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해야 사회적 합의 이룰 수 있어
빠른 속도보다 제대로 된 연금개혁이 중요
사회적 최약자층부터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
지역 중심 민관협력으로 위기가구 선제 지원
응급실 뺑뺑이? 컨트롤타워 구축해 적시성 개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홍중식 기자]
보건복지부 장관 집무실 앞에 “힘이 되는 평생 친구” 글귀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구자홍 기자]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장관 집무실 입구에 걸려 있는 액자 속 글귀다. 정부가 국민 삶을 보살피는 힘이 되는 친구 구실을 평생 하겠다는 다짐이 여덟 글자에 오롯이 담겼다.
‘平生(평생)’이란 단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떠올리게 했다.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국가가 국민 삶을 보호해야 한다며 강력한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국은 베버리지가 주장한 복지정책을 실시한 덕에 한동안 복지국가 원조국으로 여겨졌다.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은 복지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다. 현실은 아직 거리가 있다.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동안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국민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 생산적 맞춤복지는 윤석열 정부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다. 주권자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복지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보건복지 분야 정책 사령탑 구실을 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7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만났다.
조 장관은 행정고시 32회로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재정 전문가다. 기재부 재정기획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로 3년을 일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지내고 보건복지부 차관에 임명됐다. 장관 후보자가 잇달아 낙마하면서 차관 임명 넉 달 만에 장관에 올랐다. 관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조 장관의 성품과 능력을 잘 아는 한 전직 고위 관료 출신 인사는 “재정 전문가인 조 장관을 보건복지부 수장으로 앉힌 것은 연금개혁과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 1년간 보건복지 정책 기조는 뭔가.
“약자 복지와 필수 의료를 두 축으로 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개혁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
‘약자 복지’는 소득과 자산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전체 국민에게 똑같이 ‘보편적 복지’ 혜택을 주려 한 과거 정부와 차별화된 복지정책 기조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상징적 언어다.윤석열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최약자층부터 두텁게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5200억 원의 복지 예산이 있을 때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 과거 정부는 5200만 명 전체 국민 한 사람에게 각 1만 원의 복지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도록 공평한 정책을 주로 펴려 했다면 ‘약자 복지’를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최약자층 52만 명에게 1인당 100만 원의 복지 혜택을 집중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약자 복지’ 강화를 위해 윤석열 정부는 올해 기초생활보장제 등 각종 복지사업 선정 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을 인상했다. 4인 가구 기준으로 5.47% 올렸다. 이는 역대 인상 폭 중 최대치라고 한다. 또한 긴급 복지 생계지원금도 1인 가구 기준 49만 원에서 62만 원으로 인상했다.
사회적 약자층인 장애인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시범사업을 실시한 데 이어 올 4월에는 발달장애인 긴급 돌봄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 개인예산제’도 단계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홍중식 기자]
새로운 복지 수요 적극 대응
정부가 복지 확대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붇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지난해 또다시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조 장관은 “지역 중심 민관협력체계를 구축해 다양한 위기 신호를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복지위기가구 정보를 미리 파악해 지원하기 위한 지역 중심 민관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질병과 채무, 단전과 단수, 그리고 건강보험과 각종 세금 체납 등 다양한 위기 신호로 신속, 정확하게 위기가구를 파악해 필요한 복지 혜택을 선제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1인 가구 증가 등 사회 변화에 따라 ‘고독사’가 새로운 복지 사각지대 문제로 등장했다.
“5월에 고독사 예방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네 가지 추진 전략을 마련했다. 다양한 인적·물적 안전망을 활용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독사 위험군을 먼저 최대한 발굴하고, 사회적 연결을 위한 지역공동체 공간을 조성해 주민과 소통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자조 모임 등 소통과 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응급 상황을 감지해 대처해 나가겠다. 궁극적으로 청년층에게 정서와 취업 지원, 중장년층에게는 일상생활 문제 관리, 노년층에게는 의료와 돌봄 통합 지원 등 생애주기별 고독사 예방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 준비하고 있다.”
조 장관은 “가족 돌봄 청년이나 고립·은둔 청년, 돌봄·일상생활 사각지대 등 새로운 복지 수요에도 적극 대응해 나가고 있다”며 “복지 혜택을 몰라서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정보 제공과 홍보를 한층 강화해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여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연금, 교육, 노동을 3대 개혁 추진과제로 제시했다. 현재 국민연금개혁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빠른 개혁보다 중요한 것이 제대로 개혁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연금개혁을 목표로 두 가지 방향에서 연금개혁 논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 연금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이해관계자 및 청년 간담회 등을 통해 국민 여론을 세밀하게 수렴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에서도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다양한 개혁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충실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조 장관은 “과거 정부가 먼저 (연금) 개혁안을 만들고 추후에 국민을 설득하려 했을 때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개혁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국민과 함께해야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개혁안 윤곽은 언제쯤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나.
