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MZ국립공원을 어디에 만들자는 얘긴가요.
“DMZ 안에 평화공원을 만들려면 유엔군과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우리 노력만으로는 착공조차 어려워요. 그러니 민간인통제선(CCL)과 DMZ 남방한계선 사이를 우선 국립공원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유엔군과 북한의 동의와 협조를 얻어 DMZ평화공원을 만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곳부터 먼저 시범적으로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얘기죠.”
▼ 화천이 그 적지(適地)인가요.
“DMZ를 끼고 있는 여러 지역 가운데 CCL과 남방한계선 사이에 넓게 포진한 곳이 화천입니다. 몇몇 지역의 경우 군사분계선과 CCL이 맞붙어 있어 공원을 조성할 여건이 안 돼요. 또 면적이 넓더라도 사유재산이 인정돼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화천은 CCL과 남방한계선 사이 면적이 넓고 사유재산도 거의 없어 국립공원으로 보존할 수 있는 최적지입니다. 꼭 우리 지역에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화천이 어떤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 말씀드리는 거예요.”
평화의 댐이 자리한 화천은 평화를 상징하는 시설을 여럿 갖추고 ‘평화 전도사’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평화의 댐 인근에 자리 잡은 ‘세계평화의 종’. 전 세계 분쟁지역 30개국에서 가져다 모은 탄피를 녹여 만든 것으로, 전쟁을 평화로 바꿔낸 상징물이다. 2009년 타종식 때는 동서 냉전시대를 종식시킨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참석해 타종했다. 평화의 종은 단순히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에 그치지 않는다. 평화의 종 공원 운영 수익금은 6·25전쟁에 참가했다 희생된 에티오피아 병사 후손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평화의 종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60여 년 전 이역만리 대한민국에서 평화를 위해 싸우다 간 에티오피아군(軍)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화천군에 주둔한 우리 군부대 부사관들도 십시일반 장학금을 모아 더 많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게 됐습니다. 부사관들이 박봉을 털어 모은 장학금이 1년에 3000만 원이나 됩니다. 또한 서울대와 한림대에서는 에티오피아 출신 대학원생이 학비 부담 없이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충북 충주에 있는 한 광학기계 제조회사는 에티오피아 학생을 채용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고요.”
평화 선순환의 모델이 된 평화의 종 사업은 ‘세계 병사 위령제’와 위령탑 건립으로 이어졌다. 7월 13일 화천군은 조계종과 함께 화천군 파로호와 백암산 주변에서 희생된 10만여 명의 외국 병사를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냈다.
남북평화홍보대사

화천군은 수달을 남북평화홍보대사에 임명했다.
“평화아트파크가 완성되면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던 살상무기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2006년부터 화천군이 추진하고 있는 백암산 프로젝트도 평화와 관련돼 있다. 특구로 지정돼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평화의 댐은 물론 북한의 금강산댐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집중호우가 잦았던 올여름 북한은 임남댐(금강산댐) 수문을 열겠다고 통보해왔다. 그러나 백암산 전망대가 완공되면 망원경으로 금강산댐 수위를 알 수 있어 북한의 통보 없이도 자체적으로 수위 조절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평화는 구호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위험을 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임남댐에서 많은 물이 내려오는 것을 지금은 북한 군부의 통보를 받아야 알 수 있지만, 백암산 전망대가 완공되면 우리 힘으로 파악해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곧 평화로 가는 길 아니겠습니까.”
정 군수의 말에서는 평화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묻어났다. 평화의 종, 평화아트파크, 백암산프로젝트 등 다양한 평화 관련 사업을 추진해온 뒷심이 자신감으로 작용한 듯했다. 화천군은 지난해 코리아DMZ협의회에 용역을 줘 평화생태호수공원 건립을 위한 검토를 끝냈다. 용역 보고서에는 평화의 댐과 금강산댐 사이를 ‘평화생태호수공원’으로 조성, 남북한이 평화·생태·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과 세계 최초로 댐을 활용한 문화공연장을 평화의 댐에 건립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일찌감치 DMZ평화공원 조성을 준비해온 정 군수는 하고픈 말을 다 하면서도 정작 ‘화천이야말로 DMZ세계평화공원의 최적지’라는 말은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다만 화천군이 그동안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인터뷰 말미에 정 군수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한 곳뿐인 수달연구센터에 대해 설명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수달은 자연보존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 동물입니다. 학자들은 화천에 수달이 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자연이 잘 보존됐기 때문이라고 해요. 생태학적으로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곳이란 얘기죠. 2005년 화천에 수달연구센터를 만들면서 수달을 ‘남북평화홍보대사’로 임명했습니다. 사람은 DMZ 철조망에 막혀 남북을 왕래할 수 없지만 수달은 패스포트 없이도 북한강을 따라 남북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거든요. DMZ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은 수달이 자유롭게 남북을 넘나들 듯, 사람들도 자유 왕래가 가능한 평화지대를 만들겠다는 뜻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