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호

“지금은 양심과 염치 사라진 시대… 가장 비극적”

[플라톤아카데미] 한학 연구 대가 한학자 성백효의 안타까움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04-04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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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지만 양심과 염치 사라져

    • 유교 가르침은 양심을 되찾자는 것

    • ‘수오지심’ 없는 정치인, 비행 저질러도 부끄러움 없어

    • 지금은 의(義) 부족한 시대, 이익 따라 움직여

    • 바꿀 수 없는 것 관심 두지 말라

    • 참고 견뎌라, 지금 상태가 계속 가지 않는다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이 시대에 새로운 통찰을 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리즈를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편집자 주>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60여 년간 한국과 중국의 고전을 연구한 한송(寒松) 성백효(80) 해동경사연구소장을 만나고 싶었던 건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다 보니 옛 성현들의 말씀이 어느 때보다 간절해졌기 때문이다. 마침 성 소장이 고전에 나오는 경서들을 소개하며 삶의 지침을 펴낸 ‘세한(歲寒)의 마음’도 지난해 출간한 바 있고, 올해는 서경 해설서 개정 증보판을 내는 데 여념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그가 공부하고 가르치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 연구소를 찾았다. 백발에 인자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 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맑은 눈빛이었다. 나직하면서도 강한 신념이 묻어나는 목소리에서는 경전을 읽고 번역하고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행(行)하며 살려고 하는 수도자의 모습이 겹쳤다. 그는 지금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면 고전을 독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기자가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고전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어 찾아뵀다”고 입을 떼자 그는 “아이고, 나는 한문 밖에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겸손이 몸에 체득된 사람만이 갖고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 편안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한학 공부 이야기부터 꺼냈다.

    양심은 유교 가르침의 본질

    이런 시대에 우리가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세상을 살아가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돼요. 우선 육신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은 오로지 육신을 잘 먹이고 잘 입히는 데 집중하지요. 여기서 더 한 차원 높은 게 마음이죠. 마음에 평안을 얻고 세상의 지혜를 깨달아야 하는데 종교의 가르침도 그렇지만 공자의 가르침은 마음에 양식을 줍니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이 가장 잘 먹고 잘 쓰고 잘 노는 세상이죠. 하지만 양심과 염치가 사라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권력을 갖고 있고 최고 학교를 나온 엘리트들이 더한 거 같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거짓말이라도 해서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는 청소년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그런 점에서 지금 세상이 가장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최근 어떤 목사님 말씀을 듣다가 “모세의 십계명 다음에 열한 번째 계명이 있다”는 농담을 들었습니다.

    “그게 뭔가요?”

    “들키지 말라”라고 합니다.

    “(웃으며) 책으로 치면 유교 경전만큼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조선조에 나온 책만 해도 엄청나니까요. 불교나 기독교에 견주어 경전의 양은 제일 많다고 할 수 있지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도 있지 않습니까.

    “군자나 성인의 레벨에는 아무나 오르는 건 아닙니다.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어른들 말씀을 통해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유교의 가르침을 굳이 한마디로 한다면 ‘양심을 되찾자’는 겁니다.”

    노학자의 입에서 나온 ‘양심’이란 말은 사실 너무 흔하고 당연한 단어 아닌가. 하지만 새삼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파고들고 싶어졌다.

    양심은 무엇인가요.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그겁니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불쌍한 사람을 보면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도 눈물 나고 도와주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죠. 두 번째가 수오지심(羞惡之心),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며, 또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한마디로 정의감이죠. 지금 우리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은 수오지심이 없는 거예요. 남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비판해야 하는데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이면 무슨 일을 했어도 다 찍어주잖아요. 국민들이 이러니 정치인들이 그걸 믿고서 비행을 저질러도 아무 부끄러움이 없죠. 거듭 말하지만 수오지심은 자기의 잘못도 부끄러워해야 되지만 남의 잘못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것을 말합니다.”

    잔잔하던 그의 목소리 톤이 약간 올라가면서 말이 이어졌다.

    “예(禮)라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이고, 지(智)라는 것은 지혜니까 사태의 옳고 그른 것을 맑게 분별하는 마음이죠. 인의예지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에요. 수오지심이 없으니까 시비지심(是非之心)도 없어진 거죠. 저는 인의예지 중에서 지금 ‘의(義)가 가장 부족한 시대’라고 봅니다. 오로지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는 시대죠.

