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

부패척결 의지 담았으나 ‘입법 과잉’ 부작용 여지

김영란법

  • 박영수│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전 대검 중수부장

    입력2013-08-21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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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패척결 의지 담았으나 ‘입법 과잉’ 부작용 여지

    10억 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된 김광준 전 검사.

    7월 3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부르는 이 법은 공직자가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한 금품의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무회의 심의과정에서 직무 관련성 없이 돈을 받은 경우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이를 두고 ‘부패척결 의지의 후퇴’라는 비난이 일었다. 한마디로 부패척결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국가적, 사회적 요청과 행위책임주의를 본질로 하는 형사법 대원칙의 충돌 문제다.

    부패는 우리 사회의 공정한 룰을 저해하는 암적인 요소로, 부패척결 없이 국가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국제경제적으로도 부패가 하나의 무역장벽으로 인식되고,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안보 능력 못지않게 국가의 투명성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176개국 중 45위로 나타났다. 싱가포르(5위)나 홍콩(14위)에 비해 상당히 부끄러운 수준이다.

    나라 안팎에서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를 심각하게 보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7.5%가 한국 사회가 부패했다고 답했고(2011년 ‘시사저널’과 한국반부패정책학회 공동조사), 국민의 78.7%가 부정부패의 주체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를 지적했다(2011년 국민권익위 조사).

    이제 우리 사회에서 부패를 추방하는 일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됐다. 이러한 절실한 요청에 따라 형사법의 대원칙을 일부 유보한 김영란법의 등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공직비리를 엄격히 관리해왔다. 김영란법의 모태가 된 미국의 ‘뇌물 및 이해충돌방지법’(1962년)은 공직자가 금품 등을 수수하는 경우 직무 관련성을 불문하고 형사처벌(1~5년의 징역 또는 벌금)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영란법 제정을 주장하는 논거 중 하나로 이러한 외국의 입법례가 제시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

    그러나 이런 주장은 각 나라의 역사적 전통이나 그 나라 국민의 의식이나 성향에 따라 형성된 반(反)부패 문화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다. 청렴이 사회 풍토로 정착한 대표적 청정 국가인 핀란드의 사례를 보면 부패척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반부패문화의 정착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핀란드의 어느 경찰관이 시민의 자전거를 찾아주고 2유로(우리 돈으로 3600원)를 받았다. 당사자는 ‘감사의 표시’로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상부에서는 부정행위로 간주했다.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가 어느 골프장 주변을 개발하는 과정에 자신이 그 골프장 회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곧바로 사임했다. 이웃 주민이 갑자기 고가의 차를 구입해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다른 주민이 자금 출처를 조사하도록 세무당국에 신고한 사례도 있다. 공직자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을 뇌물로 간주해 처벌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개방과 원칙을 중시하는 공직 풍토, 정직과 청렴이 습관화한 국민의식을 바탕으로 반부패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으로 문화도 다르고 아직 반부패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법이 과연 그 입법 취지대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형사법의 대원칙을 일부 유보하면서까지 이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사회 구성원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행위 규범을 규정한 것이 법이라는 뜻이다. 특히 어떤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는 형사정책적 관점에선 더욱 제한적이고 엄격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형사법은 최소한의 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위책임주의’ ‘과잉처벌 금지’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은 그 대상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켜갈 수는 없다. 직무관련성을 입증하기 힘드니 이를 법문에서 삭제하자는 주장에 대해 지나치게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패’ 못지않게 위험한 건 ‘무능’

    여론은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 없이 금품 등을 수수했을 때도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한 김영란법의 원안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수정 법안에서 ‘직무 관련성’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행정벌인 과태료 부과를 규정한 것은 책임주의 원칙상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할 수 없는 현행 형법의 공백을 메운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게다가 과태료를 부과할 때는 형사법적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형사처벌보다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다.

    또한 해당 공무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경우 그 후속 조치로 징계도 뒤따를 것이고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승진 불이익은 물론 공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엄격한 형사절차를 우회한 과태료 부과가 오히려 당사자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정안이 원안보다 후퇴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한편 여론의 관심은 이렇듯 금품수수 관련 규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정작 이 법안의 핵심은 이해충돌과 관련한 규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법안의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행해졌던 공직사회의 모든 부정부패 항목이 나열돼 있다.

    우선 ‘공직자윤리법’과 ‘전관예우금지법’에는 퇴직자 취업제한과 국가기관 사건수임 금지 조항이 있다. 즉 고위공직자가 퇴직 후 일정 기간에 퇴직 전에 맡았던 업무나 기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을 못하게 하는 규정이다.

    그런데 김영란법은 그 반대 상황까지 예상해 규정하고 있다. 차관급 이상 공무원, 광역·기초 자치단체장, 교육감, 공공기관장 등 고위공직자가 임명되면 이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고객의 재정보조, 인허가, 조세부과, 수사 등의 직무수행에서 배제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업무수행 중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수수, 이권 개입 여지가 농후하다는 것이다. 규정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전문가의 공직 임용에 제한을 두면 인재등용은 고사하고 정부에서 추진하는 개방형직위제조차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패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공무원의 ‘무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제도와 문화

    김영란법에 따르면 이외에도 직무 관련자에게 사적 자문 제공, 직무 관련자와의 금전차용·부동산·용역·공사 등 거래행위, 고위공직자·인사담당자 가족의 소속·산하기관 특별채용, 고위공직자·계약담당자 가족과 소속·산하기관의 수의계약 체결, 부하직원의 사적 노무 동원, 부동산 개발 등과 관련한 직무상 비밀 이용 등이 모두 금지된다.

    과연 이 모든 규정이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법체계상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윤리법, 형법 등에 이 법안까지 얹혀져 ‘입법의 과잉’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김영란법에서 법 조항이 충돌할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관련 규정을 정비해 ‘옥상옥(屋上屋)’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하다. 그러나 과연 김영란법이 지금 시점에서 최선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그동안 쌓아온 법치국가의 테두리 내에서 형사법적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공직윤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제도 개선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청탁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청렴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는 말로 글을 마칠까 한다.



    논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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