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 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마찬가지 사정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목소리 높여 스펙 위주의 사회를 비판해왔건만, 막상 회사가 멍석을 깔아주니 ‘할 말’이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처해버린 꼴이다. ‘복학왕의 사회학’에 등장하는 청년들도 같은 고민을 했을 터다.
마침 선배에게 전화가 온다. ‘자소서 한번 읽어봐달라’고 부탁했던 차였다. 그간 채용 과정에서 약 75%의 서합률(서류합격률)을 가진 자소서였다. 수상 실적과 대외 활동에서 쌓아올린 나의 자랑스러운 결과물로 빼곡히 채워진 자소서. 선배도 그 나름의 좋은 말을 건넬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 별로야.”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선배의 말은 이렇다. 나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자소서를 읽고 나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가 드러나야 한단다. 한데 순 자기 자랑밖에 없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자소서에 없다는 얘기다. “글쎄요 선배!”라고 운을 떼며 반론을 폈다. “지원자가 수백 명인데, 자랑을 해야 제가 눈에 띄지 않을까요?”
스펙이 아닌 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면 꺼내들 ‘스토리’는 있다. 대학 시절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게 좋았다. 학문의 전당에서 가능한 한 많은 걸 배우고 싶었다. 정규수업 외에 청강 수업도 많이 들었다. 청강한 과목이 총 7개였다. 대학에서는 당장 취업에 전념하기보다 지식을 쌓는 게 앞으로 인생에 더 도움되리라 자신했더랬다.
상아탑을 벗어나 마주한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수업을 찾아 듣다 보니 졸업이 늦어졌다. 그래서 더욱 스펙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사회과학 수업시간에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이 있다고 배웠다. 지금은 거시로도 미시로도 내 앞의 삶조차 가늠하지 못하겠다. 스펙을 쓰라는 자소서 앞에서도, ‘탈스펙’을 원하는 자소서 앞에서도 난감한 처지다. 이럴 때 문제의 원인은 개인에 있을까 구조에 있을까. ‘복학왕의 사회학’에 등장하는 지방 청년 개인이 문제일까, 그들을 이렇게 만든 서울공화국이 문제일까.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오늘도 채용 공고 앞에서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