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KT&G는 40만 원 갈 주식”

[대한민국, 디스카운트 넘어 프리미엄으로] 이상현 FC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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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3-08-1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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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 본질은 기업 주인 되는 것

    • 참정권엔 투쟁 불사하는 한국인, 주주권엔 왜 소극적인가

    • KT&G=코리아 디스카운트 상징

    • 임대인이 밀린 월세 달라는 게 행동주의?

    • 권리, 쓰지 않으면 썩어

    • 아직 안 끝났다… “2차전 만반 준비 중”

    이상현 플래쉬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 대표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주식의 본질은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FCP]

    이상현 플래쉬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 대표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주식의 본질은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FCP]

    “주식의 본질은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주인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게 이토록 주목받을 일인가 싶다. 한국인은 대통령도 내쫓는 민족인데, 기업 앞에선 작아지는 것 같다.”

    말이 거침없다. 정제되지 않은 그의 말은 연일 이슈를 낳는다. 논란의 인물이다. 혹자는 “개인 주주들의 구원자”라고 추앙하고, 혹자는 “기업을 교란하는 위선자”라고 폄훼한다. 엇갈린 평가는 그가 ‘행동주의 펀드’의 수장으로서 몰고 온 ‘무언가’에서 비롯한다. 이 무언가 역시 누군가에겐 구태를 엎는 개혁이기도, 누군가에겐 평온을 깨는 망동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이러한 분분(紛紛)함의 원인은 ‘낯섦’에서 나온다고. 지난해 10월 KT&G에 인삼공사 분리 상장이라는 파격적 제안을 내놓으며 한국 주식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이상현 플래쉬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 대표 이야기다.

    이상현 대표는 서울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싱가포르투자청(GIC)·맥킨지·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거쳐 2011년 칼라일 한국대표로 부임했다. 2014년 ADT캡스를 2조650억 원에 인수해 2018년 SK텔레콤에 2조9700억 원에 매각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칼라일을 떠난 그의 선택은 FCP 설립. KT&G에 대한 주주 제안으로 국내 주식시장 복귀를 선언한 셈이다.

    지난해 10월 이 대표는 KT&G에 인삼공사 분리 상장·주주환원 정책 확대·비(非)핵심 사업 정리를 골자로 하는 주주 제안서를 보내며 싸움의 서막을 열었다. 해가 바뀐 후엔 3월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겨냥해 △현금배당 주당 1만 원 △추천 사외이사 선임 △분기배당 도입 등 조건을 늘렸다. 3월 16일 글로벌 의결기관 ISS가 FCP의 주주 제안에 100% 찬성하는 위임 의견서를 내면서 FCP가 승기를 잡는 듯 보였다. KT&G 지분 약 40%를 갖고 있는 외국계 주주가 ISS의 자문을 추종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KT&G 이사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무리한 요구”라고 반박하며 맞섰다. 사측 우호 지분을 끌어모으는 데 진력했다. 판세는 백중세로 흘러갔다.

    결과는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FCP가 제안한 안건 가운데 분기배당 도입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부결됐다. KT&G 지분 약 7%를 보유한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KT&G 측의 손을 들어준 영향이 컸다. FCP의 ‘완패(完敗)’라는 평가가 나왔다. 시장은 실망했다. 주총 당일 KT&G 주가는 종가 기준 8만7500원에서 8만5400원으로 2.4% 하락했다. 장 중 8만3400원(-4.69%)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3월 28일 대전 인재개발원에서 KT&G 정기 주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FCP와 KT&G 간 백중세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KT&G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뉴스1]

    3월 28일 대전 인재개발원에서 KT&G 정기 주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FCP와 KT&G 간 백중세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KT&G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뉴스1]

    이상현 대표는 패배를 인정한다고 했다.

    “완패 맞다. 35% 지지밖에 받지 못했으니까. 국민연금이 KT&G 측을 지지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내 능력 부족이지만 주총 결과에 대한 실망으로 주가가 하락했다. 최대주주가 주가 하락에 베팅할 줄 누가 알았겠나.”

