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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주창 못하는 허수아비 ‘청년 정치’

386과 노조에 일자리 뺏겨도 찍소리 못해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노동개혁 주창 못하는 허수아비 ‘청년 정치’

  • ● ‘수당’ ‘보조금’ 등 시혜성 짙은 청년 고용 대책
    ● 청년실업률 9.8%, 20년 만에 최고치
    ● 자본과 노조가 정규직 보호 위해 비정규직 양산
    ● ‘정년 연장’ 최대 수혜자는 386
    ● 민노총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 매몰
    ● 마크롱의 노동법 개정·국영기업 개혁 되새겨야
‘사바나’는 ‘회, 알 그리고 ’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부쩍 오랫동안 ‘알바생’ ‘취준생’으로 살았습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에 절망했고,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세상의 ‘충고’에 울기도 했습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운 좋게 기자가 됐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사바나’를 만들었습니다.


노동개혁 주창 못하는 허수아비 ‘청년 정치’
정치는 부(富)의 배분을 둘러싼 게임이다. 파이는 늘 한정돼 있기 마련이다. 고로 아귀다툼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지역이었다. 영남과 호남이 다퉜고, 충청이 ‘대망론’을 명분 삼아 캐스팅보트 노릇을 했다. 영남은 이해관계에 따라 또다시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로 나뉘었다. 집권자와의 친소관계가 연료 구실을 했다. 호남에서도 ‘DJ’와 ‘호남정신’을 간판 삼은 영수(領袖)들이 소(小)지역정서에 기대 전남·전북의 셈법을 갈라놨다. 

2010년 이후 영·호남에 깃발 꽂은 양대 정당은 고인(故人)이 된 인물들(박정희·노무현)을 게임의 주체로 등장시켰다. 그 유산을 가장 많이 가진 것으로 ‘인증된’ 사람들이 차례로 대통령이 됐다. 요컨대 한국 정치라는 거대한 게임의 문법은 지역과 역사였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이 게임의 메이저리그를 차지한 집단이 386세대다. 역사가 정치 진영을 나누는 가늠자가 되자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패권을 쥐었다. 김정훈·심나리·김항기는 근작 ‘386 세대유감’(웅진지식하우스 출간)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은 386에 의한, 386을 위한, 386의 나라”라고 일갈하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강렬한 승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기 때부터 사회의 한 축으로 올라선 뒤 수십 년째 주도권을 놓지 않는 세대가 386세대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자신들의 초장기 집권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한편, 후배 세대들에게 바통을 넘기지 않아 세대의 순환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국회의원 배지’는 20년째 ‘386세대의 것’이다. 이는 마치 낙수효과처럼 후발 세대가 진입할 문턱을 높여놨다. 1990년대 초반 학번인 야당의 A보좌관(4급)이 설명했다. 

“지금으로서는 내년 총선 때도 90년대 학번들이 출마할 기회가 마땅치 않다. 그나마 여당이면 보좌관을 하다 정부 부처 정무직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러면 그 자리를 비서관들이 승진해 채울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자연스레 후속 세대로 인력이 순환됐다. 지금은 이 고리도 끊겼다. 80년대 학번들이 지금 여당에 많은데, 이들이 10년간 야당 생활하면서 갈 자리가 없었다. 이번 정부 들어와 고공단(고위공무원단·1~3급) 정무직을 보좌관 출신 386들이 상당수 꿰차고 있다. 공기업으로도 많이 갔다. 이들은 이 경력을 발판 삼아 내년에 봇물처럼 출마할 거다. 그 자리가 후속 세대로 이어질까? 결국 나머지 386 ‘기웃 인사’(정치를 하기 위해 국회가 있는 여의도 안팎에 계속 기웃거린다는 표현)들이 차지하겠지.” 

한 세대가 주도권을 움켜쥐면 다른 세대는 원 바깥으로 튕겨나가기 마련이다.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는 연봉 8000만 원 안팎의 4급 보좌관 자리라도 부여잡고 있다. 5급 비서관도 7000만 원대 연봉을 받는다. 30대가 상당수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 이후 출생)는 마이너리그를 전전한다. 386세대가 ‘세대교체’를 앞세워 산업화 세대를 ‘구세력’으로 규정지어 밀어낸 후 정계에 데뷔했음을 상기하면 거대한 아이러니다.


