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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경남 남해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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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나는 중국 학생 100여 명을 데리고 다시 이 바닷가를 찾았다. 그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모래밭이 꽤 좁아진 것 같은 느낌. 이곳에서도 모래가 해류에 쓸려나가는지 여기저기 거친 속살이 드러나 있기도 했다. 해변에서 마주 보이는 나무섬과 돌섬의 모습도 그대로인데 숲 너머 돌산이 그 사이 키를 많이 낮추었다. 사장을 뛰고 달리며 지르는 외국인 학생들의 환호성을 듣는 가운데 나는 풍경도 사람 따라 늙는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상주해수욕장에서 바로 쳐다보이는 돌산이 금산이다. 바다에서 도로를 따라 10km쯤 산으로 다가들면 주차장을 겸한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산행로 초입이다. 등산이 힘겨우면 산 뒤편의 복곡탐방지원센터까지 차편으로 오를 수도 있다.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돌덩이처럼 보이지만 등산로가 시작되는 산 아래에서 쳐다보면 기암괴석들은 산꼭대기에 도열해 있고 그 아래는 짙푸른 숲이다. 해발 705m의 금산을 오르는 산길은 크게 가파르지 않고 지루하게 길지도 않다. 한바탕 땀을 흘렸다 싶으면 곧 보리암으로 통하는 자연 석문 쌍홍문에 이르게 되는데 이 주변의 풍광이 금산에서도 압권이다. 거대한 바위들이 천연의 성벽인 양 주위를 옹위하고 있다. 산 아래로 눈길을 돌리면 남해의 티 없이 푸른 물결과 다도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신라 원효 스님이 이 산에 보광사라는 절을 지은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금산이란 지금의 이름은 이성계가 조선 개국을 앞두고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는 가운데 제 뜻대로 새 나라를 세우게 되면 그 보답으로 산 하나를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약조한 데서 비롯됐다는 전설이 있다. 정식으로 산 이름을 금산으로, 절간을 보리암으로 고친 것은 조선 현종 때의 일이다.

풍경도 사람 따라 늙는가

쌍홍문을 지나 돌층계를 오르면 이내 보리암의 안마당을 디딜 수 있다. 낙산사 홍연암, 강화도 보문사, 팔공산 갓바위 등과 더불어 나라 안에서도 가장 영험 있는 기도처로 알려진 이곳에는 원망이 큰 기도인들의 발걸음 또한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산 높은 곳에 위치한 절집들치고 빼어난 풍광을 지니지 않은 절집이 없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보리암의 경치가 으뜸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가까운 곳은 기암괴석이요, 먼 데는 차마 눈길도 닿지 않는 수평선이다. 하늘과 구름, 바다와 섬들이 그 한 폭의 그림 속에 있으면서 시시때때로 형태와 색깔을 달리한다. 발아래의 산봉우리와 들판, 사람들의 거처도 마찬가지다. 무변의 엄숙과 변환의 무상성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 그것이 벼랑 위의 절집 보리암에서 마주하는 풍경이다.

남도의 한려수도나 해남 땅끝에 사는

또 남해의 보리암 밑 바다에 있는

작고 많은 섬들이 대낮에도 부끄러워

넓은 구름 안개에 아랫몸 감추고

나무 고깔의 머리만 조금 내밀고 있다.



이게 대체 몇 개나 되는 섬이냐 물으면

나요, 나요 하는 메아리 숫자만큼 많겠지만

낮은 소리로 네가 이쁘구나, 하면

흩어져 있던 섬들 어느새 다 알아듣고

안개 사이를 헤엄쳐 손잡기 시작하네.



아껴주고 보듬어주면 금세 어깨 기대는 섬,

더는 쓸쓸해하지 않는 섬이 손잡고 웃는다.

누가 깨우기 전까지는 모두들 조용하고 깊었다.

오늘에야 서로 껴안고 춤추며 만든

온 바다 속을 채우는 해초와 물고기들,



처음에는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우리가 만나 서로 허물을 안아주면서

말의 물길을 통해 경계가 무너지는 섬.

모든 완성은 눈과 눈을 합친다.

모든 완성은 멀고 막막한 하나다.

- 마종기 시 ‘다도해를 보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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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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