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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움직이는 예술품이에요, 1㎜로도 디자인이 달라집니다”

아우디 한국인 여성 디자이너 박슬아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자동차는 움직이는 예술품이에요, 1㎜로도 디자인이 달라집니다”

  • ● 기회 언제 올지 몰라… 늘 준비해야
    ● 기능과 완벽히 조화된 아름다움 추구
    ● 성별 개의치 않고 개성 존중하는 분위기
    ● 역사에 남을 예술품 만들자는 사명감
박슬아 디자이너는 아우디 콘셉트카의 외관 디자인에 참여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아우디코리아]

박슬아 디자이너는 아우디 콘셉트카의 외관 디자인에 참여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아우디코리아]

독일의 고급차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아우디가 지향하는 미래 프리미엄 이동 수단의 비전으로 자율주행과 전기차, 첨단 디지털 기술이 첫손에 꼽힌다. 이 모든 것을 집약한 모델로 평가받는 ‘아우디 어반스피어 콘셉트’가 2022년 10월 한국에서 처음 공개됐다. 아우디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아우디 스피어 시리즈 가운데 최근 나온 이 차량은 전장 5510㎜·전폭 2010㎜·전고 1780㎜ 규모로, 역대 아우디 차량 중 가장 넓은 실내 공간을 제공하는 대형 럭셔리 클래스 콘셉트카다. 내부만 넓은 게 아니다. 레벨 4 자율주행 기술과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미래 프리미엄 모빌리티를 구체화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몸집이 거대하면 무겁고 둔탁해 보이기 십상이지만 이 차는 날렵하고 세련된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사람의 눈을 닮은 헤드램프가 인상적이다.

“아우디 로고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리빙 디지털 아이’라는 헤드램프예요. 차량을 바라보면 헤드램프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느낌을 줄 거예요. 전면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또렷해 보일 수 있는 헤드램프를 강조해 자신감을 표현했어요.”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박슬아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박슬아 디자이너는 한국인이다. 아우디라는 남성적 느낌이 강한 차를 여성, 그것도 한국인이 디자인한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박 디자이너는 아우디 어반스피어 콘셉트 외관을 직접 디자인했다. 아우디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다. 아우디의 콘셉트 카 디자인을 한국인 디자이너가 맡은 것도 그가 처음이다. 유학 없이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졸업장만 들고 독일 아우디 본사에 들어간 이력도 이채롭다. 2012년부터 11년째 본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그는 그동안 아우디 Q3 스포트백, RS Q3 스포트백, TT RS 페이스리프트 모델 등의 외관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독일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박슬아 디자이너를 겨울 문턱에서 e메일로 다시 만났다.

스케치는 또 다른 의사소통 도구

전공한 산업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은데 왜 하필 자동차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요.

“자동차를 좋아하는 친오빠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있었어요. 같이 자동차를 보러 다니면서 오빠가 여러 차를 소개해 주던 기억이 나요. 기계학적인 면에서 차를 좋아하던 오빠와 달리 저는 조형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대 입시를 준비했는데 준비 과정에서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우연히 알게 됐고, 이쪽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왔어요. 일단 내가 좋아하는 드로잉을 계속 할 수 있고 다른 제품 디자인과 달리 조각처럼 예술성이 두드러지는 점, 자동차마다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무엇보다 내가 한 스케치가 실제로 세상 밖으로 나와 직접 타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크게 와닿아 자동차 디자인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폴크스바겐 그룹 포츠담 스튜디오에서 인턴십을 거쳐 아우디에서 11년째 디자이너로 활동 하고 있는데 인턴십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대학교 재학 시절 폴크스바겐 스튜디오에서 낸 인턴십 공고를 우연히 접했어요.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다행히 연락이 와서 거의 한 달 반 만에 짐 싸서 독일로 갔어요. 당시는 독일어는커녕 영어도 잘하지 못했어요. 매일 다음 날 질문할 거리를 미리 다 통으로 외워 난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는 스케치가 또 다른 의사소통 도구였기에 제가 제일 잘하는 걸 열심히 하자는 마인드로 임한 것도 인턴십을 무사히 마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언어나 문화 차이 등으로 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법한데요.

“디자인팀 자체가 굉장히 다양한 나라 사람들로 이뤄져 있어서 언어나 문화 차이를 크게 느끼진 않았어요.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기에 항상 오픈마인드로 대하고,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영어로 해결하다 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대신 독일어가 잘 안 느네요. 하하.”

일과 생활의 균형, 자율과 책임의 조화

아우디의 근무 환경은 어떤가요.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로워요. 큰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라 자기가 맡은 일을 다들 정말 열심히 합니다. 가끔 점심식사를 거르거나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때도 있어요. 회사가 오후 7시 30분에 문을 아예 닫아버려 근무 시간에 맡은 일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대신 바쁘지 않을 땐 오후 1~2시에 퇴근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집에 가라고 해요.”

사원 복지제도가 잘 돼 있나요.

“소위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 지수는 정말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일단 휴가가 굉장히 많아요. 부서장에게 미리 얘기만 하면 회사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긴 휴가를 떠날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휴가를 여름엔 2주, 겨울엔 3~4주 정도 써요. 재충전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한 해의 남은 시간을 다시 시작하죠.”

