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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⑨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불시 소지품 검사 해보니 여학생 가방에서 피임약이 우수수…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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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라 해봤자 한국에서처럼 결혼정보회사가 서울 총각과 부산 아가씨를 맺어주는 식의 전국적 범위의 중매가 아니라 걸어서 하루 내로 이동할 수 있는 좁은 지역 내에서의 중매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중매가 북한 영화에서는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북한 영화에 나오는 처녀 총각의 연애는 노동당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 서로 무한한 충성심이라는 공통분모를 확인하고 결국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식의 뻔한 시나리오다. 영화 백이면 백 다 이런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아 매우 식상하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중매하는 모습도 상당히 많이 묘사되지만 이는 영화의 갈등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주인공은 결혼하라는 부모나 형제의 중매 강요를 뿌리치며 이 과정에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더욱 굳힌다는 설정이다. 결국 북한 영화는 자유연애가 좋다는 무언의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 북한 사회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이런 자유연애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북한 가족법 9조에 는 “공민은 남자는 18세, 여자는 17세부터 결혼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중학교를 졸업한 지 1~2년 뒤에는 결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대체로 남자는 28~32세, 여자는 23~27세에 결혼을 많이 한다. 북한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한국보다 5년 정도 더 빠른 것 같다.



27살 넘어 미혼이면 노처녀

27세가 지나서도 결혼을 하지 못하면 노처녀라는 시선을 받는다. 한국의 30대 초반 여성들이 받는 시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북한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나이는 한국보다 훨씬 늦다. 특히 과거에는 연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았다. 연애를 하면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기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20여 년 전에도 졸업학년이 가까워지면 몰래 연애를 하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참고로 북한에서 중학교 졸업 나이는 만 16~17세다. 하지만 연애는 학급반장이나 초급단체(20~30명으로 구성된 청년동맹의 말단 조직) 비서와 같은, 소위 공부도 좀 하고 주먹깨나 쓰는 학생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이런 학생들은 괜찮다 싶은 여학생이 있으면 슬슬 호의를 보이면서 접근하지만 그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유치했다.

주변 학생들이 아무개가 아무개 여학생을 찍었다고 소문을 내면 당사자끼리는 서로 어색한 눈빛이나 주고받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한국 기준으로 아무리 잘 봐줘야 호의에 그칠 것이 그때는 사랑의 표현방식이었다.

이랬던 학교에 기자가 5학년 즉, 만 16세 때에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체육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칠판에 쪽지 편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아직도 대략적인 내용이 기억에 생생하다.

“명실아, 매일 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나 설레고 너의 웃음은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넌 왜 나에게 그리도 쌀쌀하게 대하니. 앞으로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 그리고 내가 빌려준 원주필(볼펜)은 네가 가져.”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 반 초급단체 비서를 하던 남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몰래 주었는데 누군가가 체육시간에 여학생의 가방을 뒤져 그 편지를 칠판에 붙여놓은 것이다. 이 쪽지 편지 사건은 즉시 온 학교에 퍼졌고 당사자들은 어린 나이에 ‘발그라진’ 바람둥이로 낙인찍혔다. 편지를 받은 여학생은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몇 달 동안 부끄러워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끝내는 다른 학교에 전학을 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연애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학교별로 이런 식의 유치한 몇 쌍의 커플은 나왔지만 30여 년 전에는 이런 식의 연애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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