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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 인터뷰­|제1부 YS 남북회담-국내정치 본격 발언

“주석궁과 청와대 핫라인 설치하려 했다”

김일성과의 ‘불발 정상회담’ 내막

  • 대담: 김종심 동아일보 출판국장, 황의봉 신동아 편집장 정리: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주석궁과 청와대 핫라인 설치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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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상회담이 이른바 햇볕정책의 성과라는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아니면 북한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게 된 것에는 뭔가 다른 배경이 있다고 보십니까?

“김대중씨가 만나자고 계속 사람을 보내고, 그렇게 해온 것 아닙니까? 그 때에도 특사교환이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불바다 발언이 나오는 바람에 비밀접촉을 그만두었지만, 여러 갈래로 대화를 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때 김우중 회장, 장치혁 회장이 북한에 직접 투자를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북한에 다녀 오면 내가 직접 보고를 받았어요. (북한에 대해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 정보망이 있어요. 미국이 많이 갖고 있고, 중국이 갖고 있고, 특히 독일 대사관에 북한 정보가 많아요. 이스라엘 정보망도 대단합니다.”

―그런 다양한 접촉이 있었군요. 그런데 방금 질문한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북한의 경제사정이 참 어려운 입장에 있거든요. 김일성 시절에도 어려웠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나쁘다고 봅니다. 내가 여러 경로로 보고를 받아보면 전기불이(천장의 전등을 가리키며) 이렇게 켜져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만큼 전기사정이 나쁩니다. 내가 재임때 케도(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차원에서 우리 기술자들이 많이 가 있는데, 전기가 계속 나가버린다는 거예요. 이북이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전화가 되는 데가 거기 뿐이라는 겁니다.

또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북 사람들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처음에 가서 보니까 이 사람들이 일을 잘 안하더라는 거예요. 배가 고파서 일을 못한다는 거예요. 식당에 칸막이가 돼 있어서 이 쪽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고 저쪽은 이북 사람들이 먹는 곳인데, 저 쪽이 너무나 못 먹고 지내는 거예요. 그래서 한전에서 이북 노동자들에게 점심을 해줬습니다. 한 끼를 해주는데, 겁나게 먹더라네요. 그렇게 한끼씩 주고부터 일을 굉장히 잘하더라는 겁니다.”



―정상회담이 성사된 게 햇볕정책 또는 정부의 대북한 포용정책의 효과라기보다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 덕분이라는 얘기시군요. 그러나 배경이야 어쨌든 이번 정상회담이 앞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시작이 될 수 있을까요?

“(북한이 개혁·개방을 할 경우) 체제가 무너진다고 보기 때문에 그건 못하고, 한국·미국·일본에 손을 벌리는 일만 계속할 것으로 봐야지요. 일본의 최고 목표가 금년내로 북한과 수교하는 겁니다. 고노외상이 신년 초에 기자회견하는 것을 NHK에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2주일 전인가 북·일 수교회담이 결렬됐거든요. (북한이) 미국과 하고 있는 것, 일본과 하고 있는 것, 한국과 하고 있는 것이 다 관련된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동안 주적(主敵)을 북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우리 군대의 존재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내가 북한에 대해서 100% 안다고 하면 지나친 이야기가 되겠고 남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셈인데, 내가 야당 총재이던 89년 모스크바에서 허담을 만났을 때 허담이 나에게 이야기한 것을 우리 국민들이 다 잊었어요. 그때 허담이 얘기하는 요점이 세 가지입니다. 먼저 나에게 무조건 김일성을 만나러 가자고 최고의 환영을 할 것이다, ‘비행기 타고 평양으로 바로 가자, 두 분이 만나면 얘기가 참 잘 되실 겁니다’ 이러는 겁니다.

또 하나는 미군철수, 세 번째는 국가보안법 폐지,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요점인데, 물론 내가 다 반대한 거지요. 나도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소련에 온 거지 이북에 가려고 온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건 안된다, 이렇게 말해도 계속해서 미군 철수, 보안법 폐지 얘기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건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것 아니냐, 두 가지 다 절대로 안된다’ 두 시간 동안 그것만 갖고 씨름했어요.

마지막에는 내가 ‘이야기 다 했으니 헤어지자’고 하면서 포도주를 한 잔씩 먹었어요. 그랬더니 허담이 ‘만나기 어려운 김영삼 총재를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져서야 되겠습니까. 둘이서만 잠시 만나시죠’ 이러더란 말이에요. 내가 순간적으로 가만 생각해보니까 저 쪽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허담 서기, 우리가 할 얘기 실컷 했지 않느냐.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평양방문 하자는데 나는 안된다고 했고,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고 일어섰어요. 만일 그 때 둘이서 별도로 만났더라면 무슨 이야기를 뒤집어 씌웠을지 몰라요.

