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호

“노력은 배신 안 해…날 키운 8할, 군대서부터 몸에 밴 인내심”

[사람 속으로] 셰프 정호영, 군대 ‘똥국’에서 세계적 미식의 중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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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6-07-05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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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F 시련 속 내디딘 요리사의 첫걸음

    • ‘똥국’ ‘박보검과 특식’…군대 급식 한 끼의 가치

    • 하루 14시간 일하던 유학생 달래준 우동 한 그릇

    • 스타 셰프가 ‘흑백요리사’ 도전한 진짜 이유

    • 삶의 0순위는 주방…요리의 본질, 손님 향한 마음

    정호영 셰프는 “남이 나보다 앞서갈 때 시기하기보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먼저 해왔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더 많이 노력하라”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정호영 셰프는 “남이 나보다 앞서갈 때 시기하기보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먼저 해왔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더 많이 노력하라”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K-푸드의 세계화와 더불어 요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TV뿐 아니라 SNS에도 요리 관련 콘텐츠가 넘쳐난다. 요리를 대중적인 콘텐츠로 만드는 데는 셰프들의 활약이 한몫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호영(50) 셰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일식 요리사임에도 올해 초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 경연에 도전해 최종 4위에 오르며 장인정신을 증명해 보였다. 

    뜨거운 관심과 화려한 조명 속에 서 있는 그이지만, 요리 인생 첫 장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엄혹한 시대의 한복판, 청년 정호영은 해군 전역 후 생계를 위해 거친 주방으로 뛰어들었다. 고된 나날과 열악한 환경을 버티게 한 무기는 군대에서부터 몸에 밴 ‘인내심’이었다. 일본으로 무일푼 유학을 떠나 낡은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누비던 시절, 가난한 유학생의 배와 영혼을 채워주던 뜨끈한 우동 한 그릇은 훗날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일식 마스터로 이끈 운명적 도화선이 됐다. 

    ​50대로 접어든 지금도 “내 삶의 최우선순위는 언제나 주방”이라며 앞치마 끈을 단단히 조여 매는 정호영 셰프를 만났다. 군대 밥상에서 느꼈던 한 끼의 소중함부터 격렬했던 ‘흑백요리사’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후끈한 주방에서 밤낮으로 땀 흘리는 이 시대 예비 요리사들에게 전하는 묵직한 조언까지, 그의 우직하고 맛있는 인생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풀었다. 

    월급 2만 원, 돈가스가 쏘아 올린 행복 

    군 전역 후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작은 한식당을 운영해 식당 일 자체는 익숙했다. 진짜 고민은 제대 후 찾아왔다. 전역 무렵인 1998년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국가 전체가 흔들리며 일자리가 사라지던 시기라 진로 고민이 깊었다. 그때 문득 익숙한 식당 일을 본격적으로 배워보자는 생각이 스쳤다. 거창한 야망보다는 생계를 위한 절실함이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해군 수병으로 군복무를 했다. 지원 입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에 가려 했다. 당시 육군 특기병은 운전면허나 자격증이 필요했는데 난 준비된 게 없었다. 반면 해군은 별도 자격증 없이 지원이 가능했다. 평소 바다를 동경하기도 했고,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 큰 고민 없이 해군을 선택했다.”

    최근 ‘취사병, 전설이 되다’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군대 급식에 관심이 높아졌다. 군인에게 ‘한 끼 밥상’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제한된 공간에서 장병들의 하루 사기는 그날 메뉴에 좌우된다. 고기류는 단연 환영받지만 생선 요리는 인기가 없다. 대량으로 조리하다 보니 비린내가 심해 남기는 경우가 많다.”

    단체 급식에서 생선 요리의 맛을 살리기 어려운 이유가 뭔가.

    “대량 조리 환경에서는 섬세한 조리가 물리적으로 힘들다. 일반 식당처럼 은근한 불에 졸여내지 못하고, 수백인분을 한 번에 쪄낸 뒤 양념을 붓다 보니 양념이 생선 살에 스미지 않고 겉돌아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량 급식에선 생선 튀김이나 구이가 적합한데 손이 많이 가는 게 문제다.”

    훈련소 첫날 마주한 군대 음식의 첫인상은 어땠나.

    “이른바 ‘똥국’이라 불리는 된장국이 나왔는데, 건더기는 없고 맹물 같아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밥과 깍두기, 김 한 장이 전부였다. 이걸로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힘든 훈련을 받으니 그 밥마저 아쉬울 정도로 싹싹 긁어 먹게 되더라(웃음).”

    몇 년 전 국방부 홍보영상 촬영차 부대를 방문한 걸로 안다. 그때 체감한 요즘 급식을 평가한다면. 

    “배우 박보검 씨가 군 복무 중일 때 군대 급식을 함께 만드는 촬영을 했다. 과거에 비해 환경이 정말 좋아졌더라. 요즘은 국이나 소스가 완성도 높은 완제품 형태로 공급된다. 취사병의 손맛에만 의존하던 예전과 달리 대기업 소스 덕에 맛의 균형이 상향 평준화됐다. 당시 박보검 씨와 함께 장병들에게 햄버그스테이크와 카레 특식을 대접했는데 반응이 무척 폭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복무 시절 가장 힘이 돼준 메뉴는 무엇인가. 

    “제육볶음 같은 육류, 돈가스 같은 튀김 요리가 나오는 날은 무조건 행복했다. 가공육으로 만든 부실한 돈가스였지만 튀긴 고기 요리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군 생활을 버티는 원동력이 됐다.”

    요즘 병장 월급이 200만 원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격세지감이 클 것 같다. 

