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인사문제를 총괄하는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기자들에게서 “장관이 바뀐다는데, 맞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똑같은 답변을 들려준다.
고위공무원의 인사 추천작업과 검증작업을 분리하고, 인사추천회의라는 심사기구를 두는 등 청와대 내에 인사시스템이 갖춰지면서 현 정부에서 장관 인사는 상시 준비체제가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장관 교체 인사는 무려 11번이나 있었다. 지난해 7월 김영진 당시 농림부 장관이 새만금 방조제 건설사업을 중단하라는 법원 판결에 반발해 자진 사퇴한 이래 한 달에 한 번꼴로 장관이 교체된 셈이다. 가장 가깝게는 7월28일 법무, 국방장관이 교체된 것도 올 들어 5번째 장관 인사였다.
정 수석비서관이 가지고 있는 인사파일에는 635명의 장관 예비후보자 명단이 확보돼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와 19개 부처 장관의 후보자들이다. 1개 부처에 30명 정도의 장관 후보자가 줄을 서 있는 셈이다. 이를 1차로 193명으로 압축하고, 2차로 60명으로 다시 압축한 유력 후보자 명단이 노 대통령에게 건네져 있다는 게 정 수석비서관의 설명이다. 심지어 여권의 한 유력 정치인은 이 인사파일의 5개 부처 장관 후보명단에 ‘겹치기’로 올라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인재풀에도 편차가 있다. 예를 들어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군은 수십 명에 이를 정도로 두텁지만, 농림부 장관이나 과학기술부 장관 후보는 3~5명에 그칠 정도로 빈약하다.
어쨌든 노 대통령으로서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집무실 책상 서랍을 열어 리스트를 꺼내들고 곧바로 장관을 바꿀 수 있는 채비가 돼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으로 수시로 장관 인사가 단행됐고, 노무현 정부의 개각은 ‘찔끔개각’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래서 과거 정권에서 사고가 터졌다 하면 ‘희생양 찾기’식으로 해온 국면전환용 개각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의 확고한 방침이 거꾸로 “시도 때도 없이 장관을 바꾸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야금야금 장관들을 바꾸다 보니 초대내각에 들어온 뒤 현직을 지키고 있는 장관은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과 지은희(池銀姬) 여성부 장관 2명뿐이다.
청와대 보좌관은 ‘노무현 아카데미’
집권 1기의 초대내각은 40대 군수 출신인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 비(非)외교관 출신인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 여성 법조인인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 등을 파격적으로 기용하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다. 삼성전자 CEO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나, 비(非)육사의 갑종 출신인 조영길(曺永吉) 국방부 장관도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조영길 전 국방, 강금실 전 법무, 이창동 전 문화, 최낙정 전 해양, 박호군 전 과기
이런 흐름은 1기 내각의 파격적인 실험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청와대측은 “지난 1년 동안 ‘개혁 로드맵’을 완성한 만큼 이제 그 성과물을 거두기 위해선 정책 집행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해서다”라고 변모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개각부터는 조각 당시의 실험적 기용보다는 안전하게 가겠다는 기류가 반영됐다. 대통령외교보좌관을 지낸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과 국방보좌관 출신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의 기용도 결국은 노 대통령의 뜻을 잘 알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기용했다는 흐름에 놓여있다. 그래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연달아 2명의 장관을 배출해낸 대통령보좌관 자리를 ‘노무현 아카데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전 원내대표 등 차기 대권주자의 입각이야말로 2기 내각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일상적인 국정을 총괄하게 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하게 해 외교안보통일 분야를 총괄하게 한 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사회복지문화 분야를 총괄하게 하겠다는 구상은 2기 내각을 분권적으로 운영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물론 이들에게 최고권력자로서 대통령의 권력을 부분적으로 넘겨주는 것은 아니지만, 노 대통령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여권의 실력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내각에서도 집단지도체제와 유사한 실험적 성격을 담은 셈이다.
즉 이 총리는 내각을 총괄하면서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국가적 논란이 되는 중요사안을 추진하는 데 총대를 메고, 경제 분야는 이헌재 부총리, 과학기술 분야는 부총리 승격이 예정된 오명 과기부장관, 외교안보통일 분야는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회복지문화 분야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눠 맡는 ‘책임 분담형’ 내각 형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