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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기행

대영제국 ‘심장부’ 영국 런던

혁신과 전통이 공존하는 문명의 도시

  •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대영제국 ‘심장부’ 영국 런던

  • ●세계 상업 중심지이자 교육과 예술의 도시
    ●17세기 도시 재건 이후 상업지구 탄생
    ●그리니치, 실용적인 런던의 힘 상징
    ●세계 금융의 대동맥
런던 시민들이 타워브리지를 배경으로 포터스필즈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시스]

런던 시민들이 타워브리지를 배경으로 포터스필즈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시스]

대영제국 ‘심장부’ 영국 런던
“런던을 버리고 떠날 지식인은 단 한 명도 없다. 런던이 싫다면 삶에 지친 것인데, 이곳에는 인생의 무게를 견디게 할 모든 것이 있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영국에는 제1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었다. 성공한 부르주아들은 의회를 통해 정치적으로도 꿈을 펼쳤다. 런던의 중산층은 명문 학교를 통해 대대로 교양을 쌓으며 세계 경영에 앞장섰다. 결국 19세기는 영국의 전성시대가 됐다. 그 화려한 불빛이 아직도 런던 이곳저곳을 환히 비추고 있다.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재난 대비가 가장 완벽한 도시가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역사상 도시의 공중위생 시설이 가장 먼저 발달한 곳도 런던이다. 오늘날의 대도시들은 런던의 역사적 경험에서 배운 것이 대부분이다.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만 2000만 명에 육박한다. 누가 뭐래도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큰 도시 가운데 하나다. 물가는 매우 비싸지만 어느 도시보다도 혁신적이다. 세계적인 상업 중심지이며 교육과 예술에서도 선두주자를 자처한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세계문화유산

셜록 홈스 박물관. [GettyImage]

셜록 홈스 박물관. [GettyImage]

런던은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이 증명하듯 도시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이 우아한 자태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런던탑, 큐 왕립식물원, 웨스트민스터 사원, 그리니치 등 어느 곳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들이다. 명소 수가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여왕 일가의 저택인 버킹엄궁전이며 피커딜리, 세인트 폴 대성당, 타워브리지, 트라팔가 광장의 명성은 이미 자자하다. 대영박물관은 물론이고 국립박물관, 자연사박물관,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 갤러리, 대영도서관, 웨스트엔드 극장도 안 가보면 후회할 곳들이다. 2층 버스에 올라 런던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다. 



기후는 그리 좋다고 할 순 없다. 그래서일까. 20세기 초 아서 코난 도일은 안개가 자욱한 런던 골목길에서 명탐정 셜록 홈스를 등장시켰다. 홈스는 사냥 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채, 조수 왓슨과 함께 비상한 추리와 꼼꼼한 증거 수집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은 영국인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지 잘 보여준다. 나도 소년 시절에는 한동안 홈스에 매료돼 빠져나오지 못했다. 

1990년 런던에는 셜록 홈스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품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재현돼 있다. 홈스의 서재에는 신기한 실험 기구와 그가 작중에서 언급한 책들도 꽂혀 있다. 이 박물관의 실제 주소는 작중 인물 홈스의 하숙집 주소와 같다. 시 당국은 1930년에 도로망을 정비하면서 홈스의 추억을 위해 ‘221b’, 즉 베이커가 221번지를 새로 만들었다. 이 역시 영국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의 영국인 친구 윌리엄은 영국 고유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묻는 내게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합리성”이라고 대답했다.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윌리엄과 나는 위스키를 나눠 마시며 런던의 역사를 함께 얘기했다. 

이 도시의 역사는 한 편의 성장 신화다. 조선 시대 초기, 세종 때만 해도 런던은 서울보다 훨씬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런던은 꾸준히 발전했다. 우리의 서울이 매우 완만하게 팽창한 것과 달리 런던의 역사는 역동적이었다. 17세기부터 그들은 세계 최강의 함대를 앞세워 제국의 영토를 키웠다. 런던은 대영제국의 심장부로서 양적, 질적 변화를 겪었다. 

