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B-2, 벙커버스터 투하… 수뇌부 폭사(爆死) 핵, 미사일, 통신, 지도역량까지 ‘참수’

對北 ‘참수작전’ 시나리오

  • 김영림 | 군사 칼럼니스트 milhoon@daum.net

B-2, 벙커버스터 투하… 수뇌부 폭사(爆死) 핵, 미사일, 통신, 지도역량까지 ‘참수’

1/3
  • 한국군과 미군이 3월 7일 키리졸브(KR)ㆍ독수리(FE) 연합훈련을 개시했다. 지휘소 훈련(CPX)인 키리졸브 연습은 3월 18일 종료되고 실기동 훈련(FTX)인 독수리 연습은 4월 말까지 계속된다. 이번 연합훈련의 특징은 새로운 ‘작전계획 5015’가 적용된다는 것. 작계 5015는 북한의 공격 징후가 포착되면 북한 수뇌부와 핵·미사일 등 주요 시설을 선제적으로 타격해 도발 능력과 의지를 원천 차단하는 공세적 작전 개념이다.
  • 김정은은 “적들이 ‘참수작전’과 ‘체제붕괴’ 같은 마지막 도발에 매달린다”면서 “이제는 적들에 대한 군사적 대응 방식을 선제공격 방식으로 모두 전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3월 4일 노동신문은 “주한미군 기지는 물론 미국 본토까지 묵사발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한국인이 인질로 악용될 소지가 사라진 가운데 군사적 해결 방안은 북한 핵 폐기와 관련한 다양한 옵션 중 하나다. 참수작전의 결과가 어떤 양상일지 장담할 수 없다. 필자가 전개해본 시나리오 또한 다양한 가정을 하나로 엮은 것일 뿐이다.

D데이 +1일 : 그날 이후

4차 핵실험 이래 나날이 심화한 북한의 선제 핵 공격 협박과 그에 대응한 유엔 제재 강화, 한미 연합군의 ‘확장 억지력’에 근거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교차하는 가운데 안보 위기는 고질병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결국 예전처럼 이러다 말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래도 설마?’ 하는 불안을 누르고 ‘평범한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TV를 켜자 모든 채널이 똑같은 뉴스를 반복해 내보내고 있었다. 앵커의 가슴 아래로 보이는 자막이 숨 가쁘게 바뀌었다. ‘북한 급변사태’ ‘김정은 및 북한 수뇌부 사망, 임시정부 수립 발표’ ‘한미 연합군, 대량 살상병기 통제 및 치안 유지 위해 북진 개시’ ‘유엔 안보리 긴급 소집’….

이어 시민들의 동요 자제, 그리고 정부 통제에 협력을 구하는 대통령의 긴급 담화문이 발표됐다. 어안이 벙벙한 시민들은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봤다. 수백 대의 군용기, 헬리콥터가 북쪽을 향해 끝도 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일부 시민은 직감했다. 곤히 잠든 어젯밤이 북핵 위기의 절정이라 할 ‘한반도의 가장 긴 밤’이었다는 것을.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한미 양국의 결단 아래 북핵 위기의 핵심 요인인 김정은 및 북한 수뇌부에 대한 ‘참수작전’이 결행된 결과였다.

시곗바늘을 앞으로 되돌려보자.





D데이 -1개월 : 단서 확보

4차 핵실험 2개월 만에 발효된 유엔 대북 제재 이래 한 달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제재는 북한의 민간 경제뿐만 아니라 김정은과 북한 수뇌부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한 통치자금까지 옥죄었다. 한미 연합군은 같은 시기 진행된 키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에 한국군 30만 명과 미군 1만5000명 이상을 투입해 과거의 팀스피리트 훈련에 육박하는 대규모 무력시위로 북한을 압박했다.

