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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석기 쇼크!

“RO는 중간단계 조직, 배후에 전위당 있다”

이석기와 ‘내란음모’ 조직의 실체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황일도 주간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RO는 중간단계 조직, 배후에 전위당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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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하 씨를 민혁당 재건 주체로 지목한 것은 결과적으로 헛발질로 드러났다. 주사파 조직 내 헤게모니 다툼에서 밀린 것인지, 생각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 씨는 변혁운동을 접었다고 한다.

민혁당은 주사파의 원조 격인 김영환 씨가 주도해 만든 이적(利敵)단체다. 1997년 김 씨 주도로 해체를 결의했다. 하 씨는 이 같은 해체 결의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민혁당 산하 경기남부위원회, 영남위원회를 관리했다. 하 씨의 ‘재건민혁당’(김 씨가 민혁당 해체를 결의한 후 1999년까지의 민혁당)은 1999년 공안당국에 적발되면서 와해됐다. 앞서의 공안당국 인사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말하지 않았나, 민혁당이 재건됐는데, 경기동부연합이 그중 하나라고.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이념적 모의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 다른 범죄다.”

국정원이 민혁당을 재건한 전위당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동부연합이 그중 하나’라는 표현은 또 다른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통합진보당과 이 의원은 “국정원의 날조, 조작이다” “경기도당 당원 모임이었다” “RO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단체생활하며 고립 자초



이 의원은 5월 12일 이른바 RO 회합 때 자신들의 종북적이면서 시대착오적 사고를 “20~30년 쌓아왔던 양심과 신념, 세계관”이라고 표현했다. 조직원들은 이 회합에서 적기가(赤旗歌)를 불렀다. 6·25 전쟁 때 북한군이 군가로 사용한 노래다. 붉은 기 높이 들고 감옥, 단두대를 불사하며 원수, 즉 ‘미제와 그 앞잡이들’과의 전쟁에 나설 것을 선동한다.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RO 회합 때 권역별 토론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준비(정치·군사적 준비)를 갖추는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앞으로 더욱 강력한 조직 생활, 팀 생활 이런 것을 통해서 저희들이 당장 키워야 되는 대중도 마찬가지고 저희들이 앞으로 이 대결을 통해서 엄중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목숨 걸고 싸우는 각오로 군중사업도 해야 되고 자기 책임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습니다.”

조 대표도 민혁당 출신이다. ‘팀 생활’ ‘조직 생활’ 이라는 조 대표 표현대로 ‘이석기 그룹’은 묵가(墨家)를 닮은 일종의 공동체였다. 운동 기풍에 개인적 요소가 등장할 수 없었다. 노동을 해 돈을 벌면 공동체에 내놓았다. 단체생활을 했다. 우위영 전 통진당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6~7명 정도의 핵심간부들은 상근활동을 했기에 새벽에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을 해 생계비와 활동비를 충당했습니다. 하루 일과는 새벽 3~4시 사이에 시작됐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습니다. 최소한 1년의 절반은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자는 것은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습니다.”(민중의소리, 2010년 2월 19일자 인터뷰)

‘이석기 그룹’은 성남을 중심으로 한 경기동부 지역에서 터사랑청년회 청년학교 청년대학 등을 꾸려 ‘군중사업’을 벌였다. 김미희 통진당 의원, 우 전 대변인 등이 터사랑청년회 출신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석기 그룹을 두고 “광신도” “발달장애”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왜 시대착오적 인식에 매몰된 걸까.

이 의원은 1980년대부터 경기동부지역 주사파 운동권에서 ‘탁월한 리더’였다. 1980년 2월 성남시에 위치한 성일고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2년 후인 1982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과에 입학했다. 1987년 8월 하영옥 씨 등과 “모든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남한 민중을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고 주체형 새 세대 청년혁명가를 양성해 미군을 축출하고 현 정부를 타도한 후 조국 통일을 이룩해 공산정권을 세우기”로 의기투합했다. “김일성이 1927년 청년학생들을 모아 조직했다”고 북한당국이 선전하는 ‘반제청년동맹’을 조직명으로 삼았다.

성남市는 신념, 세계관의 토대

이 의원, 하 씨 등은 1988년 4월 ‘반제청년동맹 결성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영환 씨가 이 조직에 가입한 것은 10개월 뒤인 1989년 2월이다. 이때만 해도 이 의원과 김 씨는 수평적 관계였다. 1992년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인 김 씨, 하 씨, 박○○ 씨가 반제청년동맹을 토대로 민혁당을 창당했다. 북한은 김 씨를 통해 하 씨, 박 씨에게 김일성 훈장을 수여한 사실을 알렸다. 이때부터 이 의원은 하 씨의 지도를 받았다.

1971년 8월 10일 경기 광주군에 서울의 도시빈민을 수용하고자 광주대단지가 건설됐다. 도시빈민들은 영세한 작업장에서 노동을 했다. 산모가 갓난아이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이 나돌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이 의원이 학창 시절을 보낸 성남은 광주대단지가 시로 승격한 곳이다. ‘이석기 그룹’은 차별, 배제를 받던 성남에서 단체생활을 하면서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벌였다. 동지애가 싹틀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 의원이 1993년 8월 하 씨에게 보고한 ‘1993년 경기남부위원회 상반기 사업총화’에 따르면 이 의원은 당시 민혁당 당원 4명(민혁당 전체 당원 수는 100명이었다.) 반제청년동맹 조직원 14명을 지도했으며 관할하는 기본역량은 700명, 최대역량은 2000명에 달했다. 공안당국은 이 인맥 중 상당수가 이른바 RO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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