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안 하면 죽는다’는 불안 사회를 ‘잘하면 더 받는다’는 보상 사회로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2014-01-23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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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는 그동안 잘한 것에 대해 보상하는 포지티브 시스템보다 잘못했을 때 처벌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이 더 많이 작동해왔다.
    • 세계 1등 상품만 살아남고, 천재 1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창조가 필요한 시대에 처벌에 민감한 사회 시스템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까.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하던 시절 미국에서 태어난 큰아이는 미국에서 5년 가까이 살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이후엔 무식하고 용감한(?) 부모의 신념에 따라 영어유치원도 영어학원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약 6년 전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큰아이는 연구년을 맞은 필자를 따라 다시 미국에서 살게 됐다. 1000명이 넘는 학생 중에 영어를 못하는 학생이라곤 자기 동생밖에 없던 미국 초등학교에서 큰아이는 친구들과 대화도 안 되고, 선생님 수업 내용도 못 알아듣고, 숙제가 뭔지도 알 수 없어 몇 개월간 엄청난 고생을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큰아이는 그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큰아이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다시 미국에서 산 지 1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학교에서 ‘독서왕’에 뽑혀 ‘1일 교장선생님’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모든 도서에 대한 퀴즈 문제를 만들어 학교 도서관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그 책을 읽은 학생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문제를 맞히면 점수(AR point)를 주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처음에는 유치원생이 읽을 만한 영어책을 읽던 큰아이가 수준을 높여가며 꾸준히 책을 읽어나갔고,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점수를 얻은 끝에 자기 학년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획득해 독서왕이 된 것이다.

    새로운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도서관에 달려가서 관련 문제를 풀면 책의 난이도와 정답 비율에 따라 점수를 주고, 그 점수에 따라 단계별로 다양한 상품과 권한을 주는 인센티브 시스템은 원래 책을 좋아하던 큰아이에게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독서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1일 교장선생님’ 노릇을 하면서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각 교실을 돌면서 인사를 받는 큰아이의 모습은 가문의 영광이자 감동의 도가니였다.

    ‘안 하면 죽는다’는 불안 사회를 ‘잘하면 더 받는다’는 보상 사회로
    보상과 처벌



    그랬던 큰아이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책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기 시작했다. 이유는 독서를 권장하는 시스템 차이에 있었다. 미국 초등학교에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리스트도 없고 독서 숙제도 없다. 다만 한 권이라도 더 읽으면 그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실히 준다. 한국의 독서시스템은 정반대다. 학기 초에 읽어야 할 독서 리스트를 나눠주고, 리스트에 있는 책을 모두 읽거나 더 읽었다고 해도 포상은 없다. 다만 리스트에 오른 책을 모두 읽지 않으면 때때로 평가점수를 깎는 처벌을 한다. 한국과 미국의 독서 권장 시스템의 차이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원하는 행동을 하게 하거나 원하지 않는 행동을 막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보상과 처벌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행동을 통제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쾌락주의(hedonism)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 본성을 이용해 원하는 행동에 즐거움을 가져다줄 보상을 주고, 원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 고통스러운 처벌을 주는 방법은 동서고금을 초월한 사회적 체계의 근본이다.

    심리학의 ‘효과의 법칙(Law of effect)’에 따르면, 긍정적 경험이 뒤따르는 행동은 증가하고 부정적 경험이 뒤따르는 행동은 감소하는 보편적 원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적용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는 이 법칙에 근거한 크고 작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칭찬, 꾸지람, 사랑, 용돈, 교육시스템에서의 평가, 상장, 처벌, 진학, 그리고 직장에서의 봉급, 승진, 해고, 좌천과 사회에서의 법률적 제재, 고립, 인지도, 지지 등이 모두 사람의 행동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행동은 결정되고, 변화되며, 교정돼간다.

    다만 이런 인간 행동의 통제 원리는 모든 사회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사회는 시대에 따라 보상을 더 중요시할 수도 있고, 때로는 처벌을 더 중요시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 사회는 완전히 처벌에 꽂힌 것처럼 보인다. 교육시스템에서 특히 그렇다.

