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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이 갖는 삶의 태도는 ‘변화 믿는 마음’”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 희망연구소 이끄는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성공한 사람이 갖는 삶의 태도는 ‘변화 믿는 마음’”

  • ●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연구
    ● 뇌는 경험에 따라 바뀐다
    ● 같은 일 해도 주인 의식 갖춘 사람 있다
    ● MBTI 타당성과 신뢰성에 의문
    ● 부정확한 틀에 갇히면 선택지 줄어
    ● 어디로 뛰어갈지 모르는 청년들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즌2로 선보이는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는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 이번호 주인공은 서강대 희망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심리학과 나진경 교수다. <편집자 주>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 [허문명 기자]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 [허문명 기자]

2022년 9월 서강대와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는 서강대에 ‘희망연구소’를 세우고 심리학 기반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구소가 주목하는 것은 ‘실패 연구’다. 역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연구·교육하겠다고 했다. ‘실패 연구’는 무엇일까.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나진경 심리학과 교수를 최근 만났다.

누구나 겪는 좌절, 회복탄력성이 관건

‘실패 연구’라는 게 특이합니다.

“실패 자체를 연구한다기보다 삶에서 닥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정적 피드백을 얼마나 잘 컨트롤하는지, 한마디로 ‘회복탄력성’에 대한 연구죠. 삶의 조건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때 목표를 추구하기가 쉬워지는지 도와준다고 할까요?”

너나없이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시대라 그런지 회복탄력성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제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 걸까요?’ 하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진로를 정해 놓고도 고민하고 아예 적성이 뭔지도 모르겠다는 겁니다. 질문의 밑바닥에는 삶에 어떤 정답이 있는데 그걸 발견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이런 걸 묻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한마디로 불안감이 큰 거죠.”

삶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괴로움이 시작되죠(웃음).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를 봐도 그렇습니다. 삶에 답은 없습니다. 늘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응도 잘하고 성취도 좋다는 결과가 많습니다.”



회복탄력성, 영어로 레질리언스(resilience)라고 하는 건 다시 말해 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즉 네거티브하게 보느냐 포지티브하게 보느냐, 거칠게 말하면 이거잖아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다른데 심리학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저뿐 아니라 많은 심리학자는 상황을 판단할 때 ‘좋다, 좋지 않다’가 아니라 ‘앞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을 무조건 긍정하는 ‘정신 승리’는 현실 인식이 오히려 없는 거죠. 무조건 노력만 한다고 잘되는 건 아니니까요. 일이 계속 잘 안되고 있다는 건 전략이 잘못됐으니 수정하고 새로운 접근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실패’에도 불구하고 회복 탄력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을 결정짓는 겁니다. 성공을 경험한 후에도 마찬가지예요. 현재 사용하는 전략과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한 행동이 잘 맞아떨어져서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나는 타고나기를 잘 태어났어, 뭘 해도 잘돼’ 이렇게 생각하는 건 천지차이죠.”

전자의 태도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너무 너무 간단해요. 그걸 믿으면 돼요(웃음). 뇌세포는 죽는 게 아니라 계속 성장하거나 쇠퇴한다는 걸 말해 주는 자료는 너무 많잖아요. 뇌는 구조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변해요. 연결망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컴퓨터는 소프트웨어가 달라져도 하드는 변하지 않지만 뇌는 하드웨어가 변하게 돼 있어요.”

모양이 바뀝니까.

“구조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바뀐다고 합니다. 거기에 연결돼 있는 뉴런이라든지 그런 것들이요. 이를 증명한 연구 결과도 많아요. 미로 같은 영국 런던 길을 운전하는 택시기사들의 뇌를 연구했더니 방향과 지리를 담당하는 기억 부분이 일반 사람들보다 크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대학생들을 모아 저글링 연습을 시켰더니 운동을 담당하는 기억 부분이 변했다든지 요즘처럼 휴대전화 문자를 많이 하는 현대인들은 엄지손가락과 연결된 뇌 영역이 커졌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뇌는 경험에 의해서 바뀝니다. 처음 키보드를 치면 버벅대지만 나중엔 능숙해지는 것도 뇌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힘들어도 좋은 전략을 사용해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쉬운 일이 된다’는 걸 알려주면 점점 쉬워지죠.

