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호

단독

CJ, ‘북한산 옷’ 중국산 둔갑시켜 팔았다

  • 김승재 저널리스트 phantomalone@naver.com

    입력2023-07-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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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지법, CJ 대외무역법 위반 유죄판결

    • 인지하고서도… “허위”→“우린 몰랐다” 해명

    • 2017~2018년 점퍼 9만4860점 북한산→중국산 둔갑

    • 경영 철학 ‘정직’ 되새길 때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소재 D사 전경.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소재 D사 전경.

    2017년 9월 자사 홈쇼핑 방송 CJ오쇼핑(현 CJ온스타일)에서 북한산 옷을 중국산 옷으로 팔아 2021년 9월 기소된 CJ ENM에 대해 법원이 올해 7월 벌금형을 선고했다. 기소된 지 1년 10개월 만의 판결이다. 인천지방법원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CJ ENM에 벌금 1000만 원, CJ오쇼핑 부장 K씨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CJ오쇼핑에 의류를 납품한 A사와 A사 관계자 2명에게도 관세법·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각각 벌금형을 선고했다. 아울러 서울 A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중국 B사 대표에게는 관세법·대외무역법 위반, 관세법 위반 방조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북한산 점퍼에 중국산 라벨 붙여 판매

    2017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잦은 미사일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을 벌였다. 이에 유엔 안보리는 네 차례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했다. 미국은 역대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 조치 내용이 담긴 대통령 행정명령 ‘13810’을 발동했다. 이 조치에 따라 2017년 9월 이후로는 북한 노동자가 만든 섬유 제품을 수입하는 행위가 명시적으로 금지됐다.

    이러한 상황에 2018년 가을 CJ ENM의 홈쇼핑 채널인 CJ 오쇼핑이 평양에서 만든 의류 제품을 중국산으로 둔갑시켜 팔았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과정은 이렇다. 2018년 봄 CJ오쇼핑은 서울의 중소 의류제조업체 A사와 가을 기획 상품 판매를 추진했다. 두 종류의 점퍼 세트 상품이었다. 하나는 국내 브랜드인 ‘`F○○’와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공동 작업) 제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키스 해링(Keith Haring)’ 제품이었다.



    제너럴 아이디어는 글로벌 디자이너로 인정받는 한국의 대표적 디자이너 최범석의 의류 브랜드다. ‘키스 해링’은 1990년 30대 초반 나이로 숨진 미국의 미술가다. 앤디 워홀과 함께 세계 3대 그라피티 아티스트(graffiti artist·낙서 미술가)로 불린다. CJ 오쇼핑은 세계적 예술가와 한국 디자이너의 디자인이 들어간 점퍼 세트 의류를 ‘2018 가을 기획 상품’으로 판매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CJ오쇼핑과 계약 이후 서울 A사는 중국 장쑤(江蘇)성 장인(江陰)시에 있는 B사와 제품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B사는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에 있는 C사에 하도급을 줬다. 그리고 C사는 북·중 접경 도시인 랴오닝성 단둥(丹東)시의 D사와 임가공 계약을 체결했다.

    북한 평양 소재 E사 노동자들이 F○○-제너럴 아이디어 점퍼를 만지고 있다.

    북한 평양 소재 E사 노동자들이 F○○-제너럴 아이디어 점퍼를 만지고 있다.

     E사 노동자가 키스 해링 점퍼를 들고 있다.

    E사 노동자가 키스 해링 점퍼를 들고 있다.

    2018년 9월 14일 CJ오쇼핑 방송에서 쇼호스트들이 F○○-제너럴 아이디어 점퍼를 판매하고 있다. 이들은 본 제품이 ‘중국산’이라고 말했다.

    2018년 9월 14일 CJ오쇼핑 방송에서 쇼호스트들이 F○○-제너럴 아이디어 점퍼를 판매하고 있다. 이들은 본 제품이 ‘중국산’이라고 말했다.

    D사는 북한 노동자 수십 명이 일하는 회사다. 평양의 봉제 공장 여러 곳과 임가공 계약을 맺고 주요 생산은 평양에서 했다. 점퍼 생산을 위해 D사가 손잡은 회사는 북한 평양 소재 E사였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E사에서 완성품이 만들어졌다. E사는 키스 해링 야상 점퍼와 F○○-제너럴아이디어 항공 점퍼 총 4만 점을 ‘중국산’ 라벨을 붙여 완성했다. E사에서 만든 점퍼는 2018년 9월과 10월 D사로 밀수됐다. 이 가운데 F○○-제너럴 아이디어 항공 점퍼 약 2만 점은 같은 기간 CJ오쇼핑 방송을 통해 팔렸다. 방송에서 남녀 쇼호스트는 북한산 항공 점퍼를 입고 ‘중국산’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부인하다 증거 나오자 말 바꾼 CJ

    두 점퍼를 평양에서 만들었다는 사실과 관련해 CJ오쇼핑을 비롯한 A·B·C·D 각사 입장은 판이했다. 중국에 있는 기업은 모두 시인했지만 한국에 있는 기업은 전면 부인했다. CJ오쇼핑과 A사는 비슷한 해명을 내놨다. 처음엔 ‘허위 제보’라며 완강히 부인하다 증거가 하나둘 나오자 “우린 몰랐다. 우리도 당했다”고 말을 바꿨다.

    CJ 상하이 지사 CJ IMC 직원이 D사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 ‘한국·유럽·내수 작업하는 북한 작업자 80명이 있는 중소형 공장’이라고 써 있다.

