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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주는 교훈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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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하려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민주주의를 시장경제 중심의 자유주의 베이스로만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평등한 시민권에 방점을 둔 민주주의, 소유권의 자유와 시장 우위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의 대립과 조정의 역사가 배어 있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당연히 복지, 사회정의, 이런 걸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democracy)와 다르다. 전자를 채택하면 후자는 역사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의미 왜곡의 오류

현행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번역되기 때문에 이번 교육과정에 집어넣으려는 자유민주주의와 애당초 기원과 맥락이 다르다. 이런 논의가 오가는 중에 논리가 궁색해지자 자유민주주의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럴 거면 그냥 민주주의라 하면 되지, 왜 굳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쓰고, 거기에 사회민주주의 개념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까지 해야 하나?

원래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정당의 정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1년 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혁명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라고 선언하고, 1963년 2월 26일 제정된 공화당 강령 1조에서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며,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확립을 기한다’라고 했다. 1950년대 양대 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의 정강 1조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확립’(자유당), ‘일체의 독재주의를 배격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한다’(민주당)로만 돼 있었다.

특정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강으로 채택하는 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의 정강 용어를 한국 현대사의 기조로 가르칠 순 없는 일 아닌가.



이렇게 해서 국민국가사로 편협해진 역사학으로도 부족해서, 이젠 그 국민국가사의 일부만으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보편적 공감이 아닌 특수한 배제로 작동하는 양상, 공익이 아닌 사익이 우선하는 양상, ‘서경(書經)’의 표현대로 하면 도심(道心)이 아닌 인심(人心)으로 작동하는 양상이 요즘 정부 정책 기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던 바이지만, 역사교육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관리할 줄은 몰랐다. 정말 디테일이 살아 있다!

현재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등 11개 연구단체가 개정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학계 대표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주호 장관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국장은 “교과부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장관이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는 뜻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합법적이라…. 그랬겠지. 공무원들이 어련했겠나. 그래서 고전이 중요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법으로만 다스리면, 요행히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저자와 한국현대사학회 바른역사국민연합 창립준비위원회 회원 등이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수정 보완 지시를 충분히 이행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왼쪽과 가운데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공주대 교수.

‘학술이라도 제대로’

2011년 10월 28일, 서울 4·19혁명기념도서관 강당에서 ‘보수와 진보가 보는 민주주의-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역사교과서 개정 논란의 원인이 된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연세대)는 “임시정부 이래 이승만 정부까지 어떤 헌법, 연설, 인터뷰에도 자유민주주의는 없다”는 내용을 구체적 사료와 함께 제시했다. 발표문에서 시종일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썼던 김용직 교수(성신여대)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1차 사료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연구서에서 차용했다. 일단 현재까지, 역사학자인 내가 볼 때 임시정부부터 이승만 정부까지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기본 방향이라는 걸 보여준 사료는 없다.

필자가 이날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박 교수에 대한 토론 패널을 맡았던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이는 역사학의 기본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랬더니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일리가 있다.

그의 말대로,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학은 사료가 없이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역사학의 기본이다. 알고보니 그분이 현대사 전공인 역사학자란다. 그리고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인지라 그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했는데, 한국현대사학회는 학술단체이지 운동단체가 아니라고 했다. 난 이날 일기에, “권 교수는 학술이 운동보다 그리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학술이라도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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