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4차 산업혁명과 미래

희토류 전쟁 때 일본처럼 하라!

  • 유성민 IT칼럼니스트

    입력2019-08-23 14: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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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출 통제 노림수는 한국 ‘쥐락펴락’

    • 서로 국익 갉아먹는 상황

    • 게으른 외교로 ‘소’ 잃었으나 ‘외양간’ 고칠 기회

    [뉴스1]

    [뉴스1]

    무역 갈등으로 세계가 시끄럽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2분기 화젯거리였다. 올해 5월 미국은 2131억3000만 달러(255조7000억 원)에 달하는 5745개 중국산 품목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전년 대비 4배 증가한 관세 추가 품목 수다. 덧붙여 미국은 3250억 달러(390조 원) 규모의 3805개 수입 품목에 관해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미국 정부는 안드로이드·윈도 등 운영체계(OS) 공급까지 중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중국에 OS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서서히 풀리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다. 7월 9일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수출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추가 관세 부과를 잠정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이 휴전에 암묵적으로 협의한 것이다. 이로써 무역전쟁이 해결 국면으로 이동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다 미국은 8월 중국산 제품 3000억 달러(약 361조4400억 원어치)에 대해 관세 10%를 부과했다. 8월 5일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갈등이 환율전쟁으로까지 확전한 것이다.

    미중 관세전쟁에 이은 한일 무역전쟁

    이런 가운데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무역전쟁이 발발했다. 발단은 일본이 수출 규제를 취하면서다.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운영 조치를 발표했다. 주요 고려 사항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특정 품목의 수출 허가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다. 일본은 불화폴리이미드, 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세 품목에 관해 수출 허가 규정 변경을 검토했으며, 7월 4일부터 포괄수출허가제에서 개별수출허가제로 변경했다. 



    이는 일본이 세 품목의 수출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포괄수출허가제는 한 번 승인받으면 3년간 추가 승인이 불필요하다. 반면 개별허가제는 수출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수출허가를 신청해 경제산업성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가 특정 소재의 한국 수출 여부를 쥐락펴락하게 된 것이다. 

    세 품목은 IT 산업의 중요 소재다. 불화폴리이미드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의 핵심 원료다. 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반도체 제조의 필수 소재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일본으로부터 해당 원료를 주로 수입하므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의 까다로워진 수출 규제로 인해 적시에 물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5월까지 불화폴리이미드, 레지스트,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각각 93.7%, 91.9%, 43.9%에 달한다. 

    한일 무역전쟁은 점입가경이다. 8월 2일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8월 28일부터 시행된다. 

    백색국가는 일본이 제공하는 일종의 특혜를 받는 나라다. 한국을 제외하면 26개국이 명단에 있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 노르웨이, 프랑스, 헝가리 등이다. 한국이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됨으로써 1100개 제품이 포괄수출허가제에서 개별수출허가제로 바뀐다. 

    한일 무역전쟁은 일본이 수출 제재를 가하면서 한국을 압박하는 양상이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생산에 필요한 물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무역 제재는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위기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일본으로서는 단·장기적으로 공히 손해다. 수출처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외교적으로는 평가가 다를 것이다. 

    일단 무역전쟁의 최대 승리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집권 자유민주당(자민당)으로 보인다. 일본은 무역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이 배경에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수의 일본인은 아베의 조치를 지지한다. 7월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선출 의석 과반수(71석)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아베의 총리 4연임 얘기가 벌써 거론된다.

    수출 억제 전략은 드문 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4연임에 도전하고 있다. [AP=뉴시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4연임에 도전하고 있다. [AP=뉴시스]

    아베와 자민당이 무역전쟁을 통해 정치 싸움에서는 이겼으나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로 보면 서로가 국익을 갉아먹는 상황이다. 무역 제재는 일본 내 우익의 담합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한국 제품 불매운동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간다. 

