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호

GS家 4세 승계 ‘홍’ 4파전 판세 재편

[거버넌스 인사이드]

  • reporterImage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3-07-27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능력 있으면 누구나 왕좌 오를 수 있다”

    • 46명의 허 씨가 나눠 가진 GS그룹

    • 허세홍·허윤홍·허서홍·허준홍 4파전 양상

    • 허윤홍 책임론… “3파전 변화 가능성 충분”

    GS그룹의 모태는 LG그룹이다. 1947년부터 구씨·허씨 ‘한 지붕 두 가족’이던 LG그룹에서 2004년 허씨 일가가 정유·유통·건설 등 주요 사업을 들고 나와 GS그룹을 만들었다.

    뿌리는 같되 가지는 다른 모양으로 자랐다. LG그룹이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반면 GS그룹은 가족 공동 경영을 원칙으로 한다. 이익을 공유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가족회의’를 거쳐 내린다. 이러한 수평적 방식은 힘의 고른 분배에서 비롯한다. 가문 2·3·4세가 그룹 지주사 ㈜GS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

    “GS그룹만 특이해”

    승계에도 뚜렷한 원칙이 없다. 1대 고(故) 허만정 GS그룹 창업주는 3남 고(故)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에게, 허준구 명예회장은 장남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에게, 허창수 명예회장은 막내 동생 허태수 GS그룹 회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현 회장의 맏아들이 아니어도,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어도 그룹 통수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셈. 뚜렷한 강자가 없는데, 누구에게나 왕도(王道)가 열려 있다. 분쟁의 불씨다.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한국 대다수 대기업은 승계 원칙이 분명하다. 맏이에게 물려주거나, 아예 계열분리를 진행한 후 다음 세대가 나눠 가져 각자도생하게끔 한다. 이른바 ‘왕자의 난’과 같은 분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GS그룹은 특이하다. 뚜렷한 원칙이 없는데, 각자의 힘이 고만고만하다. 차기 총수 자리를 놓고 춘추전국시대나 군웅할거(群雄割據) 정국이 열려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까진 균열이 없었다. ‘수’자 돌림 3세까진 그랬다. ‘홍’자 돌림 4세로 내려가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 A씨의 분석이다.



    “2세끼린 형제, 3세끼린 사촌, 4세끼린 육촌이다. 형제끼리도 원수처럼 싸운다. 사촌도 이제 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육촌은 말해 뭐 하나. 지금까진 3세들의 영향력이 남아 있어 큰 분란이 없었지만 대개 60대 이상임을 고려하면 4세 승계는 초읽기다. 더구나 허태수 회장에겐 아들이 없다. 경영 성과든, 지분율이든 스스로를 증명하는 인물이 왕좌를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 실제 허씨 일가는 가족회의에서 4세들의 경영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4세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이미 수면으로 오른 잠룡(潛龍)들이 있다. 드러난 구도는 4파전이다. 레이스는 시작됐다. 승기를 잡기 위해선 경쟁자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 박빙 승부는 작은 것 하나에 승패가 갈린다. GS그룹 4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유력’ 허세홍·허윤홍 ‘다크호스’ 허서홍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허서홍 ㈜GS 부사장. 허준홍 삼양통상 사장(왼쪽부터 순서대로). [각 사]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허서홍 ㈜GS 부사장. 허준홍 삼양통상 사장(왼쪽부터 순서대로). [각 사]

    GS그룹 지배구조 핵심은 지주사 ㈜GS다. 통상 지주사 지분율에 따라 특정인의 지배력과 힘의 이동을 가늠한다. GS그룹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46명의 허 씨, 일가 전체를 포함하면 52명이 50.2%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다. 10% 이상 지분 보유자가 한 명도 없다. 올해 6월 말 기준 최대주주는 허용수 GS에너지 사장이다. 지분율이 5.26%에 그친다. 총수 허창수 명예회장, 허태수 현 회장의 지분율도 각각 4.75%, 2.12%에 불과하다. 따라서 GS그룹 승계 구도를 예측하는 데엔 ‘성과’가 지분율의 기능을 갈음한다.

    이런 관점에서 첫 번째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허세홍(54) GS칼텍스 사장이다.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4세 일가 가운데 맏형이다. 2018년부터 그룹 주요 계열사 GS칼텍스 경영을 맡아와 충분한 경륜을 쌓았다고 평가받는다. 경영 성과도 준수하다. 지난해 ㈜GS가 거둔 영업이익 5조120억 원 가운데 75.8%(3조8030억 원)이 GS에너지로부터 나왔다. GS칼텍스는 GS에너지의 주력 자회사다. 사실상 GS칼텍스가 그룹 수익 4분의 3을 책임졌다고 여겨진다.