특히 19세기 영국의 영광이 런던의 멋진 외관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대영박물관, 잉글랜드 은행 등 빅토리아풍의 건축물들은 다 그 시대에 완성됐다. 리젠트가와 트라팔가 광장도 마찬가지다. 18세기까지는 런던에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귀족들은 시골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다가 겨울철에만 런던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런던 생활은 소박했다. ‘타운하우스’라고 하는 비좁은 집에서 생활했던 것이다.


한 세기 만에 인구 500만 증가

그렇다고 런던이 보잘것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17세기 후반부터 거리 풍경이 상당히 달라졌다. 그렇게 된 데는 크리스토퍼 렌(1632~1723) 경의 역할이 컸다. 그는 르네상스 건축에 정통했는데, 런던에 무려 53개의 교회를 세웠다. 최고의 걸작은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1981년 7월,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스펜서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곳도 이곳이다. 

렌 경에게는 뜻밖의 행운이 따랐다. 1666년 9월 런던에 대화재가 발생했는데, 도심이 폐허로 변하자 재건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렌 경이 재건 사업을 주도했고, 도시의 얼굴이 바뀌자 부유한 상인들은 웨스트엔드로 이주했다. 이곳은 런던에서도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로 영화관, 극장 등이 모여 있는 오락지구로 유명하다. 도시 재건 이후 런던의 경제도 회복돼 18세기 초에는 증권거래소도 개장했다. 도시가 서쪽으로 확장되자 조지 3세는 웨스트민스터의 버킹엄하우스를 인수했다(1762).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영국으로 노동자가 대량 유입되면서 런던 인구도 급증했다. 1800년경에는 100만 명이 사는 거대 도시로 성장했고, 1세기 뒤에는 무려 600만 명의 인구를 품었다. 아마 조선 시대 500년 동안 서울 인구는 두 배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 

1851년 런던에서는 제1회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는 메트로폴리탄 건설위원회가 출범했다. 당시 엔지니어 조지프 바잘게트는 그물망처럼 잘 짜인 런던 하수도망을 건설했다. 도시 생활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엄청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19세기 런던은 기술, 산업, 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지구상에서 가장 위력 있는 도시로 거듭났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영국의 위상은 추락했다. 그럼에도 런던은 여전히 세계적인 대도시다. 무엇보다도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뉴욕, 싱가포르, 홍콩과 더불어 세계의 돈줄을 쥐고 흔든다.


그리니치, 항해 시대를 열다

대영제국 ‘심장부’ 영국 런던
런던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지역이 많다. 그리니치 천문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하철 커티삭(Cutty Sark) 역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 가능하며 천문대 주변에 공원이 조성돼 있어 한가롭게 산책하는 주민과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표준시(GMT)로 유명하다. 지구상의 모든 시계는 그리니치 시각을 기준으로 삼아 빨라지거나 느려진다. 또 이곳은 본초자오선(Prime Meridian)이 지나가는 곳이라 경도가 0이다. 내 친구 윌리엄은 우리가 그리니치로 산책을 갔을 때 천문학자 존 플램스티드(1646~1719)에 대해 들려줬다. 

1675년 봄 플램스티드는 초대 왕실 천문관이 됐다. 그는 연봉 100파운드를 받고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어떤 장소를 기점으로 지구의 경도를 나눠야 할지 고심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너스 무어 경이 국왕 찰스 2세에게 플램스티드를 천거했다. 

찰스 2세는 천문대 건설비용으로 520파운드를 쾌척했다. 설계는 앞서 언급한 크리스토퍼 렌 경이 맡았다. 플램스티드는 혼신의 힘을 쏟아 별을 관측했다. 1712년 그는 2935개의 천체를 표시한 ‘항성표(恒星表·Historia Coelestis Britannica)’를 발표했다. 

