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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금 반의반 토막 났는데 융자금은 다 갚으라니…”

정부-대한주택보증-주택건설업계 갈등 고조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출자금 반의반 토막 났는데 융자금은 다 갚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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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여 주택건설업체는 대한주택보증 융자금만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1999년 주택사업공제조합이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자신들의 출자금은 4분의 1 토막 났는데 융자금은 그대로 다 갚아야 하기 때문. 자신들이 보유한 대한주택보증 주식으로 융자금을 상계하는 것도 쉽지 않다니 더 갑갑하다. 주택건설업체들의 하소연을 들어보았다.
“출자금 반의반 토막 났는데 융자금은 다 갚으라니…”

건설 경기 침체로 불황인 가운데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 융자금 문제로 주택건설업체의 시름이 더 깊어졌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끈 일등공신의 하나는 건설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건설업체, 특히 주택건설업체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건설경기 부진과 부동산시장 침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100대 건설업체 가운데 20곳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중소 건설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야말로 하루하루 ‘부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게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한 중견 건설기업인은 “주택건설업체들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에는 지난 20년 동안 정부의 잘못된 정책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정부는 주택건설촉진법(현 주택법)을 개정해 주택사업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을 만들도록 제도화했다. 이전까지는 주택을 짓던 건설사가 부도날 경우 계약자가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건설사들끼리 연대보증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한 회사가 부도나면 연대보증을 선 회사들까지 연쇄적으로 부도 위험에 처하곤 했다. 대형 건설사들이야 부도날 가능성이 낮아 서로 연대보증을 하는 데 별문제가 없었지만, 중소형 건설사들은 대형 건설사들이 연대보증을 해주지 않은 탓에 자기들끼리 연대보증을 서주다보니 연쇄부도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방만 경영 책임을 왜 우리가…”

정부는 이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공제조합을 만들어 주택건설 사업을 하려면 건축 규모에 따라 의무적으로 일정 금액을 공제조합에 출자하도록 제도화했다. 주택 건설 중에 업체가 파산할 경우 이 출자금으로 책임완공을 하거나 이미 납부한 분양대금 반환을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1993년 설립 당시 1015억 원이던 출자금은 1997년 3조2500억 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이 문제였다. 당시 건설교통부 공무원과 주택건설업체 대표자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는 대출보증을 남발했다.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던 허모 씨는 특정 기업에 특혜 대출보증을 해준 혐의로 구속됐는데, 그가 운영하던 회사도 출자금 370억 원의 3배가 넘는 1300억 원 이상을 특혜 대출보증 받았다.

1997년 국가 부도 사태에 이르자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건설사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특히 막대한 대출보증을 받은 건설사들이 잇따라 파산하면서 공제조합의 부담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이에 정부는 1999년 6월 공제조합 조합사들과 합의해 공제조합을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이하 주택보증)로 전환했다. 공제조합의 자산 실사를 통해 3조2400억 원이던 출자금을 4분의 1 수준인 8480억 원으로 감자(減資)하고, 감자한 만큼 정부(당시 건설교통부)와 금융기관이 추가 출자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공제조합의 선량한 조합사(주택건설업체)들은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돈을 냈다가 2조4000억여 원의 손실만 본 셈이 됐다.

조합사들의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공제조합은 소속 주택건설사가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때 수수료를 받고 대출보증을 해주면서 연대보증 회사를 요구했다. 대출보증 수수료는 자신들이 챙기면서 부도가 나면 1차 책임을 연대보증한 기업에 미룬 것이다. 이 때문에 주택건설사들이 연쇄적으로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자 정부는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증사고가 발생한 연대보증 채무에 대해서는 잔금의 15%만 납부하면 나머지를 탕감해주는 조치를 취했다. 다만 연대보증으로 인한 채무가 아닌 융자금은 3년 거치 12년 상환, 연 5% 이자로 갚도록 했다.

조합사들로서는 자신들의 출자금은 4분의 1로 줄었는데, 그 출자금을 담보로 빌린 융자금은 고스란히 갚아야 하는 것이다. 겨우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주택건설사들로서는 공제조합 운영진이 잘못해 일어난 모든 부실 책임을 자신들이 떠안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공제조합에서 전환한 주택보증은 주택건설사들이 융자금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향후 회사 경영상황 개선 시 원리금 상환 및 이자를 완화한다’는 합의서 내용에 근거해 융자금 환수 기간을 해마다 연장해주고, 연 5%였던 이자도 조금씩 낮춰 지금은 1%대까지 줄였지만 조합사들의 불만을 완전히 해소할 방안은 되지 못했다.

물론, 그나마 정부가 출자를 안 했다면 보증조합은 4분의 1 감자 정도가 아니라 100% 손실로 끝났을 것이고, 연대보증과 융자금 채무도 100% 강제상환이 집행돼 더 많은 조합사가 무너졌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감사원 감사로 분노 폭발

그 후 10년 가까이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이 문제가 불거진 계기는 2010년 감사원 감사였다. 감사원은 주택보증을 감사한 후 “회사전환 시 합의서 약정에 의하면, 회사전환 후 순재산액의 증가분을 건설업체들에 무상교부하는 방안의 검토를 위한 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고, 융자금 채무는 분할상환(이자 5%)받도록 되어 있음에도 협의회도 구성하지 않고 융자금 채무를 상환받지 못한 채 이율만 대폭 인하하였으므로 위 합의서 약정에 따라 주택건설업체의 융자금 회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순재산액 증가분’과 ‘원금 상환’ 문제를 공식적으로 건드리자 그동안 침묵하던 건설업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주택보증의 기본 자본금은 공제조합 출자금을 감자, 전환한 8480억 원에 정부와 금융기관의 출자금을 더한 3조2320억 원이다. 그런데 2012년 말 기준 자산총액은 5조7080억 원으로 여기서 부채를 뺀 순자산(자본)은 4조7269억 원에 달한다. 순자산이 1조5000억 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조합사들은 순자산이 증가했으므로 합의서대로 자신들은 무상교부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것으로 융자금을 상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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