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복수혈전 한이헌 “울분 품고 내려왔다”

  • 조용휘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ilent@donga.com

    입력2004-09-09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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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시민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다시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 노무현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제3의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 영남 최대의 격전지답게 벌써부터 후보들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부산 정치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여야 모두 이번 부산시장 선거를 대통령선거의 전초전 겸 대리전으로 여기고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기 시작한 노풍(盧風)의 여세를 어떻게 이어가고, 또 차단하느냐를 놓고 여 야가 부산에서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일 태세다.

    현재 부산시장 후보로는 민주당의 한이헌(韓利憲·58)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한나라당의 안상영(安相英·64) 현 부산시장, 민주노동당의 김석준(金錫俊·45) 부산대 교수, 무소속의 노창동(盧昌東·39) 사단법인 ‘굿모닝부산’ 이사장 등 4명.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한후보와 안후보의 불꽃튀는 양자대결이 예상된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후보 결정 이후, 6월 지방선거에서 부산 울산 경남 3곳 중 한 곳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후보 재신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노후보는 3곳 중 가장 자신 있는 지역으로 그의 정치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부산을 꼽는 듯하다. 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을 만나 부산시장 후보를 거론하기도 했으며 최근 기자회견에서는 부산시장 선거와 관련해 “어떤 조건에서도 자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5월9일, 그는 한나라당의 안후보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히든카드로 한후보를 선택했다.

    한후보는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경제수석을 역임한 상도동계 인사. 경제기획원 차관 출신의 경제통인데다 15대 국회의원(부산 북·강서을)을 지냈으며 1997년 대선 때는 이인제(李仁濟) 당시 국민신당 대통령후보를 지원한 YS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울분을 품고 내려왔다”


    한나라당 안후보보다 한달 늦게 선거판에 뛰어든 한 전수석은 후보로 결정된 이후 공사석에서 연일 안상영 후보를 향해 포문을 열고 있다. 그는 “(안시장의 실정에) 울분을 품고 내려왔다”며 이번 선거에 임하는 결의를 밝힌 뒤 부산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경제시장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부산이 빚더미에 올라 있는데도 시장이 시가 200억~300억원 하는 땅(관사)에 사는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빌라 논란과는 비교가 안되는 문제”라며 “시장은 호강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안시장을 꼬집었다. 또 “안시장은 그동안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측근과 비선 조직으로 부산시정을 이끌어왔다”며 안시장 재임기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노후보와 자신을 환상의 콤비라고 소개하면서 “개혁적인 노무현 후보가 경제관료 출신인 자신을 시장후보로 선택한 것은 중도개혁노선의 이미지를 제고시켜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각종 비리가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나에게 지난 2년간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기간이었다”며 “노후보 또한 부패의 중앙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후보는 자신이 시장에 당선될 경우 부산 경제특구 지정 업무의 90% 이상을 하부조직에 위임하는 등의 행정개혁에 대한 ‘준비된’ 청사진을 마련해놓고 있다.

    “총체적으로 부산을 좀더 잘살고 편안한 도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앞으로 부산은 자본 기술 인력이 유입되고 소득이 늘어나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후보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민주당 부산시지부(위원장 윤원호)는 참신한 부산지역 인사들을 선거대책본부로 영입한 뒤 5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섰다. 이와 동시에 시지부는 부산시장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선대위원장과 선대본부장, 정책위원회, 기획단, 특보단, 고문단 등 선대위 핵심멤버 인선을 마무리했다.

    한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내정된 이후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위원장 유흥수)는 곧바로 “한 전수석은 이미 불출마선언으로 정계를 은퇴한 구시대 인물”이라고 폄하하고 나섰다. 또 한나라당 부산출신 의원들은 노후보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결정된 이후 “부산 의원 17명보다 내가 부산을 위해 한 일이 더 많다”고 말하자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노후보에게 ‘부산경제가 어려울 때 어디서 무엇을 했으며,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해양부의 부산 이전 문제와 관련해 뭘 했느냐’는 등 4개 항에 대해 공개 질의를 했다. 이와 함께 안상영 후보는 노후보가 YS를 만나 부산시장 후보를 ‘낙점해달라’고 한 데 대해 “부산시장 자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헌납의 대상이 아니라 부산시민이 선택할 문제”라며 일침을 가했다.