미국 대학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이 명문대에 들어가면 입학 성적은 뛰어난데 적응을 못 해 중퇴하거나 자퇴하는 일이 많이 생겨요. 그럴 경우 같은 상황을 경험한 선배가 ‘나도 1학년 때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2학년 때부터는 괜찮아졌다’ ‘지금 겪는 어려움은 단순히 너만 겪는 게 아니다, 누구나 겪는다’라는 걸 알려주면 중도 탈락률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저희가 ‘희망연구소’를 통해 하려는 것도 그런 거고요.”

회복탄력성 가져야 하는 이유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어떤 믿음을 갖고 있나요.

“믿음을 갖고 있느냐도 중요할 테고, 대학생으로 치자면 소속감 같은 걸 갖고 있느냐도 중요합니다. 명문대에 다니는 저소득층 학생들은 대학 내에서도 인기 있는 장소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소속감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장소를 방문하는 횟수를 인위적으로 늘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소속감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죠.

수학을 전공한 여학생들이 성공한 남자 수학자들 사진이 걸려 있는 복도를 통과할 때와 아무 사진이 없는 복도를 통과할 때 시험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데 후자일 경우가 더 점수가 높게 나온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성공한 수학자들의 성별이 모두 남자라는 것을 보고 여학생들이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돼 수행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사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작은 단서들이 그 사람 행동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레질리언스가 높은 사람들의 비결은 뭐가 있을까요. 양육 과정부터 달라야 하나요.

“저는 그 분야 연구는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인간은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하기 때문에 환경이 주는 인풋이 크죠. 부모로부터 보호받는 기간도 길고. 동물은 고정된 환경에서 반복된 문제를 푸는 데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진화의 길을 걸었고,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학습하는 능력을 갖도록 진화했습니다. 무엇이 더 낫다고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죠. 어떻든 인간이 그런 존재라면, 그런 존재로 태어나서 최초에 경험하는 많은 것이 그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건 당연하죠.”

똑같이 고아로 태어났는데 어떤 이는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유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믿음, 똑같은 일을 해도 주인 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추적하다 보면 대부분 자기효능감을 갖고 내가 하는 일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나의 변화가 삶에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믿어요. 심리학은 경험 과학입니다. 변화를 믿죠. 어떤 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건 아니거든요.”

왜 우리가 굳이 회복탄력성을 가져야 하죠?

“인간의 여러 심리적 특성은 진화 과정에서 형성됐다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데이터가 설명해 주는 이론이에요. 불안·슬픔 같은 감정도 나쁜 게 아니라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갖는 거죠. 그러니 없애는 걸 목표하기보다는 과도하지는 않은지, 혹은 잘못된 공감이나 슬픔을 느끼지는 않는지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실패의 원인을 살필 때는 노력 부족이라고만 보지 말고 환경의 문제인지 전략 미스의 결과인지 따져본 뒤 그에 맞춰 수정해야 하고요. 이런 태도를 갖고 살면 전반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삶의 의미, 내가 지금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정서적인 행복감도 느낄 수 있죠. 성공도 중요하지만 성공을 유지하는 데도 이런 삶의 자세가 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MBTI 맹신이 부르는 부작용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MBTI가 타당성이나 신뢰성 있는 성격 평가 지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Gettyimage]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MBTI가 타당성이나 신뢰성 있는 성격 평가 지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Gettyimage]

요즘 MBTI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이에 대한 우려를 밝혔더군요.

“그걸 연구하는 분들께는 굉장히 서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MBTI가 타당성이나 신뢰성 있는 성격 평가 지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기준이 거칠다는 건가요.

“학계에서 신뢰도라고 할 때는 얼마나 일관된 결과가 나오느냐를 보는 건데, MBTI의 경우 신뢰도가 좀 부족합니다. 또 MBTI에서 사용하는 성격 구분도 경험적으로 검증된 타당한 성격 차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걸 개발한 분들이 뛰어난 건 맞습니다. 인문학적 상상력도 있고 융 심리학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믿을 만한 증거를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입소문이라고 해야 할까? 몇몇 성공 사례로 인해 퍼지고 있다고 보는데 (예컨대 MBTI 안에서) 나의 유형이 있고 (그 특징을) 빨리 알아야 원하는 것도 찾고 나랑 잘 맞는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이렇다는 거죠.

