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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진영싸움 끝내려 만든 영화” 〈이준익〉 “가해자 양심에 울림 줬으면” 〈조정래〉

‘동주’ 이준익 감독, ‘귀향’ 조정래 감독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진영싸움 끝내려 만든 영화” 〈이준익〉 “가해자 양심에 울림 줬으면”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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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친일, 반일, 항일…우린 ‘식민지 프레임’에 갇혔다
  • ● 일본군 학살 장면은 ‘현재성’ 반영한 것
  • ● 우리 과거사를 ‘세계사’에 편입시켜야
  • ● 무릎 한 번 꿇는 게 그리 어렵나
100만 명과 300만 명(3월 14일 현재). 이준익(57) 감독의 영화 ‘동주’와 조정래(43) 감독의 ‘귀향’을 찾은 관객 수다.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로서는 ‘암살’(1200만 명) 이후 최다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무겁고 아픈 역사를 그린 영화에 관객들이 끌린 이유가 뭘까.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동성 친구의 우정을 그렸다. ‘동주’는 평생지기이자 라이벌인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청춘을, ‘귀향’은 소녀 정민과 함께 위안부로 끌려온 영희의 엇갈린 운명을 담았다. 또한 각각 5억 원(‘동주’), 20여억 원(‘귀향’)을 들인 저예산 영화이며 엔딩 크레디트가 특별하다. ‘동주’엔 윤동주와 송몽규의 연보가, ‘귀향’엔 영화 제작을 후원한 3만2000명의 이름이 올라간다. 둘 다 2월에 개봉(‘동주’ 17일, ‘귀향’ 24일)했고, 개봉 초기에 상영관을 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준익 감독과 조정래 감독은 서로의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3월 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 조 감독은 먼저 와 있던 이 감독을 보자 꾸벅 인사를 했다. 잠시 침묵. 이 감독은 조 감독의 외투에 꽂힌 괴불노리개(‘귀향’에서 액운을 막아주는 중요 소품) 배지를 보며 신기해했다. 조 감독이 빙긋 웃으며 배지를 빼더니 이 감독에게 선물했다. 



소녀들이 부르던 ‘가시리’ 

기자 두 분이 아는 사이인지….



이준익 2013년 터키 이스탄불 영화제(한국과 터키의 영화 교류 첫 시도인 ‘터키-한국 영화주간’)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조 감독이 공연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정래 존경하는 이 감독님을 그때 처음 뵙고 소주 한잔도 했다. ‘귀향’ 제작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격려해주셨다.

이준익 아, 내가 그랬나?(웃음).

기자 인터뷰 섭외할 때 이 감독이 ‘조정래라면 무조건 해야지’라고 했다.

내가 ‘왕의 남자’ 감독인지라 광대들 풍물에 대해 애정이 많다. 터키 극장에서 한복을 입고 풍물 공연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당시 조 감독은 ‘두레소리’ 감독으로 출연 배우인 풍물패, 합창단원들과 판소리 공연을 선보였다). 조 감독은 10분만 만나면 그 매력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냥 된장이다, 된장.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면서 일제강점기 자료를 검토한 적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도 생각해봤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못 했는데, 조정래 감독이 해내서 정말 다행이다.

기자 서로의 영화를 봤나. 먼저 ‘동주’ 감상평부터. 

조정래 진짜 많이 울었다. 이 감독님께 너무 감사하다. 맨 마지막에 교차 편집되는 장면에서는 정말 미치겠더라.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도 울고, 극장에서 나와 차에 타서도 10분쯤 흐느꼈다.

기자 영화가 슬프기는 하지만, 흐느낄 정도까지는….

조정래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영화를 보다 나약한 내가 부끄러웠고, (위안부) 할머니들 생각도 많이 났다. 특히 윤동주의 마지막 대사에서 응축된 감정이 터져나왔다.

이준익 (턱을 쓰다듬으며) 미안해서 어쩌나(웃음).

조정래 ‘귀향’을 본 분들이 “고맙다”고 하시던데, 이제 그 ‘고마움’의 감정이 어떤 건지 알겠다.

기자 이 감독이 본 ‘귀향’은 어땠나.

이준익 위안부라는 소재의 성격상 선정주의로 갈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초반부터 ‘터졌다’. 소녀들이 물가에 앉아 햇볕을 쬐며 ‘가시리’를 부르는 장면에서 눈물이….

조정래 그 대목에서 운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이준익 이 땅의 공동체들을 수천, 수만 년 동안 옥죄어온 질곡의 세월이 ‘가시리’라는 고려가요의 선율로 다가오더라.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곧 지워지지만 소리는 한번 들어오면 세포에 저장되지 않나. 마지막에 일본군이 사람 죽이는 장면을 보고 ‘감독이 관객들에게 감정을 강요한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이 장면엔 ‘현재성’을 반영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겼다고 본다.

조정래 (끄덕이며) 인터뷰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리고 있다.

기자 영화가 현재의 상황을 그렸다?

