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쨌든 당장 회사를 그만둘 계획이 없더라도 미리 IRP 통장을 개설할 것을 권한다. 본인이 퇴직 전에 IRP 금융기관을 지정해놓지 않으면 회사가 지정한 금융기관에 IRP가 개설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IRP는 본인이 상품의 운용을 지정할 수 있는, 자유적립식 펀드와 유사한 개념이다. 물론 펀드의 단점 역시 고스란히 가질 수 있다. 펀드 운용보수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IRP는 일종의 종합펀드라는 점에서 일반 펀드와 다른 면이 있다. 즉, 얼마든 투자상품을 지정할 수 있다. EPS 주가연계 증권부터 주식, 국공채, 회사채, 정기예금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이라면 정기예금 위주로 넣어두면 되고,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이라면 주식 등에 적극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IRP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고정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IRP 계좌에 넣어둔 돈을 대부분 정기예금에 투자한다 하더라도 고정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예금에 가입한 셈인데 수수료라니? 과연 누구를 위한 수수료 산정방식인지 모르겠다. 자칫 퇴직금을 받아 정기예금에 넣어두는 것보다 오히려 못한 결과를 가져올까 두렵다. 다만 고정수수료가 2%로 책정되어 있어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연간 총소득 3000만 원인 경우 IRP 계좌에 연간 400만 원을 납입하면 24만 원의 절세 효과를 얻고, 고정 수수료로 8만 원을 지불해야 하니 투자수익을 제외하고도 16만 원이 이득인 셈이다.
필자의 지론 중 하나는, 복잡한 금융상품일수록 이면에 보통 ‘플레이어(player)’라고 하는 금융기관들의 수수료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국제 금융회사들은 미국 뉴욕의 맨해튼 땅을 헐값에 팔아넘긴 인디언들을 ‘바보’라고 하지만, 월가의 신화적인 투자가 존 템플턴은 맨해튼을 팔아 받은 돈을 채권에 복리투자만 했더라면 지금 시세로 맨해튼을 되사고도 돈이 남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가장 단순한 투자가 가장 큰 수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퇴직금처럼 작지만 계속 모이는 돈은 더욱 그렇다. 복리투자의 마법이 가장 환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확실한 연금은 복리의 마법을 그대로 부릴 수 있는 안정적인 정기예금 투자나 국채 투자일 것이다. 물론 언제든 중도해지할 수 있고 만기 때 되찾아 곶감 빼먹듯 다른 데 돈을 쓸 수 있다는 게 최대 단점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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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변경된 퇴직금 제도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퇴직금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느낌이다. 스스로 여유자금을 모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굳이 사업비를 지불하면서 개인연금에 들 필요가 없다. 차라리 인내심을 키우면서 정기예금이나 채권 투자에 눈 돌리는 것이 좋겠다. 여기엔 사업비도, 운용보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국세청이 ‘마지막 문’을 열고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