    일본의 도발을 옹호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데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손자는 전쟁하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게 최선의 병법이라고 했다. 전쟁은 가능한 한 피하라는 뜻이다. 전쟁은 당사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이번 무역전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대가 도발해왔는데 항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이 얻을 게 없다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무역전쟁은 보통 관세전쟁이다. 다시 말해, 상대국 물품에 관세를 매겨 수입을 막는 것이다. 수출 억제를 무역전쟁의 주요 전략으로 삼는 것은 드문 일이다. 수출 억제는 자본주의 질서에서 돈 버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자국의 기업을 힘들게 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미·중 무역전쟁 양상을 보자. 두 나라는 서로 관세를 얼마나 매기느냐를 중심으로 무역전쟁을 벌여왔다. 물론 미국은 OS 공급 중단과 같은 강경책을 펼치기도 했으며 중국도 희토류 수출 금지 방안을 만지작거렸다. 희토류는 반도체 기기 생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광물이다. 

    일본이 사용한 수출 제한은 최악의 상황에서 꺼내는 마지막 카드 같은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희토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위협만 한다. 실제로 수출 제한을 시작하면 미국 시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구글도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OS 제공 중단 문제와 관련해 화웨이와 협의를 시작했다.

    희토류 중국 의존 줄인 일본

    2012년 6월 쑤보 중국 공업정보화부 부부장(차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희토류 과잉 채굴에 따른 환경 파괴 실태를 담은 사진을 보여주며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환경 파괴가 수출 규제의 명분이었다. [신화=뉴시스]

    2012년 6월 쑤보 중국 공업정보화부 부부장(차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희토류 과잉 채굴에 따른 환경 파괴 실태를 담은 사진을 보여주며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환경 파괴가 수출 규제의 명분이었다. [신화=뉴시스]

    2010년 중·일 무역전쟁도 살펴보자.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 때 중국은 희토류 일본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동시에 중국인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미국 지질학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당시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7%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희토류 소비량은 세계 생산량의 21%에 달했으며 그중 90%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중국이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량을 40%로 줄이자 일본 반도체 기업에서는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이후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줄여왔다. 일본의 이러한 정책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혔다. 중국이 희토류 주요 소비국을 잃은 것이다. 

    한일 무역전쟁 양상도 중·일 무역전쟁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다만, 일본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었다. 한국에 대한 수출 제재는 일본 자민당 처지에서는 통쾌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이 자랑하는 IT 기업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본 기업도 수익 원천을 잃는다. 정치 목적의 보복이 자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3대 수출국(전체 비중의 6.8%)임을 고려하면 일본이 볼 피해도 상당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일본으로부터 공급받는 소재의 대체품을 찾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대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정부 또한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소재 부문 지원에 예산 6조 원을 편성했다. 

    전쟁이 벌어졌으므로 핵심 소재의 일본 의존을 줄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반도체 소재는 한국의 미래 먹을거리가 될 수 있다. 물론 정부와 기업의 노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비친다. 공급 관리를 통해 일본 소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대비하지 않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마이클 포터가 제안한 산업구조분석을 충분히 따르지 않은 셈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 해봐야 답은 없다

    정부는 외교를 게을리한 책임이 있다. 일본은 가까운 이웃 국가다. 그만큼 서로 간 의존도가 높다. 심지어 일본은 경제대국이다.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등한시한 책임이 너무나 크다. 만시지탄(晩時之歎) 해봐야 답은 없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다.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사이버 보안 분야와 유사하다. 대부분의 기관은 사이버 공격이 발생하기 전까지 보안에 투자를 별로 하지 않는다. 낭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사이버 공격을 당하면, 그제야 적극적으로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나선다. 

    위협이 가시화해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이다. 벼락치기 공부처럼 말이다. 소는 이미 잃었으나 외양간을 잘 고쳐보자. 그래야 다음에는 소를 잃을 확률이 줄어든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한국 IT 산업의 범위를 소재 분야로 넓히는 기회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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