이준익 역사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도 지배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以夷制夷 프레임’ 

기자 ‘귀향’은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비판이 한창일 때 개봉했다. 의도적으로 이 시기에 개봉했나. ‘동주’는 윤동주 서거일(1945년 2월 16일)에 맞춰 개봉한 걸로 안다.

조정래 광복 70년인 지난해 8·15 때 개봉하려 했는데 무산됐다. ‘귀향’은 무려 14년을 끌어온 프로젝트다. 개봉 시기를 마음대로 조율할 수 없었다. 영화 제작, 배급, 상영 모두가 기적이다. 다만 전 국민적인 열망이 ‘동주’와 ‘귀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기자 어떤 ‘열망’ 말인가.

조정래 과거사 문제를 풀어내려는 열망이 극장으로 향하는 동인(動因)이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란 게 있다. 두 영화는 그 ‘감정’의 지점을 건드렸다. 이 감독님의 작품 ‘왕의 남자’에서부터 ‘사도’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정서랄까, DNA가 흐르지 않나. 외국인들도 이런 영화를 보고 한국인이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이준익 신기하지만 외국인들도 직접적으로 느낀다고 하더라. 

조정래 그러고 보니 ‘귀향’을 보고 우는 미국인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는 게 미덕이라는데, ‘알 수 없는 슬픔이 파고들었다’고 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동주’와 ‘귀향’의 밑바닥에는 그런 (인류 보편의) 감정이 흐른다.

기자 두 작품은 개봉 초기에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이겨냈다. 

이준익 ‘숭고한 가치를 그린 영화’라는 이유로 대중에게 보라고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다만 폄하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만큼은 아름다운 일이다.  

기자 일제강점기를 그린 두 영화가 일본에 대한 분노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이준익 ‘귀향’도 ‘동주’도 상대국에 대한 분노를 그린 영화가 아니다. 애국보다 위대한 것이 ‘진실’이다. 두 영화 모두 근본적으로는 ‘양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가해자의 양심이 없으면 진실도 드러나지 못한다. 하물며 자동차 사고가 나도 보험회사 직원이 나와 가해자와 피해자의 책임이 2:8, 3:7이라고 진단하는데, 우리는 가해자에 대한 문책을 70년 동안 하지 못했다. 그저 식민지 프레임 안에만 갇혀 있다.

기자 식민지 프레임?

이준익 우리는 일본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식민지 정책) 안에 지난 100년 간 갇혀 있었다. 서로를 ‘친일’ ‘반일’ ‘항일’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편을 가르는 건, 일본인이 만들어놓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에 여전히 놀아나는 거다. 나도 쉰이 넘어서야 그걸 알게 됐다.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서 가해자의 부도덕성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각 ‘진영’으로 흩어진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걸 게을리했다.



“일본을 너무 모른다”

기자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일본에 집요하게 요구한 것이 ‘전쟁에 대한 책임’ 아닌가.

이준익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것은 정설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윤동주에게 생체실험을 시킨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 이런 게 책임을 묻는 거다. 독일은 지금도 전범자를 색출해 형을 선고하지 않나. 윤동주에게 생체실험을 지시한 사람은 책임을 추궁당하지도 않고 90세 넘게 살다 죽었다.

조정래 할머니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책임자 처벌’이다. 2월 말에 ‘나눔의집’에 갔는데, 그날 기자회견에서도 할머니들과 유족들은 “우리는 돈 필요 없다. 책임자 처벌과 일본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 있는 사죄가 필요하다”고들 하셨다.

이준익 우리는 일본에 대해 너무 모른다. 1만 엔(円)짜리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탈아론(脫亞論, 일본 내정의 문명화와 함께 대외적으로는 중국·조선과의 관계를 끊고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함께해야 하며 양국에 대한 교섭도 서양 제국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을 주장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다. 일본이 식민지 논리를 제시한 그를 정신적 지주로 떠받드는 한 전쟁의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양심’이 후쿠자와 유키치를 끌어내도록 해야 한다. 조 감독도 윤동주가 탈아론을 지적하는 장면에서 울컥하지 않았을까.

기자 관객들도 그 장면의 의미를 잘 읽어냈을까.

이준익 글쎄…. 얼마 전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 윤동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며 인터뷰를 제안하기에 “윤동주 시인을 죽인 가해자에 대한 내 발언을 명확하게 싣는 조건이라면 응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뒤 “안 하겠다”는 답이 왔다. 이게 일본의 현재다. 윤동주의 시를 미화해 자신들의 부끄러운 점을 감추려는 의도에 말려들 수 없다. 현재의 일본을 봐야 현상의 원인을 알 수 있다. ‘동주’에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란 대사를 넣은 것도 그래서다. 당시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나쁜 행동이었다면 그냥 인정하고 반성하면 된다. 반성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렵나.

조정래 ‘귀향’을 본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일본계 미국인)도 “일본인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본 일본인들이 “이런 역사를 몰랐다”고 전해왔다.

이준익 부끄러운 역사를 은폐하는 게 더 부끄러운 거다.

