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제가(齊家)도 못하고 치국(治國)을 하였으니…

  • 안정효 < 번역가·소설가 >

    입력2004-09-07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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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어찌어찌 됐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치자. 그러면 꼭 누군가 나서서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신통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이‘카더라 통신’은 사실이 되어 나타난다. 점쟁이를 능가하는 ‘카더라 통신사’의 거침없는 사세 확장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필자가 번역을 주업으로 삼았던 20∼30년 전에는, 해마다 10월 셋째 수요일 저녁 9시쯤 되면 장안의 수많은 출판사와 번역가들이 잔뜩 긴장해서 뉴스를 기다렸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국제저작권이나 지적재산권을 전혀 아랑곳 않던 ‘문화 열등국’ 대한민국이 해적출판분야 세계 제1의 자리를 놓고 대만과 열심히 다투던 시절. 노벨상 발표가 9시뉴스에 나기만 하면, 너도나도 신속하게 외국에서 구해온 원작을 갈기갈기 찢어 몇 명에게 나누어주고 조각번역을 시켰다. 며칠만에 시장에 깔리는 이 ‘불량 번역문학’은 간발의 차로도 매출이 크게 달랐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빨리 노벨상 정보를 구하는 출판사라면 밝은 사업전망을 자신해도 좋았다.

    실제로 1976년에는 그런 희비극이 두드러지게 엇갈리기도 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해에는 미국 작가 솔 벨로가 노벨상을 받으리라는 소문이 외신을 타고 이틀쯤 미리 알려졌다. 이미 6개월쯤 전에 필자가 벨로의 최근 소설 ‘험볼트의 선물’을 번역해 주어 1천부를 찍어서는 겨우 4백부밖에 팔지 못했던 출판사는, 공식 발표가 날 때까지 광고 따위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벨로가 정말 노벨상을 타자 큰 재미를 보았다. 남들이 원작을 준비하기도 전에 완제품을 만들어놓고 기다렸으니,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셈. 이 출판사의 재빠른 동작을 보고 한 방송에서는 “노벨상 발표가 난 지 24시간만에 책을 구해 하룻밤만에 번역해서 책을 냈다”고 호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 해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이 미리 알려져 크게 당혹해했다고 한다. 이후로는 정보가 미리 새나가지 않도록 특히 보안에 열심이어서 ‘하룻밤 번역’ 소동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한 보안도 대한민국의 정보망에는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를 보면 말이다. 한림원의 발표가 있기 몇 달 전부터, 아니, 필자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아마 1년도 더 시간이 남았을 때부터 시중에는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으리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것도 ‘후보에 오른다’는 희망 섞인 추측이 아니라, ‘노벨상을 받는다’는 확정적인 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흔히 그렇듯이 ‘소문’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만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누구인지를 그런 식으로 1년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출판사가 있다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붙잡아두고 전속 계약을 맺어 톡톡히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니 그 출판사는 사업전망이 얼마나 밝을까 하는 생각에 군침이 돌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점쟁이가 될 수 있는 나라


    노벨상 발표가 나기 얼마 전에, 지극히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 국회의장이 내한했다. 필자는 우연히 이만섭 국회의장이 신라호텔에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가, 옆자리에 앉았던 어느 국회의원으로부터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로비가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나도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묻지도 않은 해명을 들었다.

    정치인들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호언장담을 하면, 그것은 이른바 ‘카더라 통신’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어느어느 기업에서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 어쨌느니’ 하는 갖가지 소문은 전혀 사실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노벨상 같은 명예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한림원에서는 노벨상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줘야겠다고 미리 결정을 해놓았고,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출중한 선견지명으로 그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정치적 소신이나 다른 어떤 자질 못지않게 아버지의 무덤을 명당으로 옮기는 역술(曆術)적인 정성이 필요하고,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자는 점집부터 찾아간다는 이 나라에서는, 아마도 점쟁이들이 그 정도로 신통한 모양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기로 했다. 한림원에서조차 알지 못했던 수상 사실을 1년 혹은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니 말이다.

    이렇듯 ‘카더라 통신’만 수집해도 미래를 점치기가 어렵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무속인이나 역술인으로 활동하기가 퍽 쉽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즈음 학교처럼 무속인을 집단 배출하는 ‘무당 공장’까지 생겨났다는데, 점쟁이 양성소를 만들어 전국 역술인 연쇄점을 엮어놓으면 재벌로 성장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을 듯 싶고. 내친김에 해외 점포와 대리점까지 개설하여 ‘카더라 통신업’을 아예 정부에서 산업화한다면, 새로운 첨단 점치기 기술을 통해 국가도 눈부시게 발전하리라는 전망도 쉽게 나온다.

