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대담

“진영싸움 끝내려 만든 영화” 〈이준익〉 “가해자 양심에 울림 줬으면” 〈조정래〉

‘동주’ 이준익 감독, ‘귀향’ 조정래 감독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입력2016-04-11 1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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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 반일, 항일…우린 ‘식민지 프레임’에 갇혔다
    • 일본군 학살 장면은 ‘현재성’ 반영한 것
    • 우리 과거사를 ‘세계사’에 편입시켜야
    • 무릎 한 번 꿇는 게 그리 어렵나
    100만 명과 300만 명(3월 14일 현재). 이준익(57) 감독의 영화 ‘동주’와 조정래(43) 감독의 ‘귀향’을 찾은 관객 수다.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로서는 ‘암살’(1200만 명) 이후 최다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무겁고 아픈 역사를 그린 영화에 관객들이 끌린 이유가 뭘까.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동성 친구의 우정을 그렸다. ‘동주’는 평생지기이자 라이벌인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청춘을, ‘귀향’은 소녀 정민과 함께 위안부로 끌려온 영희의 엇갈린 운명을 담았다. 또한 각각 5억 원(‘동주’), 20여억 원(‘귀향’)을 들인 저예산 영화이며 엔딩 크레디트가 특별하다. ‘동주’엔 윤동주와 송몽규의 연보가, ‘귀향’엔 영화 제작을 후원한 3만2000명의 이름이 올라간다. 둘 다 2월에 개봉(‘동주’ 17일, ‘귀향’ 24일)했고, 개봉 초기에 상영관을 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준익 감독과 조정래 감독은 서로의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3월 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 조 감독은 먼저 와 있던 이 감독을 보자 꾸벅 인사를 했다. 잠시 침묵. 이 감독은 조 감독의 외투에 꽂힌 괴불노리개(‘귀향’에서 액운을 막아주는 중요 소품) 배지를 보며 신기해했다. 조 감독이 빙긋 웃으며 배지를 빼더니 이 감독에게 선물했다. 



    소녀들이 부르던 ‘가시리’ 

    기자 두 분이 아는 사이인지….

    이준익 2013년 터키 이스탄불 영화제(한국과 터키의 영화 교류 첫 시도인 ‘터키-한국 영화주간’)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조 감독이 공연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정래 존경하는 이 감독님을 그때 처음 뵙고 소주 한잔도 했다. ‘귀향’ 제작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격려해주셨다.

    이준익 아, 내가 그랬나?(웃음).

    기자 인터뷰 섭외할 때 이 감독이 ‘조정래라면 무조건 해야지’라고 했다.

    내가 ‘왕의 남자’ 감독인지라 광대들 풍물에 대해 애정이 많다. 터키 극장에서 한복을 입고 풍물 공연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당시 조 감독은 ‘두레소리’ 감독으로 출연 배우인 풍물패, 합창단원들과 판소리 공연을 선보였다). 조 감독은 10분만 만나면 그 매력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냥 된장이다, 된장.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면서 일제강점기 자료를 검토한 적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도 생각해봤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못 했는데, 조정래 감독이 해내서 정말 다행이다.

    기자 서로의 영화를 봤나. 먼저 ‘동주’ 감상평부터. 

    조정래 진짜 많이 울었다. 이 감독님께 너무 감사하다. 맨 마지막에 교차 편집되는 장면에서는 정말 미치겠더라.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도 울고, 극장에서 나와 차에 타서도 10분쯤 흐느꼈다.

    기자 영화가 슬프기는 하지만, 흐느낄 정도까지는….

    조정래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영화를 보다 나약한 내가 부끄러웠고, (위안부) 할머니들 생각도 많이 났다. 특히 윤동주의 마지막 대사에서 응축된 감정이 터져나왔다.

    이준익 (턱을 쓰다듬으며) 미안해서 어쩌나(웃음).

    조정래 ‘귀향’을 본 분들이 “고맙다”고 하시던데, 이제 그 ‘고마움’의 감정이 어떤 건지 알겠다.

    기자 이 감독이 본 ‘귀향’은 어땠나.

    이준익 위안부라는 소재의 성격상 선정주의로 갈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초반부터 ‘터졌다’. 소녀들이 물가에 앉아 햇볕을 쬐며 ‘가시리’를 부르는 장면에서 눈물이….

    조정래 그 대목에서 운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이준익 이 땅의 공동체들을 수천, 수만 년 동안 옥죄어온 질곡의 세월이 ‘가시리’라는 고려가요의 선율로 다가오더라.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곧 지워지지만 소리는 한번 들어오면 세포에 저장되지 않나. 마지막에 일본군이 사람 죽이는 장면을 보고 ‘감독이 관객들에게 감정을 강요한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이 장면엔 ‘현재성’을 반영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겼다고 본다.

    조정래 (끄덕이며) 인터뷰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리고 있다.

    기자 영화가 현재의 상황을 그렸다?

