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야동에 빠진 남편들에 대한 경고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19-04-05 10: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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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분명히 예쁘고 매력적인데,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고 어쩌다 해도 사정(射精)이 잘 안 돼요.” 

    거 참, 이상한 노릇이다. 겉으로 봐서는 혈기왕성하고 리비도(libido·성욕)가 끓어오를 것 같은, 기골이 장대한 젊은이가 아내를 안고 싶지 않고, 섹스를 하더라도 사정이 안 된다고 하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요즘 들어 난임병원에는 남편의 사정 불능증을 호소하며 IVF(시험관아기시술)를 하려는 젊은 부부가 부쩍 늘고 있다. 단순히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다. 조심스레 분석하면 성(性)에 대한 과잉 자극이 빚어낸 현실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포르노 산업이 발달해 있다. 스마트폰을 몇 번만 터치하면 언제든 음란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 서로 뜻이 맞은 사람들끼리 모바일 메신저에서 ‘단톡방(단체 채팅방)’을 열고 낯 뜨거운 동영상을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1990년대까지는 남성들이 허기진 성을 달래기 위해 룸살롱이나 안마시술소, 퇴폐 이발관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든 성적 자극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실감형 콘텐츠와 결합된 3·4D 포르노 게임과 섹스로봇 등이 예고돼 있다.

    속정만큼 깊은 살갗 정(情)

    뜨거운 성욕은 청춘의 상징이자 산물이다. 특히 남성에게 리비도는 용암을 연상케 할 정도의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를 상징한다. 물론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단순 배설이 되거나 사랑 그 환희의 절정이 되기도 한다. 후자에 속한다면 한결 건강하고 감동적인 사정(射精)이 될 수 있다. 이는 의학적인 팩트다. 영혼이 없는 성생활은 남녀 모두를 쓸쓸하게 만들 뿐이다. 돌이켜보면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인간에게 자극이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어서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원한다. 

    1970~80년대, 어렵던 시절 청춘을 보낸 부부라면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하다. 단칸방에서 자식을 서너 명 키우는 부부에게 야밤의 벽시계는 고장 난 초침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열악한 공간이라는 한계를 무릅쓰고 느낀 막간의 짜릿함이 놀라울 정도로 부부의 정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때 그 시절의 남편은 아내의 속옷만 봐도 자극이 됐을지 모른다. 



    남성의 성욕은 시각, 청각, 촉각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된다. 모름지기 건강한 사내라면 여성의 촉촉한 눈빛과 떨리는 입술, 미니스커트 아래로 쭉 뻗은 다리만 쳐다봐도 리비도가 요동쳐야 한다. 잠자리에서 아내의 속삭임에 수많은 약속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금욕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녀(부부)의 정(情)에는 속정만큼이나 ‘살갗 정’이 메가톤급으로 강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겠지만 피보다 진한 것이 바로 살(skin)이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가 될 수 있는 근원도 살갗 정에 있다. 부부야말로 식(食)과 색(色)을 함께하는 친구이자 애인이며 동지가 아닐까. 밖에서 제아무리 큰소리를 치던 남편이라도 베갯머리 송사에서는 아내에게 옴짝달싹할 수 없어야 덕이 있는 사내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다. 삼강오륜이고 나발이고 진정한 승리자는 언제나 아내였다.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다. 아무런 방해 없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부부만의 공간도 보장돼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단칸방에서 복작대며 살던 그 시절에 비해 부부간의 소통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급기야 섹스리스로 전락한 부부도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아내에게 집중하지 못한 채 컴퓨터게임과 야동에 빠져 있는 남편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강조컨대, 기혼 남성들은 야동에 너무 심취해선 안 된다. 특히 자손을 낳아야 할 남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외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야단이야”라고 항변하지 말라. 이유가 다 있다. 

    뇌과학자들은 일찌감치 ‘음란물 중독이 뇌 기능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Universitat Duisburg-Essen) 연구진의 연구 결과(2012년)를 보면, 음란물은 뇌의 기억력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냥 일반적인 사진을 본 뒤 다른 사진을 봤을 때의 기억 정확도가 80%에 달했다면, 성적으로 음란한 사진을 보고 난 뒤 다음에 본 사진의 정확도는 67%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음란물처럼 자극적인 영상을 자주 보면 뇌에서 도파민이 과하게 분비돼 도파민 수용체가 줄어든다. 뇌 기능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체에서 도파민이 과하게 분출되면 뇌에서 자극과 보상 체계를 담당하는 영역의 부피가 쪼그라들어 뇌 일부가 작아진다. 심지어 음란물을 보는 시간은 뇌 선조체(행동과 의사를 결정하는 영역)의 일부분인 뇌 회백질 부피와 반비례한다. 음란물을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뇌 회백질 부피가 작아진다는 것이다.

    식색동원(食色同源)을 명심하라

    한창 성생활에 열정을 쏟아야 할 젊은 부부가 음란물에 중독이 돼버리면 부부관계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 부부간 성생활에 흥미를 잃기도 한다. 또한 잦은 수음(masturbation)으로 정액 양이 줄어들어 정자 수가 감소할 수 있다. 또한 과도한 자극으로 인해 아내가 더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심할 경우 발기부전, 사정불능증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아내가 생리 중이거나 감정적 사이클이 맞지 않아 본의 아니게 금욕을 강요당할 경우, 그리고 아내가 임신했을 때와 출산 직후에는 야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남편들에게 한 가지 팁을 주고 싶다. 제아무리 도도하고 시크한 아내라도 한 달에 며칠은 생리학적으로 남자를 원할 때가 있다. 배란일이 바로 그 기준점이다. 아내가 왠지 차갑게 느껴지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다면, 그건 배란 이후다. 하지만 평소보다 센티멘털해지고 쓸쓸해하는 기분이 든다면, 배란을 앞둔 시기일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때를 노려야 한다. 늘 강조하지만 여성은 변덕쟁이다. 호르몬 때문이다. 변덕스러워야 생명을 잉태하고 품을 수 있다. 변덕이 심할수록 생식력이 더 왕성하다. 

    아내가 배란 직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질 분비물이다. 평소에는 질 주변이 말라 있더라도 배란 때가 되면 말간 콧물처럼 질이 촉촉하게 젖어든다. 비로소 빗장이 풀렸다고 봐도 무관하다. 자궁경부를 생체빗장(biologic valve)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희망의 불씨가 보인다. 마침 집밥이 유행하고 있고, 사회적인 규제 덕분에 밤거리가 조용해지고 있다. 가장의 퇴근시간이 빨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식(食)이 있어야 색(色)이 있고 색(色)이 있어야 식(食)이 있다는 식색동원(食色同源)을 떠올려볼 때 많은 부부가 집밥 덕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훨씬 더 깊은 속정과 살정으로 안방이 뜨겁게 달궈져 우리나라 출산율도 상승할 수 있길 고대해본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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