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의 나이는 200살
실증주의의 그림자, 누구의 역사인가
역사는 어떻게 현재화하는가, 스토리텔링의 시대
인문학의 힘, 사유를 교란하는 것

태지호 국립경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은 알고리즘에 종속되기보다는 ‘사유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역사학은 생각보다 젊은 학문이다. 과거를 기록하는 행위는 인류와 함께 존재했지만, 역사학이 대학의 독립된 학문 범주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가 사료에 근거한 실증주의 역사학을 정립한 이후에야 비로소 역사는 ‘과학’의 지위를 얻었다.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나이는 200살
태지호 국립경국대 교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실증주의가 기댄 ‘문헌’이란 결국 누가 남긴 것인가. 글을 아는 자, 권력을 가진 자, 승자의 기록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전체 인류의 삶 중 극히 일부만을 담아낸 조각들이 아닌가.태 교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미시사(微視史)와 문화기억론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왔다. 베트남전쟁, 노근리 사건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의 시선은 늘 국가나 민족이라는 추상적 주체가 아닌, 그 사건을 직접 살아낸 개인의 기억을 향해 있었다. 최근에는 사라져 가는 동해안 어촌을 발로 누비며 연로한 어민들의 구술을 채집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문학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역사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성립한 지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그렇습니다. 물론 역사적 기록이란 것 자체는 훨씬 오래됐죠. 중국의 ‘사기(史記)’도 있고, 유럽에서는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그것이 대학에서 독자적 학문 범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랑케 이후입니다. 그전에는 학문이 오늘날처럼 세분화되지 않았어요. 서구의 경우 가장 중요한 학문은 신학이었고, 수도사들이 수사학, 성경 해석, 수학 등을 함께 공부했죠.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사이에 분과 학문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도 역사는 학문적 위상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개인적 차원의 글쓰기이거나, 특정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 기록 수준이었죠. 체계적으로 후대에 전달하고 국가 비전을 수립하는 공적 도구는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역사학이 ‘과학’의 지위를 얻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계몽주의와 실증주의의 흐름입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인간의 삶에도 적용되기 시작했고, 그 맥락에서 사회학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콩트에서 시작해 뒤르켐, 베버로 이어지는 흐름이죠. 역사학에서는 랑케가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정립했습니다. ‘증거가 있는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 즉 문헌과 기록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이죠. 이 실증주의 사관은 지금도 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으로 남아 있습니다.”
실증주의의 그림자, 누구의 역사인가
그런데 그 실증주의에 한계가 있다고 하셨잖아요.“두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과학으로서의 오류 가능성이고, 둘째는 제한된 기록에 근거한 제한된 역사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 시대에 문헌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겠어요. 글을 아는 사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양반이 전체 인구의 3% 정도였다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1~3%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인 셈이에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왕실의 기록, 높은 신분의 기록, 국가·정치·거대 사건 중심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거시사(巨視史) 중심의 역사 서술이 오랫동안 지배해 올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온 역사입니다. 정치사, 경제사, 국가사. 그런데 1960~70년대 들어 미시사가 등장합니다. 이 시기는 문화적 전환의 시대였어요. 세계대전이 끝나고 포스트모더니즘, 젠더, 인종, 개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습니다. 역사학도 그 흐름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이 등장했고, 미시사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죠.”
미시사의 방법론은 어떻게 다릅니까.
“핵심은 구술사(口述史)입니다. 미시사는 개인에 집중합니다. 개인의 삶, 개인의 경험, 나로부터 출발하는 역사입니다. 그 자료는 공적 기록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일 수밖에 없고, 그 기억을 끌어내는 방법이 구술입니다. 거시사의 주체가 국가·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라면, 미시사의 주체는 특정 개인이고, 우리 가족이고, 우리 마을이고, 커뮤니티입니다. 예로 든다면 6·25전쟁을 이야기할 때 거시사는 ‘한국군은 어떻게 싸웠는가’를 말한다면, 미시사는 ‘그 전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겪었는가’를 묻는 겁니다.”
