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최규선, 김홍걸 데리고 GE사 고위관계자 만났다”

최규선·김홍걸·권노갑 ‘FX 커넥션’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4-09-07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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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넘버2 아들을 잡아라”
    • 최규선과 GE사 한국담당 부사장 마이크 슬론의 친분
    • 권노갑씨 아들 결혼식장에 나타난 보잉사 관계자들
    • 최규선이 설립한 ‘유아이엔터프라이즈’는 GE사와 컨설팅 계약
    • 최규선과 보잉사 고위관계자 R씨 친분 미스터리
    ‘최규선 게이트’ 전개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최씨가 FX사업 선정기종 업체인 보잉사와 엔진 제공업체로 지정된 GE사 로비스트로 활동한 흔적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최씨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그의 행적을 추적해온 ‘신동아’는 최씨가 FX사업에 관여한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했다. 취재결과에 따르면 최씨의 FX사업 개입의혹은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 아들 홍걸씨 및 권노갑씨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이는 두 사람이 최씨와 함께 FX사업에 관여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최씨가 두 사람과의 관계를 최대한 활용해 FX사업에 개입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참여연대가 주축이 된 연합시민단체 ‘FX공동행동’은 최근 국방부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국방부가 GE사 엔진을 쓰기로 결정한 데 대한 의혹제기였다. GE사 선정에 대해서는 군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 공군이 운용해온 F-15에 한번도 장착된 적이 없어 ‘검증이 안 된’엔진이기 때문이다. 공개질의의 핵심은 GE사가 엔진 제공업체로 선정된 데는 최규선씨와 권노갑씨의 ‘특별한 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것.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이 최씨의 도움으로 권씨의 아들 정민씨가 GE사에 취직했다는 의혹이다.

    권노갑씨쪽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인사에 따르면 지난 4월 중순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 최씨는 권씨의 수행비서 M씨에게 전화를 걸어 “3000만원을 내놓아라”고 요구했다. 전에 최씨가 M씨에게 승용차(그랜저XG)를 사준 적이 있는데, 그 차값을 토해내라는 요구였다. 최씨는 “3000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차 사준 것 폭로하겠다”고 했다.





    “나 혼자서는 죽지 않는다”


    최씨가 왜 이런 얘기를 했는지에 대해선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현금이 급하게 필요했을 가능성, 둘째는 권씨에 대한 구조요청 신호였을 가능성이다. 한때 자신과 특별한 관계였던 권씨에게 ‘나를 구해주지 않으면 당신과의 관계도 폭로하겠다’는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시각이다.

    최씨의 전화를 받고 고민에 빠진 M씨는 권노갑씨에게 이 문제를 상의했다. 권씨는 “걱정할 것 없다. 지가 좋아서 사줘놓고 이제와 무슨 딴 소리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 M씨는 권씨에 접근하는 ‘지름길’로 통했다. M씨가 권씨를 통해 공천을 받으려는 모 정치인에게 차를 받았다가 권씨에게 혼났다는 일화도 있다.

    이날 최씨는 M씨에게 “결코 나 혼자서는 죽지 않는다”며 ‘전의’를 다지기도 했다. “송재빈이 스포츠복권사업자 선정 과정에 모 의원(여당 고위직 인사로, 최씨는 실명을 거론했다)한테 10억원을 준 걸 알고 있다. 검찰에서 불어버리겠다”는 폭탄발언도 했다. 최씨가 실제로 검찰에서 그런 진술을 했다는 얘기도 들리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최씨와 M씨의 통화내용은 최씨와 권씨의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하나의 잣대다. M씨 이상으로 최씨가 가깝게 지낸 권씨 측근으로는 청와대 모 비서관실에 근무하는 J씨를 꼽을 수 있다. 최씨는 그와 의형제처럼 지내며 청와대와 권노갑씨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손바닥 안처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통화하고 룸살롱에도 자주 다녔다.

    한때 권씨의 참모 노릇을 했던 K씨에 따르면 최씨는 미국에 유학한 권씨의 아들 정민씨를 내세워 GE사에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정민씨는 보잉사에 취직할 계획이었다. 이력서도 제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규선씨가 GE사 고위관계자를 움직여 정민씨를 GE사에 취직시켰다는 것이다.