    안후보는 1963년 서울시건설국 토목과 기사보(7급)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기술관료 출신. 1988년에는 기술직으로선 처음 부산시장을 역임한 뒤 해운항만청장을 지냈다. 1998년 제2대 민선 부산시장 한나라당 후보경선 때 후보로 선출됐으며 이번 당내 경선에서도 12표의 근소한 차이로 후보가 돼 주위에서는 ‘관운(官運)’이 많다는 평이다.

    그는 5월8일 부산 구덕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현정권을 단호히 심판해 우리 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노풍을 잠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65%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둔다는 전략.

    그는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를 지지했던 29%의 지지층을 한나라당 지지로 이끌어낼 경우 65%의 득표는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노풍’은 민주당의 내부 변화 없이 대선에서 영남표를 긁어모으려는 전략”이라며 “최근 들어 민주당에 대한 국민과 부산시민들의 실망이 크기 때문에 ‘노풍’은 ‘허풍’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안후보는 ‘당당한 부산, 검증된 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검증된 시장’만이 월드컵과 아시아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고 부산을 희망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며 현직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는 또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성을 부각한 뒤 행정적 경륜과 경험, 균형감각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임을 시민들에게 알려 표심으로 연결해나간다는 계획. 이를 위해 소득 2만달러 전국 최초 달성, 3%대의 완전고용 유지로 경쟁력 있는 경제도시 건설, 취약계층(장애인 여성 노인) 고용할당제를 시행해 더불어 사는 생활복지도시 건설, 신항만 신공항 등 인프라 구축과 아시아경기대회 성공으로 경쟁력 있는 세계도시 건설을 3대 도시비전으로 내걸었다.

    민주노동당 김석준 후보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고 성실한 시장을 필요로 한다”며 “민주당 한이헌 후보의 경우 전두환 신군부 체제에서는 국보위 입법위원으로, 노태우 전대통령 시절에는 민자당 경제전문위원으로, YS 때는 경제수석을 맡는 등 화려한 변신으로 유명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한후보에 대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1997년 대선 때는 이인제씨의 국민신당에, 이번에는 다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또 “한나라당 안후보는 관선과 민선을 합쳐 두 번이나 부산시장을 역임하는 행운을 누렸다”며 “다대포 매립과 명지대교 직선화 추진 등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시정 운영으로 지역사회에 긴장과 마찰을 조성해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과연 이번 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을 것인지’ 등 일부 계층에서 제기되고 있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충분히 극복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로 4월부터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부산시민 10만네트워크 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무소속 노창동 후보도 기성 정치인과 달리 깨끗하고 참신하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그는 “부채가 2조4000억원에 이르는 부산은 이제 파산 일보직전”이라며 “부산의 밝은 미래를 위해, 또 젊은이들이 떠나는 절망의 도시에서 다시 돌아오는 희망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소신있는 무당파 젊은 일꾼’인 자신이 적격”이라는 것.

    30대 젊은 나이와 무소속이라는 지적에 대해 “14, 16대 총선 때 부산 금정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2위를 기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검증을 받은 셈”이라며 대학생 등 젊은층과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 여성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바람을 일으킬 경우 승산이 충분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5월11일 부산일보와 부산MBC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상영 후보가 49.4%의 지지도로 압도적 1위. 한이헌 후보는 15%, 김석준 후보는 4.7%, 노창동 후보는 3.5%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나탔다. 선거 초반, 아직은 노풍도 개혁풍도 파괴력 큰 바람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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