그런데 개인의 기억이란 것은 주관적이고 왜곡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가장 큰 논쟁 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랑케의 역사학은 과학이었고, 과학은 보편적 법칙으로 과거와 현재를 설명해야 합니다. 개인의 구술은 개인의 기억이에요.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느냐, 이게 제일 큰 문제죠.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역사학은 애초에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전쟁을 기록할 때 어떻게 했겠습니까. 직접 보지 않은 전쟁을 기록하려면 전장에 다녀온 병사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죠. ‘거기서 어땠어? 어떻게 싸웠어? 누가 어떻게 죽었어?’ 이런 질문을 통해 병사들의 기억을 소환해 쓴 겁니다. 그러니 역사는 원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 왜 기억이 역사학에서 밀려났을까요.
“문자의 발전 때문입니다. 미디어 발전 측면에서 보면, 최초의 미디어는 말, 즉 언어였습니다. 그것을 고정하기 위해 문자가 등장했고, 문자는 곧 객관화의 수단이 됐습니다. 증거가 됐고, 법이 됐고, 약속과 규약이 됐죠. 반면 머릿속에 있는 것, 말로 전하는 것은 ‘주관적 생각’으로 치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학 안에서 기억의 문제를 완전히 간과해 버리게 된 거죠. 그 흐름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저는 기억이라는 방법론에 주목하게 된 겁니다.”
역사는 어떻게 현재화하는가, 스토리텔링의 시대
제가 볼 때 선생님의 연구 관심사는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방식에 더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요.“맞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과거라는 것이 현재화하는 방식에서 문화적으로 어떻게 재현되고 재구성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대중이 과거를 아는 방식이 역사책이나 교과서를 통해서인가요? 아닙니다. 영화, 드라마, 박물관, 애니메이션을 통해 접하죠. 1000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도 주인공인 단종이란 인물은 학교 다닐 때 국사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인물인데, 영화 한 편으로 그 인물이 갑자기 다시 소환됩니다. 영화 하나가 당대의 역사 인식을 지배하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에요. 그래서 저는 히스토리(history)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결합됐을 때 어떻게 새로운 현재성을 갖느냐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가 너무 왜곡돼 있다는 비판도 많아요. 한마디로 역사적 사실과 대중의 역사 인식 사이의 간극이 있다는 거죠.
“영화 속 역사가 고증에 어긋나도, 대중에게는 그 영화의 서사가 역사 인식을 형성해 버립니다. 그런데 대중 입장에서는 사실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단종의 삶이 나의 오늘날 삶과 겹쳐지는 지점, 그 ‘감정적 공명’이 중요한 거죠. 역설적인 서사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강렬하게 와 닿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저는 ‘역사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이야기를 해볼까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미시사, 더 나아가 인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AI 시대에 미시사가 왜 더 필요한가, 다른 하나는 미시사 연구에서 AI를 어떻게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가입니다. 후자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AI 기술은 미시사 연구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미시사적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는 거시사와 다릅니다. 거시사는 공적 기록, 외교 문서, 교과서, 기념물 같은 것들이 중요한 반면 미시사는 편지, 사적 일기, 개인 간의 대화가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요즘으로 치면 카카오톡 메시지 같은 것들이죠. 그런 파편화되고 세분화된 자료를 1차적으로 분류하고 규칙성을 찾는 작업, 이런 부분에서 AI는 굉장히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 미시사는 왜 더 필요한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신다면요.“예를 들어, SNS를 통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미시사 연구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페이스북 기록을 모아 소팅(sorting)해 특정한 기준으로 검색해서 규칙성을 발견하는 작업을 인간이 한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죠. AI는 그런 1차 분석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국학진흥원 같은 기관에서 조선시대 일기 자료나 편지들을 해제하고, AI를 통해 1차 분류 작업을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리된 자료를 연구자들이 재해석하는 거죠. AI가 1차 분류와 패턴 탐색을 하고, 거기서 의미와 맥락을 추출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은 어디일까요.
