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 방향은 ‘더 많이’ 아닌 ‘더 정확하게’
‘하위 70% 일괄 지급’, 단계적·차등적 체계로 바꿔야
‘소득인정액’ 산정 체계도 전면 손질 필요
기초연금 개편, 지역의 생활 현실과 결합할 때 실효성

우리나라 만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다. 사진은 2025년 12월 10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26년 마포구 노인일자리 박람회’. 뉴시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복지국가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이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기초연금을 저소득층에 더 후하게 지급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식 개편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그 해법은 어떠해야 할까.
누구에게, 어떤 원칙으로, 얼마나 줄 것인가
우리나라 노인 빈곤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특히 만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한 사회의 품격은 경제성장률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가장 약한 이들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특히 노동 능력을 상실한 노년층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공동체의 수준이 가늠된다. 그런 점에서 노인 빈곤은 단지 복지정책의 한 항목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과 사회적 연대가 얼마나 충실히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의 완충장치로 도입됐다. 국민연금만으로 충분한 노후 소득을 보장받기 어려운 노인, 특히 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실제로 기초연금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노인 가구의 현금 소득을 보완하고 최소한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줬다. 저소득 노인의 절대적 빈곤을 완화하는 역할도 했다. 따라서 기초연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어떻게 더 정교하고 공정하게 설계할 것인지다.
이제 기초연금을 둘러싼 쟁점은 ‘더 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진짜 쟁점은 ‘누구에게, 어떤 원칙으로, 얼마나 줄 것인가’다. 단순한 확대 논쟁을 넘어 제도의 목적과 구조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현재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지급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엔 이 기준이 일정한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엔 국민연금 수급자가 많지 않았고, 노인층 전반의 소득수준도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노인층 내부의 소득격차 상황도 훨씬 복잡해졌다. 극빈층 노인이 있는가 하면, 공적연금과 자산을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기초연금은 여전히 ‘소득 하위 70%’라는 큰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정말 절박한 빈곤 노인과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노인이 같은 제도 안에 함께 포함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제도의 본래 취지가 저소득 노인의 노후를 보호하는 데 있다면, 지금의 구조는 그 취지에서 조금씩 퇴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소득인정액’ 산정 방식도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기초연금 수급 여부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연금소득뿐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을 일정하게 환산한 소득인정액에 따라 결정된다. 취지는 종합적 경제력을 보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에선 각종 공제와 완화 규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실제 생활 형편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식상으로는 기준 이하로 계산되지만 실제로는 빈곤층이라고 보기 어려운 노인이 수급 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반대로 정말 어려운 노인은 같은 액수의 급여를 받더라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처럼 같은 제도 안에서 필요한 정도가 전혀 다른 이들에게 비슷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은 형평성과 효율성 모두에서 문제가 된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더 먼저, 더 후하게 지원
복지 측면에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 언제나 평등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한정된 재원 아래에서는 더 어려운 사람에게, 더 먼저, 더 후하게 지원하는 것이 실질적 평등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처럼 기초연금이 사실상 보편 급여에 가까운 현금 복지로 흘러가면, 정작 가장 절박한 노인에게 돌아가야 할 재원이 얇게 분산된다. 표면상 포괄성은 높아질 수 있어도 실질적인 정의는 되레 약화할 수 있다.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초고령사회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될 구조 변화다. 노인인구가 계속 늘고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기초연금 수급자 수와 총지출 규모는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급여 수준까지 계속 인상된다면 재정 부담은 더욱 빠르게 커질 것이다. 복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잃은 확대는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2025년 12월 9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사랑해밥차’ 무료 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시스
따라서 앞으로의 방향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여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넓게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더 집중하고 더 후하게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이 바로 하후상박이다. 가장 어려운 노인에겐 좀 더 실질적인 보호를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엔 지원 수준을 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노후보장 기본축, 기초연금은 2차 안전망
첫째, 현행 ‘소득 하위 70% 일괄 지급’ 구조를 단계적·차등적 지급 체계로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수급 여부만으로 선을 긋고 그 안에 들어오면 유사한 수준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노인의 소득과 자산 수준, 가구 구성, 생활 부담 등을 반영해 급여를 2단계 또는 3단계 이상으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가장 저소득층엔 지금보다 더 후하게 지원하고, 중간층은 현행 수준을 유지하거나 일부 조정하며, 상위 구간에 가까운 계층은 단계적으로 감액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야 제한된 재원으로도 가장 절박한 계층에 대한 보호 효과를 높일 수 있다.둘째, 소득인정액 산정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제도의 공정성은 결국 실제로 어려운 사람을 얼마나 정확히 가려내는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복잡한 공제와 완화 규정이 누적되면 형식은 남고 현실은 놓치게 된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실질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일부 자산 보유층이 제도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 사실상 제도 내부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수급자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제력에 부합하는 평가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야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유지될 수 있다.