그의 후학들은 1725년 더 완벽한 ‘항성표’를 출판했다. 덕분에 영국의 선박들은 세상 어디서든 배의 위치를 위도와 경도상으로 정확히 숙지하게 됐다. 후세는 그리니치 천문대 덕분에 안전하고 정확하게 항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니치는 그야말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런던의 힘을 상징한다.


의회의 나라 영국

런던시내를 관통하는 템스강에는 거대한 시계탑 하나가 있다. 빅벤이다. 높이 95m에 5개의 종이 달려 있어 무게가 무려 13t에 달한다. 빅벤은 웨스트민스터 궁궐과 이어진다. 신고딕풍의 그곳은 곧 영국 의회다.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된 의회는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관저나 11번지의 재무장관 관저와도 매우 가깝다. 

이 궁궐의 역사는 1097년 조성된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국왕의 주거시설이었으나 1529년 의회 차지가 됐다. 다시 말하면 의회가 왕을 밀쳐낸 형국이다. 이후 의회는 우여곡절 끝에 영국의 진정한 통치자가 됐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다른 나라들과 달리 런던에서는 의회가 정치의 중심이 됐다. 

정치적 타협의 공간인 의회가 크게 발전한 덕분에 런던에서는 유혈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윌리엄은 그 점을 유독 강조했다. 특이하게도 영국인들은 왕의 압제에서도 일찌감치 벗어났고, 가톨릭교회의 지배도 서둘러 청산했다. 인구와 면적으로만 보면 영국은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다. 그런데 아무런 작위도 없는 다수의 향신과 부르주아가 의회를 이용해 사회를 지배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나는 윌리엄과 함께 TV로 하원의 회의를 시청했다. ‘소박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 규모가 작았다. 의원들이 나란히 앉는 장의자는 좁아도 너무 좁았다. 의원들은 총리 연설에도 소리 내 비웃는가 하면, 때때로 야유하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기를 되풀이했다. 막연하게나마 상상했던, 엄숙하고 질서 정연한 광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어쩌면 의회민주주의는 조금은 소란하고 시끄러운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의회로 상징되는 영국인은 신사이자 괴물이다. 19세기 초반, 그들은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전쟁’을 개전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청나라는 제국주의의 반(半)식민지가 됐다. 그 바람에 청나라라는 울타리를 잃은 조선도 덩달아 무너졌다.


거물들이 잠든 웨스트민스터 사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시인들. [백승종 제공]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시인들. [백승종 제공]

의회와 함께 웨스트민스터를 빛내는 또 다른 건물이 있으니 바로 사원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1953),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2011) 등이 거행됐다. 영국 왕가는 이 사원에서 대관식도 장례식도 치렀다. 사원에는 왕의 석관이 20개가량 보관돼 있다. 헨리 3세와 에드워드 1·3세, 리처드 2세와 헨리 5세 등도 이곳에 잠들었다. 

일찌감치 가톨릭교회 품을 벗어난 영국 교회, 즉 성공회를 대표하는 건물이 바로 이 사원이다. 영국 왕의 신성한 권위를 강조하려고 축조한 건물인 셈이다. 또한 이곳에는 영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3000여 명의 무덤이 있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를 비롯해 윌리엄 피트, 팔머스턴, 윌리엄 글래드스톤, 윈스턴 처칠 등 유명 정치가들의 이름도 올라있다. 

내 친구 윌리엄은 이곳과 인연이 깊은 한 바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수세기 동안 그 바위에서 스코틀랜드의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297년 에드워드 1세가 이 바위를 웨스트민스터로 운반해왔는데, 1950년 크리스마스 때 누군가 그것을 훔쳐갔으나 결국 되찾았다고 한다. 1996년 영국은 이 바위를 본래의 주인인 스코틀랜드에 돌려줬다. 현재 그 바위는 에든버러성에 보관돼 있는데,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통일을 상징하던 바위가 현재 스코틀랜드에 되돌아가 있다니, 둘 사이의 정치적 통합이 한계에 이른 현실을 반영하는 듯싶다. 




