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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삶의 우직함, 견고함에 대하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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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전북 익산시 춘포역에서 공공미술 작업을 하는 정강희(50·오른쪽), 고성미 작가(39)

명예역장의 임기는 1년이고 연임도 가능하며 역장 제복과 신분증, 명함까지 나온다 했으니 만약 역장이 되었다 하면 내 평생 그런 자긍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었을 것이며 역장의 액자사진과 프로필을 대합실 벽에 걸어준다고 했으니 이는 필시 고이 간직해 가문의 유산으로 남길 만한 일이었다.

명예역장은 주기적으로 자기가 맡은 역을 방문해서 역사 주변을 정돈하고 시설물을 관리하고 더러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안내도 하는 게 기본 업무인데, 만약 내가 소박한 마을의 작은 간이역을 맡게 되었다면 소홀히 방치됐던 무인역을 마을의 쉼터로 만들고 서울의 문화판에서 맺은 인연을 ‘남용’해 철 따라 공연도 열고 시 낭송회도 열었을 것이다. 너무 소문나서 떠들썩해지는 것은 막으면서, 그저 그곳에 사는 주민의 쉼터가 되고 어쩌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나 조용하고 느린 곳을 찾는 사람들이 물어물어 찾아와서 다리쉼을 하다가, 철로를 걷다가, 화장실도 이용하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한숨 쉬어가는 간이역 역장을 정말 해보고 싶었다.

사실 지금이야 무인역에 폐역까지 되는 신세지만 근대사 속에서 지금의 간이역은 당시의 중요한 교통 거점이었다. 비록 일제에 의한 역사적 작동이지만, 20세기 초 근대화와 초기 산업화의 시작은 중요 교통수단으로 기차가 다닌 것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기차는 산업의 기간이었고 생활의 통로였고 문화의 집산이었다. 한반도 곳곳에 기찻길이 놓이고 그 위를 여객차나 화차가 질주하게 되는데, 그 관절이 되는 역들은 산업의 측면에서나 일상 교통의 측면에서나 중요한 거점 지역이 되는 곳에 생겨났다. 그러하지 않은 곳으로는 기찻길이 놓이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신문화가 사방으로 확산되고 각지의 사람과 정보와 물산이 거점으로 수렴되었다가 중앙으로, 또 저 멀리, 만주까지 이송되었다.

그러니 간이역은 작은 쉼터 정도만이 아니라 근세기의 산업과 생활과 문화를 살피는 데 중요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꽤 많은 간이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근세기의 건조물이나 시설물 가운데 기념하고 보존해야 할 것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데 간이역은 지역 역사와 문화의 상징 거점이라는 점, 당대의 건축 조형 양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화랑대역(경춘선), 일산역(경의선), 팔당역(중앙선), 구둔역(중앙선), 심천역(경부선), 남평역(경전선), 율촌역(전라선), 동촌역(대구선), 가은역(가은선) 등이 그렇다.



간이역의 값어치

그중 많은 곳을 다녀보았다. 부산 해운대역처럼 폐선의 운명으로 역사마저 사라질 것 같은 곳이면 어김없이 가보았다. 하늘아래 첫 간이역이라는 태백의 추전역, 경원선의 남한 측 최북단이 되는 신탄역, 도로가 없어 철로가 아니면 접근이 어려운 봉화의 승부역, 근대 문학이 그 이름으로 살아 있는 김유정역, 곽재구 시인의 걸작 ‘사평역에서’의 무대로 알려진 나주의 남평역, ‘이별의 골짜기’란 뜻을 가진 정선의 별어곡역, 서천화력발전소를 위한 철로지만 휴가철에는 춘장대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달리기도 하는 춘장대역, 내 고향 풍기의 소백산 중턱에 있는 희방사역, 그밖에 공전역, 함백역, 곡성역 등을 일부러 찾거나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들렀다.

이번 행로도 그런 일환이다. 전주에서 일을 마치고 임피역으로 오기 전에 익산 쪽으로 먼저 들러 그 곁의 작은 간이역, 춘포역에 먼저 들렀다. 기록에 의하면 춘포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간이역이다. 1914년 영업을 개시했다. 지금은 폐선이 되었고 작은 춘포역 뒤로 신작의 거대한 철로가 강건하게 뻗어 있다.

춘포역의 옛 이름은 대장역. 이 일대의 옛 이름, 즉 일제강점기 당시의 이름이 대장촌리(大場村里)다. 작은 역사 안에 들어가면 일제강점기의 식민 산업화 일환의 포스터가 기록적 가치 차원에서 붙어 있다. 익산시가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원래 지명을 찾기 위해 조례를 개정해 1996년 1월 1일 이후로 춘포면 대장촌리가 춘포면 춘포리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역 이름도 바뀌었으나 2007년 6월부터 폐선돼 여객도 화물도 취급하지 않는다.

춘포역의 서정

이미 예고된 운명이었다. 1997년 6월 1일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4년 12월 10일에 무배치 간이역으로 또 한 칸 내려갔으며 2005년 11월 11일에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긴 했으나 2007년 6월 1일 여객 업무가 중단되었고 2011년 5월 13일부터 전라선 복선 전철화 사업에 따라 완전히 폐역이 되었다. 그러나 1914년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지어진 춘포역은 그 역사적, 문화사적, 건축적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는 문화재적 보존가치 및 문화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한다.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전북 익산시 춘포면의 가옥을 활용한 공공미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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