    꺾인 건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이제 1차전을 마쳤을 뿐”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목소리를 내는 까닭으론 “KT&G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보여주고 있어서”라고 했다. FCP의 행보를 행동주의로 해석하는 데엔 동의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행동주의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6월 28일 인터뷰하는 내내 주식의 본질과 개인투자자의 각성을 강조했다. 인터뷰는 싱가포르 FCP 본사에 있는 그와 화상통화로 진행했다.

    40만 원 갈 주식이 8만 원대에 거래되니…

    왜 많은 기업 가운데 KT&G를 택했나.

    “KT&G는 시가총액 기준 코스피 20위권에 드는 큰 회사다. ‘국대급’ 회사라고 봐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격이라고 생각했다. 디스카운트 수준이 말이 안 된다. 동종 업계 기업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나는 해외 투자자들마다 입을 모아 ‘KT&G가 세계에서 제일 싼 주식’이라고 한다.”

    1주당 8만 원대 초~중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적정 주가가 얼마라고 보나.

    “최소 16만 원이다. ‘최소’라는 말은 즉 회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좋은 경영인도 데려오고, 전자담배 육성 강화 방안과 인삼공사 분리도 발표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전을 제시하면 40만 원도 갈 수 있다고 본다. 담배라는 상품 특성상 현재 저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자담배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기차 못잖은 혁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몸에 덜 해로운, 혹은 해롭지 않은 담배라면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지 않을까.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주주총회에선 이러한 주장이 통하지 않았는데.

    “그렇다. 사실상 완패한 게 맞다.”

    애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안을 요구한 것 아닐까. KT&G 이사회는 FCP의 제안을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주주 제안이 한국에서 너무 생소한 일이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주주가 제안을 하는 데 무리란 없다. 주주는 회사의 부하가 아니라 주인이다. 주인이 제안을 하는 데 무리란 게 어디 있나. 무리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가 있을 뿐이다.”

    누가 그런 시도를 하나.

    “경영진이다. KT&G는 한 사례에 불과하고, 한국 기업문화 전반이 그렇다. ‘한국 기업은 원래 이래’ ‘한국은 특수해’라면서 행동을 막는다. 주주들을 입맛에 맞게 요리하려 드는 행위다. 주주 제안은 상법이 수십 년간 보장한 권리다.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는 데 이토록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행동주의라 명명하고, 갑론을박하는 상황 자체가 놀랍다. 애초 행동주의는 실체가 없다.”

    “왜 기업 앞에선 작아지나”

    실체가 없다?

    “행동주의 펀드라고 명명하는 것이 편리해서 그렇게 불리고, 여겨지는 것이다. FCP는 행동주의 펀드가 아니다.”

    사실상 행동주의 펀드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오해가 있다. 한번 비유해 보자.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나 상가를 하나 샀다. 대출까지 받아 산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세입자가 월세를 안 낸다. 내라고 얘기했더니 주변에서 ‘당신 행동주의네’라고 한다. 심지어 ‘악하다’라거나 ‘위선’이라고까지 한다. 이상한 것 아닌가. 방송을 보면 주식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언제 사고 언제 팔지만 얘기하더라. 주식의 본질은 매수·매도가 아니다. 회사의 주인이 되는 것, 즉 의결권이다. 의결권 행사가 행동주의라는 것은 주식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낯선 모습이라 벌어지는 일이다. 흔히 봐오던 게 아니니까. 한국 주식시장에서 의결권 행사가 쭉 등한시돼 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투표율이 참 높은 나라인데, 의결권은 중요시되지 않으니 의아하다.”

    단순 비교가 가능한가.