    사람이라는 게 신기해서 잘 먹고 잘살면 정신은 좀 안일해집니다. ‘명심보감’에 보면 ‘굶주리고 추우면 도심(盜心)이 나오고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심(淫心)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욕망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다만 잘 먹고 잘살면서도 법도에 맞게 하고, 지나치지 말라는 거죠. 도를 넘으면 결국 이겼다고 생각했던 일이 집안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게 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서로가 하나의 공동체가 돼야지 ‘나 혼자만 남 속이고 어떻게든지 해서 잘 먹고 잘살겠다’고 하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대통령 심정은 이해… 계엄은 백번 잘못한 일

    내친김에 정치 이야기를 화제로 삼았다.

    계엄 같은 사태가 왜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요즘 저는 아예 뉴스를 보지 않습니다만, 우선 대통령 심정도 이해가 가요. 야당이 너무했죠. 예산도 다 깎아버리고 기껏 임명한 공직자들 다 탄핵시키고, 걸핏하면 특검을 한다고 하고.
    그렇다고 해서 계엄을 한다는 건 잘못한 거지요. 적이라도 손을 잡아야 할 생각을 해야지 주먹질을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대통령도 부인 때문에 문제가 많았잖아요. 최소한 수오지심의 마음을 갖고 되돌아봐야 하는데. 더구나 지금이 얼마나 어려운 때예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국제질서가 또 한 번 요동을 치고 있는데 여당하고 야당이 진짜 이건 참말로….”

    그가 혀를 끌끌 찼다.

    “대통령을 대번에 잡아넣은 것도 잘못이지만 대통령도 이왕 그렇게 됐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책임을 질 생각을 해야지 또 별거 아닌 일이라고 그러고 거참. 다만 국민들이 어쨌든 간에 이렇게 일상을 유지하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거죠.”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고전이라고 해서 뭐 특별하고 대단한 가르침이 있다기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의 살아갈 도리를 말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맹자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사람이 염치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없게 된다고요. 염치라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염치가 아까 말한 양심이에요. 내가 이런 나쁜 일을 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사람의 기본적 삶의 도리 같은 것들은 종교적 가르침하고도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원래 유교도 종교예요. 다만 내세가 없지요. 순간순간을 잘 사는 것뿐이지요. 죽으면 환생한다거나 천국을 간다거나 그런 게 없죠.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죽으면 그게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주역도 정리하셨는데 운명이라는 게 있습니까.

    “저는 세 가지로 봅니다. 첫째, 유전입니다. 두 번째가 환경이에요. 아무리 유전자가 좋아도 가정환경이 좋아야죠. 마지막 세 번째는 철, 때(時)입니다. 흔히 사주팔자라고 하는 거죠.

    제가 젊을 때 농사를 지어본 적 있는데 첫째, 좋은 종자를 심어야 돼요. 그게 유전이죠. 씨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땅이 기름지고 관리를 잘해도 안 됩니다. 그다음 땅이 좋아야죠. 그게 환경이죠. 세 번째는 철이 맞아야 합니다. 가을에 보리를 심어야지 여름에 심으면 안되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인생을 비관하는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바꿀 수 없는 것에 관심 두지 말고 바꿀 수 있는 ‘마음’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관상보다 심상(心象)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관상이 좋아도 마음의 상만 못하다는 거예요. 유전이나 환경은 내 잘못이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바꿀 수 없는 겁니다.

    주어진 자기 운명 안에서 최대한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데까지 극복하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죠. 운명이라는 건 내일 좋게 될지도 모르고 나빠질지도 몰라요. 내가 최선을 다해서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면 나의 임무는 끝난 것이지, 그건 하느님 탓도 부모 탓도 아닙니다.”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여한이 없으신가요.

    “나는 ‘내일 눈을 감아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버지가 굉장히 엄했어요. 저를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냈습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 따라서 학교 가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그랬는데 아버지가 매일매일 내주신 숙제하느라고 그럴 엄두를 못 냈지요. 하지만 후회 안 해요. 그냥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해서 지금까지 그냥 이렇게 왔지, ‘최선을 다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광복이 되던 194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성 소장은 한학자였던 부친의 권유로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부친은 그가 18세 되던 해 전북 익산의 유명한 한학자였던 월곡 황경연 선생에게 그를 맡겼다. 하지만 스승이 2년 만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이번에는 서암 김희진 선생 문하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잠시 한학 공부에 회의를 느껴 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마음이 제일 힘들었던 때였다고 한다.