    최씨는 평소 “권노갑씨 아들을 GE사에 취직시켜줬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권씨측에서는 정민씨의 GE 입사에 대해 “실력으로 들어갔다”며 최씨 주장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하지만 권씨 주변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최씨가 정민씨 취직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사실인 듯싶다. 최씨와 가깝게 지낸 GE사 관계자는 GE 엔진분야 한국담당 부사장인 미국인 마이크 슬론이다.

    최씨가 마이크 슬론에게 접근한 것은 정민씨가 워싱턴대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인 1998년 여름이었다. 최씨는 마이크 슬론에게 “한국의 넘버2 아들을 GE에 취직시키면 단단한 끈이 될 것”이라며 정민씨의 ‘가치’를 설명했다고 한다.

    최씨는 마이크 슬론을 통해 GE 본사 중역인 앤디 솔렘을 소개받았다. 앤디 솔렘은 최씨의 주선으로 한국에 건너와 권씨를 만났다. 함께 식사도 했는데, 앤디 솔렘이 정민씨 취직 문제를 거론하자 권씨 부부는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 일로 최씨는 권씨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정민씨는 현재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GE 본사에서 엔진부서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씨와 관련된 얘기를 확인하기 위해 정민씨 집에 몇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전화를 받은 그의 부인은 “(기자들과는) 일절 통화하지 않기로 했다”며 “거짓소문에 대해 일일이 맞다, 틀리다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1998년 마이클 잭슨 판문점공연 사기혐의와 관련해 경찰청 특수수사과 조사를 받은 후 미국에 나가 있던 최씨가 귀국한 것은 1999년 여름. 한국에서 사업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세운 회사가 바로 ‘미래도시환경’이다. 그해 8월10일 설립한 ‘미래도시환경’은 처음엔 서울 반포동에 있다가 삼성동으로, 올 3월엔 다시 역삼동으로 옮겨갔다.

    이 회사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사람이 L씨와 C씨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1999년 11월29일 이 회사 이사가 됐는데, L씨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하지만 실질적 주인은 최씨였다. L씨와 인척간인 김아무개(M그룹 대표이사)씨에 따르면 L씨는 이 회사에 6억∼7억원을 투자했다.

    L씨의 대표이사 취임에 맞춰 ‘미래도시환경’은 삼성동 포스코 앞 신일빌딩 12층으로 이사했다. 김씨 얘기로는 당시 최씨는 자금력이 없어 사무실 임대료, 직원 인건비 등 기본경비 지출도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따라서 외부인의 투자가 절실했다는 것.

    L씨의 영입은 최씨가 무기거래사업에 본격 개입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었다.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를 졸업한 L씨는 일찍이 동남아에 진출했다. 1975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후 식당 등을 운영하며 교포사업가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가 무기중개업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무기부품생산업체인 P사의 에이전트 노릇을 했다. 인도네시아 무기를 한국에 파는 일에도 관여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CN-235 군용 수송기다. 이 기종은 올초에 한국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도입했는데, 성능과 도입과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었다.

    최씨는 의료기기 생산업체인 M사를 통해 L씨를 소개받았다. L씨는 한때 M사 의료기기를 인도네시아로 수출하는 일에 관여했다. 두 사람은 한국외국어대 선후배(이씨가 선배) 사이인데다 고향도 비슷해(최씨는 전남 나주, 이씨는 전남 화순) 금방 가까워졌다.

    권노갑씨의 한 측근에 따르면 최씨는 자금관리차 싱가포르에 자주 갔다고 한다. 사우디 알 왈리드 왕자로부터 외자유치와 관련해 받은 커미션도 싱가포르 계좌로 입금됐다는 것이다. 이 증언은 최근 언론에 공개된 최씨의 육성녹음테이프 내용과 일치한다.

    최씨는 자신이 알 왈리드 왕자로부터 50만달러를 받았는데 그 중 20만달러는 싱가포르 계좌를 통해 입금됐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싱가포르 계좌가 바로 L씨의 계좌라는 사실이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있는 L씨의 사무실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거주하는 재미사업가 C씨는 전북 군산 출신이다. 한국에 있을 때 미군 부대 주변에 카지노장을 열어 큰 돈을 벌었다. 미국에 건너가서는 미용재료 도매업으로 성공했는데, 연간수입이 수백만달러에 이를 정도로 갑부다.