현재 아우디코리아 최고경영자(CEO)도 여성이고, 본사에서 마케팅&세일즈를 총괄하는 힐데가르트 보트만(Hildegard Wortmann)도 여성이에요. 아우디는 여성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회사인가요.

“여성에게 무조건 균등한 기회를 준다기보다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 기회를 받은 사람이 여성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속한 익스테리어 디자인팀은 다른 부서에 비해 여성이 아직도 현저히 적지만 여성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특혜를 더 주진 않아요. 그냥 한 팀의 구성원으로서 대해 주고 남녀 불문 각자가 가진 개성을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많은 개성 넘치는 새로운 여성 디자이너가 올 거라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마크 리히트 디자인 총괄이 깐깐하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자동차 디자인이 1mm로도 차이가 날 수 있기에 깐깐함이 필요한 직업이에요. 디자인에 대한 시각은 늘 깐깐한 분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할 땐 그렇지 않아요. 성격이 굉장히 직설적이라 디자인 방향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가 확실한 분이에요. 디자이너 입장에선 그런 성격의 상사와 일하기가 오히려 수월합니다. 디자이너들이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고,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양과 질적으로 더 보여주려 노력해

아우디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제가 처음 디자인한 Q3 스포트백 차가 나왔을 때였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스케치부터 차가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으니까요. 차가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기대를 했어요. 차의 모습이 처음 인터넷에 떴을 때, 차를 직접 타봤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감격스러웠어요.”

아우디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가 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묵묵히 열심히 준비한 것이 전부입니다. 여성 디자이너라는 선입견을 주지 않기 위해 처음 입사 지원할 때 포트폴리오에 사진을 일부러 넣지 않았어요. 포트폴리오만 보고 판단했으면 하고요. 그렇듯이 일을 할 때도 다른 동료 디자이너들보다 시간을 더 투자해 양과 질적으로 더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좋은 기회를 얻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우디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요.

“아우디는 과하지 않은 정제된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너무 심심하거나 비어 보이는 느낌과는 다른 심플함을 선호하죠. 그 속에서 항상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진보한 디자인을 지향해요. ‘형태는 기능을 띠른다’는 말처럼 자동차의 형태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혁신적인 기능과 완벽하게 조화된 아름다움을 항상 추구하는 게 아우디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박슬아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대형 전기차 ‘아우디 어반스피어 콘셉트’. [아우디코리아]

박슬아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대형 전기차 ‘아우디 어반스피어 콘셉트’. [아우디코리아]

직접 디자인한 차량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떠올린다면.

“제가 참여했던 모든 프로젝트에 다 애착이 가지만 그중에서도 Q3 스포트백과 최근 나온 어반스피어 콘셉트 카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Q3 스포트백은 처음으로 프로덕션으로 나온 프로젝트인데 처음 스케치를 시작하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날 정도예요. 1년 동안 자가용 승용차로 직접 타고 다녀서 더 의미가 깊죠. 콘셉트 카 디자인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약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많은 다른 부서원와 밤낮 없이 일하고 또 그동안 아우디에서 보지 못했던 비율의 콘셉트 카 디자인에 참여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자신만의 철칙은 뭔가요.

“저는 자동차가 움직이는 예술품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인간과 자동차는 예로부터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에 디자인을 할 때 더욱더 감성적으로 다가가려고 해요. 자동차는 브랜드마다 가진 고유의 히스토리와 문화를 담고 있어요. 그런 움직이는 역사의 한 부분이 되고자 예술품을 만들자는 사명감으로 디자인에 임하려고 합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의 ‘최애’ 차는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람보르기니 미우라라고 한다.

스스로 격려하는 긍정의 힘

박슬아 디자이너가 2022년 10월 아우디 브랜드 전시관인 ‘하우스 오브 프로그래스 인 서울’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드램프가 사람의 눈처럼 강렬하다. [아우디코리아]

박슬아 디자이너가 2022년 10월 아우디 브랜드 전시관인 ‘하우스 오브 프로그래스 인 서울’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드램프가 사람의 눈처럼 강렬하다. [아우디코리아]

전기차 시대의 디자인은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요.

“엔진이 있던 자리가 없어지면 내부 공간이 넓어져요. 배터리팩이 바닥에 자리하면서 휠베이스가 길어지고 전고가 높아졌고요.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아름답게 해석할지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앞으로 풀어갈 숙제가 될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어떤 차를 디자인해 보고 싶나요.

“모든 테크놀로지가 들어간 럭셔리한 D클래스 차량을 디자인해 보고 싶어요. 비용과 기술적 제약이 없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어떤 디자인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디자이너로서 포부가 있다면?

“시간이 지나도 항상 그 가치를 보여주는 타임리스 디자인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꾸고 있어요.”

살다 보면 늘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버팀목이 돼주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나 그런 존재가 있나요.

“보통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남에게 물어봐서 알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공적인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내가 진정 원하는 걸 스스로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는데 자존감이 낮으면 그걸 밖이나 남에게서 알아내려고 하죠. 그래서 꼭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동안 그렇게 살지 못했고, 앞으로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고 싶기에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저를 항상 긍정적으로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당장 자신에게 기회가 안 왔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데 힘 빼지 말고, 자신의 역량을 더 발전시키면 좋겠어요. 늘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면 언젠가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자동차만 볼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미래의 자동차 디자인과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감성과 색깔을 동시에 찾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멋진 디자이너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신동아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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