    한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상벌점 제도는 학생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장치다. 말 그대로 어떤 행동에 상점을 받고 벌점을 받는지를 규정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용어만 놓고 보면 ‘상’이 먼저 나오고 ‘벌’이 나중에 나오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입학식 때나 매년 초에 학생에게 배부되는 상벌점 제도 가이드라인을 보면, 벌점을 받는 경우는 교복불량, 교복개조, 넥타이·실내화·두발 상태 불량, 실내 소란, 액세서리 착용, 종이비행기 날리기, 지시 불이행, 이성 간 풍기문란, 휴대전화 소지, 카드놀이, 청소년 유해품 소지(만화, 술, 담배 등), 교실 컴퓨터 사용, 지각, 결과, 불량서클, 따돌림, 침 뱉기, 껌 씹기, 기물파손, 수업태도 불량 등 무수히 많다. 반대로 상점을 받는 경우는 물건 찾아주기, 학교 명예 높임, 청소, 왕따 친구 도와주기, 수업 태도 성실, 쓰레기 분리수거, 학습 적극 참여 등 그리 많지 않다. 가짓수가 많고 적은 것뿐 아니라, 상점은 보통 1점에서 시작해 3점을 넘는 것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벌점은 제일 낮은 것이 2점이고 보통 4~5점, 심지어 7~8점이 넘는 것도 있다.

    학생들은 많은 선생님이 상점 카드는 아예 들고 다니지도 않고, 벌점 카드만 들고 다닌다고 한다. 그런 선생님들은 아마 중고생들이 원래 상점을 받을 일보다 벌점 받을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 학생에 비해 한국 학생만 그렇게 유독 벌점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굳이 상벌점 제도가 아니라도, 왜 책을 읽을 때마다 칭찬과 보상을 주지 않고, 읽어야 할 책을 정해주고 안 읽으면 처벌하는 방식을 우리의 학교는 선택했을까. 우리 사회와 우리 교육체계, 그리고 우리 선생님들이 보상보다는 처벌을 선호한다는 주장을 부인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향상 vs 예방

    ‘안 하면 죽는다’는 불안 사회를 ‘잘하면 더 받는다’는 보상 사회로

    서울 중구의 한 헬스클럽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는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우리 교육제도는 왜 이렇게 처벌에 의존할까.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무식해서? 교장선생님이 이상해서? 학생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선생님들이 학생 괴롭히기를 즐기는 변태라서? 아니다. 바로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예방적(prevention)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최근 단순히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쾌락주의를 넘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새로운 동기 시스템을 밝혀냈다. 과거에는 고통을 피하는 것도 즐거움을 얻는 것과 동일하게, 즐거움을 받지 못하는 것도 고통을 받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했다. 그냥 즐거움과 고통을 서로 반대쪽 끝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람들은 고통에서 멀리 떨어져 즐거움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의 많은 연구가 즐거움을 좇는 것과 고통을 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며 서로 독립적이라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해고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일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승진하게 되며, 또 승진하면 해고되지 않는 현실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승진하려는 동기와 해고되지 않으려는 동기는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비슷한 예로 피트니스 센터에는 멋진 식스팩이나 S라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과 암에 걸리지 않으려고 운동하는 사람이 섞여 있다. 이들 모두 열심히 운동하고 궁극적으로 두 가지 결과를 동시에 다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다른 목표를 추구할 때 사람은 전혀 다른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두 가지 심리적인 동기의 차이를 조절적 초점(regulatory focus)이라고 한다. 식스팩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은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기 때문에 향상적(promotion) 동기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암에 걸리지 않으려 운동하는 사람은 현재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예방적 동기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향상적이거나 예방적인 것으로 정해진 일도 있지만 세상사의 대부분은 두 가지 동기적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싸움이나 전투와 관련된 컴퓨터 게임에서는 적을 많이 죽여야 공격 점수가 올라간다. 동시에 적의 공격을 피해야 자신이 죽지 않는다. 이런 게임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죽건 말건 적 죽이는 데만 몰두하고, 반대로 어떤 이는 적을 죽일 생각은 거의 없고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피하기에 급급하다. 전자는 향상적 동기를 강하게, 후자는 예방적 동기를 강하게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향상적 초점을 가진 사람은 더 나은 상황, 긍정적인 뭔가를 추구하다보니 보상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공격적이고 위험감수형 결정을 하고, 확장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한다. 또한 뭔가를 더 해보려는 적극성,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과제에 잘 어울린다. 반대로 예방적 초점에서는 더 나쁜 상황,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다보니 소극적이고 위험회피형 결정을 하고, 축소적이고 회피적 사고를 한다. 또한 단기적이고 즉각적이면서 완결적인 과제에 효과적이다. 이런 예방적 동기가 강한 사회에서는 처벌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보상보다는 처벌을 이용한 사회적 제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런 제도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경쟁과 보상

