 논리적 일관성과 감성적 화술도 뛰어난 장점이지만 그건 본질과는 무관한 조미료일 뿐이다. 요컨대 안철수의 가치는 기득권 정치세력과 차별화한 행보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데 있고, 그러지 못하면 그는 기껏해야 장삼이사 정치인 반열을 넘어설 수 없다. 애초부터 국민이 안철수에게 기대한 건 그렇게 흔해빠진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얘기다.



안 전 교수가 현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그렇다면 그가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도 명확해진다. 바로 대안세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다. 그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최우선 과제였고, 석 달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다시 지난 대선 과정으로 돌아가보자. 국민소통자문위원으로 한발 늦게 캠프에 합류했던 나로선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안철수 캠프 전체가 마치 민주당을 친정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안 후보부터가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에 큰 빚이라도 진 것처럼 여겼고, 특히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선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채무자처럼 송구스러워했다.

안철수는 9·19 출마선언 때 후보단일화에 관해 분명한 조건을 달았다. 민주당의 쇄신, 그리고 국민적 동의였다. 그러나 이후 실제 단일화 과정에서 그 두 가지 조건은 실종됐다. 11월 5일 전남대 강연에서 느닷없이 양자 회동을 제의했고, 이튿날 저녁 회동에서 7개항을 합의하면서 ‘후보등록 이전 단일화’라는 족쇄를 스스로 찼다. 그때까지 민주당이 어떤 쇄신을 보여줬고 국민이 얼마나 동의하겠는지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캠프 내에선 나 외에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형님에게 야단맞는 동생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사유재산처럼 낭비했다”

대선 후보 사퇴 기자회견 직후 캠프 관계자를 위로하는 안철수 전 후보.

당시 안철수 캠프 내에서 민주당을 어느 정보로 의식했는지를 그 분위기를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매일 아침 기조회의에서 흔한 논평을 내기로 결정하더라도 민주당에 관계된 것이면 극히 신중한 표현을 쓰자거나 아예 내지 말자는 쪽으로 결정되기도 했다. 그런 결정엔 ‘후보의 뜻’이라는 해석이 따라붙는 경우도 있었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민주당이 무소속후보 한계론, 형님론을 내세우며 안철수 캠프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종종 벌어졌고 반칙과 술수도 잇따랐다. 그럴 때마다 안철수 캠프의 반응은 으레 “민주당이 그럴 수 있느냐”는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나로선 그런 반응이 오히려 이상했다. 외국에서 살다온 게 아니라면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모를 리 없고 화를 내야 당연한 상황에서 왜 그런 표현을 쓸까. 설령 민주당이 페어플레이를 한다 해도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하는 상대에게 마치 연인끼리 앙탈 부리는 듯한 반응은 대체 뭔가.

후보 사퇴 이틀 전인 11월 21일의 안철수-문재인 양자 TV토론은 그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나는 국민소통자문위원 신분으로 기조회의에 줄곧 참석하고 실무팀장들과 비교적 가깝게 지낸 덕분인지 TV토론 리허설에서 운좋게 문재인 대역을 맡게 됐다. 리허설 과정에서 두세 번 후보와 직접 대면할 기회를 가졌고 그때마다 나는 ‘공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령 11월 13일 오후 첫 리허설 때 이렇게 조언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안철수-문재인 토론 대결에 관한 일반 국민의 기대치는 ‘안철수 100대 문대인 0의 승리’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문 후보도 당내 경선을 거치면서 토론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특히 양자 TV토론은 답변 중심의 패널 토론과 다르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세계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오바마도 1차 토론 때 수비만 하다가 롬니에게 엄청나게 고전하지 않았나. 국민에게 안철수 내면에 숨은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공격을 해야 한다.”

안 후보가 내 말을 얼마나 귀담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양자토론에서 공격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토론 당일인 21일 오후 최종 리허설 때도 나는 또 한 번 적극적 공격을 주문했다. 답변 능력에 관한 한 안 후보는 졸면서도 만점을 받을 만큼 단련돼 있었기 때문에 수비 연습은 별 의미가 없었다. 문재인 후보 역시 그 전날 기자협회 회견, 방송클럽 회견에서 달변가에 가까운 말솜씨를 뽐냈지만 장황한 답변 속엔 당연히 허점도 많았다. 따라서 그런 허점을 파고들 핵심 포인트 몇 개를 간추린 페이퍼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토론현장에서 아예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막판엔 되레 큰형님에게 야단맞는 막냇동생 같은 장면까지 연출했다. 그날의 TV토론은 모든 조직을 총동원한 민주당의 파상적 공세로 궁지에 몰린 안 후보에겐 전세를 뒤집을 마지막 기회였지만 허무하게 날리고 말았다. 모처럼 후보에게 직접 조언을 했던 나로서도 뼈저리게 아팠다.

하지만 TV토론의 패배 원인이 겉보기처럼 안 후보의 토론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실족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당에 대한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민주당을 자기 세력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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