    C씨는 DJ가 미국 망명 시절인 1983년에 만든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박지원 청와대비서실장, 유종근 전북지사, 이희호 여사의 조카 이영작 박사 등이 이 연구소 출신이다. 특히 이영작 박사와 친분이 깊은 C씨는 올초 청와대에 들어가 김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

    인권문제연구소를 통해 현 여권 실세들과 인연을 맺은 C씨는 1992년 대선 때 국내 언론에 10억원의 사비를 들여 DJ에 대한 용공음해를 반박하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1997년 대선 당시엔 미국에서 ‘모국경제돕기 미주동포실천연합’을 결성, 준비위원장을 맡아 해외에서 DJ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직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중앙위원으로 이 단체에 관여하고 있다.

    최규선씨 비리를 폭로한 천호영씨도 C씨를 잘 알고 있다. 천씨는 C씨가 언젠가 ‘미래도시환경’ 사무실에서 자신에게 3시간 동안 ‘인생교육’을 시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천씨의 기억에 따르면 C씨는 준위 출신으로 미국에서 가게 수십개를 갖고 있는 백만장자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광주에서 광고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C씨에게 최규선씨를 소개한 사람은 역시 재미사업가인 K씨. 시애틀에 거주하는 K씨는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시애틀한인회 호남향우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권노갑씨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최규선씨는 1999년 12월 ‘유아이엔터프라이즈’라는 또 하나의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는 ‘미래도시환경’과 한 사무실에 있었다. 최씨와 L씨가 이사를, C씨가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C씨의 동생과 L씨의 아들도 이 회사 임원으로 등재했다. 각각 감사와 이사를 맡았다. 이 회사의 설립목적은 외자유치, 군장비 구매 중개 등이었으나, 실제로는 한국 공군에 GE사 엔진을 팔기 위해 만든 회사였다는 것이 최씨 주변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유아이엔터프라이즈’는 GE사와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L씨는 명함에 ‘(주)유아이엔터프라이즈 GE Aircraft Engines Consultant 대표이사 부사장’이라고 새기고 다녔다. C씨 주변인사에 따르면 이 회사의 주업무는 2000년 초 연세대 국제전략연구소에서 열린 GE사 주최 세미나를 지원하는 등 주로 GE사를 홍보하는 일이었다.

    최씨 주변인사에 따르면 이 시기 GE사의 마이크 슬론과 최규선씨는 자주 만났다. 두 사람은 프레스센터, 하얏트호텔 중식당 등에서 만나곤 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민주당 고문으로 막강한 힘을 가졌던 권노갑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권씨는 GE사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주변인사들의 전언이다.

    설립 초기 ‘유아이엔터프라이즈’가 눈독을 들인 사업은 한국 공군의 주력전투기인 F-16에 GE사 엔진을 장착하는 것이었다. 당시 공군에서는 낡은 F-16 전투기 100대의 엔진을 교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GE는 이 사업에서 실패했다. 기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P&W사에 패배한 것이다. C씨 주변의 한 인사는 그 원인을 “너무 늦게 뛰어든 데다 믿었던 권노갑씨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C씨는 권노갑 당시 민주당 고문을 만나 GE사에 대한 지원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씨는 ‘정치적 답변’만 할 뿐 확답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그런 데 함부로 개입하지 말라. 나중에 탈 난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한편 이 무렵 권노갑씨의 선거캠프에 합류한 최규선씨는 2000년 4월 총선 당시 권씨의 특보로 활약했다. 당시 권씨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정치권에서는 DJ가 권씨에게 호남 공천권을 일임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신라호텔(권고문 선거캠프)에서 권씨를 만난 사람은 공천에서 다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신라호텔은 공천에서 떨어질 사람들을 달래기 위한 장소였고, 진짜 공천이 될 사람들은 다른 비밀장소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권씨의 힘에 비례해 최씨의 힘도 커졌다. 말 그대로 호가호위(狐假虎威)였다. 공천에 관여한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다. 4·13총선을 며칠 앞두고 권씨는 광주에 내려갔다. 최씨가 앞장섰음은 물론이다. 최씨는 권씨의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당시 광주 지역에서는 권씨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 이 지역 모 지구당의 A의원측에서는 권씨의 지원유세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권씨측에 “내려오는 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전하자 최규선씨가 펄쩍 뛰었다. 당시 A의원 비서관이었던 K씨에 따르면 최씨는 지구당 관계자들에게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권씨가 광주에서 선거유세를 한 날 저녁 때 일이다. 최씨가 A의원 지구당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광주지역 일간지 편집국장 정치부장 등을 술자리에 불러모았으니 나오라”고 했다. A의원측에서는 당연히 권씨가 그 자리에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권씨는 물론 전화를 한 최씨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A의원 비서관이 최씨에게 전화를 걸자 최씨는 “그 정도 해놓았으면 지구당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큰소리를 쳤다. 결국 A의원측에서는 예정에도 없던 술자리를 감당해야 했다. 이날 술값은 500만원이 나왔다.