    조절적 초점 관점에서 한국인은 예방적이다. 비교문화심리학 연구를 통해 동북아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더 예방적이라고 밝혀졌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더 예방적인 측면이 강하다. 가족 중심의 농경사회라는 정체된 소규모 집단사회는 안정적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에 가족, 부모, 국가에 대한 당위적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유교적 사상은 우리의 삶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과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뭐 하면 더 줄게’보다는 ‘안 하면 죽는다’가 더 가슴에 와 닿는 사회에 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경쟁과 보상(특히 인센티브)의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이러한 변화에 대해 한국인 대부분은 너무나 불편해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은 거부한다.

    현대사회에서 직장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가장 큰 보상체계는 누가 뭐래도 연봉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최근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연봉이 너무 높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5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임원을 공개하는 관련 법까지 제정됐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 CEO의 연봉은 경쟁관계에 있는 외국 글로벌 기업 CEO의 연봉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사내이사 평균 연봉이 52억 원(2012년말 기준)이라는 뉴스에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경쟁사인 애플의 CEO는 매년 398억 원을 받고 있다. 심지어 10년 동안 그 연봉이 보장돼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야구선수 추신수가 외국에서 197억 원의 연봉을 받는 것에는 열광한다. 삼성전자 사장이 추신수보다 더 적게 받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 기업이 직원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방법은 인센티브 제도다. 하루에 10시간 일하는 사람에게 11시간을 일하게 할 때에 비해, 15시간을 일하는 사람에게 16시간을 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1시간분의 일당을 더 줘서는 안 된다. 보통 몇 배는 더 줘야 된다. 같은 원리로 최고의 노력과 능력이 필요한 직장과 자리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진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보상을 통해 천재성과 창의성을 최대로 이끌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에만 매달리는 헌신적인 근로자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어떨까. 그런 극단적인 보상 자체가 옳지 않다고 본다. 엄청난 인센티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뭔가를 더 받고 덜 받는 시스템 자체를 불편해 한다. 경쟁과 보상체계를 도입하겠다며 대학에서 대학원생 두 명에게 등록금의 절반씩 장학금을 제공하다가 경쟁을 통해 더 나은 한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수여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두 사람이 합의 하에 한 명이 받아서 둘이 나눠 가진다는 코미디 같은 얘기가 현실이다. 웬만한 상은 골고루 돌아가면서 받고, 조직의 회장 자리는 나이순으로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학부 수업에서는 보통 팀 과제가 필수인데, 팀으로서 한 학기 동안 특정과제를 수행하고 학기 말에 발표회를 한 결과를 리포트로 제출하는 형태다. 학생들 스스로 7~8명의 팀을 구성하도록 하는데, 자신과 친한 친구끼리 같은 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기말에 학생들은 자신의 팀원들을 평가할 기회를 가진다. 누가 팀 과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와 팀원으로서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를 평가하도록 요구받는다.

    필자는 같은 팀의 팀원들은 기본적으로 과제 결과에 따라 같은 점수를 받은 후 팀원 평가에 따라 일부 점수가 가감된다고 공지한다. 이 순간 일부 학생들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괴로워한다. 팀원평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짜로 진실 된 평가를 해보려는 학생들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모든 팀원이 똑같이 기여했고 똑같이 만족스럽다고 써버린다. 우리는 원래 누군가에게 더 주거나 누군가에게 덜 주는 것에, 아예 평가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상보다 처벌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평가는 더 받을 기회보다는 뭔가를 잃을 기회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심리학 연구에서는 예방적 동기에 비해 향상적 동기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이라고 간주한다. 또한 더 높은 정신건강과 행복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향상적인 서구 사회적 관점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들이다. 평가를 싫어하고, 더 받는 것도 덜 받는 것도 싫은 예방적 동기로 가득 찬 한국 사회가 굳이 문제가 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서양은 평균보다 앞서는 소수를 찬양하지만, 우리는 평균보다 뒤처지는 인간을 돌아보는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다.

