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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 ‘영화사회학’

정의와 불의, 그 사이의 어딘가

한국형 필름 누아르 신세계

  • 노광우│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정의와 불의, 그 사이의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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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類 형제애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정청과 이자성이 여수 출신의 화교라는 점이다. 이러한 지리적, 민족적 동질성은 범죄인과 경찰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로 관객에게 받아들여진다. 정청은 이자성이 경찰 요원임을 알아차린 뒤에도 이자성을 처단하지 않고 비호한다. 자신과 같은 여수 출신 화교라는 이유만으로 이자성을 동생처럼 아낀다. 사회적으로 열세에 놓인 이들의 결속력이 다른 집단에 비해 남다르다는 것으로 어렴풋이 설명된다. 이와 대비되는 맥락에서 강 과장은 이자성에게 경찰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또한 이자성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소외시킨다.

주윤발, 적룡, 장국영이 나온 ‘영웅본색 1’(오우삼·1986)과 ‘영웅본색 2’(오우삼·1987)도 폭력조직과 경찰로 처지가 갈린 진짜 형제간 형제애, 폭력 조직 내 의형제간 형제애를 다뤘다. 정청과 이자성이 활동하는 2010년대 서울이나 소마(주윤발)와 아호(적룡)가 결의하는 1980년대 홍콩은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세계화로 개인의 소외와 좌절이 깊어지는 공간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대안이 보이지 않을 경우 개인은 형제애라는 가장 원초적인 정서에 입각한 인간관계에 더 의존한다는 게 이들 영화가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신세계’의 정청-이자성과 ‘영웅본색’의 소마-아호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위해 희생하고 죽어가는 비슷한 결말을 보여준다.

이자성의 소외와 불안은 바둑알과 인사보고서라는 소품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자성은 바둑 교습을 받는다는 핑계로 여자경찰 신우(송지효 분)와 접선한다. 이때 바둑알은 누군가에 의해 어디에 놓여진다는 의미에서 이자성의 피동성을 상징한다. 아울러 정청은 자신의 금고 안에 경찰이 작성한 이자성의 인사보고서를 감춰두고 있다. 이 설정은 이자성이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매우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상징한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 분)이 지니고 다니는 총알 없는 리볼버 권총은 허세로 출세한 주인공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신세계’는 바둑알과 인사보고서 소품들로 주인공의 무기력함을 형상화했다.

무기력한 삶



영화는 결국 정청이 죽고 이중구도 제거된 뒤 이자성이 골드문의 보스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흔히 주인공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경찰의 범죄소탕작전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경찰관이 정의의 세계와 불의의 세계를 오가다가 불의의 세계로 귀속되고 만 것이다.

영화는 에필로그 격으로 이자성이 어떻게 강 과장에 의해 골드문 잠입요원으로 선출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사실 선출이 아니라 경찰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에 더 가까운 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반면 이자성이 정청과 공유한 고향 여수는 티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묘사된다.

정의와 불의, 그 사이의 어딘가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이렇게 ‘신세계’는 한 인간의 삶이란 경찰과 범죄인, 정의와 불의를 오가는 음울하고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어떤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신동아 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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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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