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W 서울

“새롭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 신정원| 월간 기자 gardennew@design.co.kr

    입력2012-04-20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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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서울

    ‘W 서울’은 국내 최초 6성급 호텔이다.



    낯선 도시에서 호텔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주요 목적지와의 거리, 격식 있는 서비스, 가격 대비 패키지 구성 요소…. 세계적인 스타우드 호텔·리조트(Starwood Hotels · Resorts) 그룹이 1998년 뉴욕에 ‘최초의 스타일 호텔’을 표방한 ‘W 호텔’을 열면서, 기존 가치뿐 아니라 디자인과 스타일이 호텔 선택의 중요 지표가 됐다.

    ‘세계 디자인 호텔’의 서막을 연 W 호텔은 쉐라톤, 웨스틴, 르 메르디앙 등 9개의 브랜드를 거느리는 스타우드가 직접 만든 최초의 호텔이다. 스타우드 그룹은 기존의 호텔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격식을 강조하고 분위기가 딱딱해 고객들이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낀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W 호텔은 고객의 감성 욕구를 채우면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호텔로 만들었다.

    현재 세계 35개 도시에 42개의 체인을 갖고 있는 W 호텔은 호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브랜드로 꼽힌다. 전 세계의 최신 문화가 공존하며 트렌드 선도자들이 선망하는 뉴욕의 에너지와 스피드는 W 호텔 브랜드의 근간이 된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록 웰(David Rock Well)이 주도해 완성한 첫 W 호텔은 독특한 건축과 모던한 인테리어로 뉴욕의 랜드마크가 됐다. ‘리빙룸’이라 불리는 로비에는 최신 전자음악이 흘렀고 직원들은 진중하면서도 감각적이었다. 이곳의 호텔은 단지 잠만 자는 곳이 아닌,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새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디자인과 스타일을 내세워 전통 호텔의 이미지와 차별화한 W 호텔은 세계 트렌드 선두주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디자인 호텔 체인으로서 위상을 다졌다. 고객들은 더 자주, 세계 어디에서나 W 호텔에서 머무르길 바랐다. 그런 고객의 니즈 덕분에 뉴욕에만 5개의 W 호텔이 들어섰다.



    뉴욕에서 시작된 호텔답게 2004년까지는 북미지역에 들어선 비율이 70~80%였으나 올해 말 전 세계적으로 50개까지 체인을 확장하면서 이 비율은 50%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특히 광저우, 베이징, 뭄바이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 출시할 계획이다.

    뉴욕 문화와 각 도시 특성 결합

    W 호텔의 디자인 기본은 뉴욕 문화에 두되, 각 도시의 특성을 W 호텔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반영한다. 기존 호텔 체인은 세계 어느 지역을 가든 일정 수준의 예측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W 호텔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새로운 형식의 호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W 본사에서 꼽은 최고의 디자인 호텔은 스페인 노바 보카나(Nova Bocana) 항구에 위치한 ‘W 바르셀로나’다. W 바로셀로나의 외관은 배의 돛 형태를 닮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생선의 비늘 같은 독특한 디자인은 유리조각을 붙여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바르셀로나 도심 풍경이 녹아 있다. 이 때문에 W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외관을 감상하기 위해 이 호텔을 찾는 관광객도 많다. W 바르셀로나를 설계한 라카르도 보필(Ricardo Bofill)은 “고대 로마 시대에 돌을 쌓아 만든 로만 월(Roman Wall)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양한 건축 스타일이 섞여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만들어졌으며 덕분에 자유롭게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바르셀로나 출신 건축가로 누구보다 이 도시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를 W 바르셀로나에 녹여낼 수 있었다. 국내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해외 유명 건축가나 디자이너만을 선호해 한국 출신 디자이너 다수가 설 자리가 없는 것과는 대비된다.

    ‘W 비에케스 아일랜드’는 푸에르토리코의 카리브 해에 자리 잡고 있다. 지역 호텔이었던 곳을 인수해 리모델링한 것으로 소박한 우아함이 디자인 콘셉트다. 2007년 ‘타임’지가 선정한 디자인 대가 중 한 명인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파트리샤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가 디자인했다. 우르퀴올라는 이탈리아의 가구 전문 브랜드 모로소 디자이너 출신으로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색이 남아 있는 기존 건물에 아프리카 전통 수공예 방식을 차용해 디자인한 산뜻한 색상의 가구를 배치했다. W 비에케스 아일랜드는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 W 호텔만의 개성을 살린 사례가 됐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 터키의 ‘W 이스탄불’은 도시의 특성을 투영해 디자인하는 W 호텔만의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19세기 고위 관리의 숙소를 개조했는데 건물 수십 채로 호텔을 구성해 마치 하나의 마을 같은 느낌을 준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내부의 모던한 디자인으로 마무리한 W 이스탄불은 W 호텔 디자인의 절정이다.