사람에게는 유전자처럼 타고난 면도 분명 있지만 그런 건 반쪽 스토리입니다. 정체성이나 적성은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만들어가는 거거든요. 결국 그 과정이 중요하고 과정 속에서 성공과 실패가 존재하는 건데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야’ 혹은 ‘이걸 해야 되는 사람인데 그걸 못하니 안 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삶이란 나의 기질과 특질이라는 기반 위에서 주변 환경, 일, 하루하루 일상 등이 모두 상호작용하면서 조금씩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 게 심리학 차원에서 연구가 가능한가요.

“희망연구소에서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거푸집 같은 걸 좀 잘 만들어 적용하면 전환기에 있는 학생들이 조금 덜 방황하고 심리적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MBTI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 왜 그렇게 사람이 관심을 가질까요.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까요.

“고민을 해결해 주는 창구가 많이 사라졌죠. 전통 시대에는 종교도 있었고 효(孝)처럼 사회규범적으로 정해진 답이 있어요. 개인은 이를 의심할 필요 없이 잘 받아들였죠. 그런데 인간이란 본래 존재론적 고민을 갖고 있다는 연구가 굉장히 많이 있어요.”

무슨 말이죠? 사람은 본래 ‘왓 엠 아이(What am I)’라는 질문을 하게 돼 있다는 말인가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죠. 삶에서 가장 확실한 건 죽는다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인간은 본래 존재론적 공포가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런 막연한 불안감을 종교나 사회규범에 의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각자 개인이 찾아야 하는 시대죠.”

삶은 변화 과정임을 받아들여야

별자리도 있고 혈액형도 있고 요즘엔 사주 명리학에 대한 관심도 많던데 MBTI는 뭔가 과학과 결합된 형태 같아서 ‘있어’ 보여요.

“처음에 나왔을 때보다는 정교해진 것은 맞아요. 지금은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정교해졌을 가능성도 있어요. 어떻든 그런데서 답을 빨리 찾고 싶어 하는 거죠. 그래야 덜 불안하니까.”

MBTI가 일관성이 없고 거칠다 말씀했는데 그런 기준에 자신을 가두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듯 사람들이 타고난 기질이나 유전적 성향도 분명 있지만,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형성돼 가는 ‘과정’이란 게 있는데 어떤 기준에 가두게 되면 발전이 없죠. 나는 수학이 적성에 안 맞는 사람이야 단정하고 들어가면 아예 안 하게 되고, 안 하면 실력이 늘 수가 없죠. 물론 잘 안 맞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누구든지 하면 어느 정도 느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부정확하고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근거가 부족한 차원 안에 본인의 틀을 가두는 건 결국 선택지를 좁히는 거죠.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하나의 개별 사건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서사 구조, 즉 스토리로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통과했다, 그러면 그게 내 정체성이 되는 거죠.”

삶을 개별 사건이 아니라 스토리 구조로 본다는 말이 다가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굳이 MBTI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되죠. 나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 내 삶이 의미가 있어지는 거죠.”

사실 스토리라는 건 가치중립적이죠. 정말 개별화된 거라서 ‘좋고’ ‘나쁘고’가 없는 그냥 자기만의 이야기니까요.

“그렇죠. 물론 사회마다 좀 좋아하는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연구소는 개별 사건을 하나로 쭉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 나가며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 합니다.”

사회·문화 환경 다르면 심리 다르다

2021년 9월 16일 서강대와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는 서강대 베르크만스 우정원에 ‘희망연구소’를 설립해 연구기금을 기부한다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플라톤아카데미와 서강대는 이번 협약을 통해 심리학을 토대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연구·교육하겠다고 밝혔다. [플라톤아카데미]

2021년 9월 16일 서강대와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는 서강대 베르크만스 우정원에 ‘희망연구소’를 설립해 연구기금을 기부한다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플라톤아카데미와 서강대는 이번 협약을 통해 심리학을 토대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연구·교육하겠다고 밝혔다. [플라톤아카데미]

학교라는 현장에서 만나는 청년의 심리 상태는 어떤가요.