조정래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나눔의집에 계신 분들이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는 분위기가 예전보다 더 못하다”고 하신다.


“우리가 최대 피해자인데…”

이준익 그래서 ‘동주’에서 다카마쓰 고지(高松孝治) 릿쿄(入敎)대학 교수를 부각했다. 실존 인물로 어려운 학생들의 생활을 도와주던 교수인데, 요시찰 인물로 감시받다 끝내 굶어 죽었다. 일본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다카마쓰 교수의 ‘양심’에 동화하는 관점이 생길 수 있다. 군국주의가 미운 거지, 일본 사람들이 미운 게 아니잖은가. 

기자 얘기가 결국 ‘양심’으로 돌아왔다.

이준익 아우슈비츠(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는 유대인의 민족사인데, 세계사로 읽힌다. 유대인들이 그걸 세계사로 끌어올린 거다. 아우슈비츠가 조명되는 건 유대인이 세계인의 양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로 다가갔다. ‘귀향’은 애국주의나 반일주의가 아니라 양심에 대해 얘기한 거다. 우리도 폭력의 역사를 세계사로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의 원폭 피해 사실을 세계사로 편입시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뭔가. 피해자 조사에 더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해자 조사에 나서야 한다.

기자 피해자 실태조사도 제대로 안 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준익 그간 피해자 조사를 해서 얻은 게 뭔가. 일본에도 국가기록원 같은 데가 있지 않겠나. 일본이 자료를 안 내놓는다면 정교하게 증거를 제시해 추궁해야 할 것 아닌가.

기자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을 찾아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런 가해자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조정래 일본에서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하는 지식인들이 활동비가 없어 일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귀향’을 보면 수치스러워 저항감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동주’를 보면서 ‘양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일본인의 양심을 바탕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이준익 중국이 곧 난징 대학살(중일전쟁 때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저지른 대규모 학살), 731부대(제2차 세계대전 때 중국에 주둔한 일본 세균전 부대), 위안부 이 세 가지를 묶어서 들고 나올 거다. 그렇게 되면 중국인들이 유대인 이상으로 주목받는 주체가 될 공산이 크다. 난징 대학살을 다룬 ‘난징 난징’이란 중국 영화가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이걸 유튜브에 각국 언어로 번역해 올려놨다. 우리가 일본에 당한 것을 ‘세계사’에 싣지 못하면 우리는 밀리게 돼 있다. 우리가 더 큰 피해를 봤는데 중국인이 최대 피해자로 떠오를 거다.

조정래 중국이 과거사 문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해 등재됐다.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유네스코는 지난 10월, 중국이 제출한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문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중국이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자료는 등재하지 않았다).

이준익 위안부든 731부대든 우리가 제1의 피해자 아닌가. 우리가 제일 많이 당했는데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좀 창피한 일 아닌가. ‘동주’는 그래서 만든 것이다. 윤동주 시 읽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추상적으로 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다. 일본인들이 윤동주를 기념비까지 세우며 존경하는데, 굳이 우리가 윤동주에 대한 증거를 더 댈 필요가 있나. 윤동주가 세계인의 양심으로서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흔적을 남겨줘 너무나 고맙다.

일본의 빌리 브란트

기자 ‘귀향’이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게 된 계기는.

조정래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증언집에 따르면,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 집에 돌아와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셨더라고 한다. 영화는 여러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최소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위안부를 그렸다.

기자 ‘귀향’을 본 국내 일부 위안부 연구 학자들은 “영화를 보는 게 불편했다”고 하더라. 학계에서 주장하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인신매매, 취업사기 등을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일본군이 총칼을 들고 와서 끌고 가는 것으로 묘사됐다.

이준익 위안부는 한 사람이 아닌 복수(複數) 개념이다. 윤동주 같은 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영화다.

조정래 증언집엔 ‘일본군이 집으로 찾아와 데리고 갔다’는 내용이 분명히 나온다.

기자 몇몇 위안부 연구 학자는 “그 증언집은 기록자에 의해 재해석된 것이라 글자 그대로 파악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할머니들의 기억이 재편집됐을 가능성은 없나.

조정래 할머니들에게서 직접 증언을 들었다. 일본의 한 우익신문 여기자가 시사회에 와서 “이 영화를 만들어줘 여성으로서 고맙다”고 하더라. ‘귀향’이 일본 사회에서 울림을 주길 기대한다.

기자 일본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준익 그래도 해봐야 한다.

조정래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을 가리켜 ‘전쟁에 상처를 준 나라가 유럽의 중심이 된 순간’이라고 했다.

이준익 일본도 그럴 수 있다. 사죄하는 것이 왜 정치적인 행위인가. 소녀상, 독립기념관 앞에서 무릎 한 번 꿇으면 끝인데 왜 그걸 안 하나.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꾸만 진영 논리에 빠져든다. ‘귀향’과 ‘동주’는 제발 이것 좀 벗어나자고 만든 영화다.

기자 앞으로도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 계획인가.

조정래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없다.

이준익 영업비밀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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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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