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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우드스탁의 아침

  • 문정희 │동국대 석좌교수

우드스탁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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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탁의 아침

미국 뉴욕 남동부에 자리한 우드스탁.

한번은 한국을 여행하며 유명한 문화 유적지의 안내문과 심지어 카페와 식당 메뉴판에 잘못 표기된 영문을 일일이 빼곡하게 적어와 시급히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조금 조바심을 비치기도 했다.

비트 시대의 작가 잭 케루악의 연인이 살았다는 그녀의 빌리지 작은 아파트 다락방을 부러워하는 나에게 기꺼이 그 방을 내준 적도 있고, 허드슨 강가에 있는 ‘시인의 집’에 데려가 디렉터에게 나를 소개하며 상설 전시관 한쪽에 한국 시인의 시집을 전시해두게 하려고 애를 쓴 적도 있다.

지난해 봄인가 다시 뉴욕에 간 나는 차이나타운에서 그녀와 저녁을 먹었다. 이 거리에서 최초로 에스프레소를 끓였다는 100년이 넘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맨해튼을 함께 걸었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나에게 세계적인 감독들의 새 영화와 신간들을 소개하며 수준 높은 자극을 주었다. 우드스탁에 가서 며칠 쉬며 책을 읽고 그때처럼 다시 맑은 아침을 맞고 싶다는 나에게 예의 화장기라곤 없는, 지적이고도 잔잔한 미소로 꼭 한 번 다시 가자고 약속해주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영원히 지켜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가 갑자기 타계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가 다시 가자고 약속했던 그 우드스탁의 숲에서였다고 한다. 산책을 하기 위해 자동차를 주차하고 막 숲 속을 걸어가려던 순간 쓰러진 것이다.

거짓말 같은 이 현실을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해 로버트 씨는 미국인답지 않게 심하게 허둥거려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고 한다. 최월희 선생의 타계 소식은 나에게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과 허전함을 안겨주었다.



번역서로 ‘기생 시집(song´s of Kisang)’과 정현종 시집, 내 시집을 남겼다는 약력과 함께 그녀의 죽음을 보도한 한국의 한 일간지는 한국문학을 미국 문단에 알리려고 노력한 분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좋은 가정의 명민한 딸로 태어나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미국에 가서 대학교수가 된 자랑스러운 엘리트 한 분이 이렇게 홀연 떠나버린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우드스탁의 아침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자유와 젊음이 물결치던 우드스탁의 록 음악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듯이 우리의 열정과 사랑으로 만든 작은 시집이 지금 내 서재 한 귀퉁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을 뿐이다.

우드스탁의 아침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등단

작품집 :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카르마의 바다’,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등 다수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現 동국대 석좌교수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꽃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별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것이 생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새 달력 앞에서 생명과 희망을 말하기보다 이렇듯 다시 만들 수 없는 아프고 그리운 순간들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아니,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이란 끝없는 질문이 전부인가?

신동아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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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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