권력 내부의 모반

북한은 이에 맞서 단·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 대북 제재 및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선제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했다. 한국 정부는 평양의 협박에 맞서 “비핵 국가인 대한민국에 대해 선제 핵 공격을 하면 북한도 참혹한 결과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북한 지도부를 ‘전쟁범죄자’로서 영원히 추적해 단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를 ‘반(反)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했고, 이에 북한은 ‘공화국과 최고존엄을 인정하지 않는 유엔을 짓부숴버리겠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렇듯 긴장이 고조하는 와중에 대북 제재의 가시적 성과가 이어졌다. 제재로 인해 ‘외화벌이’가 불가능해지자 김정은 정권 통치자금의 주요 조달책인 북한의 주요 해외공관에서 ‘책임 추궁 및 숙청’을 피하려는 공관원이 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정은의 노선에 따르지 않는 북한 내 고위층의 메신저 노릇을 했다. 이들이 전달한 정보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김정은의 군사적 모험주의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도층이 계속 숙청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주민에 대한 당국의 통제력도 날로 약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내 일부 지도층이 ‘김정은과 그의 충성그룹만 사라지면 만사 해결’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며, 외부세력의 협조를 구한다.’

망명자들이 반김정은 파벌을 대신해 가져온 정보 중에는 김정은과 추종세력의 주요 동선(動線) 및 은신처,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보유 현황과 은닉 장소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도 있었다. 한미 정보당국이 목 놓아 찾던 중요 정보였으며 비상시에 결행할 ‘참수작전’에 필요한 결정적 단서였다. 다만 이 ‘결정적 단서’가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인지, 한미 정보 당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교차검증하지 않으면 안 됐고 여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D데이 -2일 : 결심

한미연합훈련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평양은 핵 공격 협박이 협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KN-08의 기습적인 시험발사를 감행했으며, 단·중거리 탄도탄미사일을 탑재한 이동식 발사대들을 언제라도 쏠 듯이 기립시켰다 도로 수납하고 이동하는 식으로 한미 군 당국을 긴장시켰다.

한편으로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화전(和戰) 양면 전술 및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일환으로 비밀리에 미국과 단독 접촉을 시도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및 상호 불가침조약(평화협정)’을 조건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추가 확보를 ‘동결’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백악관 내 일부 협상파는 “임기 말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차기 정권에 부담이 된다”면서 북한이 내건 조건을 일부 수정해 받아들일 것을 대통령에게 종용했고, 강경파들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행위는 동맹에 대한 배신이며, 극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이익 전체를 포기하는 행위”라며 강경하게 반발했다. 협상파 안에서도 “번번이 약속을 어긴 북한의 전례를 감안할 때 국제기구의 전면적 사찰 및 핵무기의 ‘불가역적’인 폐기를 확인하기 전까지 평화협정은 불가하다는 반론이 일었다. 그러던 와중에 동해에서 벌어진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이 모든 것을 뒤바꿨다.

교전 상황 돌입

백악관에서 격론이 벌어지던 때, 북한 마양도 신포 잠수함기지로부터 200여㎞ 떨어진 심해에서 유엔 대북 제재 이래 북한 잠수함기지 주변에 매복해 동향을 감시하던 한국 해군 214급 잠수함 SS-72 손원일함이 타격 목표를 향해 어뢰를 조준하고 있었다. 타깃은 북한 핵전력의 ‘비장의 카드’라고 할 만한 ‘고래’급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

신포 주변 해역에서 시운전을 반복하던 이 잠수함이 동해로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손원일함의 함장과 승조원들은 긴장했다. 선제 핵 공격을 공언하던 북한의 행태를 생각하면 단순한 시험항해가 아닌 ‘실전 투입’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손원일함은 가능한 한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미행했지만, 수중 항속거리에 한계가 있는 재래식인 터라 배터리 충전을 위해 추적을 포기할지 작전을 속행할지 기로에 섰다. 손원일함은 다른 재래식 잠수함과 달리 연료전지를 이용해 2주 이상 잠항할 능력을 갖췄지만, 연료전지는 그간의 매복과정에서 거의 다 소모된 상황이었다. 함장은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추적을 포기하면 북한 잠수함은 냉전 당시 ‘잠수함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탐지가 힘든 동해 아래 깊숙이 사라져 버릴 터.

손원일함은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각오하고 북한 잠수함을 향해 경고음파를 발신했다. 그러고는 좀 더 접근해 수중전화로 ‘정선(停船) 및 부상(浮上)’을 요구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 잠수함으로부터의 대답은 ‘항전 의사’를 뜻하는 어뢰 장전음(音)뿐이었다. 결국 손원일함의 어뢰가 간발의 차로 먼저 발사됐다.