‘피시 앤드 칩스’ 빼고는…

영국인의 식탁을 칭찬하는 글이나 말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런던시민의 식습관이 소박한 탓이다. ‘피시 앤드 칩스(Fish&Chips)’가 영국의 사실상 대표 요리니 말이다. 생선튀김에 감자튀김을 곁들인 것인데, 튀김옷을 만들 때 맥주를 섞어 ‘맥주반죽(beer-battered)’을 만드는 점이 특이하다. 이 튀김요리는 산업혁명 때부터 유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면직 공장에서는 면화씨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고, 그 덕에 면실유도 시중에 많이 풀렸다. 값싼 면실유를 활용한 튀김요리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생선튀김은 전형적인 패스트푸드이자 스트리트 푸드라 할 수 있다. 

현재 런던에는 외국인이 경영하는 상점도 많고, 타국 요리 역시 넘쳐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이스트엔드는 벵골인이 전체 주민의 30%를 차지한다. 이 또한 역사적 산물이다. 18세기부터 동인도회사는 인도 북부지방 사람들을 선원이나 잡역부로 고용했다. 이런 인연으로 인도 출신 이민자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해 20세기 후반에는 특히 벵골인의 이주 활동이 활발했다. 

이들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연방에 속한 여러 나라에서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영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1971년 동파키스탄 분쟁을 계기로 그쪽 지역 출신의 이주가 빈번해졌다. 

내 친구 윌리엄도 이민자의 후예다. 그의 집안은 20세기 초 동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 매우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천신만고 끝에 재봉틀을 장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윌리엄의 할아버지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을 고용해 사업을 키워나갔다. 언젠가 한 기록을 통해, 그 무렵 1평방마일의 의류 공장에서 유대인 노동자 수만 명이 악조건을 참고 노동에 종사했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는데 윌리엄의 조상도 그랬던 것이다.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은 차츰 런던 생활에 적응하며 중산층으로 발돋움했다. 성공한 이주민들은 빈곤의 상징인 이스트엔드를 떠나 웨스트엔드로 옮겨갔고, 더 큰 기회를 잡고자 미국으로 떠나는 이도 많았다.


금융의 중심 ‘시티 오브 런던’

시티오브런던. [백승종 제공]

시티오브런던. [백승종 제공]

런던의 진짜 주인은 금융자본가들이다. 그들이 활동하는 ‘시티오브런던’은 면적이 3㎢도 못 되지만 이곳이야말로 중세 런던의 중심부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금융자본은 16세기부터 이곳에서 착실하게 성장해왔다. 물론 시티의 발전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고비가 있기는 했다. 

18세기 말의 일이었다. 나폴레옹 군대가 암스테르담을 함락시키자 유대인 금융업자들이 암스테르담을 떠났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였던 런던으로 이주해 유대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때는 복잡 미묘한 금융 수단을 완벽하게 장악한 금융 엘리트는 유대인뿐이었다. 그들이 상인, 군인, 산업가 등과 손잡고 영국을 세계의 지배자로 키웠다. 

현재 런던에는 480개의 해외 은행이 있다. 유럽의 500대 기업 중에서 100개 이상이 이 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고, 경제지 ‘포천’이 뽑은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75%가 런던에서 사무실을 운영한다. 런던 중에서도 시티는 세계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곳이다. 

그런데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반투표 이후 금융도시 런던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화지수가 매우 높은 런던시민들은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기를 바랐다. 시티의 중산층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브렉시트는 런던 금융의 파멸과도 같았다. 장차 시티의 금융 자산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외지로 떠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우세하다. 

그럼에도 영국시민의 다수가 브렉시트를 선택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시민들은 이미 공고해진 유럽연합 체제 아래서는 영국의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의 운영권을 독점해 영국은 국익을 보장받기 곤란하다고 봤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연합의 잘못된 이민자 정책 때문에 이민자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믿었다. 필자 개인의 소견으로,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이 걱정스럽다. 대영제국의 찬란했던 영광은 과연 이렇게 막을 내릴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동아 2019년 10월호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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