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섯 얼굴’ 펴낸 김건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 불안, 분노 없는 건 삶이 아니다”
김건종 지음, 에이도스, 248쪽, 1만6000원
우울증, 공황장애, 게임중독, 조현병 등 각종 ‘질환’이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시절이다. 서점가엔 이런 문제의 해결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넘쳐난다. ‘마음의 여섯 얼굴’이 특별한 건, 그런 유의 에세이와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건종 씨는 이런 고민을 품고 의사가 됐고, 진료실에서 10여 년의 임상 경험을 쌓았다. 그사이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됐으며, 수많은 책과 논문도 찾아 읽었다. 물론 여전히 사람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게 됐다.
“우리가 분노할 수 없고, 중독될 수 없고, 우울할 수 없고, 불안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사랑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분노와 우울과 불안을 허락할 수 있어야만 사랑을 하는 힘이 생긴다.”
김씨가 ‘마음의 여섯 얼굴’ 표지에 우리가 흔히 부정적이라고 여기는 감정과 더불어 ‘사랑’을 적어놓은 이유다. 그는 “사람 감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가 자연스레 느끼는 끌림은 중독자가 느끼는 강박적 허기와 구분할 수 없다. 광기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지고 나서 내가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연인이 있을까.”
김씨가 “감정의 미묘한 그림자나 얼룩 같은 것을 무조건 제거하려 하지 않고 내 일부로 받아들이면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진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그 자신이 사는 동안 적잖은 감정의 부침을 겪었기에 할 수 있는 얘기이기도 하다.
김씨는 청년 시절 깊은 우울에 신음했고, 오랫동안 불안했다. “그 무렵의 나를 지금 진료실에서 만난다면 약물 치료를 권하게 될 것”이라고 할 만큼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늘의 김씨를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김씨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이 이후 삶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문장은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가 했다는 이 말이다.
“질병이 없는 상태가 건강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삶은 아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
역사 속으로 飛上한 이들의 ‘죽은 다음 날의 기록’
윌리엄 맥도널드 엮음, 윤서연 외 옮김, 인간희극, 720쪽, 2만5000원
역사(歷史)는 개인의 기억으로 구성된 집단의 기억이다. 인간의 기억은 사실과 다르거나 그릇되기 쉽다. 집단의 기억은 왜곡되게 마련이다. 한번 왜곡된 기억은 단단하게 고정된다. 역사 전쟁은 진실이 아닌 권력을 둘러싼 쟁투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설파했듯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19년 가까이 기자로 일하면서 부고(Obituary)를 딱 한 번 썼다. ‘얼굴 없는 황장엽, 北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서울에서 타계’라는 제목을 붙였다.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남북 어느 쪽의 권력에서도 기록하지 않을 삶을 살아서다.
200자 원고지 40장 분량의 부고 기사 주인공은 이준익(1933~2017). 6·25전쟁 때 납북되거나 혹은 월북한 이영무 국군 초대 항공사령관의 아들이면서 장택상 전 국무총리의 외손녀사위다. 북한에서 수리과학자로 대동강 하구 서해갑문을 설계했으며 무기 분야 테크노크라트로 일했다.
이준익은 2005년 북한에서 한국으로 망명했다. 황장엽(1923~2010) 전 노동당 비서 다음으로 비중이 큰 탈북 인사였으나 사망할 때까지 망명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 납북 혹은 월북, 월남이 교차한 가족사가 그의 존재를 잊게 한 것이다.
부고는 탄생이 아닌 죽음으로 시작한다. 사망이라는 엄숙한 순간에 맞춰 작성한 문장은 둔중하다. 응축된 콘텍스트로 죽은 인물의 삶을 담담하게 전개한다. 집단 기억에 의해 왜곡되고 평가되며 비틀어지기 전의 개인에 대한 기억이다. 개인사면서 그 시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은 720쪽 분량으로 두텁다. 뉴욕타임스가 1851년 창간했으니 168년 전부터 현재까지 ‘역사 속으로 비상(飛上)한 사람’들에 대한 ‘죽은 다음 날의 기록’을 모은 책이다. 날것에 가까운 1인의 역사는 과거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다. 이승만 박정희 김일성 노무현 김대중 김정일의 부고도 실려 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건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 부키, 292쪽, 1만6000원.
‘노동의 배신’ ‘긍정의 배신’ 등의 책으로 현대사회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해온 저널리스트의 신작. 이번엔 현대인이 폭넓게 공유하는 ‘무병장수의 꿈’이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지를 꼬집었다. 최첨단 병원, 피트니스센터, 실리콘밸리 연구실 등에 뛰어들어 그들의 번드르르한 ‘약속’의 실체를 드러내며, 건강에 대한 강박적 추구가 가져오는 폐해를 고발했다.
미래공부
박성원 지음, 글항아리, 316쪽, 1만6000원.
“강자들은 미래를 예측할 필요가 없다. 돈과 권력으로 미래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평범한 사람은 미래에 관심을 두고 행동하지 않으면 강자들이 만드는 미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국가미래전략을 연구하는 저자가 ‘미래 공부’를 권하는 이유다. 그는 이 책에서 ‘전례 없고,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대응할 것인지 설명한다.
정원가의 열두 달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하는 이유
카렐 차페크 글, 요제프 차페크 그림, 펜연필독약, 224쪽, 1만2500원
‘체코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알려진 카렐 차페크는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정원가의 열두 달’은 제목 그대로 열두 달이라는 계절의 한 바퀴를 거치는 동안 정원에서, 또 정원가(gardener)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세심하게 묘사한다. 정원가의 기쁨과 욕망, 기대와 좌절, 조바심과 안달하는 마음 등이 생생하면서도 위트 있게 서술돼 있다.