이번에도 북한이 두 가지 중 하나는 제의하지 않겠느냐고 볼 수 있는데, 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 모두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또, 이건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예요. 서로 연계돼 있어요. 미군이 철수하면 보안법은 있으나 마나이고, 보안법을 폐지하면 미군이 여기에 있지를 못해요. 나가라고 요구하면 결국 나가야 해요. 그러면 적화통일 되는 거지. 이건 굉장히 중요한 얘기예요. 이번에 북한이 제의할 게 분명해요. 보안법이 생기고, 미군이 들어오고 나서 김일성, 김정일의 주장 중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바로 미군철수와 보안법 폐지예요. 다른 것들은 다 변해요. ‘군사정권 도둑놈들과 다시는 안 만난다’고 했다가 뒤로는 만나고 하는데, 이것만은 절대 안 변해요.”

―94년 당시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사전에 이야기가 없었지요. 조건 없이 만난다는 거였어요.”

―이번에 예비 회담에서 그것도 의제로 나올까요?

“일단은 피해 가고, 직접 만나서는 100% 제기할 겁니다. 지난 50여년 동안 북한의 정책 중 변하지 않은 게 그 두 가지예요.”

―그 두 가지가 김대중 대통령이 절대로 받아 들여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그렇게 봐요. 김대통령이 보안법에 대해서 이런저런 소리를 하지만,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들어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무라야마 총리가 나한테 혼났지”

―앞으로 당국 차원이든 민간차원이든 경협 물꼬가 트인다든지 북일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사람·상품·자본의 왕래가 상당히 있을 텐데, 이런 일들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개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요. 미국과의 관계도 그렇고, 나는 대통령 시절에 김대중씨와는 그런 점에서 정책이 달랐어요. 북한이 미국하고 수교하면 절대 안된다, 일본과도 수교하면 절대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일본이 이상한 짓을 많이 했거든요. 무라야마 총리가 나한테 혼났습니다. 우리의 38선은 다 너희 때문에 생긴 거다, 우리가 식민지가 아니었더라면 어째서 이런 게 그어지노, 우리가 독립국가 같으면 어떻게 연합군이 그런 선을 긋노, 우리가 분단돼 50년간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너희가 북한과 수교해서 남북한이 영원히 분단되도록 큰 역할을 하겠다는 거냐, 그것은 우리 국민들의 큰 꿈인 통일을 영원히 막는 일이니까 안된다, 이렇게 반대를 했어요.

내가 대통령일 때는 미국도 굉장히 어려워했어요. 북한과 비밀 접촉할 때는 사전은 물론이고 접촉 과정과 사후에도 나한테 알려야 된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이 참으로 어려운 과정을 겪었어요.”

―이번 회담이 성사되기 전부터 북한 특수(特需)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아이고, 없는 사람한테 특수가 있을 게 뭐 있어요.”

―야당에서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뒷돈을 주지 않았느냐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북한을 개방으로 끌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물자와 돈의 제공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 않습니까? 인도적 차원에서나 통일비용 차원에서나 말이죠.

“정주영 씨가 나한테 와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김대중 씨가 이야기한 것도 아니지만, 현대 정주영 씨가 그동안 제일 큰 역할을 해왔다고 봐요. 북한에 갔다 오고 일본에도 갔다 온 것이 전부 그거라고. 그게 제일 중요한 거라고 봐요.”

―돈과 물자를 상당한 규모로 지원할 것 같은데 그건 불가피한 겁니까?

“그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실 어느 정도 북한을 도와줘야 하지만 우리 세금하고 관계 있는 것 아니요. 지나치면 문제가 되죠.”

―적절한 규모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내가 재임 때 북한에 쌀을 5만t 줘 본 일이 있는데 공산주의는 주면 줄수록 욕을 하더라고. 내 경험인데요, 그때 자기네들이 죽겠다고 해서 이석채 경제기획원 차관이 전금철과 평양에서 회담을 했어요. 내가 보통 차관에게서 보고를 받지는 않는데, 이것은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이 쪽에서 파견할 사람 전체를 만나고, 갔다와서도 만났어요. 이석채 차관에게서 그 내용을 보고받았는데 수첩에 가득 적어왔더라고요. (북측이) 살려달라고 하면서 반 죽었더랍니다.