    CJ 상하이 지사 CJ IMC 직원이 D사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 ‘한국·유럽·내수 작업하는 북한 작업자 80명이 있는 중소형 공장’이라고 써 있다.

    결정적 증거는 CJ 내부 문건에서 나왔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CJ 자회사 CJ IMC(International Merchandising Company) 직원이 D사 공장을 찾아 공장 심사를 한 후 작성했다. CJ오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공장인지 평가하는 심사였다. 보고서 첫 장 ‘요약’ 부분 서두엔 D사에 대해 ‘주로 한국과 유럽, 중국 내수 작업을 하는 북한 노동자 80명 안팎이 일하는 공장’이라고 썼다. 또한 “공장에서 작업하는 제품 일부는 북한에서 봉제 작업 후 본 공장에서 완성 작업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A사와 B사의 임원·실무진 9명이 참여한 메신저 단체 대화방. 북한 평양에서 제작한 점퍼 납품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A사와 B사의 임원·실무진 9명이 참여한 메신저 단체 대화방. 북한 평양에서 제작한 점퍼 납품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2018년 7월 5일 중국 장쑤성 장인시 소재 B사 관계자가 랴오닝성 다롄시 소재 C사 관계자에게 보낸 e메일. D사가 ‘북조선 공장’임을 상부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2018년 7월 5일 중국 장쑤성 장인시 소재 B사 관계자가 랴오닝성 다롄시 소재 C사 관계자에게 보낸 e메일. D사가 ‘북조선 공장’임을 상부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CJ IMC 직원이 CJ 본사 및 A사 관계자에게 보낸 메일. ‘북한 작업자 공장’이라는 말이 명시돼있다.

    CJ IMC 직원이 CJ 본사 및 A사 관계자에게 보낸 메일. ‘북한 작업자 공장’이라는 말이 명시돼있다.

    이뿐 아니라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도 A사 관계자가 평양 생산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다수 확인됐다. 이 단체 대화방은 A사와 B사의 임원과 실무진 등 총 9명이 참여한 대화방이다. 대화방에서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만든 제품이 언제, 얼마나 오는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증거는 또 있었다. D사에 대한 평가 보고서가 나온 바로 다음 날인 2018년 6월 21일 CJ IMC는 CJ 서울 본사와 A사 관계자 여러 명에게 이 평가 보고서를 e메일로 보냈다. e메일에서 CJ IMC 관계자는 “본 공장은 북한 작업자 공장으로 라인 사진 촬영은 금지”라고 덧붙였다. 이는 2018년 6월 CJ와 A사 모두 D사가 북한 작업자들이 일하는 공장이며 북한에서도 생산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 A사는 이 보고서를 바로 다음 달인 7월 5일 B사에 e메일로 보냈고, B사는 이를 이날 바로 C사 관계자에게 e메일로 전달했다. 본문엔 이렇게 썼다.

    “북한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공장이라 현장 사진에서 인원이 나오지 않게 촬영했다고 보고됐다. 북조선 공장임을 상부에 보고했으니 이후는 별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됨.”

    한편 CJ는 이 증거들에 대해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다"라며 "2021년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 결정을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2017년에도 북한산 판매

    CJ는 2017년에도 북한산 제품을 판매했다. 방식은 2018년과 비슷했다. A사가 수입했고, B사가 함께했다. A사와 계약한 B사는 단둥의 L사와 계약을 맺었다. L사 역시 D사처럼 북한 봉제 공장과 손잡고 대부분 생산을 북한에서 하는 기업이었다. 또 L사가 계약한 회사는 평양의 봉제 회사 M사였다. M사에서 만든 제품은 두 종류로 모두 F○○ 브랜드였다. CJ오쇼핑은 이 제품 역시 중국산으로 팔았다.

    CJ는 D사에 한 것과 같이 L사에 대해서도 공장 평가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 역시 요약 제1항에 “본 공장은 북한 공장으로 점검 진행 시 사진 촬영 불가하여 공장 책임자 촬영 사진으로 사용했음”이라고 기록했다.

    검찰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2017년 5월부터 10월 사이 10회에 걸쳐 북한산 의류 7만5447점을 약 70만 달러에 수입했다. 2018년에는 9월과 10월 9회에 걸쳐 북한산 항공 점퍼 1만9413점을 수입했다. 2년간 총 19회에 걸쳐 9만4860점의 북한산 의류를 중국산으로 둔갑시켜 수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A사는 관세 4000여만 원을 포탈했다. 오기두 판사는 피고들의 항변에 대해 B사 대표의 다음 증언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A사는 처음부터 북한에서 생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경영 철학 첫 번째 원칙 ‘정직’

    여러 관계자의 구체적 증언과 사진·동영상·계약서·e메일·메신저·보고서 같은 증거는 CJ 측이 북한산 제품임을 인지하고도 수입해 판매했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CJ는 명약관화한 증거가 여럿 있는데도 5년간 “우리는 몰랐다. 하청업체에 당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호주의 세계적 서핑 의류업체 ‘립컬’과 비교된다. 2016년 2월 한 호주 언론은 “북한에서 생산한 립컬 브랜드 의류가 중국산으로 둔갑해 해외 매장에서 판매돼 왔다”고 보도했다. 보도 직후 립컬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해당 하도급업체와 관계를 청산하고 북한산 제품 판매 수익을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6대 후속 조치를 내놨다.

    CJ는 경영 철학으로 ‘행동 원칙’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가 ‘정직’이다. CJ는 지금이라도 이 원칙을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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