청년 비례대표

이런 구조에서 국회에 재직하는 청년들은 ‘386 이데올로기’에 종속된다. 2000년대 중반 학번인 여당의 B비서(6급)는 “여당 방(의원실)에서 일하다 보면 복지, 노동, 남북문제, 정치개혁 등 의원들이 관심 많은 주제로 신경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이너리그로 밀려난 청년들은 윗세대가 나눠주는 파이를 쳐다보는 처지로 내몰렸다. 부의 배분에 있어 청년은 게임에 참여할 권한을 잃었다. 각 정당마다 청년 몫 비례대표와 최고위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정치권에서 청년이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청년 고용 대책의 골자도 ‘돕거나’ ‘보조금을 베풀거나’ ‘지원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3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달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청년 구직활동지원금은 구직 활동을 하는 청년이 효율적으로 취업하도록 돕는 제도”라며 “취업 희망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현장 중심 정책 집행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청년 고용률이 크게 높아졌는데, 창업벤처 활성화 정책과 공공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 청년 일자리 정책 등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최근 나온 숫자는 대통령의 말과 가늠할 수 없는 거리에 있다. 8월 1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만6000명 늘었다. 이에 청년실업률은 9.8%로 0.5%포인트 상승해 1999년 7월(11.5%)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청년층의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은 23.8%로 2015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스펙 경쟁하며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다”

2019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면접시험일인 5월 2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 마련된 면접시험장으로 수험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2019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면접시험일인 5월 2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 마련된 면접시험장으로 수험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는 “‘청년 일자리’ 정책이라면서 자꾸 무언가 주려고만 한다. 수당을 준다든지, 공제해서 목돈을 쌓게 한다”면서 “청년들이 워낙 어려우니 단기적으로 그런 정책이 아예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계속 보전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고 되묻는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정책 패키지는 ‘최저임금 급격인상’과 ‘주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방점은 ‘유연’이 아닌 ‘경직’에 찍혀 있다. 이는 ‘정규직 성’ 바깥에 있는 자영업자와 청년들에게 부메랑이 됐다. 생산성 향상 없이 기업의 코스트(cost·비용)를 부쩍 키웠기 때문이다. 비용 상승에 대한 자본의 대처는 ‘자동화’이거나 ‘해외 공장 이전’ 혹은 ‘탈법’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신규 채용을 줄일 공산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대기업·공공기업 등 이른바 좋은 직장의 상당수는 연공급 임금체계(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연봉제로 바뀐 조직도 그간 운영해온 호봉제의 바탕 위에서 제도의 변화를 꾀했다. 자연히 최근 입사한 청년층보다 ‘오래 버틴’ 중·장년층에 임금구조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는 곧 중·장년층과 청년층 간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일자리를 기점 삼아 세대가 계급이 된 꼴이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전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논문 ‘세대, 계급, 위계: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에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386세대가 안정적인 연공 시스템의 유지를 통해 ‘조직에 붙어 있기만 하면’ 퇴직 직전까지 평균 근속년수가 25년에 육박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기업이 매출과 수익을 통해 덩치가 커졌다면 모르겠으나 다른 조건이 같다면, 총 인건비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 세대에 대한 신규 채용을 줄일 것이고, 이는 오늘날 목도하는 청년고용위기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작금의 한국 사회는 “386세대 등이 쌓아올린 신분화된 기득권 성벽 아래에서 그들의 자식들이 스펙 경쟁을 하며 필사적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기득권 성벽 위에 정규직 노조가 있다.


“그들의 유통기한이 다했다”

백경훈 대표는 “이제는 불편하지만 필요한 얘기를 해야 한다”면서 “정규직 노조가 반대하는 노동시장 개혁에 손을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7년생인 백 대표는 고용노동부 산하 청년고용촉진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와의 문답이다. 

-‘청년정치론’은 횡행하지만 청년 고용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다. 

“문재인 정부가 본질을 잘못 짚고 있다. 노동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대책을 자꾸 만든다. 일자리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은 청년들에게 일자리 재난 같은 상황이다. 청년과 취업준비생들이 노동시장에 더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데, 도리어 청년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여당 쪽 30대 정치인 사이에는 노동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잘 안 보이는데. 