    “원리는 같다. 정부가 국민에게 투표를 못 하게 한다고 해보자. ‘한낱 펀드매니저인 당신이 뭘 알아’ ‘한낱 학생인 네가 뭘 알아’라며 찍어 누른다. 용납할 수 있나. 설사 받아들인다고 해도 투표를 안 하면 국민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한국인은 권리에 둔감한 민족이 아니다. 군부 정권에 맞서 싸워 민주화를 얻었다. 촛불을 들어 대통령도 끌어내렸다. 그런데 왜 기업 앞에선 이렇게 작아지는가. 국민 모두가 대통령만큼 나랏일을 잘 알아서 투표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투표하고, 참정권을 얻기 위해 투쟁한 이유는 하나다. 권리는 안 쓰면 썩기 때문이다. 주주권도 마찬가지다. 써야 한다. 경영진을 적극 견제하고, 제안해야 한다. 내가 내 돈 주고 산 내 주식이다. 뭐가 눈치 보여 권리행사를 마다하나.”

    행동 계속할 것… “모든 저평가 기업이 후보”

    행동주의 펀드가 논란을 빚는 이유 가운데 ‘도덕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겉으론 ‘주주가치 제고’를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과거 소버린·앨리엇 등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이른바 ‘기업 사냥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강성부 펀드로 유명한 KCGI는 오스템임플란트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지난해 12월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6.92%를 보유하고 있다며 오스템임플란트 기업가치가 5분의 1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한 사모펀드가 진행한 공개매수에 응해 단기 수익만 챙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KIB프라이빗에쿼티는 ‘장기 투자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기조로 자이글 지분을 사들였다가 3개월 만에 처분하고 있다. 자이글 주가가 배터리사업 진출 호재로 급등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상현 FCP 대표는 “KT&G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상징하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KT&G 서울사옥 전경.[ KT&G]

    이상현 FCP 대표는 “KT&G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상징하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KT&G 서울사옥 전경.[ KT&G]

    FCP도 논란의 대상이다. FCP는 3월 KT&G 주주총회에 1주당 1만 원 배당 및 자사주 1조2000억 원 일시 매입을 안건으로 올렸다. 이를 위해선 총 2조4000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KT&G의 연결기준 순이익은 1조5억 원이다. KT&G가 “무리한 요구”라고 한 부분임과 동시에 국민연금이 KT&G 측의 손을 들어준 이유로 꼽힌다. 회사의 장기 발전을 고려한 요구가 아니라는 시각에서다. 이러한 도덕성 논란에 대해 이상현 대표는 “펀드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선악(善惡)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주 가치 제고를 말하며 주식을 팔거나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저해할 수준의 요구를 하는 건 모순 아닌가.

    “펀드도 주주다. 펀드매니저의 의무는 펀드 투자자에게 수익을 올려주는 것이다. 차익 실현은 선도, 악도 아니라고 본다. 다만 FCP는 다르다. 우리의 요구가 정말 허황된 것이었다면 ISS가 찬성했을까. KT&G는 지난해 영업이익과 순수익만 놓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국어 문제를 냈는데, 수학 문제로 답하는 꼴이다. 현재 사측에 쌓여 있는 현금이 7조 원이다. 이를 10년 넘게 주주에게 나눠주지도 않고, 추진한 신사업은 대개 실패했다. 제대로 쓰지도 못할 바에야 주주에게 주는 게 훨씬 낫지 않나. 그리고 FCP가 KT&G 주식을 보유한 지 곧 4년이 된다. 이쯤 되면 단기 투자는 아니지 않을까. 내게 직접 e메일을 보내오는 주주가 많다. 사연이 절절하다. 남편과 사별 후 받은 연금으로 KT&G 주식을 샀는데, 14만 원 하던 주식이 8만 원이 돼버렸다는 할머니도 있다. 경영진은 책임을 안 진다. 아니, 정확히는 책임을 지도록 주주가 강제해야 한다. 내가 더 열심히 싸워야 하는 이유다.”

    다시 KT&G에 주주 제안을 할 생각인가.

    “그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무엇이든 분명한 점은 회사가 잘되길 바란다는 것, 주주를 더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 계속 행동할 것이다.”

    혹시 다른 기업에도 주주 제안을 할 가능성이 있나.

    “물론이다. KT&G 같은 기업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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