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 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복학왕의 사회학’에서는 청년 세대가 대학에 본질적으로 기대했던 바를 엿볼 수 있다. ‘학사 학위’에 막연하게 바랐던 것들을 말이다. 현실은 고달프다. 저자는 특히 지방대생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서술한다.
“지방대 졸업장은 이윤을 낳는 문화자본이기는커녕 오히려 고달프게 짊어져야 할 짐이다. 경제자본으로 전환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상징자본의 역할도 전혀 하지 못한다. 졸업장을 따기 위해 경제자본을 4년 동안 투자했는데 졸업장이 더 많은 경제자본으로 전환되지 않아 문제다. 위세와 명예 같은 상징자본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부끄러움만 안겨준다.”(284쪽)
그런데 이와 같은 해석이 설명력을 획득하려면 또 다른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인(in) 서울’ 명문대 졸업장은 ‘경제자본’ 및 ‘문화자본(상징자본)’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명문대 졸업장이 더는 경제자본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물론 아직까지 A대를 나와 누리는 문화자본은 굳건한 편이다. 드라마 ‘SKY캐슬’은 한국 부모들이 명문대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러나 그것이 의사라는 전문직에 대한 믿음인지 대학에 대한 믿음인지는 불분명하다).
‘학벌’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졸업생은 ‘부모의 지갑’이 여유로운 이들이다. 취업 준비에는 돈이 든다. 토익(TOEIC)은 한 회 응시에만 대략 5만 원이 쓰인다. 더는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는 졸업생들에게는 도서관 시설 사용조차 허락지 않는 대학도 부지기수다. 적성에 맞고 처우도 좋은 일자리를 잡기 위해선 기나긴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돈은 더 소요된다.
‘독학 합격’을 엿볼 수 있는 공무원 시험에서도 블라인드 채용과 학력 차별 금지가 시행되고 있다. 명문대생 입장에서는 ‘문화자본’의 특혜를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긍정적 변화지만, 이를 기대해온 명문대생의 시각에서 보면 반갑지 않은 일이기도 할 터. 이러니 내 친구들은 물을 수밖에 없다. “대학이 나에게 해준 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