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회, 지배 이데올로기 세뇌시키는 사상적 용광로
‘비밀 병기’ ‘특수 자산’ 용어로 신비주의적 공포 유지
北 국방정책 핵심 기조, ‘핵보유국 지위 영구화’
韓 대북정책·국가안보 전략 패러다임 전환 모색할 때

2월 19일부터 25일까지 평양시 모란봉구역 4·25문화회관에서 조선노동당 제9차 당대회가 열렸다. 노동신문
특히 2011년 김정은 정권 들어 정례화된 당대회는 당 중심의 국가 운영 체계를 복원하고, 수령의 지시를 정책화·법제화하는 권력 공고화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당대회는 북한이 국제 정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어떤 생존 전략을 채택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당대회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국가 통제력을 복원하고,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기능적 전환점의 의미도 갖는다.
당대회는 김정은이라는 유일 권력을 중심으로 당과 군, 민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체제 정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핵심 당원 수천 명을 평양으로 불러 모아 며칠 동안 김정은의 보고문을 학습시키고 토론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뇌리에 박아 넣는 사상적 용광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北 노동당 대회, 사상적 용광로 구실
김일성·김정일주의 계승을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김정은주의’라는 독자적 사상을 규약에 명문화하거나 강조함으로써 선대 후광이 아닌, 김정은 자신의 영도력을 국가의 유일한 생존 동력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대회 기간 내내 반복되는 찬양과 결의 채택은 참석자들에게 ‘김정은 당 총비서와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는 집단적 최면 효과를 내고, 이는 다시 지방과 각 현장으로 전파돼 전국적 세뇌 교육으로 이어진다.김정은은 2월 19일부터 25일까지 열린 9차 당대회에서 국가의 전략목표, 즉 경제발전 및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통치에 대한 ‘과학적 확신’을 주민들에게 주입했다. 이는 인민들에게는 승리의 낙관을 심어주고, 엘리트들에게는 반드시 관철해야 할 명확한 지표를 제시함으로써 통치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수법이다.
동시에 ‘비밀 병기’나 ‘특수 자산’ ㅔ같은 모호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외부 세계와 내부 간부들에게 신비주의적 공포를 유지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격상시킨다. 과거 선군정치 시절 비대해졌던 군부의 힘을 억제하고, 당대회를 통해 모든 권력을 다시 ‘당’으로 집중시킨 것은 김정은 시대 통치의 결정적 특징이다.
당대회라는 공식 절차를 통해 모든 정책을 결정함으로써 1인의 변덕이 아닌 ‘당의 결정’이라는 제도적 권위를 입안하고, 이를 어기는 행위를 당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해 처벌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는 엘리트들이 김정은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을 넘어 ‘당의 결정’이라는 시스템에 매몰되게 함으로써 체제의 내구성을 극대화하는 고도의 통치 기술이다.
9차 당대회에서 결정한 국방·대외 전략
김정은이 직접 밝힌 9차 당대회 총화보고는 핵 무력을 국가 존립의 절대적 담보로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 정세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공세적 국방 및 대외 전략을 담고 있다. 국방정책의 핵심 기조는 핵보유국 지위의 ‘불가역적 영구화’다. 이를 헌법적·물리적으로 고착시켜 핵이 사라지고, 자신들을 향한 적대시 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핵 포기는 절대 없음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핵을 국가 존립의 모든 영역과 결부해 성역화함으로써 어떤 극한의 환경에서도 핵 무력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 마이웨이식 통치를 이어가겠다는 김정은식 정면돌파전의 선언이기도 하다.구체적 과제로서 연차별 핵 무기수 증대 및 핵 운용수단과 활용 공간 확장, 핵방아쇠(통합핵위기대응체계)의 가동 운영시험 등 핵 전투 무력 실전화, 수상 및 수중 전력의 핵무장화를 통한 해군 작전 능력의 급속한 갱신 등을 제시했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핵 무인 수중 공격정(해일), 핵 어뢰 등 수중 투발 수단을 고도화해 미국 해군의 압도적 해상 장악력에 대응하는 비대칭적 억제력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도 표출했다.
지상 발사 미사일에 의존하던 과거 한계를 넘어 해양이라는 거대 매복 공간을 활용해 ‘제2격(second strike)’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한미 연합군의 탐지 및 요격망을 무력화하고, 미 증원 전력의 한반도 근해 접근을 차단하려는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대외정책에서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붕괴하고 있다는 정세 판단 아래, 러시아와 전략적 밀착을 공고히 하며, ‘다극화된 세계 건설’의 주역으로 나서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했다. 특히 북·러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과 군대 해외 파견 등을 전례 없는 성과로 내세우며, 기존의 고립된 처지에서 벗어나 반미 블록의 핵심축으로서 국제적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모든 대외 활동의 기준을 ‘국익 수호’에 두고, 이념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실용주의적 외교를 표방하면서도 외교관들을 사상으로 무장한 ‘외교 전사’로 육성해 적대 세력의 정보망을 무력화하는 전략적 불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신냉전 구도를 최대한 활용해 서방의 제재망을 우회하고, 군사 교류와 자원 확보를 통해 국가경제와 국방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치밀한 외교적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대미 및 대남 정책은 철저한 ‘강 대 강’ 원칙과 적대적 교전국 관계의 고착화로 요약된다. 미국에 대해서는 ‘적대시 정책의 완전한 철회’와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워 사실상 핵군축 협상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최고의 강경 자세를 유지하며 비례성 대응 원칙에 따라 군사적 긴장을 지속시킬 것임을 분명히 했다.