북한 잠수함이 격침당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또 하나의 눈이 있었다.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154발과 최정예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을 싣고 북한 주변 해역을 초계하던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 핵추진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 SSGN-727 ‘미시간’이 근처에서 상황을 목격하고 본국에 타전하자 백악관은 발칵 뒤집혔다. 바닷속에서 교전이 발생한 상황에서 다른 길을 택할 순 없었다. 전략무기가 수장(水葬)된 상황을 북한 지도부가 확인하기까지는 최장 3일이 걸리지 않을 것이며, 이를 평양이 확인한다면 핵무기를 포함한 전면도발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를 막으려면 ‘선수 필승’만이 정답이었다.

한국 대통령은 마침내 ‘결심’을 했다. 한국 정부는 백악관을 향해 북한의 공격을 막기 위한 ‘참수작전’을 요청했고, 다행히도 참수작전을 위한 중요 정보 확보 및 필요한 군사적 준비는 모두 갖춰진 상황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로 연결된 전화를 집어들었다. 결단의 순간이었다.


D데이 한반도의 가장 긴 밤

이날 김정은과 북한 수뇌부는 오랜만에 화색이 만면했다. 자신들의 협상요구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일단 검토하겠다’는 회신이 도착함과 동시에 한반도에 전개된 7함대 소속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 전단과 미국 해병대 상륙전단이 전날 부산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는 뉴스가 CNN에서 흘러나왔다. 이날 오후 김정은은 오랜만에 지하 200m에 구축한 지휘벙커 ‘철봉각’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연결된 ‘501호 관사’에서 노동당과 군의 주요 간부를 소집해 연회를 열기로 했다.

만일을 위해 출동시킨 고래급 잠수함에도 귀환을 명했다. 그런데 수시간 후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출동시킨 잠수함이 정기적인 연락시간이 됐는데도 응답이 없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권부의 일부 인사들이 병을 핑계로 연회장에 나타나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 그 중엔 맹목적 충성심으로 체제를 결사옹위한다고 알려진 노동당 조직지도부 구성원도 있었다. 시곗바늘은 자정을 향해 달려갔다.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같은 시각. 501호 관사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에는 국군 707부대와 미군의 델타포스 및 한미 공군의 CCT(폭격 유도반) 대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가 매복해 상황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미 정부의 참수작전 결심 직후 이들은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 때 파키스탄군의 방공망을 돌파하고 수도까지 잠입하는 데 성공한 바 있는 160 특수항공전 연대 소속 MH-60 페이브호크 스텔스 헬리콥터에 분승해 평양 근교에 잠입했다. 북한 내부 협조자들의 도움을 받은 이들 특수부대 중 다른 한 팀은 북한군의 전시 지휘통신을 전담하는 지하 광케이블 중계소에 잠입해 30분 전 이를 파괴했다.


머리 잘린 뱀의 몸통    

501호 관사 주변에 매복한 이들은 협력자들이 준 정보에 따라 김정은과 주요 간부가 집결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청와대와 백악관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송했다. 마침내 작전 결행 시각. 평양 상공에 진입한 B-2 스텔스 폭격기가 고도 1만 5000m 상공에서 중량 14t의 초대형 벙커버스터 GBU-57, 일명 ‘MOP’ 2발을 투하했다. 한발은 501호 관사 지붕을 정확히 꿰뚫고 지하 150m까지 파고들어 폭발해 암반을 부수고, 다른 한발은 철봉각 전체를 붕괴시켰다.

B-2는 평양뿐만 아니라 영변 핵 시설과 마양도 신포 잠수함기지 상공에서도 한미 연합 특수부대의 폭격 유도를 받아가며 핵탄두 및 탄도탄 저장시설에 MOP을 투하했다. 북한군 탄도미사일을 총괄하는 ‘조선인민군 전략로켓군 사령부’도 어김없이 MOP 세례를 받았다. 첫 공격과 거의 같은 시각, 수 초의 차이를 두고 ‘제2파’ 공격이 북한 전역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작전 1시간 전 한반도 주변 수역에 매복하던 SSGN-727 미시간을 비롯한 4척의 핵추진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은 수직 발사관을 일제히 개방해 합계 600여 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비슷한 시각, 한국군 유도탄 사령부 휘하의 ‘현무-3’ 순항미사일 수백 발이 북한을 향해 발사됐고, 이 미사일들은 각각의 목표물에 명중했다. 미사일 1000여 발이 타격한 지역은 주요 지휘통신 시설과 공군기지, 방공 미사일기지였다.