“서둘러도 10월까지 완전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국회에 (연금) 운영 계획을 보고하고, 이후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법제화 과정에도 여러 의견을 청취해 반영하도록 하겠다. 보험료를 얼마나 올리느냐, 소득대체율은 얼마로 하느냐 하는 수리적 추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수리가 아니라 국민 수용성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연금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정부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연금개혁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국민이 충분히 참여해 개혁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여론을 적극 수렴해 나가려고 한다.”
연금 문제는 국민의 노후보장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예민한 문제다. 특히 연금 수혜자인 고령인구는 크게 느는 데 비해 연금보험료를 부담해야 할 미래세대 출산율이 현저히 낮아져 연금이 지속가능한지 청년층이 의문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월 30만 원 수준의 기초연금 수급액을 월 4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도 현안으로 대두한 상태다.
조 장관은 지난해 12월 19일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 국민연금은 노후 소득 보장 측면에서 상호 연계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초연금 10만 원 인상 방법이나 시기는 국민연금 개혁과 긴밀히 연계해 논의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연금개혁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라면 저출산 문제는 대한민국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다. 화제를 저출산 대책으로 옮겼다.
역대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생률이 좀처럼 높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누적돼 온 일이기에 단기간에 추세를 회복시킬 방법은 없다. 다만 기존 저출산 예산이 방만하게 너무 많은 것을 해왔기 때문에 돌봄과 양육 등 5개 부문에 초점을 맞춰 핵심 과제 중심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복지부는 저출산 예산에 대한 정책 연관성과 효과, 국민 체감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돌봄·교육, 일·육아 병행, 가족친화적 주거 서비스, 양육비용 지원, 건강 등 5대 핵심 분야에서 체감도 높은 정책을 선별해,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지출 효율화 방안 마련
조규홍 장관은 “국민 의견을 반영해 연금 개혁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국민연금공단. [뉴시스]
“건강한 노후, 그리고 여유 있는 노후를 위해서는 필수 의료와 연금 분야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두 분야에서 차질 없이 대비하도록 하겠다.”
고령층 필수 의료를 강화하려다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초 건강보험 재정의 낭비 요소를 없애기 위한 지출 효율화 방안을 마련했다. 단기간에 급속히 늘어난 일부 자기공명영상 촬영 검사(MRI)와 초음파 검사의 적정성을 재검토하고, 의료서비스를 과다 이용한 분들의 본인 부담률을 적정하게 조정할 예정이다. 또한 산정특례 관련 경증 합병증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외국인 피부양자의 건강보험 자격요건을 정비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증가와 더불어 보장성 확대를 기조로 한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1인당 의료비 증가 속도는 연평균 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4%의 2배 수준에 달했다. 실제로 2018년 1891억 원에 그친 MRI·초음파 검사 진료비는 2021년 1조8479억 원으로 3년 만에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조 장관은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 방안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행위수가제 보완과 병상관리 및 전달체계 개선, 비급여 관리 개선 등 구조적 개혁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해 올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자가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응급실 과밀 해소 문제는 국민 모두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다. 경증 환자의 경우 자발적으로 1, 2차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와 상담을 강화할 예정이다. 향후 5년간 정부는 전국 어디서나 최종 치료까지 책임지는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목표로 응급 인력과 시설 확충, 전달체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은 의료자원의 적절한 배분 등을 통해 응급실 과밀화 문제부터 해소해 나가려고 있다. 응급실 현황을 관리할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정보의 적시성을 개선함으로써 과밀화 문제부터 해소해 나갈 계획이다.”
필수 의료와 응급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의료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의사 정원 확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의료 인력 확충에 대한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 지금까지 공급 측인 의사들과 2020년 9월 체결한 의정 합의에 따라 먼저 논의했고, 지금은 의료 수요층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앞으로 의료 현장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에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의대 정원이 확충된다 해도 그것만으로 필수 의료에 대한 지역 간, 진료 과목 간 불균형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와 별도로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과 근무 여건 개선, 합리적 보상 등 대책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논의를 마치고 종합적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신동아 8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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