셋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의 기본축이라면,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와 저소득 노인을 보완하는 2차 안전망이어야 한다. 앞으로는 국민연금 수급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 기초연금 지급 수준을 조정하거나, 소득·자산 기준을 더욱 엄밀히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국민연금 가입이 불안정했던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경력단절 여성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해선 기초연금을 더욱 후하게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두 제도의 기능을 분리하면서도 상호 보완성을 높일 수 있다.
넷째, 노인 빈곤을 단순히 현금 부족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노인 빈곤은 주거 불안, 의료비 부담, 돌봄 공백, 사회적 고립과 결합할 때 더 심각해진다. 따라서 기초연금 개편도 현금 급여 조정에 머물지 말고, 주거·의료·돌봄과 연계된 통합 지원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저소득 고령자에겐 기초연금을 더 후하게 지급하되, 공공임대주택 연계, 의료비 경감, 방문 건강관리,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결합하는 정책 패키지를 설계해야 한다.
다섯째,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노인 빈곤의 양상은 대도시와 농어촌,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각기 다르다. 중앙정부가 기초연금의 기본 틀과 재정 책임을 지더라도 지방정부는 지역 실태에 맞는 복지·돌봄·일자리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실제 복지 사각지대는 주민센터, 사회복지사, 사회복지기관, 시민사회가 함께 움직일 때 형식적 기준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위기 노인을 발견할 수 있다. 기초연금 개편도 결국 지역의 생활 현실과 결합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갖는다.
노인 빈곤은 결코 개인의 무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산업화 과정의 불완전한 사회보험 체계, 가족 부양에 의존해 온 복지 구조, 여성의 경력 단절, 비정규 노동과 영세 자영업 중심의 취약한 노후 준비가 복합적으로 누적된 결과가 오늘의 노인 빈곤이다. 따라서 기초연금 개편은 단순한 복지예산 조정이 아니라 한 세대가 겪은 구조적 불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보정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기초연금은 단순한 현금 급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의와 연대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제도다.
기초연금, 사회 정의와 연대 수준 보여주는 제도
결국 선택의 문제다. 모두에게 조금씩 더 줄 것인가, 아니면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먼저 더 후하게 줄 것인가. 겉으로는 전자가 더 포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복지 재원을 넓게 흩어놓으면 가장 절박한 이에게 충분한 도움이 가지 못한다. 반대로 하후상박 원칙은 냉정한 배제가 아니라 실질적 연대의 방식이다. 더 어려운 이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야말로 공동체가 약한 고리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방법이다.한국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이제는 기초연금을 둘러싼 감정적 찬반이나 단순한 확대 논쟁을 넘어 목적에 충실한 구조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노인의 삶을 지키는 일과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은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설계된 제도는 두 목표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
필요한 곳은 더 후하게, 불필요한 누수는 줄이면서 노후의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기초연금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기초연금은 예산 항목이 아니라 한 사회가 늙음과 가난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윤리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더 공정하게, 더 후하게’라는 원칙이다. 기초연금 개편은 바로 그 원칙 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 1964년 출생
● 전남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법학박사)
●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박사 과정 수료
●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상임이사
● 前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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