1월, 까막서리가 내린 후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은 땅을 보며 자신의 외투라도 벗어주고 싶어 하는 정원가의 애달픈 심정부터, 4월 드디어 움튼 새싹에 기뻐할 새도 없이 화단 흙을 일구다 구근을 괭이로 찍고, 아네모네 새싹을 삽으로 끊어버리며, 흠칫 놀라 물러서다 꽃망울이 맺힌 앵초를 뭉개버리는 사고를 내고 자책하는 모습 등에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휴가철, 이웃집 친구에게 은근슬쩍 정원을 부탁한 뒤 날마다 편지를 보내 정원 가꾸기를 명령하는 정원가의 모습은 집요하다 못해 얄밉기까지 하다.
글 사이사이 들어 있는 따뜻하고 재치 넘치는 그림은 저자와 많은 작업을 함께 했던 형 요제프 차페크의 작품이다. 이 책에는 고전의 향기가 묻어나는 초판 오리지널 삽화가 그대로 수록돼 있다. 글로 웃기고, 그림으로 또 한 번 웃기는 구조다.
책에는 정원을 넘어 삶을 성찰하는 작가의 철학적 메시지 또한 묵직하게 들어 있다. 차페크는 ‘진정한 정원가는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1월, 식물은 땅속에서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 봄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언젠간 찾아올 ‘찬란한 인생’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12월, 드디어 정원가에게도 휴식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못 말리는 작가는 그 시간에도 이렇게 기도한다. “하느님, 내일 아침 눈뜨면 바로 3월이 오게 해주실 순 없나요?”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
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 조영학 옮김, 동아시아, 278쪽, 1만6000원.
‘미국의 8학군’으로 통하는 실리콘밸리 팰로앨토 지역에서 2009년 명문고 학생들이 연쇄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청소년 다섯 명이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자 팰로앨토 주민이자 과학 전문 작가인 저자가 그 배경을 파헤치고자 나선다. 미국 전역의 전문가들을 만나며 사회전염이 어떻게 우리를 장악하고 지배하는지 확인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386 세대유감: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고의를 묻다
청년이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386에 짱돌을 던져라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68쪽, 1만6000원
학생운동권 출신 한 여당 보좌관에게 “선거에 출마할 의향은 없느냐” 물었다. 그는 “아직 원내에 진입 못한 선배가 많다. 88~89학번 선배들이 헌신적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운동권 출신들은 유독 ‘헌신’이라는 표현을 빈번히 쓴다.) .
이 보좌관은 1970년대 초반 출생이다. 자녀가 대입 수능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때가 아니’란다. “X세대 맨 앞에 선 1970년생이 곧 반백 살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들은 대체로 실무책임자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77쪽) 있는 셈이다. 2000년 총선에서 386세대는 국회의원 18명을 배출했다. 평균 나이 35세였다. X세대가 같은 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해는 2016년이다. 평균 나이 42세 때다.
해제를 단 우석훈의 말대로라면 “20대의 지체된 사회 진출, 30~40대의 지체된 정치 진출은 전형적인 세대 현상”(248쪽)이다. 고로 세대는 시대의 산물이다. 문제는 시대를 잘 타고나 기득권을 움켜쥔 세대가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쳤다는 것. 자신들이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망탈리테(집합적 무의식)가 386세대에 횡행한다. “지나간 역사를 ‘우리가’ 만들었다고 인식하는 세대적 동질감은 유독 386세대에게서 진하게 느껴진다.”(47쪽)
정작 이들이야말로 한국 자본주의 산업화의 최대 수혜자다. 책에는 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여러 통계가 등장한다. 덕분에 ‘인상비평’식 세대론으로 미끄러지지 않는다. 가령 “20대 후반의 386세대 실업률은 3.5%였다. (반면) 80년대생의 20대 후반 평균 실업률은 9.2%”(63쪽)라는 식. IMF 외환위기 당시 전체 실업률이 7.2%였으니 더 말해 뭣할까.
그런 의미에서 60년대생은 경제적으로도 “압도적인 운”(66쪽)을 지닌 세대다. 책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60년대생의 평균소득은 758.5만 원으로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20.3% 수준이었다. 반면 80년대생의 20대 후반 소득은 1인당 GDP 대비 77.9%다. 386은 경제 규모보다 20% 높은 수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20% 낮은 수준에서 사회 초년생 시기를 버텨냈다. 그러니 내 집 마련 기간도 “60년대 생은 10.1년, 80년대생은 약 16.0년”(70쪽)으로 갈린다.
한두 해 전, 386세대인 한 선배가 따로 부르더니 “그 나이 때는 기득권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학 시절 무용담을 뽐냈다. 그는 ‘마세라티’를 몰았고, 한강변 아파트에 살면서 자녀를 ‘제주 국제학교’에 보냈다. 1986년생인 기자는 당시 원룸에 살았다. 그때로 돌아가면 그와 나 사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던지겠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빅데이터 소사이어티
마르크 뒤갱·크리스토프 라베 지음, 김성희 옮김, 부키, 208쪽, 1만5000원.
초연결사회가 현대인에게 주는 편의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라 불리는 글로벌 IT 기업들이 어떻게 인간을 착취하고, 조종하며, 끝내 종속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저자들 생각이다. 이들은 빅데이터 세계에서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면 지금 실질적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