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꽃을 워낙 좋아합니다. 빨간색도 좋아하고요.”
꽃이 핀 선경에서 김현희는 선녀처럼 앉아서 수를 놓는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왔지만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수놓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 꽃 나라에서 노니는 선녀 그대로다. 조선시대 관(官)에서 수를 놓는 장인을 ‘화아장(花兒匠)’이라 불렀으니, 선녀는 선녀로되 꽃 선녀고, 결혼하지 않았으니 영원한 ‘꽃의 아이’다.
규방공예 가운데서도 천을 짜거나 옷을 짓는 기본적인 일을 하는 이들과 매듭을 꼬거나 수를 놓는 장식적인 일을 하는 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가 창조의 열정을 막힘없이 분출하는 편이라면, 후자는 꼼꼼하고 세련되게 표현한다. 물론 자수에도 탱화처럼 큰 작품이 있지만, 김현희는 작은 보자기를 더욱 사랑한다. 근사한 흉배도 있고 아름다운 병풍도 있는데, 왜 하필 범용한 보자기인가.
“수는 흉배나 활옷 등 격식을 차리는 의례용 옷부터 병풍, 주머니, 보자기, 노리개, 안경집, 가구 등 일상 물품까지 다 꾸밀 수 있습니다. 워낙 쓰이는 분야가 많은데, 하다보니 무언가 특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세계 사람이 다 좋아할 만한 보자기를 선택했지요.”
그의 보자기에는 천을 이어붙인 조각보 형태도 있지만 대개는 수 보자기다. 1995년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작품은 조각보 가운데 연꽃을 수놓아, 조각보와 수를 결합한 형태다. 그의 작품은 수도 아름답지만 직접 천연염색한 독특한 색감과 조각을 이어붙인 구성까지 모두 그만의 개성으로 넘쳐난다. 가장 즐겨 놓는 문양은 역시 그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 새다. 그의 집처럼 그가 만든 보자기에도 알록달록 꽃나무에 꽃이 피었고 새가 노래한다.
왕진기 사진만 보고 복원

꽃나무와 새를 상징적으로 처리한 수 보자기.
“저 왕진기를 만드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거의 하루 내내 매달리다시피 하면서요. 하루 여덟 시간 일하는 걸로 치면 3년은 족히 걸린 셈입니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답니다. 생각보다 짧아요. 하나에 집중하기에도 부족한 세월이지요.”
수를 놓은 시간만 따져 그 정도지, 그 왕진기의 도안 작업까지 따지면 꽤나 힘들고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이 멋진 왕진기 원작은 일본에 있고, 그래서 김현희는 실물을 본 적이 없다.
“동국대 학술조사단이 일본에 갔다가 조선 왕진기를 발견했다는 김사엽 교수의 글을 신문에서 보고 예용해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예 선생님이 김 교수를 소개해주셔서 김 교수께 왕진기 사진과 자료를 받을 수 있었지요.”
그 사진을 바탕으로 미대 출신 여동생이 극사실화로 그려 이를 확대해 찍어서 원본 사진과 비교해 수정하는 방법으로 밑그림을 확정했다. 그 과정이 번거롭고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사진을 잘 찍고 그림을 세밀하게 그렸다 해도, 수의 기법을 일일이 분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은은한 바탕색을 내려고 물을 여덟 번이나 들이는 시도를 했고, 모든 색깔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고풍스러운 맛을 주려고 연한 밤색을 섞어 수놓는 등 이만저만한 공력을 들인 게 아니다. 그런 노고가 아우러진 그의 왕진기는 말 그대로 왕의 품격과 고아함이 풍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