그래서 그때 15만t을 주기로 해서 1차로 5만t을 주면서 성의를 다했어요. 북한이 나쁜 쌀을 줬다고 트집잡을 수 있으니까 햅쌀로 전국에서 방아를 찧어 좋은 쌀을 보내도록 했어요. 부산 목포 군산 속초 등 벼를 바닷가에서만 보낼 수 있잖아요. 전국의 정미소가 돌아가면서 성의를 다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난데없이 인공기 게양사건이 생기고, 우리 배와 사람들을 가두고 그랬잖아요. 죽는다고 해서 쌀을 제공해줬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합니까? 그게 바로 북한이에요. 북한은 앞으로도 그렇다고 봐야 돼요.”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너야 한다고 하는데, 공산주의는 정말 두드려보면서 가야 합니다. 내가 재임 때 세계 사회주의 정당들의 대표를 만난 일이 있어요. 옐친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소련 공산당 당수도 오고, 사회주의 정당 대표들이 세계적으로 모였는데 내가 같이 점심을 먹은 일이 있어요. 그런데 소련공산당 책임자 말이 재미있어요. 공산주의자는 주면 줄수록 다 받아먹고 욕은 더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할 겁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김일성 주석은 자기가 만나자고 한 것 아닙니까? 김일성이 결정을 내려서 적극적으로 만나자고 나와서 정상회담 건이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그것과 이번 일(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은 조금 다르죠. 김정일이 만나자고 한 게 아니라 여기서 김정일이를 계속 만나자고 한 것이거든요. 뭐하러 만나자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계속 만나자고 하니까 만나는 거예요. 그때(재임 때) 하고는 성질이 다르죠.”

“정상회담, 김정일이 DJ 봐준 것”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북한으로서도 필요가 있으니까 만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그런 결정을 한 것도 다른 누구와 하는 것보다는 김대중이 우리하고 이야기가 된다, 그 이면은 짐작에 맡기고, 이 때에 하는 것이 좋다, 선거 전에 하는 것이 김대중을 도와주는 것도 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김대중씨가 자꾸 빨리 하자고 그랬고, 김정일도 맞춰준 거예요. 효과가 어느 쪽이 제일 있겠느냐, 해가지고 맞춰준 거예요. 선거 사흘 전이 제일 좋겠다 해서. 0.001%만 선거에 영향을 주어도 (여당이) 이기는 거니까요. 이 쪽에서도 그렇게 얘기했을 거고, 뻔히 짐작하죠. 야당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틀림없어요. 김대중씨가 선거 끝나고 나서 내년쯤 하자고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건 야당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야당에서는 정상회담을 위한 이면 접촉에 많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실제 정상회담 같은 것을 위해서는 비밀 접촉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내가 대통령을 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여러 가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처럼 특수한 지역은 우리가 다른 나라들하고 접촉하는 걸 공개하듯이 그렇게 접촉을 공개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내가 대통령하던 시절만 보더라도 비밀접촉을 했어요. 그런데 ‘불바다 발언’이 나고 나서 사실상 걷어치우게 됐는데요, 그렇게 해도 여러 가지 형태의 대화가 있는 겁니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까?

“김일성은 독재자로서 오랜동안 북한을 다스렸지만 세계 각국의 지도자를 많이 만나기도 한 사람이지요. 중국의 모택동, 소련의 스탈린, 흐루시초프와도 만났고 가깝게 지낸 사람이에요. 한국 전쟁도 스탈린과 상의한 것 아닙니까? 국제적인 감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봐요.

그런데 김정일은 사실상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야당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헝가리 대사가 서울에 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북한에 3년 가 있는 동안 김정일을 계속 만나려고 했지만 결국 못 만났다고 합니다. 면담을 계속 요구해도 김정일은 노동자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지방에 가있기 때문에 바쁘다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동맹국 대사가 주재국 지도자를 한 번도 못 만나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대요. 끝내 안 만나주고 퇴임하기 며칠 전에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선물만 잔뜩 가지고 왔다고 해요. 김정일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깊게 얘기하지 않겠어요, 나도 아는 게 상당히 많습니다,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러나 비밀 얘기를 하면 안되니까 그만 하겠습니다. 김정일이 어느 정도 선인지 알아요.”

―(김정일이) 식견있는 지도자입니까?

“그건 김대중씨 말이고요. 그렇게 표현하기는 어렵죠.”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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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종심 동아일보 출판국장, 황의봉 신동아 편집장 정리: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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