    이렇듯 독특하고 세련된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브랜드를 확장시켜온 W 호텔은 2004년 아시아권 최초 진출 지역으로 서울을 택했다. 새로운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성장하는 서울에 매료됐다고 한다. ‘W 서울’은 오픈 당시 국내 최초 6성급 호텔로 화제가 됐다. W 서울 총지배인 그렉 핀들레이(Greg Findlay)는 “W 서울의 가장 큰 매력은 오픈한 지 8년이 지나도 싫증나지 않은 모던하고 신선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갤러리 같은 W 서울 로비

    W 서울

    국내에서 가장 긴 18m 바인 W 서울의 우바(Woo bar).

    W 서울의 로비는 마치 잘 꾸며놓은 갤러리를 보는 듯하다. W 서울에 들어서면 감각적으로 꾸민 로비인 리빙룸과 W 서울의 마스코트, ‘우바(Woo Bar)’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바는 국내에서 가장 긴 18m의 바로도 유명하다. W 서울의 전체 구조와 공간은 뉴욕의 스튜디오 가이아(Studio Gaia)와 홍콩 RAD(Research Architecture Design)의 애론 탄(Aaron Tan)이 설계했으며, 레스토랑 ‘나무’와 ‘키친’은 토털 인테리어 디자인 그룹인 토니 치 앤 어소시에이츠(Tony Chi · Associates)에서 디자인했다. 또한 직원들의 유니폼은 제일모직의 상무이자 남성복 브랜드 ‘준지(JUUN.J)’의 디자이너 정욱준의 작품이다.

    리빙룸 한쪽 벽면에 자리한 ‘나무 거울(The Wooden Mirror)’은 1500개의 나무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W 서울의 대표적인 예술 체험 코스다. 작가 다니엘 로진(Daniel Rozin)은 나무 거울 가운데 센서를 통해 사람의 형상을 표현했는데, 가장 아날로그적인 소재 중 하나인 나무에 디지털 요소를 가미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키친 입구에서는 조각가 이재효의 작품 ‘미로’를 만날 수 있다. 이재효는 개울가의 돌이나 벌목장의 마르고 빛바랜 나무토막 등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일상 속 자연 재료를 활용해 탁자나 의자 등을 디자인하기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최근 두바이 아트페어에서 선전하는 등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바와 리빙룸의 디지털 아트 큐레이팅은 아트센터나비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W 서울에는 새로운 트렌드를 경험하고자 방문하는 고객이 많은 편이다. W 서울은 지난해부터 디자인하우스에서 주관하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도 참여하는 등 디자인 요소를 중시한다.

    W 호텔은 디자인뿐 아니라 음악과 패션을 통해 W 호텔만의 행사인 ‘W 해프닝스(happenings)’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글로벌 뮤직 디렉터인 미켈란젤로 라쿠아(Michaelangelo L′Aqua)는 전 세계 W 호텔의 모든 음악을 총괄한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Tom Ford)가 발굴한 그는 지금껏 150개가 넘는 패션쇼와 200개의 광고음악 작업을 해왔다. W 호텔 공간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의 역할로 수영장, 라운지 등의 장소에 어울리는 각각의 음악을 선별한다.

    아만다 로스에 이어 W 호텔의 글로벌 패션 디렉터로 선임된 제니 롬바르도(Jenne Lombardo)는 W 호텔과 비슷한 철학을 가진 브랜드를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전 세계 W 호텔이 주관하는 지역 패션 이벤트를 진두지휘한다.