대남 정책은 한국을 ‘잇닿아 있는 남부 국경선’을 마주한 주적으로 규정하고, 국경 요새화와 화력 체계 보강을 통해 민족 관계를 완전히 청산한 적대 국가로서 물리적 차단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통일 담론을 폐기하고 남측을 주권을 가진 침략국으로 정의함으로써, 유사시 남한 전역을 핵으로 타격할 수 있는 명분을 사전에 구축하려는 위험한 전략적 전환이다. 이번 총화보고는 핵을 앞세운 ‘힘에 의한 평화’를 국가 발전의 근본 담보로 삼고, 내부적으로는 이민위천·일심단결·자력갱생의 구호로 민심을 결속하며 외부적으로는 신냉전 구도를 최대한 활용해 체제의 영속성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생존 전략을 담고 있다.
北 핵 무력 완성, 김정은의 선견지명?
김정은은 노동당 제9차 대회를 통해 자신들이 선택한 ‘초강경 자강 노선’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유일하고도 정당한 길이었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힘을 통한 평화’라는 구호가 실상은 주권국가를 유린하기 위한 기만적 침략의 명분일 뿐이며, 미국이라는 집단은 자국의 정치적 위기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법과 인류의 평화 따위는 언제든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있는 불량배 집단이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했다.특히 최근 발생한 이란의 비극과 최고지도자 제거 사건은 김정은이 당 대회 보고서에서 예견한 미국의 약육강식 논리와 패권적 전횡이 현실화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즉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하고 자강력을 키워온 결정이 선견지명 있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당대회에서 미국이 북한의 주권을 넘볼 수 없도록 만드는 ‘물리적 억제력의 절대화’를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상정했다. 대화나 타협이라는 위장된 평화의 뒤편에 침략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고 보고, 그런 패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전략적 인내’와 ‘요새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 특히 단순히 방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북한 지도부나 전략 거점에 대해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일 경우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핵 반격을 가하는 공세적 핵 교리를 법적으로 공고히 했다. 이는 북한 지도부가 유고 상황에 처하더라도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데드 핸드’ 시스템의 완비로 이어질 수 있다. 즉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본토의 공멸을 각오해야 한다는 실존적 위협을 트럼프에게 들이민 셈이다.
김정은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고 통일이라는 민족적 담론을 과감히 폐기한 것도 현재의 국제 정세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태도를 고려할 때 체제 생존을 위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치밀하게 계산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이라는 거대 패권 세력에 맞서기 위해 내부적으로 ‘민족’이나 ‘동족’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오히려 체제 수호의 걸림돌이 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압도적 경제력과 한류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확산은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이는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남북을 완전히 별개의 적대국으로 설정하는 ‘사상적 요새화’를 단행했다.
이러한 적대적 기조의 공고화는 군사적 측면에서 남한을 향한 핵무기 사용의 심리적·윤리적 저항선을 무너뜨려 미국의 선제 타격 의지를 꺾는 공세적 억제 수단으로 작용한다. 과거에는 동족을 향해 핵을 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나, 이제 남한을 ‘제1의 주적’이자 ‘완전한 타국’으로 법제화함으로써 유사시 망설임 없이 핵 보복 작전을 실행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이는 미국에 “남한을 인질로 삼아 공멸할 준비가 됐다”는 강력한 실존적 경고가 된다. 또한 트럼프 특유의 ‘톱다운(top-down)’식 직거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은 훗날 언젠가 한국 정부를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하고, 미국과 대등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직접 담판을 짓는 구도를 만들어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 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에게 대남 정책의 적대적 전환은 지정학적 실리 추구의 결과물이다. ‘민족 공조’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내리고, ‘반미 전선의 최전방 주권국가’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북한은 러시아·중국과 권위주의 연대의 핵심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넌 남북 관계
북한의 요새화와 공세적 핵 교리는 서로 맞물리면서 한반도 안보 지형을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다만 9차 당대회에서 ‘자강 노선’을 선포하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력히 규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행보에서 트럼프를 직접 자극하지 않으며 수위를 조절하고 경제발전과 민생 개선에 주력하려는 것은 실리적 선택으로 보인다.김정은은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핵 무력이라는 화려한 성벽도 내부로부터 무너질 수 있다는 실존적 위기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앞으로 미국이 아무리 밖에서 광기를 부려도 강력한 핵 억제력을 갖춘 자신들은 흔들림 없이 번영하고 있다는 평온한 외관을 보여주려 할 공산이 크다. 이는 주민들에게 ‘핵 보유가 곧 평화와 경제 발전의 담보’라는 확신을 심어줘 내부 동요를 잠재우는 동시에, 경제 자립 기반을 닦아 미국의 고강도 제재나 압박이 장기화하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국가적 맷집을 키우려는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다.
이제 북한이 남북 관계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수준으로 단절한 이상, 한국 정부가 기존의 대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북한의 이런 ‘적대적 국가’ 프레임에 대응해 평화 공존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대북정책 및 국가 안보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을 서둘러 모색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