이 공격에는 고성능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한 비핵(非核) 전자기 펄스 탄이 통상적인 탄두와 함께 대량으로 사용돼 콘크리트 벙커 아래 은폐된 북한군 전자통신 시설까지 마비시켰다. B-2 폭격기가 핵무기의 발사 명령권자인 주요 지휘부를 ‘참수’하는 것과 동시에 이뤄진 순항미사일 공격은 머리가 잘린 채 꿈틀거리는 뱀의 나머지 몸통마저 짓이기기 위함이었다.

‘제2파’에 의해 지휘·통신·방공망이 갈기갈기 찢긴 틈을 타 한미 연합 공군에 의한 ‘제3파’ 공격이 개시됐다. 대구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F-15K 전투기들은 이륙하자마자 각자 2발씩 탑재한 사거리 500㎞의 ‘타우러스’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휴전선의 갱도포대와 무수단리 및 동창리의 고정식 탄도미사일 기지를 타격했다.

불면의 밤은 끝났다

이어 주한미군 7공군의 F-16CJ와 합류해 휴전선을 돌파, 그간 정찰위성이 수집해온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들의 은닉 지점으로 날아가 SDB 유도관통폭탄을 투하했다. 미국이 가장 껄끄러워하던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무수단 미사일의 이동식 발사대는 한 발 앞서 출격한 스텔스 전폭기 F-22 랩터가 처리하고 있었다.

한편 이 ‘제3파’ 공격에선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김씨 왕조의 주요 상징에 대한 ‘전략공격’도 감행됐다. 공군 F-15K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라가 안치된 금수산 문화궁전과 김일성·김정일 동상, 김정은이 군사 퍼레이드를 사열하던 인민문화궁전에도 슬램-ER 공대지 미사일을 명중시켰다. 조준 및 명중 순간의 영상은 미사일의 내장 카메라를 통해 녹화됐다. 이 영상은 동해상에서 비행 중인 미국의 전자전기 EC-130J ‘코만도 솔로’에 그대로 전송됐다. 코만도 솔로는 참수작전 성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다.

작전 개시 30분 뒤, 501호 관사와 철봉각 주변 폐허를 수색하던 한미 연합 특수부대로부터 북한 수뇌부의 ‘전멸’ 확인 보고가 올라왔다. 이 시간이 흐르도록 북한 측으로부터 어떠한 반격도 없다는 것은 북한의 군사 지도 역량이 사실상 ‘참수’됐다는 증거였다. 한미 연합 특수부대는 호위총국의 생존 병력이 접근하기 전 잔해 속에 널브러진 북한군 수뇌부의 시신들을 촬영해 한미 연합사에 전송한 뒤 신속히 현장을 이탈했다.

동해 상공을 비행하는 코만도 솔로 전자전기는 이 영상을 예의 영상들과 함께 편집한 후 조선중앙방송의 TV, 라디오 주파수를 탈취해 북한 전역에 ‘자유북조선 임시정부’ 명의로 긴급 방송을 개시했다. 탈북자 출신 아나운서가 한미 연합사의 대북심리전단이 공동 조율해 만든 성명서를 읊기 시작했다. 이 방송은 앞으로 24시간 내내 북한 전역에 송출될 예정이었다.

핵 전쟁과 민족 공멸의 위기 속에 지새우던 기나긴 불면의 밤은 끝났다. 전시 태세는 이 시간을 기해 해제한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민생 피폐에도 군사적 모험주의로 일관하던 종파분자들은 처단됐다. 이제 모든 인민군 장병들은 기나긴 수고에서 해방돼 무기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것을 명령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70여 년에 걸친 사회주의 지상낙원 건설의 꿈은 종식됐다. 그리고 조선반도는 두 동강 나기 전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새로운 새벽을 맞이할 북·남조선 7600만 인민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이 방송은 휴전선 전역에 배치된 국군 심리전단의 대형 전광판과 확성기를 통해서도 북측을 향해 울려 퍼졌다. ‘제2파’ ‘제3파’ 공격으로 사단급 이상 지휘부와의 명령체계가 두절된 전방의 북한군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이를 듣고만 있었다. 그중에는 간신히 공습을 모면한 채 영원히 오지 않을 ‘장군님의 지시’만을 기다리던 이동식 탄도미사일 발사대 대원들도 있었다.