    시간이 흘렀고, 이번에는 대통령의 세 아들에 관한 ‘카더라 통신’이 나돌기 시작했다. 세 아들이 소통령(小統領)의 직위를 이용하여 얼마얼마씩 이권을 챙겨왔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었다. 필자는 이번에도 이들이 부정부패와 결부되었다는 카더라 소문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첫째 아들이 조폭과 제주도에서 어쨌느니 하는 등등, 슬금슬금 이상한 얘기들이 나왔다. 물론 그것 또한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카더라 유언비어임이 밝혀졌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첫째 아들은 대통령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이권 청탁을 하기 위해 몰려드는 시정잡배의 유혹이 워낙 심해서 처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책까지 써냈다.

    검찰청에 들어서며 기자들에게 “내 결백은 검찰이 밝혀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고는 며칠 후에 구속되곤 했던 비리 정치인과는 달리, 대통령의 첫째 아들은 전혀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져 이 무렵까지도 카더라 산업의 전망은 점치기 어려웠다.

    그리고는 다시 시간이 흘렀다. 요즈음에는 대통령의 2대 삼총사에 관한 얘기가 신문 방송에 하루도 빠짐없이 대문짝만하게 오르고 있고, 그 소문의 진위가 아주 조금씩 밝혀지는 중이다. 물론 카더라 통신과는 엄청나게 수치(數値)가 다른 ‘겨우 몇 십 억’ 정도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잠깐 생각해 보면, 대통령의 자식들은 온 국민이 모두 갖고 있는 ‘미래를 훤히 내다보는 신통력’을 전혀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정권과 권력의 꼬투리로 돈벌이를 하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는 판박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묶인 두 손목이 모자이크 처리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보이더니,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소통령이 겪은 전례가 머지않아 되풀이되리라는 카더라 통신도 나돌았다. 그랬는데도 상황은 이렇게 시끄러워지고 말았다.

    도대체 또 다른 김씨 대통령 집안의 삼형제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일으켰던 ‘물의’를 되풀이했다가는 언젠가 들통이 나게 마련이고, 그러면 검찰청 문간에 서서 사진 찍히게 되리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예측했으면서도, ‘까짓 거 잠깐 살다 나오면 되니까’ 일단 미래를 위한 투자는 해둬야겠다는 각오라도 했던 것일까?



    齊家와 治國


    번번한 아들을 셋이나 둔 대통령이 금년에 보낸 어버이날은 그리 즐겁지 못했을 듯싶다. 어쩌면 셋이나 되는 자식들 가운데 정신이 제대로 박힌 자식 하나가 없어서, ‘민주투쟁의 전사’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노벨상까지 받아낸 아버지를 위해 몸조심 하자고 다른 형제들을 말릴 생각조차 안 했을까? 민주화를 위해 아버지가 부지런히 드나들었던 형무소를 자식은 이제 어떤 명예로운 이름으로 드나들려고 하는 것일까?

    마치 좀도둑처럼 몰래 입국해서 007식으로 비겁하게 기자들을 따돌리고는, 살금살금 무엇인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느라고 “25시간째 잠적해 버렸다”는 대통령 아들의 모습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켜보고 있노라면, 온갖 카더라 통신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영원히 무사하리라고 믿었음직한 셋째 아들은 아마도 미아리에 점집을 차리기는 힘들 것 같다. 그야말로 빤히 보이는 한치 앞날을 내다볼 능력조차 없어 보이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카더라 통신사’가 발족한 시기는 전두환 소장이 신군부를 이끌고 제5공화국을 창출하던 시기였다. 대다수의 국민은 군사독재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제5공화국과 박정희 정권의 폭압정치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요즈음 박정희 기념관을 건축하자는 소리가 요란하고, “차라리 5공 시절이 좋았다”는 말까지 나도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다가 이 나라는 차라리 군사독재자들을 그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소장(少將) 출신의 두 독재자가 휘두르던 국가 폭력에 시달리던 시절, 우리들은 그들 독재자와 맞서 싸웠던 두 사람을 투사로 존경하며 기억했고, 그들이 겪은 고난에 보상이라도 하듯 대통령으로 뽑아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 두 민주화의 기수는, 투쟁은 잘했는지 모르지만 국가를 운영할 자격은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제가(齊家)’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치국(治國)’ 하겠다고 나선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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