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금 거래소’ 열어 지하경제 양성화하자

金 거래 60%가 ‘무자료’

  • 유동수 | 한국귀금속유통협회장 dsykevin@gmail.com

    입력2013-03-21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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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 거래소’ 열어 지하경제 양성화하자
    한국은행은 2011년 7월(25t)과 11월(15t), 지난해 7월(16t)과 11월(14t), 그리고 올 2월(20t) 등 최근 2년간 5차례에 걸쳐 금을 사들였다. 올 2월 기준으로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은 총 104.4t에 달한다. 이는 금 보유량 세계 34위 수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과 경제규모로 볼 때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게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금은 환율 방어수단이자 지급능력의 척도로 국부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금 보유량과 거래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다. 세금을 내지 않고 거래하는 무자료 금(일명 ‘뒷금’) 거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민간 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거칠게나마 추정해볼 수 있는 정도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가 발표한 자료(‘Korea Jewelry Market Research Annual Report 2012’)에 따르면 국내 주얼리 시장은 5조3000억 원 규모로, 이 가운데 금을 소재로 한 주얼리 시장이 전체의 89.7%(4조8000억 원)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 주얼리는 순금(24K)은 물론 18K, 14K 등 합금소재로도 제작되기 때문에 재료로 사용된 순수 금의 양은 41.7t, 약 2조 원 규모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실제로 이보다 15배 이상인 660~720t의 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 모은 금은 227t에 달했다.

    정부는 금 유통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해 2008년 금거래 전용계좌와 고금(古金) 의제매입세액공제제도를 도입했다. 의제매입세액공제는 제조업을 영위하는 사업자가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아 공급받은 원재료로 제조·가공한 물품을 판매할 때 일정률을 매입세액으로 공제해줘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두 제도 덕에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금 함량 준수와 세금계산서 발행 등 거래 양성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금 시장의 30~ 40%만이 세금계산서가 발행되는 정상거래일 뿐, 금 결제(반지, 팔찌 등 주얼리 제품을 구매하면서 수집된 고금으로 현물 결제하는 것. 주로 세금 회피수단으로 악용된다) 등 뒷금 거래를 통한 무자료 유통이 전체 금 거래의 60%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古金 50t 무자료 거래

    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제도가 도입된 2008년 이후 50t(2조5000억 원) 이상의 금이 양성 거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2010년에 수집된 고금 72t 가운데 29%인 21t만이 의제매입대상으로 신고됐다. 나머지 50t은 여전히 음성적으로 무자료 거래가 이뤄지는 것.

    고금 수집상들은 수집된 고금의 시중가격 추이에 따라 고금 의제매입신고 또는 무자료 유통을 선택한다. 그런데 최근 금 가격이 상승한 탓에 무자료 유통 수익(5%)이 의제매입신고 수익(3%)보다 높다. 이 때문에 일부 사업자들은 아파트나 상가 등에서 수집한 고금을 의제매입대상으로 신고하지 않고 뒷금으로 유통해 부당이익을 편취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일부 사업자의 경우 고금을 수집한 뒤 명의도용 등의 방법으로 수출부가세를 부정 환급받은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격金 리스트制 도입하자

    금 거래를 할 때 무자료 거래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금계산서가 없는 무자료 금과 자료 금의 시세가 달리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 가격 또한 순도와 브랜드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가격이 형성돼 있다. 금 결제와 같은 관행이 여전히 유지되고, 거래되는 금의 순도에 대한 국가적 표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선 일반인이 금 현물 투자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일반인이 믿고 금에 투자하도록 하려면 표준화, 규격화를 바탕으로 금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금 거래소’ 열어 지하경제 양성화하자

    서울 종로의 귀금속 상가.

    예를 들어 정부가 문서화한 금 시장(주식처럼 계좌로 거래할 수 있는 금 투자시장)을 만들면 일반 투자자들도 탈세 우려없이 제품의 순도와 질량에 대한 신뢰를 갖고 부담없이 금 시장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금 시장이 전체적으로 확대될 것이고, 이중 가격구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아울러 전 세계 금 현물거래의 기준을 제시하는 LBMA (런던금시장협회)에서 골드바의 품질기준과 적격생산업체(Good Delivery Bar List)를 지정해 운영하는 것처럼, 국내 제련회사에서 생산한 국산 브랜드 금을 국가가 인정해주는 국가인정 적격금 리스트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금 시장을 양성화하려면 무자료 금 거래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양성화한 시장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할 때 정상적인 거래 비중이 높아 매출이나 과표가 많이 잡히는 업체를 더 빈번하게 조사하는 역차별 관행은 개선해야 한다.

    거래 투명성을 막는 세제도 개편해야 한다. 골드바에 대한 관세와 부가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다. 이 때문에 세금을 탈루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같은 부작용을 막으려면 투자용 금과 일반 상품용 금을 구분해 세금을 달리 부과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반지를 구매할 때 반지의 금 함량을 거의 유일한 가격 척도로 활용하지만,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은 금 함량이 아닌 브랜드 가치와 제품의 디자인으로 가격을 결정한다. 즉 투자용 금과 반지 등 상품용 금에 대해 과세 기준을 달리하면 국내 주얼리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현재는 금 시장 전반에 걸쳐 금 제품의 함량 및 탈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탓에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디자인이 우수한 고부가가치 귀금속 제품을 해외에서 많이 주문받아도 재료로 쓸 금을 구입할 돈이 없어 수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양성화한 금을 가공하고 유통하는 회사에 금융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정책이 아쉽다.

    거래단위 표준화도 시급

    귀금속 산업에 종사하는 상인과 기업은 물론 개인도 여전히 국가표준거래단위인 그램(g)보다는 ‘돈’ 단위 거래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이중적 거래단위 사용은 가격 투명성은 물론 국가 간 거래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정부 차원에서 국제 표준거래단위를 기준으로 한 거래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금 시장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품질의 금을 거래할 수 있는 유통구조 확립이 필수다. 정부는 2010년 6월, 금 등의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한국거래소 내에 상품(금)거래소를 개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9월에는 일반상품거래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부처에서는 구체적인 시장 개설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법정 금 시장(금 거래소)이 출범하고 세무제도 등 보완책이 뒷받침되면 국내 주얼리 업체 가운데 세계적인 브랜드가 탄생할 수도 있다. 또한 금 투자시장이 확대되면 주얼리 산업뿐 아니라 산업용 금을 사용하는 금 거래 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더불어 금 거래소가 활성화하면 무자료 금 거래가 줄어 세수 증대에도 기여하게 된다.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금 시장 개설은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지하경제 양성화와도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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