    그러다 33세 되던 해인 1977년 신문에서 우연히 민족문화추진위(현 고전번역원)에서 한학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서울로 와서 6개월 만에 학생에서 강사가 된다. 30대 최연소 강사였다. 이어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한한(漢韓) 대사전 편찬위원, 국방부 전사(戰史)편찬위원회에서 일하고 고전번역원 교수로도 일했다. 서울대·성균관대·경희대 등에서도 강의했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오피니언 리더가 많다. 2014년 8월 서울대 졸업식에서는 축사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낙인 전 서울대총장은 선생의 책 ‘세한의 마음’ 추천사에서 “평생 한학 연구에 매진하면서 체득한 바를 설파하는 인생의 길잡이이자 삶의 교훈서”라며 이렇게 적고 있다.

    “선생께서 작업하신 번역 주해서는 당대 최고 저술로 평가받는다. 오서오경(五書五經), 즉 논어집주·맹자집주·대학 중용집주·소학집주·시경집전·서경집전·주역전의·예기집설대전 등을 완벽하게 집주하셨으니 앞으로도 이런 작업이 후대에서 가능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선생의 노작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박희재 해동경사연구소 부이사장이 쓴 ‘주역 발문’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제자들 사이에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절대로 강학을 줄이거나 없애자는 말씀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선생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려는 마음이 남달라서 배우려는 학생이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떠한 손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성현의 말씀을 깨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신다…건강이 전과 같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아 힘이 많이 드셨지만 성현의 학문을 사랑하시고, 계왕성 개래학(繼往聖 開來學·앞서가신 성인의 학문을 잇고 뒤에 오는 후학의 학문의 문을 열다)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고 본다.”

    선생님처럼 한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이제는 찾기가 힘듭니다.

    “어릴 때부터 고전과 접하는 버릇이 들어야 나이가 늙어서도 하게 될 텐데…. 하지만 거센 물결을 개인이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길게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고전에서 지혜의 말을 찾게 되겠지만 당장은 굉장히 암울하게 봅니다. 학문 같은 것은 한번 맥이 끊어지면 잇기가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한문 공부가 어렵다고 느껴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누가 전수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이제 얼마 안 가면 사찰의 스님들도 연구를 못 할 거예요.”

    시경 역경 재발간에 이어 서경을 다시 내고 계시죠.

    “네. 곧 증보판이 곧 나옵니다.”

    원문에 대한 개정 보완 작업은 계속 필요한지요.

    “당연합니다. 이미 한 것 중에서 부족할 수가 있고 추가할 것도 많고요. 과거에는 그냥 스치고 넘어갔던 것을 파들어 가면 좀 더 쉽고 깊게 해석할 것이 많이 있지요.”

    하루 몇 시간이나 공부 하십니까.

    “글쎄요. 한 10시간 정도. 이런 것 해서 굶어 죽는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웃음). 이익만 따지면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10만 부 정도 나간 것도 있지만 지금은 종이 신문도 안 보는데 누가 읽겠어요.”

    평생 몰두해 온 일이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는 의기소침해질 수 있는데요.

    “세상에서 다 알아주는 공부를 했어도 내가 성공했을지 안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다들 사람들이 자기만큼은 남들처럼 유명해지고 잘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은 극소수 아닌가요. 최대한 노력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성공한 거죠.”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은 오서오경(五書五經)을 집주하는 등 일평생 고전을 연구했다. 박해윤 기자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은 오서오경(五書五經)을 집주하는 등 일평생 고전을 연구했다. 박해윤 기자

    성하면 쇠하고 쇠하면 성한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사서삼경 경문(經文)만 한글로 번역했지 주석서를 번역하지는 못했다. 정부나 학교의 도움 없이 한 사람의 힘만으로 이런 작업을 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주역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뭡니까.