    이준익 역사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도 지배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가 최대 피해자인데…”

    이준익 그래서 ‘동주’에서 다카마쓰 고지(高松孝治) 릿쿄(入敎)대학 교수를 부각했다. 실존 인물로 어려운 학생들의 생활을 도와주던 교수인데, 요시찰 인물로 감시받다 끝내 굶어 죽었다. 일본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다카마쓰 교수의 ‘양심’에 동화하는 관점이 생길 수 있다. 군국주의가 미운 거지, 일본 사람들이 미운 게 아니잖은가. 

    기자 얘기가 결국 ‘양심’으로 돌아왔다.

    이준익 아우슈비츠(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는 유대인의 민족사인데, 세계사로 읽힌다. 유대인들이 그걸 세계사로 끌어올린 거다. 아우슈비츠가 조명되는 건 유대인이 세계인의 양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로 다가갔다. ‘귀향’은 애국주의나 반일주의가 아니라 양심에 대해 얘기한 거다. 우리도 폭력의 역사를 세계사로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의 원폭 피해 사실을 세계사로 편입시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뭔가. 피해자 조사에 더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해자 조사에 나서야 한다.

    기자 피해자 실태조사도 제대로 안 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준익 그간 피해자 조사를 해서 얻은 게 뭔가. 일본에도 국가기록원 같은 데가 있지 않겠나. 일본이 자료를 안 내놓는다면 정교하게 증거를 제시해 추궁해야 할 것 아닌가.

    기자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을 찾아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런 가해자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조정래 일본에서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하는 지식인들이 활동비가 없어 일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귀향’을 보면 수치스러워 저항감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동주’를 보면서 ‘양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일본인의 양심을 바탕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이준익 중국이 곧 난징 대학살(중일전쟁 때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저지른 대규모 학살), 731부대(제2차 세계대전 때 중국에 주둔한 일본 세균전 부대), 위안부 이 세 가지를 묶어서 들고 나올 거다. 그렇게 되면 중국인들이 유대인 이상으로 주목받는 주체가 될 공산이 크다. 난징 대학살을 다룬 ‘난징 난징’이란 중국 영화가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이걸 유튜브에 각국 언어로 번역해 올려놨다. 우리가 일본에 당한 것을 ‘세계사’에 싣지 못하면 우리는 밀리게 돼 있다. 우리가 더 큰 피해를 봤는데 중국인이 최대 피해자로 떠오를 거다.

    조정래 중국이 과거사 문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해 등재됐다.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유네스코는 지난 10월, 중국이 제출한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문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중국이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자료는 등재하지 않았다).

    이준익 위안부든 731부대든 우리가 제1의 피해자 아닌가. 우리가 제일 많이 당했는데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좀 창피한 일 아닌가. ‘동주’는 그래서 만든 것이다. 윤동주 시 읽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추상적으로 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다. 일본인들이 윤동주를 기념비까지 세우며 존경하는데, 굳이 우리가 윤동주에 대한 증거를 더 댈 필요가 있나. 윤동주가 세계인의 양심으로서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흔적을 남겨줘 너무나 고맙다.

    일본의 빌리 브란트

    기자 ‘귀향’이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게 된 계기는.

    조정래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증언집에 따르면,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 집에 돌아와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셨더라고 한다. 영화는 여러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최소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위안부를 그렸다.

    기자 ‘귀향’을 본 국내 일부 위안부 연구 학자들은 “영화를 보는 게 불편했다”고 하더라. 학계에서 주장하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인신매매, 취업사기 등을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일본군이 총칼을 들고 와서 끌고 가는 것으로 묘사됐다.

    이준익 위안부는 한 사람이 아닌 복수(複數) 개념이다. 윤동주 같은 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영화다.

    조정래 증언집엔 ‘일본군이 집으로 찾아와 데리고 갔다’는 내용이 분명히 나온다.

    기자 몇몇 위안부 연구 학자는 “그 증언집은 기록자에 의해 재해석된 것이라 글자 그대로 파악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할머니들의 기억이 재편집됐을 가능성은 없나.

    조정래 할머니들에게서 직접 증언을 들었다. 일본의 한 우익신문 여기자가 시사회에 와서 “이 영화를 만들어줘 여성으로서 고맙다”고 하더라. ‘귀향’이 일본 사회에서 울림을 주길 기대한다.

    기자 일본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준익 그래도 해봐야 한다.

    조정래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을 가리켜 ‘전쟁에 상처를 준 나라가 유럽의 중심이 된 순간’이라고 했다.

    이준익 일본도 그럴 수 있다. 사죄하는 것이 왜 정치적인 행위인가. 소녀상, 독립기념관 앞에서 무릎 한 번 꿇으면 끝인데 왜 그걸 안 하나.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꾸만 진영 논리에 빠져든다. ‘귀향’과 ‘동주’는 제발 이것 좀 벗어나자고 만든 영화다.

    기자 앞으로도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 계획인가.

    조정래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없다.

    이준익 영업비밀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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