“다들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어디로 뛰어갈지를 몰라요.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불확실한 거죠. 고등학교 때까지는 수능 혹은 수시 준비를 잘하면 되잖아요. 목표가 있죠. 대학에 오니 내가 꿈꾸는 삶이 있는데 어디로 가야 그런 삶을 이룰지가 불명확해요. 그렇다 보니 입시랑 비슷한 고시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할지와 그다음에 예상되는 결과가 비교적 확실하잖아요.”

예전에도 대부분 그렇지 않았나요.

“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학점, 스펙을 관리해도 취업은 바늘구멍이고 격차도 심해졌고요.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격차가 커지면 충실한 방법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서두르는 거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열풍이 불었던 게 대표적이죠. 실제로 실험 연구를 해봐도 1등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게임과 공평하게 나눠주는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심리가 달라요. 후자가 좀 더 장기적인 고민을 하죠. 전자는 굉장히 짜증도 많이 내고 ‘쇼트 템퍼’가 됩니다. 참을성도 줄고요. 불평등 자체보다는 불평등을 시각적으로 얼마나 확인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지표예요. 요즘은 아주 어린 친구들도 어디가 비싼 아파트고 어떤 차가 좋은지 다 알잖아요. 눈으로 보니까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장기적 관점으로 뭘 하는 것이 안 좋아지고. 지금 이런 상황이죠.”

나 교수의 전공은 ‘문화 심리학’이었다고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시간대로 유학을 가서 문화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심리학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잖아요. 문화심리학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란 사회문화적 환경을 중시합니다. 저의 경우 처음에는 동·서양 비교 연구를 많이 했어요. 기존 심리학 연구는 90%가 미국 혹은 서양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잖아요. 동양 사람들의 심리와 잣대가 같을 수 없다는 건 당연하겠지요. 서양과 대척점에 있는 문화가 동양이니까 이쪽을 많이 연구하게 됐죠.”

좀 거칠게 여쭙는 것 같습니다만 융이니 프로이트니 하는 것도 사실은 서양 문화 토대에서 백인을 연구한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죠. 현대 심리학은 주로 ‘WEIRD People’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 즉 연구 대상이 서양의 산업화되고 민주적인 체제 안에 살고 있는 중산층에 집중돼 있죠. 그러니 샘플 자체가 편향됐다고 할 수 있죠. 현대 심리학에서는 프로이트나 융을 연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론이 맞는 구석도 분명히 있고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인사이트가 있는 건 사실인데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화심리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동양은 이들과는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더라는 거죠.

저는 처음에 동·서양 비교 연구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사회문화적 환경이라는 게 꼭 나라에 의해서만 구분되는 건 아니고 계층에 따라서도 다르니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어떤 심리 과정을 겪고 어떻게 다른지 등을 연구했습니다. 요즘 불평등이 큰 이슈인데 그것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와중에 ‘희망연구소’까지 오게 된 거죠. 사람의 믿음이나 성격이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향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합리적이지 않다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며 “삶에 답은 없다. 늘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응도 잘하고 성취도 좋다는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며 “삶에 답은 없다. 늘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응도 잘하고 성취도 좋다는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청년에게 조언해 준다면요.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줘요. 삶에 영향을 주는 것에는 굉장히 많은 요인이 있어요. 어느 하나로 결정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지 않아요. 대단히 많은 복합적 요인이 있어요. 이것들이 내 삶의 폭을 결정해 주죠. 그렇기 때문에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 된다’ ‘고시 붙으면 혹은 명문대 가면 행복하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죠. 사회심리학에는 이런 연구가 있어요.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다들 승진하지 못하면 삶이 대단히 불행해질 것이라고 답했어요. 1년 뒤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났더니 승진한 사람이랑 승진하지 못한 사람이랑 삶의 만족도에서 큰 차이가 없었어요.”

의외의 결과네요.

“그 1년 동안 인생에서 대단히 많은 일이 일어나요. 승진은 그 많은 일 중에 하나일 뿐이고요. 그런데 승진을 준비할 때는 그거 하나만 생각하니 승진하지 못하면 불행한 인생을 살 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죠. 사람은 무엇 하나에 꽂혀 그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심리학 용어로는 ‘초점(焦點)주의’라고 합니다. 뇌라는 게 합리적 사고를 하기 위해 진화한 게 아니거든요.”