    허윤홍(44) GS건설 사장도 빠지지 않는다. 2020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서 배터리 리사이클, 수처리, 인공지능(AI) 사업 등 신사업부문에 주력하고 있다. 매년 성장세를 이뤄냈다. 2019년 GS건설 신사업부문 매출은 2936억 원에 불과했다. 허윤홍 사장이 지휘봉을 잡은 2020년엔 6111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2021년 7773억 원을 기록하고, 지난해엔 1조256억 원을 거두며 최초로 1조 원 넘는 매출을 달성했다. GS그룹은 주요 사업 건설·유통·정유가 모두 미래 사업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그룹 차원에서도 신사업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허태수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투자와 혁신의 씨앗을 신사업으로 발전시키는 한 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허윤홍 사장에게 가점이 주어지는 이유다. 허창수 명예회장의 장남이라는 점도 ‘플러스’ 요소다.

    그룹의 신사업 추진 의지는 허서홍(46) ㈜GS 부사장이라는 ‘다크호스’를 낳았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차남이다. 4세 가운데 유일하게 지주사에 몸담고 있다. GS에너지에서 일하다 허태수 회장 취임 후 지주사로 가 미래사업팀을 맡았다. 기업 인수합병(M&A), 스타트업 투자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 B씨는 “GS그룹이 눈여겨보고 있는 미래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이오다. 2021년 바이오 기업 휴젤을 인수할 때 허서홍 부사장의 역할이 컸고, 공로를 인정받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며 “총명해 허태수 회장의 신망을 받고 있다. 지주사로 부름받은 데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지주사에 있다 보면 그룹 전반에 대해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향후 승계에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리턴’ 허준홍 + ‘자이 사태’ 변수

    판세를 흔드는 변수가 생겼다. 허준홍(48) 삼양통상 사장의 귀환이다. 허준홍 사장은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맏아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이다. 허정구 명예회장은 허만정 창업주의 1남이다. 즉 허준홍 사장은 허씨 일가의 장손으로서 정통성을 가진다. 이로 인해 2019년 GS칼텍스 부사장을 지낼 때만 해도 유력 주자로 빠지지 않고 거론됐으나 이듬해 삼양통상으로 자리를 옮기며 후계 구도에서 이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양통상은 허정구 명예회장이 개인적으로 세운 회사라 타 계열사와는 달리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반년 동안 허준홍 사장은 ㈜GS 지분율을 급격히 끌어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해 5월 4일까지 115억 원어치 지분을 매입하며 지분율을 2.85%에서 3.15%로 끌어올렸다. 지분율로는 허세홍 사장(2.37%)·허윤홍 사장(0.53%)·허서홍 부사장(2.12%)을 뛰어넘고, 허태수 명예회장에 이어 그룹 내 3위다. 정통성·지분율을 무기 삼으면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미치리라는 게 업계 중론이지만 뚜렷한 경영 성과를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레이스에서 경쟁자의 실족(失足)은 곧 기회다. 근래 GS건설에 불어닥친 부실시공 논란도 변수다. 4월 29일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사건이다. 정부 당국 조사 결과, 철근 누락과 저강도 콘크리트 사용 등 부실시공이 드러났다. GS건설은 해당 아파트를 철거하고 전면 재시공하기로 했지만 ‘순살 자이’라는 오명까지 벗겨내진 못했다. 7월 11일 서울 강남구 개포 자이가 집중호우에 침수되며 ‘워터 자이’라는 조롱까지 더해졌다. 이로 인해 GS리테일, ㈜GS 주가가 하락하는 등 그룹 차원에도 피해가 생겼다. 허윤홍 사장으로선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 C씨는 “이번 ‘사태’는 GS건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건설업계 전반에 누적돼 있던 병폐가 드러난 것이긴 하지만 참작 사유일 뿐이다. 허윤홍 사장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간 부조리를 방치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전문가 A씨는 “허준홍 사장의 귀환과 함께 향후 후계자 경쟁 구도를 흔드는 변수”라며 “근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트렌드로 대두했다. ‘책임 경영’을 강조하는 시점에 경영 능력 자체를 문제로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라 본다. 허윤홍 사장이 사태를 잘 수습하지 못하면 향후 후계 구도에서 멀어질 수 있다. 허세홍·허서홍·허준홍 3파전으로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과거와 현재 대화로 ‘K-아트’ 새로 태어나다

    대한항공, ‘복 주는 도시’ 푸저우 가는 길 열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