“인간의 삶 자체입니다. AI의 원리는 결국 수학적 알고리즘이고, 알고리즘은 평균값에 기반합니다. 도수가 가장 높은 값을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 평균에서 벗어난 개인들, 즉 양극단에 있는 수많은 사람을 알고리즘은 사실상 무시합니다.
인간의 삶을 계량적·수치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학문이 경제학이잖아요. 환율, 유가 등도 예측이 가능하죠. 하지만 구조적 경제위기가 터집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공격하리란 걸 누가 예측했겠어요. 결국 알고리즘은 인간의 욕망과 감정, 비합리적 판단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개인의 자유의지가 있고, 감정이 있고, 욕망이 있기 때문에 알고리즘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탕을 예로 들어볼까요. 사탕의 당도나 성분은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더 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시다고 하고, 딱딱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은 개인 간 차이가 너무나 크고,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평균값 하나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알고리즘의 한계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인간관계 갈등이든, 자기 내면의 문제든, 심지어 계약관계의 판단까지 모두 AI에게 물어보고 그 답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인간 사회가 얼마나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지를 전제하지 않은 채, 알고리즘이 내놓은 답을 그냥 수용해 버리는 거죠. 특히 경험이 아직 적은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검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사유의 힘’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사실 ‘생각하는 힘’의 문제는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화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인간을 발견한 근대 철학의 핵심이었는데, 그 생각하는 주체의 자리에 AI를 앉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문학의 힘, 사유를 교란하는 것
최근 동해안 어촌 구술 조사를 하고 계신다고요.“3년 차입니다. 포항, 영도, 울진, 경주, 울릉도 등 경북 동해안 어촌들을 해마다 조사하고 있습니다. 농촌인구가 사라지듯이, 고기 잡을 사람이 없어서 어촌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개인들의 삶이 거시사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가 생생하게 보입니다. 같은 어민이라도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어떤 마을은 항구가 생기면서 개발이 이뤄지고,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펜션도 생기고, 노후도 보장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몇 km 떨어진 이웃 마을은 항만 때문에 어장이 폐쇄되고, 개발 지역도 아니라서 완전한 소멸 지역이 돼버립니다.
똑같은 어민들인데, 국가정책 하나가 어떻게 개인들의 삶을 갈라놓는지가 눈에 보이는 거죠.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있습니다. 외지인들이 들어와 자리 잡으면서 지역민들이 밀려나는 문제, 전복이나 해산물 어장을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춘 외지인들이 무단으로 황폐화시키는 문제, 노인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문신한 젊은이들이 협박하는 상황까지. 제도적 사각지대가 어마어마합니다.”
바로 미시사의 현장이군요.
“그렇습니다. 1980년대는 이랬고, 90년대에 이게 바뀌었고, 2000년대에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들, 배가 몇 척이었고, 어장이 어떠했고. 그야말로 미시사 자체입니다. AI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데이터가 없습니다. 있다면 인구통계학적 정보나 공식 통계, 논문, 인터뷰 기사 정도겠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은 데이터에 없습니다. 구술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 아닙니다. 저의 경험과 구술자의 경험을 융합하고, 맥락과 의미를 추출해 내는 일이에요. 그 과정 자체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인문학의 힘이란 과연 뭘까요.
“사유를 교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정치적인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과학기술적인 문제든 간에, 그 당연함을 흐트러뜨리는 거예요. 짚어보고, 질문을 던지고, 비틀어보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힘이고 인문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유한다는 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이기도 합니다. 내가 옳다고만 할 수 없고, 내 생각이 지금 어디서부터 왔는지 돌아보는 것, 결국 질문하는 힘이죠. ‘이게 잘못된 게 아니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는 물음입니다. 요즘 많은 분이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죠. 교란이라는 게 ‘과연 그게 힘든 건가’라고 다시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뭐가 힘들고, 왜 힘들고. 생각 하나가 바뀌면 삶이 천국이 됐다가 지옥이 됐다 합니다. 그것을 내가 판단할 수 있어야지, AI에 물어보면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