    외국 영화는 슈퍼맨이나 람보가 적을 싹쓸이하는 영웅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영화는 뒤처지는 낙오자를 돕고 이끌어서 모두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얘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사회적 평등을 좋아하고, 교육 평준화를 추구하고,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고, 약간은 사회주의적 성향을 띠는 모양이다.

    이러한 것들이 정치적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인의 예방적 심리 성향과 잘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방적 동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향상적 동기를 가진 사람은 원하는 보상을 얻었을 때는 기쁨을 느끼고, 얻지 못했을 때는 실망감을 느낀다. 그 과정에는 기대감이 주를 이룬다. 반면 예방적 동기를 가진 사람은 원하는 결과, 즉 나쁜 일을 성공적으로 막았을 때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불안감을 주로 느낀다. 예컨대 식스팩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자신의 미래의 멋진 몸을 그리며 기대감에 운동하지만, 암에 걸릴까봐 운동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면서도 계속 불안하다.

    최근 고려대학교 대자보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릴레이 현상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철도노조 파업이라는 이슈로 촉발되기는 했지만, 이 릴레이 현상의 본질에는 한국인이 공감하는 불안이 있다. 초중고등학생들은 대학입시에 대한 불안, 청년은 취업과 진로에 대한 불안, 중년은 자녀와 실업에 대한 불안, 노년은 노후와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 사회는 불행해지고 있다. 전 세계 같은 연령대의 거의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진 고민인데도 유달리 현재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한국인이 인생의 도전과 과제를 예방적 동기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예방적 동기에서는 그런 과제들은 단지 달성하면 좋은 보상이 아닌,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어떤 것과도 같이 인식된다. 그래서 달성 못하면 저 아래 절벽으로 떨어지는 처벌이 기다린다는 불안의 원인이 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대학에 가면…’이라는 말보다 ‘대학에 못 가면 끝이야’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뭐가 끝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간다. 고등교육인 대학진학은 보상이 아니라, 안 가면 처벌받는 필수가 돼버렸다. 취업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지 아닐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냥 취업해야 한다. 명품은 극소수 부자를 위한 보상이 아닌, 중산층까지 하나씩은 가져야 하는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부모는 자녀가 사랑스러워서 더 따뜻하게 지내라고 유명 브랜드의 점퍼를 사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또래 집단에서 기죽지 말라고 무시당할까봐 사준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사회에서는 해서 얻는 것은 없는데, 안 하면 손해 보는 것으로 가득하다. 왜? 모두 다 하니까.

    20세기 후반 한국은 눈부신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루어왔다. 6·25전쟁 직후의 한국은 몇몇의 천재나 소수에 의해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국민이 똘똘 뭉쳐서 죽을힘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한국인의 예방적 성향은 배우고 익히고 일하는 그 모든 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으로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처벌을 이용하는 사회적 제도는 처벌에 민감한 다수를 움직이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죽을지도, 망할지도, 진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한동안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벌점보다 상점을

    ‘안 하면 죽는다’는 불안 사회를 ‘잘하면 더 받는다’는 보상 사회로
    허태균

    1968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우리에게 지금 던져진 질문은 간단하다. 21세기에도 예방적 동기로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까. 세계 1등 상품만 살아남고, 천재 1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리고, 생산이 아닌 창조가 필요한 시대에 과연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수많은 벌점 제도하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을 읽고, 시험에 나오는 다 같은 공부를 하고,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이 휘게 만들 정도로 비싼 유명 브랜드 의류)를 다 같이 입고, 그러면서도 불안해하면서 성장하는 우리 청소년들이 과연 이 시대가 원하는 인재가 될까.

    이제 한번 바꿔보자. 학교와 회사에서 벌점리스트보다 더 길고 다양한 상점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생각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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