    “내가 병장일 땐 월 2만~3만 원을 받았다. 군인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 것은 국가 경제력이 커진 결과이니 당연하고 좋은 일이다. 돈을 더 주고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고 해서 군 생활의 고됨과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는다. 통제된 환경 속 장병들이 느끼는 고단함의 무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반대와 일본 유학, 우동 한 그릇의 위로 

    군 생활이 훗날 요리사의 길을 걷는 데 도움이 됐나. 

    ​“군대라는 조직 생활을 통해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성실성’과 ‘인내심’을 배웠다.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길렀다. 날 키운 8할이 인내심이다. 군대에서 기른 인내의 깊이는 훗날 내가 주방이라는 거친 전쟁터에서 버텨낼 수 있는 든든한 뼈대가 됐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선언했을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평생 식당을 하며 고생한 경험 때문에 자식만큼은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랐다. 부모로서 당연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국내에서 현업 경력을 쌓은 뒤 일본 유학을 떠났다. 요리가 평생의 업이라는 확신이 든 계기가 있나. 

    “입대 전에는 몸이 힘들면 쉽게 포기하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전역 후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하루 14시간의 가혹한 노동 속에서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부딪쳐 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힘든 과정을 견뎌내는 스스로를 보며 평생을 바칠 진짜 내 일을 찾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월급 50만 원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버티게 한 희망은 무엇인가.

    “언젠가 내 매장을 갖겠다는 목표가 날 버티게 해줬다. 돈보다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만 치열하게 몰두했다. 악착같이 버티다 이직한 매장에서 호텔 주방장 출신의 유학파 사장님을 만났다. 일식의 본고장에서 기초부터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 시절엔 낮에 공부하고 밤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버는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배고픈 유학생 정호영을 달래주던 음식이 ‘우동’이라고?

    “돈이 없던 시절 우동은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지치면 뜨끈한 우동 국물로 허기를 달랬다. 먹을수록 단순해 보이는 우동 한 그릇에 담긴 깊은 내공에 감탄했다. 그때 내 마음에 위로를 준 이 매력적인 음식을 언젠가 한국에서 제대로 선보이겠다는 꿈을 품었다.”

    현업 요리사가 전하는 미식의 지혜와 자영업의 본질

    이미 유명한 스타셰프가 ‘흑백요리사2’ 경연에 도전한 이유가 뭔가. 

    “‘흑백요리사’ 시즌1 때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서바이벌 특성상 탈락의 부담이 커 거절했다. 방송을 보니 요리사들의 땀방울과 진정성을 묵직하게 담아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가슴속에서 요리사로서 피가 끓었다. 설령 초반에 떨어지더라도 내 요리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다면 후회 없겠다는 생각에 도전을 결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떠올린다면. 

    “카메라가 돌아가고 제한 시간이 압박해 오니 손이 무시무시하게 떨리더라.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평소 친형제처럼 지내는 샘킴 셰프와의 일대일 대결이었다.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된 상황이 괴로웠지만, 누가 이기든 깨끗하게 인정하고 응원하기로 하고 치열하게 승부를 겨뤘다. 덕분에 방송 이후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

    본인의 요리 내공이 가장 잘 드러난 미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귀를 다룬 미션이다. 아귀는 살이 흐물흐물하고 뼈가 억세 다루기 까다롭지만, 오랫동안 일식을 해온 요리사로서 장기를 보여줄 기회였다. 정교한 손질부터 맛을 극대화하는 조리까지 내 요리 체력의 진면목을 가감 없이 보여준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가정에서 생선 요리를 할 때 비린내를 잡는 비법을 알려줄 수 있나. 

    “절대 법칙은 ‘처음부터 신선한 생선을 고르는 것’이다. 선도가 떨어진 생선은 양념을 부어도 비린내가 안 잡힌다. 기술적으로는 조리 전 생선 토막을 뜨거운 물에 아주 살짝 데쳐 찬물에 피와 불순물을 씻어내면 국물이 깔끔해진다. 다만 튀김 요리를 할 때는 생물 상태 그대로 튀겨야 한다. 데쳐서 사용하면 살이 부서진다.”

    현장 취재를 나가보면 자영업자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선배로서 외식업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할 것이 있나. 

    “요리를 잘하는 것과 장사를 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맛은 기본이고 가격경쟁력, 서비스, 직원 관리 등 복합적 요소를 모두 잘 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위험한 태도는 ‘내 음식이 제일 맛있다’며 귀를 닫는 오만함이다. 장사가 안될 때는 잘되는 집을 찾아가 이유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주방의 법칙

    서울과 제주에서 매장 4곳을 운영한다. 방송 스케줄로 바쁜데 본업 관리는 어떻게 하나. 

    “삶의 최우선순위는 언제나 매장 주방이다. 방송은 본업이 있기에 찾아온 보너스일 뿐이다. 방송 때문에 매장을 소홀히 하는 순간 요리사로서의 생명은 끝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매일 주방을 체크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본인이 설정한 ‘좋은 요리사’의 기준은 뭔가. 

    “젊은 시절엔 화려한 기술이 최고인 줄 알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깨달은 요리의 본질은 ‘손님을 향한 마음’에 있다. 아무리 비싼 재료를 써도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면 좋은 음식이 아니다. 손님이 얼마나 행복해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갖춘 사람이 위대한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스타 셰프를 꿈꾸는 예비 요리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요리사는 타인에게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과정은 눈물겹도록 혹독하다. 그때마다 나는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 남이 나보다 앞서갈 때 시기하기보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먼저 해왔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타인을 부러워할 시간에 내 부족함을 채우며 묵묵히 하루치의 노력을 쌓아나가라. 성실하게 쌓아 올린 끈기는 언젠가 반드시 찬란한 결과로 보답할 것이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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