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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듯 투쟁하는 2030의 발랄한 정치

“흥청망청 노는 축제로 정치 장벽 낮출 것”

  • 최호진 사바나 객원기자 patagonistt@gmail.com

놀 듯 투쟁하는 2030의 발랄한 정치

  • ● 광장의 집회서 아이돌 노래 합창
    ● “듣고 자란 노래 불러 세대정체성 드러내”
    ● 페이스북 페이지, ‘굿즈’ 활용해 권력풍자
    ● 중‧장년 틈새서 ‘청년 유튜버’ 등장해 시사 해설
‘사바나'는 '사회를 바꾸는 나,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우리 때만큼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윗세대의 '꼰대질'도 감내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아 윗세대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합니다.


8월 2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열린 ‘흥정망정 페스티벌’ 행사 모습. [흥정망정 제공]

8월 2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열린 ‘흥정망정 페스티벌’ 행사 모습. [흥정망정 제공]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받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대로 / 싸울 텐가 포기할 텐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말 텐가 /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 마라 기죽지 마라 그리고 우릴 봐라 /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잡아 줄게.” 

지난 8월 2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 광장에서 1세대 아이돌 그룹 GOD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는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 집회’ 현장이었다. 

김다민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GOD의 노래 ‘촛불 하나’를 “집회의 꽃”이라고 설명하며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꺼내 노래 박자에 맞춰 흔들어주길” 요청했다. 광장은 좌우로 흔들리는 스마트폰 플래시 불빛으로 가득 수 놓였다. 1980년대 서울대 아크로 광장에서 울려 퍼지던 민중가요는 자취를 감춘 모습이었다.


2030의 新 투쟁가

정치 참여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86세대가 집회 및 시위 현장에서 ‘아침 이슬’,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 민중가요를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대중가요를 부르며 피켓을 든다. 



2016년, ‘국정 농단’ 사태의 도화선이 된 이화여대 학생들의 ‘미래라이프대학(직장인 대상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반대 농성에서도 ‘걸 그룹’ 노래가 등장한 바 있다.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던 학생 200여 명은 팔짱을 낀 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했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중략)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걸그룹의 사랑 노래가 밀레니얼 세대의 투쟁 가요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집회 문화를 통해 ‘세대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80년대 민중가요는 대부분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를 내포해 이념 지향적인 경향이 강했다. 최근 대학생들의 집회는 다르다. ‘공정’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민중가요가 아닌, 10대 때 듣고 자랐던 대중가요를 시위에 활용함으로써 ‘공정’을 요구하는 세대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조국.com’과 ‘어니언조’

조국.com 크라우드 펀딩 모습. [조국.com 페이스북 캡쳐]

조국.com 크라우드 펀딩 모습. [조국.com 페이스북 캡쳐]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에는 ‘풍자’가 있다.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 접근하기보다 정치를 유쾌하게 즐기려는 모습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 모(28) 씨는 평소 활동하던 청년 정책 단체 회원 4명과 함께 ‘조국.com’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논란을 접하며 응축한 청년 세대의 분노를 유쾌하게 풀어내려는 의도다. 

현재 ‘조국.com’ 페이지에는 ‘어니언 조 굿즈’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 ‘어니언 조’는 ‘까도 까도 새로운 의혹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을 양파(onion)에 빗댄 말이다. 국화꽃 그림과 ‘正義(정의)’ 문구가 새겨진 보틀, 그립톡 등이 ‘어니언 조 세트’ 로 준비됐다. 보틀의 경우, 평소 텀블러를 애용한 조국 장관을 풍자한 기획이기도 하다. 

김 씨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장관을 하는 데 분노를 느꼈다. 청년 세대가 느끼는 분노를 유쾌하게 전달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게 '조국.com’의 목표”라고 말했다. 


‘흥정망정 페스티벌’에 마련된 ‘정치테마 카페’에서 차림표가 준비돼 있다. [흥정망정 제공]

‘흥정망정 페스티벌’에 마련된 ‘정치테마 카페’에서 차림표가 준비돼 있다. [흥정망정 제공]

8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는 ‘청년 이슈’만을 다루는 정치 축제 ‘흥정망정 페스티벌’이 열렸다. ‘흥정망정’이란 정치를 유쾌하게 즐기자는 의미이자, 흥하는 정치와 망하는 정치를 청년이 직접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행사장에는 ‘주거요? 마련하다 죽어요.’, ‘저 투표했는데, 왜 아직... 취업 안돼요?’ 등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를 재치 있게 꼬집는 문구들이 걸렸다. ‘정치테마 카페’를 열어 씁쓸한 ‘탈당 커피’와 달달한 ‘복당 커피’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퇴백(이십 대에 퇴직해서 백수)’, ‘알부자족(아르바이트로 부족한 학자금 충당)’ 등 청년 문제 관련 신조어의 의미를 묻는 퀴즈를 내 국회의원들이 청년 문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행사를 주최한 정치 스타트업 ‘흥정망정’의 김재섭(32) 대표는 “흥청망청 놀듯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청년 정치의 장벽을 낮추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기성세대의 정치가 지나치게 공멸로 가고 있다고 느꼈다. 원내 5대 정당 국회의원들을 섭외해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함께 어울리는 협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젊은 스피커

유튜브에서도 밀레니얼 세대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청년 정치 유튜버들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전직 프로게이머 황희두(27)씨는 ‘진보의 젊은 스피커’를 자처하며 올해 1월 시사 유튜브 채널 ‘알리미 황희두’를 개설했다. 

황 씨의 채널은 시사 이슈를 진보적 관점에서 해설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현재 약 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 중이다. 황 씨는 “평소 유튜브 공간이 우편향 됐다고 생각했다”며 “보수와 진보 콘텐츠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성 진보 정치인들도 유튜브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황 씨가 답했다. 

“기성 정치인들이 유튜브에서 내는 목소리에 색깔을 씌워 판단하는 시청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 특히 청년의 관점에서 시사 이슈를 전달하려고 한다. 내 채널에 올라온 콘텐츠를 굳이 분류하자면 진보에 가깝지만, 진영 논리에 빠지기보다 청년의 목소리를 내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기성 정치의 부족함을 보완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약 2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정치 유튜브 ‘대한민국 청아대’를 운영하는 곽준엽(32)씨는 평소 자유한국당의 소통 능력에 아쉬움을 느껴왔다. 곽 씨는 지난 5월 한국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영(YOUNG) 유튜버 작심토로 한마당’에 나가 한국당의 ‘독재’ 프레임을 언급하며 “‘독재'라는 단어가 큰 영향을 못 주는 것 같다”며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곽 씨는 “한국당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전달 방식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국 수사와 관련해서도 국민들이 불공정에 분노하고 있는 마음을 짐작해서 말해야 하는데, 뉴스나 토론에서 수사 내용 등 어려운 얘기를 한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보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분화하는 욕구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지금은 단순히 ‘보수 대 진보’ 같은 이분법 구도로 사회를 바라보기 어렵다. 각자의 사회경제적, 문화적 위치에 따라 목소리가 세분화됐다”면서 “이를 대변하려는 욕구가 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유튜버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고령층‧청년층 같은 세대 간 구분을 넘어 개별 욕구를 대변하는 분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동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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