곧이어 국군 항공작전 사령부 1여단과 주한미군 제2전투항공여단, 75레인저 연대 병력을 실은 헬리콥터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 평양을 향해 날아갔다. 평양에서 저항에 나선 일부 대공포대는 헬기부대를 호위하는 아파치 공격헬기의 반격에 곧바로 제압됐다. 수 시간 뒤 국군 제6, 제7기계화 군단과 한미 연합사단의 전차들이 북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하 포병들은 만에 하나 있을 북한군 전연 포병군단의 반격에 대비해 북한군의 진지를 조준하고 있었다. 그사이 새벽이 오고 있었다.


에필로그

동이 틀 때까지 호위총국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잔존세력은 평양에 돌입한 한미 연합 공중강습부대와 신(新) 북한 지도부 예하 병력에 제압당했다. 임시정부 수립을 발표한 신(新) 지도부의 면면은 전날 밤 김정은이 주최한 연회에 나타나지 않은 인물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D데이 하루 전 일본으로 향하던 로널드 레이건 항모전단과 해병상륙전단은 규슈 북쪽 간몬해협 근처에서 침로를 꺾은 후 이튿날 동해를 크게 우회해 북한으로 향했다. 이들은 동해상에서 훈련하던 한국 해군 상륙함대와 합류 후 북중 국경에 인접한 청진항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기존의 ‘작계 5027’의 상륙 목표이던 원산 대신 청진에 상륙한 것은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기습의 목적과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영내에 진입해 동해의 항만을 확보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통일의 아침

D데이 이틀 전 동중국해에서 긴급 북상한 존 스테니스 항모전단은 서해의 격렬비열도 이북으로 진출해 한미 연합공군의 공습에 합류하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중국의 군사행동을 견제했다. 한미 연합군의 북한 영내 진입은 대체로 순조로운 편이었지만, 위기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북조선 임시정부’가 전시체제 종료 및 무장해제를 선포했는데도 결사항전을 표명한 일부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가 10여 발의 단·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한국과 일본을 향해 발사했다.

그중 서울로 향하던 스커드 미사일 수발은 주한미군 제35방공여단이, 일본을 향하던 노동미사일 또한 일본 해상자위대와 미군 7함대의 이지스함이 공동요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사거리가 150㎞ 이하인 KN-02 ‘독사’ 미사일과 ‘주체 100’ 300밀리 로켓포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이들은 각각 평택 주한미군 기지와 계룡대에 착탄해 수백 명의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특히 KN-02에는 화학탄두가 실려 있어 피해가 컸다.

한반도의 가장 긴 밤은 이렇게 끝났으나 새벽이 얼마나 길지는 알 수 없었다. 북한의 신지도부는 협조적이었으나 그 대가로 상당한 ‘권리’를 요구할 것이 불 보듯 했다. 그들 중에는 유엔 인권위가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한 인물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남은 북한군의 무장해제 및 치안 유지에는 그들의 협조가 필요했기에 한미 당국에는 계륵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북한에는 핵무기 외에도 방대한 양의 생화학 무기와 재래식 병기가 산재하고, 이를 전량 회수·폐기하는 데는 또 한 번 지난한 세월과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선군정치로 피폐해진 북한 민생의 회복, 대규모 실업자로 전락할 북한군 병사의 재사회화는 더욱 큰 과제였다. 통일의 아침은 기나긴 새벽 끝에서야 비로소 도래할 미래였다.





1/3
김영림 | 군사 칼럼니스트 milhoon@daum.net
목록 닫기

B-2, 벙커버스터 투하… 수뇌부 폭사(爆死) 핵, 미사일, 통신, 지도역량까지 ‘참수’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