    C씨는 그해 5월 최씨와 갈라섰다. 기대와 달리 권씨가 GE사 엔진 도입사업을 지원하지 않는 데다 최씨의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C씨 주변인사에 따르면 당시 C씨는 최씨에 대해 “꼼수만 부리고 거짓말을 잘한다”며 비난했다고 한다. C씨가 이사직을 사퇴한 것은 그해 8월이다. 3개월 차이가 나는 것은 최씨로부터 투자한 돈을 돌려 받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C씨가 떠난 후 최씨는 회사 이름을 ‘유아이홀딩컴퍼니’로 바꾸고 자신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사였던 L씨는 감사로 직책을 바꿨다.

    하지만 L씨와 최씨의 관계도 오래가지 못했다. C씨처럼 권노갑씨를 바라보고 최씨와 손잡았던 L씨이기에 권씨로부터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판단이 들자 발을 빼려 한 것이다.

    이 즈음 권씨가 최씨를 ‘내친’ 것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보고를 무시하면서까지 최씨를 감쌌던 권씨는 그해 8월 최씨가 대통령 보좌역을 사칭해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는 등 물의를 빚자 더 이상 자신의 곁에 두지 않았다. L씨는 이듬해 1월 ‘유아이홀딩컴퍼니’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을 정리했다. L씨의 이름이 지금도 이 회사 등기부등본에 남아 있는 것은 투자금 회수 등 지분정리가 안 됐기 때문이다.

    권씨의 눈밖에 난 후 최씨는 김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에게 전적으로 매달렸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유학 시절 알게 된 두 사람은 1998년 9월 최씨가 경찰청 특수수사과 조사를 받을 때 홍걸씨 도움으로 구속위기에서 벗어났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최씨는 청와대 입성이 좌절된 뒤 사업쪽으로 눈을 돌렸다. 권씨와 더불어 그의 사업에 ‘후견인’이 된 사람은 홍걸씨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2000년 2월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스키리조트에서 홍걸씨와 함께 국제금융계 거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를 만났다. 이곳에 휴가 온 알 왈리드 왕자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면서 홍걸씨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알 왈리드 왕자는 벤처회사를 설립하려는 최씨의 계획에 동의, 1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청와대 가족회의’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한다.

    C씨 주변인사에 따르면 최씨는 FX사업에도 홍걸씨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유아이엔터프라이즈’에서 일할 때 GE사 마이크 슬론과 알고 지낸 C씨는 최씨와 갈라선 후 두 달쯤 지난 2000년 10월경 서울에서 마이크 슬론을 만났다. 63빌딩 42층에 있는 GE 한국지사 사무실에서 만나 그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이 자리에서 마이크 슬론은 “한번은 최규선씨가 김홍걸씨를 데리고와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C씨는 최씨 일에 더 이상 관심이 없어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C씨의 한 지인은 “지난 4월 ‘예상을 뒤엎고’ F-15K에 장착될 엔진이 P&W사 것이 아니라 GE사 것으로 선정된 데 대해 C씨는 최씨와 홍걸씨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씨 주변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씨가 FX사업과 관련, GE사뿐만 아니라 F-15 생산업체인 보잉사와도 접촉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한때 최씨와 함께 권씨 밑에서 일했던 K씨는 “GE뿐만 아니라 보잉도 권노갑씨에게 줄을 댔다”고 증언했다.