    W 호텔의 타깃은 트렌드 선두주자다. 전통적인 의미의 커플이 아닌 게이 커플도 W 호텔의 타깃이 된다. 성별과 연령으로 타깃을 구분하는 인구학적 분류는 W 호텔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바에 앉아 칵테일을 즐기는 60대 노인, W 호텔만의 시각에 동의하는 20대 여성 등 W 호텔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좋아하는 고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W 호텔의 슬로건은 ‘왓츠 뉴 앤 넥스트(What′s new and next)’. W 호텔은 이미 누군가 하고 있는 것, 어디선가 본 듯한 것을 해서는 차별화할 수 없음을 명백히 알고 있다. W 호텔 측은 “샤넬, 루이비통, 티파니 등 기존 명품 브랜드보다 메종, 마르틴, 마르지엘라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와 닮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W 호텔이 디자인, 음악, 패션 분야에서 신진 작가를 발굴해 상을 주는 이유는, W 호텔이 그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브랜드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감각 있고 실력 있는 작가를 찾아서 유명세를 타게 하는 것이 ‘W’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대개 호텔에서 컨시어지 업무(Concierge·호텔 로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는 고객의 레스토랑 예약을 돕는 등 일상적인 서비스에 국한된다. 반면 W 호텔은 ‘아무나 올 수 없지만(exclusively), 일단 발을 들이면 인사이더(insider)로 받아들이고(inclusive)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객이 언제, 무엇을 원하든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을 들어주는 서비스 정신을 의미한다. W 서울 총지배인은 “스웨덴에서 온 고객이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려 당장 입을 옷을 살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늦은 시각이라 동대문의류상가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외국인이라고 비싼 가격을 부르지 않을까’ 싶어 남자 직원이 직접 고객을 모시고 동대문 쇼핑을 갔다”고 전했다. 쇼핑 장소 소개뿐 아니라 가이드와 통역, 에누리까지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얘기다.

    W 호텔만의 라이프스타일 패키지

    W 서울

    리빙룸 한쪽 벽면에 자리한 ‘나무 거울(The Wooden Mirror)’. 1500개의 나무조각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W 서울의 대표적인 예술 체험 코스다.

    오픈 당시 세련된 감각의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던 외관과 실내 디자인은 거의 그대로지만 여기에 담기는 콘텐츠는 끊임없이 새로 개발된다. 국내에 샴페인 브런치 열풍을 선도한 ‘버블리 선데이’는 W 서울의 레스토랑 키친에서 시작됐다. 현재 W 서울의 F·B(food·beverage) 총괄 디렉터인 키아란 히키(Ciaran Hickey)는 총주방장 시절 ‘죽기 전에 맛봐야 할 101가지’ 행사를 열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바의 W 믹스테일(mixtails)은 2011년 월드 클래스 바텐더 대회에서 국내 1위를 차지한 바텐더가 선보이는데 6가지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이 중 ‘어보브 더 클라우드(above the clouds)’는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구름 이미지를 연출해 향뿐 아니라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어 인기다. 보통 커플을 위한 행사를 많이 여는 밸런타인데이에는 싱글만을 위한 파티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W 호텔다운 파티였던 것.

    계절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 가격 할인 패키지는 흔한 호텔 마케팅 방법 중 하나. 하지만 W 호텔에는 가격 할인 패키지가 없다. 대신 라이프스타일 패키지로 통용되는 ‘브랜드 경험 패키지’가 있다. 여자친구 4명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걸스 겟 어웨이(Girls Get Away)’ 패키지는 독특한 디자인의 침대가 있는 쿨 코너 객실에서 샴페인을 즐길 수 있다. 임산부를 위한 ‘베이비 미(Baby Me)’ 패키지 역시 임산부들 사이에서 “아이 낳기 전에 꼭 누려야 할 호사 중 하나”로 인기를 끌고 있다. W 호텔 측은 “서울 시내 호텔 중 패키지 종류는 W 서울이 가장 적지만 패키지 상품 판매율은 2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W 호텔만의 스타일이 있다. ‘W 링고(lingo)’는 W 호텔만의 용어로, ‘탤런트’는 W 호텔의 직원을 뜻하며 유니폼은 ‘아웃핏’이다. 리빙룸이나 우바처럼 직접 고객을 만나는 공간은 ‘스테이지’, 객실 청소 담당자는 ‘룸 스타일리스트’로 불린다. 이들은 트레이닝을 통해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말할 것인가, 무엇으로 W 호텔에서의 경험을 전달할 것인가”를 늘 교육받는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디자인과 스타일을 강조하는 W 호텔에는 디자인 책임자(CDO·Chief Design Officer)가 없다. 디자인 책임자의 위상으로 디자인 경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W 호텔의 가치는 사장부터 일선 직원까지, 모든 탤런트가 디자인과 W 브랜드의 가치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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