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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폭탄 안고 사는 삶…무데뽀로 뛰어들지 마라”

경력 22년 무명 女가수 이영아 육성 고백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폭탄 안고 사는 삶…무데뽀로 뛰어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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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사칭한 매니저

▼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묘사한다. 자전적이라곤 해도 충분히 윤색 가능한 문학 장르다. 책 내용은 100% 실화인가.

“그렇다. 근데 막상 써놓고 보니 실제보다 너무 톤다운(tone down)했다는 생각도 든다. 더 집어넣을 내용이 많았으니 허구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 어둠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한 과거를 드러내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무척 망설였다. 밤무대 뒷얘기는 물론 사생활과 지긋지긋할 정도인 암 가족력까지…마치 생리혈 묻은 팬티를 까뒤집어 세상에 공개하는 거나 진배없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미쳐 돌아가는 나락에서 ‘너는 뜬다’는 거짓말에 매번 속으며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는 무명가수들을 위해 이영아로 대변되는 현실을 책을 통해서나마 들려주고 싶었다. 책 제목의 ‘늑대’는 ‘힘 있는 자들’을 상징한다.”



▼ 독자 반응은.

“재밌다. 당신이 겪은 산전수전, 공중전에 마음이 아련하다. 그 바닥이 더러운 건 짐작했지만 정말 골 때린다. 이 세 가지 반응.”

이 씨는 20세부터 가수의 길로 ‘올인’했다. 서울 대 지방, 남성 대 여성, 댄스 아닌 트로트. 가요계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도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음에도.

▼ 가수를 꿈꾼 이유는.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노래하는 게 좋았다. 계모에게 구박당하는 게 싫어 생업도 가져야 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선 상업계 고교 나와 적당히 경리 일 하다 23~24세쯤이면 시집가던 시절이다. 그런 빤한 인생이 싫었다. 아버지 다방의 아가씨들 앞에서 우월해보이고도 싶었다. 가수는 멋있으니까. 1989년 고교를 졸업했는데, 야망과 욕심이 커서 본래 학업엔 뜻이 없었다. 대충 졸업하고 어서 노래 불러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 노래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 있나.

“없다. 앨범 녹음 때 발성 트레이닝을 조금 받은 게 다다.”

▼ 원래 꿈은 뭐였나.

“간호사. 엄마가 아파 암암리에 링거주사 놔주는 아줌마들을 자주 대하면서 그런 꿈을 가졌더랬다. 그러다가도 가슴 밑바닥에서 노래 욕구가 솟구치곤 했다. 단단히 미쳤던 게지.”

▼ 고교 졸업 직후 풍기읍의 가요제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던데.

“군민회관(당시는 영풍군)에서 매년 열리던 작은 가요제였다. 윤시내의 ‘열애’를 불러 1등 했다. 그때 느낌은 ‘아, 난 이 길로 가야 한다, 이렇게 화려하고, 나를 드러내 과시할 수 있고, 남이 우러러보는 무대가 내가 설 곳’이라 철없이 생각했다. 아버지의 외도와 폭력으로 가정적으로 불행했던 것도 그런 마음을 부추겼다. 엄마가 라디오를 끼고 살며 노래하는 걸 좋아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내 성격이 예민한데, 노래 부를 때만큼은 상념을 잊을 수 있었다.”

이 씨의 인생은 경주 나이트클럽→대구 백화점 직원→대구 보세 옷 매장 종업원→영주 밤무대 가수→태백 나이트클럽→구미 나이트클럽→안동 라이브 카페→앨범 취입→밤업소 일 중단→대구 나이트클럽→지방 행사 공연 등 다양한 궤적을 그렸다.

앨범 내느라 3억 탕진

현재 경북 안동시에 사는 그는 요즘은 지방 행사에만 간다. 무대에선 통상 본인 노래 한 곡과 기성 가수 노래 서너 곡을 부른다. 노래 연습은 이동 중 차 안에서 한다. 행사가 거의 없는 여름과 겨울엔 봄가을에 번 수입을 쪼개 산다. 한 달 평균 행사는 20회 가량. 출연료는 회당 30만~50만 원쯤. 좀 더 받는 이도 있지만, 대개 20만~30만 원 수준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심한 경우 밤엔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행사엔 5만 원만 줘도 가는 이가 있다. 그러니 무명 가수 세계는 포화 상태다. 국내 무명 가수가 10만 명을 넘는다면 믿겠나. 입만 떨어지면 다 가수라고 한다. 그래서 더 생활이 힘들다. 집 없는 건 기본이고 월세 내기조차 빠듯하다. 미래도 없이 노래에만 기대어 사는 거다.”

▼ 돈은 좀 모았나.

“한때 꽤. 하지만 앨범 내느라 몽땅 털어먹었다. 안 그랬다면 작은 액세서리 가게 운영하면서 내 몸 하나 먹고살 정도는 됐을 거다. 앨범 낸다고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며 길바닥에 깐 돈도 무시 못한다. 관계자들 만나 인사치레하고 밥 먹고 할 땐 그 기간만큼 일도 못했으니 풍비박산난 거다.”

▼ 앨범 제작에 얼마 들었나.

“곡당 1000만 원. 3장 내는데 총 3억 원쯤 썼다.”

이 씨는 2집 발매 후 정규 앨범 아닌 음반도 낸 적이 있다. ‘이화 카 드라이브’란 제목으로 기성 가수 노래를 30곡쯤 모아 불렀다. 고속도로휴게소 등지에서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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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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