적응하기 위해서죠.

“그렇죠. 주어진 환경에서 잘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 진화한 건데, 그렇게 진화된 인간의 특성들이 합리적 사고와 충돌하는 지점이 많습니다. 물론 합리적 사고라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할 수 있죠. 하지만 굉장히 피곤한 거예요.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인지 과정상의 오류가 있는데 ‘초점주의’는 그중 하나죠. 이렇게 삶의, 생각의 복잡성을 말해 주면 학생들이 조금 이해하더라고요. ‘너란 존재도 얼마나 복잡하냐, 때로는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고 싶지만 어떨 때는 혼자 있고 싶고 이렇게 복잡한 인간들이 얽힌 사회는 또 얼마나 복잡하겠느냐, 그러니 한두 가지로 삶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말합니다. 실제로 심리학뿐 아니라 모든 사회과학 연구를 봐도 하나의 요인이 다른 하나의 요인을 결정하는 건 없어요. 영향을 주는 것만 있을 뿐이죠. 다른 요인이 개입할 여지가 반드시 있는 거죠.”

‘바라는 대로 이뤄진다’ 같은 ‘끌어당김의 법칙’은 심리학에서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관련한 연구 내용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학기 초에 교사한테 ‘학생들은 모두 천재다’라고 이야기해 줘요. 사실은 보통 아이들이에요. 그런데 1년 후에 보니까 아이들 학업 성적이 실제로 우수한 거예요. 선생님의 믿음이 그걸 만들었다고 보는 거죠. 아이들 탓하기보다 내가 ‘이 녀석들은 천재니까 조금 격려해 주면 더 잘할 수 있겠지’ 이런 마음으로 가르치니 성과가 좋은 거죠. 심리학에서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해요.”

말이 어렵네요.

“‘스스로 실현되는 예언’이라는 뜻이에요. 교사 처지에서 이 아이들은 우수한 학생이라는 믿음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 믿음 자체가 내 행동을 바꿔서 우수한 학생이 되게 만든다는 거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그 생각을 현실화할 힘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사회심리학에서 굉장히 많은 연구가 이뤄져 있어요. 내가 오늘 100억 원을 벌겠다는 건 허무맹랑하지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그 생각을 실현시키는 능력으로 연결되는 데에는 아주 효과가 있어요.”

진짜 너무 웃기는 질문인 것 같은데 마음이 뇌에 있습니까, 심장에 있습니까.

“뇌에 있죠, 마음이라는 건 뇌에서 일어나는 뉴런들이 작용한 결과물로 나타나는 게 언어화되는 거죠. 어떤 이미지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 마음 하나 다스리는 게 그렇게 힘들다는 거 아니에요.

“앞서도 말했듯 뇌는 가소성이 있는 신체 기관이에요. 뇌도 신체 기관의 일부예요.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잖아요. 몸이 변화한다고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뇌도 변화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마음도 변할 수 있는 거죠.”

결국 삶이란 변화다

종교에서 말하는 나, 에고를 버려야 한다는 게 가능한 얘기인가요.

“심리학자가 보는 그 말의 의미는 관심의 초점을 자기에만 두지 말라, 그런 얘기 아닐까요? 자기중심적인 삶을 벗어났을 때 더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자기를 초월한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람직한 행동, 친사회적 행동이라고 하는 걸 많이 한다는 연구도 있어요. 자기중심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 돼요. 우리가 남의 연애에 대해서 조언할 때 얼마나 합리적인 얘기를 많이 합니까?(웃음)

우리 연구소의 슬로건이 ‘의미와 성장이 함께하는 삶’입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그냥 단편적으로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라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다 의미가 있고 또 그런 자세를 가지면 성장할 수 있다, 변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적성도 삶도 만들어가는 거다, 나 혼자 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환경·능력 등과 함께 다양한 상호작용을 해서 형성돼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바가 있고, 그렇게 형성돼 나가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변화다. 어떤 답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변화와 성장을 향해가는 여정이라는 겁니다.”



신동아 2023년 1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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