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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 맞서 ‘마이 웨이’ 빈사의 EU 살리기 올인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美 연준 맞서 ‘마이 웨이’ 빈사의 EU 살리기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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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출범 후 줄곧 유럽 경제의 양대 강국 독일과 프랑스 출신 인사가 좌우하던 유럽중앙은행(ECB)이 2011년 11월 마리오 드라기를 새 수장으로 맞았다. 부채가 많고 부패가 심한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 단기국채 무제한매입(OMT) 등 이름조차 생소한 ‘비(非)전통적 통화정책’을 쏟아내며 남유럽 부도위기로 벼랑 끝에 몰린 유럽 경제를 진정시켰다.
美 연준 맞서 ‘마이 웨이’ 빈사의 EU 살리기 올인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7월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오랫동안 부양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에겐 출구전략이 아직 먼 미래의 얘기다. 이에 따라 향후 상당기간 유로존 금리를 현 수준 또는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것이다. 여기에는 마이너스 금리도 포함된다.”

2013년 7월 4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이 말에 세계 주요국 주식시장이 급등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RB) 의장이 6월 19일 “미국 경제가 연준의 전망대로 간다면 올해 하반기 중에 자산 매입 축소를 검토하고 내년 중반쯤 자산 매입을 중단하겠다”며 양적완화 정책 중단을 시사한 지 약 2주 만이다. 버냉키 발언 후 주요국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는 등 이른바 ‘버냉키 쇼크’가 발생했지만, 드라기 총재의 발언에 시장은 환호로 답했다. 그는 2011년 11월부터 유럽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4대 중앙은행으로 미 연준,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BOJ), 영란은행(BOE)을 꼽는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최근에는 중국 인민은행(PBOC)까지 포함해 5대 중앙은행을 거론하기도 한다. 다만 5대 중앙은행이라고는 해도 슈퍼 강대국 미국 경제의 위력 때문에 연준의 위상과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미국 중앙은행장인 연준 의장이‘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드라기 총재는 최근 세계 금융시장에서 버냉키 연준 의장 못지않은 힘을 발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신중하고 정제된 발언을 하는 일반적인 중앙은행장과 달리 그는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재는 1990년대 이탈리아 재무장관으로 일할 때 만성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이탈리아를 정부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등의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으로 구해내 ‘슈퍼마리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총리가 잇따라 교체되는 정치불안 속에서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리는 위기 상황이었다. 드라기는 마치 폴짝폴짝 좌충우돌하면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닌텐도 게임 속의 슈퍼마리오처럼 난관을 극복해나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이런 그가 큰소리를 쳐댔으니 기대감이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가 드라기를 주시하는 이유다.



MIT 박사 출신 테크노크라트

드라기 총재는 1947년 9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사피엔자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6년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버냉키 연준 의장과 그는 MIT 경제학박사 출신의 정통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라는 공통점이 있다.

MIT 시절 드라기의 스승은 두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였다. 드라기처럼 이탈리아 출신으로 198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랑코 모딜리아니 교수와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 교수다.

이 중 모딜리아니 교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기업 가치는 부채와 자기자본비율이 아니라 수익률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는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대규모 인수합병(M·A)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드라기 역시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재무장관 시절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세계적인 석학들을 사사하며 경제학계의 엘리트로 성장할 준비를 마친 드라기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해 잠시 교수 생활을 했다.

드라기 총재가 본격적인 테크노크라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세계은행(WB)과 연을 맺으면서부터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은행의 이탈리아 이사로 재직한 그는 당시 사실상 세계은행의 2인자로 활동하며 관료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이탈리아보다 국력과 경제력이 강한 나라가 여럿임을 감안할 때 이탈리아 출신이 국제기구에서 이토록 두각을 드러낸 예가 없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는 1991년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의 재무장관이 됐다. 그가 발탁됐을 때 아무도 그가 2001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재무장관을 지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당시 이탈리아 경제가 재정 파탄의 벼랑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취임하자마자 통신, 에너지, 금융 부문의 민영화를 주도하며 천문학적이던 재정적자를 줄였다. 당시 이 세 부문이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차지했고, 민영화에 따른 정치권 및 노동자 반발이 극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뚝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슈퍼마리오’ 별명을 얻은 드라기는 2002년 골드만삭스의 국제 업무 담당 부회장으로 스카우트되어 3년간 ‘골드만맨’으로 근무하며 세계 금융계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재무장관만 3명을 배출했을 정도로 세계 금융계의 첫째가는 파워 집단이다. 조지 부시(아들) 정권의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 클린턴 정권의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1960년대의 명재상 헨리 파울러 전 재무장관을 비록해 조슈아 볼턴 전 백악관 비서실장,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 아서 레빗 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존 테인 전 메릴린치 최고경영자(CEO) 등이 미국 경제의 대표적인 골드만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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