“그건 반칙이다. 청년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청년정치인 아닌가. 여당이나 386 운동권들이 민주노총을 비호하는 스탠스를 취한다. 진보 쪽에서 청년정치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선배 정치인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할 게 아니다.” 

-총선에서 청년정치의 주요 기치가 무엇이 돼야 한다고 보나? 

“기술과 산업구조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분기점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야말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당면과제다. 386 정치인들은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은 잘해왔다. 그 시대 미션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를 붙잡고 살고 있다. 그들의 유통기한은 다하지 않았나 싶다.” 

이에 더해 문재인 정부는 청년 세대의 대량 실업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대형 폭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2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인구구조개선 대응 태스크포스(TF) 산하 10개 작업반 중 한 곳에서 정년 연장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으며, 논의가 마무리되면 정부 입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년 연장의 최대 수혜자는 386세대다. 내년이면 386세대의 맏형인 1960년생이 만 60세가 된다.


정년 연장 통해 저출산 고령화 대비?

정규직 노조도 군불을 지피고 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6월 1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기념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 사회가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데 청년 실업 문제로 (정년 연장) 얘기를 못 꺼내는 상황이지만, 정년 연장을 통해 저출산 고령 사회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경훈 대표는 “정년 연장은 다양한 일자리 형태를 만들어가면서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전제 없이 추진하는 정년 연장은 현재 구조를 이어가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면서 “대기업과 공공기업 등 이미 좋은 일자리에 진입한 사람들에게만 좋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현대자동차 노조는 ‘2019 임금 및 단체협의’(임단협)의 요구안 중 하나로 ‘정년 최장 만 64세 연장’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기본급 12만3526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과 당기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을 패키지로 요구했다. 요약하자면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를 주장하는 셈이다. 현대차노조는 지난해에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이유로 “고용위기를 느끼는 현대차 조합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노동당 출신인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 소장은 “(운동할 때) 민주노총에 강연하러 가서 정말 놀랐다. 이분들(민주노총 조합원)이 혁명이나 사회 발전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에게) 민주노총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한 외피 같은 거다. 비정규직 철폐 운동을 하긴 했는데, 자기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했다. 진보 정치인들도 (이에 대해) 묵계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당초 대기업, 공기업 노조는 강력한 교섭력을 갖고 있었다. 전투적으로 싸울수록 임금은 계속 올랐다. 기업은 비용 통제를 위해 ‘사내하청’ 등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 특유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여기서 배태됐다. 이 때문에 기업은 점점 정규직 채용을 꺼렸다. 자본과 노조가 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청년층의 고용절벽으로 이어졌다. 

노동운동 대부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은 ‘신동아’ 2019년 7월호 인터뷰에서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자기들 때문에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이 양산되고, 하도급 기업의 저임금화가 고착되는데도 예수나 공자라도 되는 것처럼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 ‘청년실업 해소하라’고 한다. 이 정도면 파렴치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39세 마크롱의 ‘종신고용 폐지’

문재인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월 28일 G20 정상회담장인 일본 인텍스 오사카 양자회담장에서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월 28일 G20 정상회담장인 일본 인텍스 오사카 양자회담장에서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주요국 가운데 ‘청년실업’ 문제를 좀체 극복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이때 투자은행 출신의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혜성처럼 등장해 39세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는 집권 후 ‘해고를 더 쉽게, 고용도 더 쉽게’를 기치로 사용자의 해고 권한을 강화하고 노조의 근로조건 협상 권한을 줄인 노동법 개정을 단행했다. 또 15만 명에 달하는 국영철도(SNCF) 임직원의 종신 고용 혜택을 신입사원부터 폐지했고, 연금과 복지 혜택도 줄였다. 또 2022년까지 중앙부처 공무원을 1만5000명 줄이기로 했다. 

개혁의 결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집권 초 9.7%였던 실업률은 분기마다 하락해 올해 2분기 8.5%까지 내려앉았다. 2009년 이후 최저치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20% 이하로 내려 개선 흐름이 뚜렷하다. 마크롱 정부와 같은 시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진지하게 되새겨볼 대목이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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