    “성(盛)하면 쇠(衰)하고 쇠하면 다시 살아난다는 겁니다. 1년 중 6개월은 양(陽) 기운이 지배하고 6개월은 음(陰) 기운이 지배합니다. 동지가 지나면 조금씩 해가 길어지잖아요. 양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죠. 우리가 피부로는 느끼지 못해도 4월 지나서 5월 6월 지나면 음 기운이 올라옵니다. 이걸 사람 힘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양 기운은 따뜻하고 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음은 좀 춥고 싫잖아요. 주역이라는 책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밤에 촛불을 켜듯이 양 기운을 더 키우고 더 견디자 이런 원리를 알려주는 겁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음 기운이 성할 때 갖는 마음가짐도 달라지죠.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선(善)한 방법으로 살라는 게 유교의 일반적 가르침인데 주역만큼은 ‘참고 견뎌라, 지금 이런 상태가 계속 가지 않는다’면서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시련이 닥치면 이대로 망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지만 추운 겨울 남의 옷을 빼앗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살다 보면 다시 따뜻한 봄이 돌아올 때가 있다 이겁니다.

    며칠 전에 서울대 법대 나온 분이 저한테 하소연하듯이 ‘우리나라가 이제 망하게 됐습니다’ 이래요. 사실 지금 현실을 돌아보면 좋다고 볼 건 아무것도 없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가 그냥 이대로 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뭔가 또 계기점이 생겨서 이 어려움이 지나가고 활기가 돌 겁니다. 신기한 것이 양 기운이 처음 일어날 때가 가장 추워요.”

    그의 말이 이어졌다.

    “맹자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한 제자가 맹자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너무 배가 고픈 상황에서 친형제의 팔목을 비틀어서 밥을 빼앗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그렇게 하는 가요’ 하고 말이죠.”

    맹자 말씀이 뭐였나요.

    “한 치 되는 작은 나무를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에 꽂아놓으면 그 작은 나무가 가장 큰 나무가 되지 않느냐. 그것처럼 너무 극단적 상황을 예로 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이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보십니까.

    “옛날 분들은 마음이 육신을 부려야 된다고 했어요. 불교도 마찬가지고. 불교는 상당히 경지가 높습니다.”

    사람들이 선생님한테 행복이란 뭡니까 물어보면요.

    “‘지금 밥이 없어서 죽을 먹는다 해도 죽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마음 갖는 것이 행복이죠. 사람이란 게 신기해서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대하면 지겨워집니다.”

    평생 논어 공부를 하셨는데 좋아하는 구절을 꼽으신다면.

    “맨 앞장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입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배운 것을 그냥 배우기만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복습하고 복습해서 실천도 해보고 하니 즐겁고 재미가 난다는 뜻입니다. ‘유붕자원방래’ 할 때 ‘붕’은 동창처럼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나와 생각과 뜻이 맞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벗이 멀리서 오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또 공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나’ 했어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학문을 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물론 마누라, 자식들이 몰라줘도 서운해하지 않으면 그게 군자라고 했어요. 이게 논어의 핵심입니다.”

    내친김에 또 여쭙고 싶습니다. 맹자 가르침의 핵심은 뭔가요.

    “전국시대 양나라의 혜왕이 천하의 유명한 학자들을 불러다가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요. 맹자도 만나 ‘어떻게 하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묻습니다. 그때 맹자가 ‘왕은 하필 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되묻습니다.”

    맹자의 말이 뭐였나요.

    “왕이 이익을 말하면 그 밑의 사대부들도 이익을 생각하고 각자 백성들도 모두 이익만 생각할 거라는 거죠. ‘윗사람 아랫사람이 모두 서로 이익을 취하면 나라는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익 대신 인과 의를 앞세우면 사대부도 왕을 그렇게 대할 것이고 백성들도 그렇게 될 거라는 거죠.”

    성 소장의 호 한송은 논어 자한(子罕)편 27장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듦을 안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봄과 여름에는 모든 나무가 푸르름을 자랑하지만 가을이 돼 서리가 내리면 단풍이 들고 잎이 점점 시들어 떨어지는데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서리와 눈을 견디다가 다음 해 여름에야 묵은 잎이 떨어진다. 사람도 평상시에는 모두 양심적이고 착해 보이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신의고 양심이고 돌보지 않는다. 추위 속에서도 꿋꿋한 소나무가 되겠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을 당해도 변치 않는 꿋꿋한 지조와 양심을 지키겠다는 자기 다짐이 담겼다.

    호 이야기를 꺼내자 성 소장은 “평생 그런 마음으로 늘 반성하고 뉘우치고 살고 있지만 부족하다”고 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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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5 16:27:24
      세상이 달라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거짓말 사기 남탓 선동이 공격과 방어를 위해 가르치고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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