    1998년 여름 권씨 아들 정민씨의 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식이 끝난 후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보잉사 고위관계자인 J씨가 참석했다”고 기억했다. 전남 순천 출신인 J씨는 현재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다.

    보잉사에 따르면 J씨는 한국여객기 담당이사다. 보잉사의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여객기를 담당하는 J씨가 FX사업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J씨가 권씨 아들 졸업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 직접 물어봐 달라”는 요청에는 “잘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규선씨 주변인사들에 따르면 최씨는 또 보잉 한국지사 고위관계자인 한국계 미국인 R씨와 매우 가깝게 지냈다. 최씨와 잘 알고 지낸 재미교포 K씨에 따르면, 최씨는 R씨와 자주 어울려 다녔으며 R씨 집에서 열린 바비큐파티에 참석할 정도로 친분이 깊었다는 것. K씨는 2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최씨와 만나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최씨는 R씨와의 친분을 자랑삼아 얘기했다고 한다.

    R씨를 아는 사람은 K씨뿐만이 아니다. 최씨와 동업했던 C씨는 R씨를 보잉사 한국지사의 임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최씨와 한때 권노갑씨 밑에서 함께 일했던 또다른 K씨도 R씨의 존재를 아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보잉사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R씨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보잉사 한국지사에 근무한 적이 없다고 했다.

    최씨의 행적을 잘 아는 앞서의 K씨는 “최씨가 보잉, GE 양쪽 회사의 로비스트였을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기종이 결정돼야 엔진이 선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잉사와도 일정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K씨는 “두 회사가 FX사업 진행과정에 파트너가 돼 최씨를 공동의 로비스트로 활용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증언이 있다. 최근 GE사가 F-15K 가격인하에 따른 부담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보잉사측에 600만달러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최근 한국에 들어온 GE사 고위관계자 입을 통해 흘러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1999년 12월 신라호텔에서 권노갑씨의 아들 정민씨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앤디 솔렘, 마이크 슬론 등 GE사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민씨는 GE사에 입사한 상태였다. 흥미로운 것은 보잉사쪽에서도 2∼3명이 태평양을 건너 날아왔다는 사실이다. GE사 관계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귀빈으로 소개돼 좌중에게 인사하기도 했다.

    보잉사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보잉사 회장 방침이 ‘기업윤리에 어긋나는 로비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FX사업과 관련해 로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규선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사에 확인한 결과 최규선이라는 이름은 이번에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한다”고 답변했다.

    한편 GE 한국지사는 강내리 법률고문을 통해 “GE는 ‘유아이엔터프라이즈’, 최규선, 권노갑, C씨, L씨 등을 FX 캠페인을 위해 GE의 고문 또는 자문역으로 선임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권노갑씨 아들 정민씨의 입사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1999년 GE 항공기 엔진사업부는 권정민을 엔지니어링 부문 신입사원으로 고용했다. 권정민은 엔지니어링 석사학위 및 우수한 엔지니어링 능력으로 엄격한 면접과 평가절차를 거쳐 GE에 입사하게 됐으며, F110 엔진 또는 FX 엔진 캠페인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

    GE측은 “GE사 엔진부서 한국담당 부사장인 마이크 슬론이 최규선씨 및 김홍걸씨와 만난 적 있느냐”는 질문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GE, 보잉 두 회사의 공식부인과는 별개로 최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FX사업, 특히 엔진 선정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그 의혹을 더욱 키운 것이 바로 김동신 국방부장관이 최씨를 서너 차례 만난 사실이다.

    최씨 주변의 한 인사는 “최씨의 영향력으로 FX 기종이 F-15K로 결정됐다는 건 난센스”라면서도 “일이 잘 되도록 기름칠하는 정도는 했을 것이다. 특히 엔진이 GE사 것으로 결정되는 데는 최씨가 상당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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