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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뛰어든 농촌

새벽이슬 머금은 배추 밤하늘 별빛에 물들다

강원 평창·강릉 고랭지 배추 수확 현장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새벽이슬 머금은 배추 밤하늘 별빛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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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슬 머금은 배추 밤하늘 별빛에 물들다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의 고랭지 배추밭.

배추는 특별하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져선 안 될 중요한 반찬, 김치의 주재료이니 우리에겐 말 그대로 독별(獨別)난 채소가 아닐 수 없다.

배추는 힘이 세다. 해마다 널을 뛰는 배춧값에 재배농가도 소비자도 정부도 맥을 못 추고 ‘가격안정’을 외쳐대니 이만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채소 지존(至尊)’이 또 있을까.

‘슈퍼 갑(甲)’ 배추의 위상은 올해도 흔들림이 없다. 끈질긴 장마와 40년 만의 기록적 폭염, 추석 대목 성수품 수요 증가에 따른 수급 부족 현상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해보다 무려 60% 이상 수직 상승했다.

9월 2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7(기준은 2010년=100)로 전월대비 0.3% 상승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3% 올라 지난해 11월 1.6% 상승한 이후 10개월 연속 1%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는 긴 여름 세일 덕에 화장품 가격이 15.0%나 하락해 전월대비 각각 6.6%와 1.0% 오른 농산물 및 석유류의 상승 폭을 상쇄함으로써 물가상승률을 일시적으로 낮춘 데 따른 것이다.

3포기 1만3000원. 올라도 너무 오른 가격에 서민들은 대형마트 채소 코너에서 배추를 들었다 놨다 하며 한숨을 내쉰다. 7월 중순만 해도 배추 10㎏(상품) 가격은 4000~5000원 선에 그쳤다. 그러나 8월 31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경매가는 평균 1만1233원까지 가파르게 치솟았다.



배춧값이 급등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 30일 제5차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를 열어 가격안정 대책을 논의했다. 수급조절위는 장마와 가뭄으로 인한 작황 부진, 개학에 따른 학교 단체급식 수요 등이 겹치면서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생긴 것으로 파악하고, 9월 이후 공급 물량은 충분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자신하는 건 나름대로 ‘비빌 언덕’이 있어서다. 비교적 생육 상태가 양호한 강원지역의 고랭지 배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가 8월 21일 발표한 ‘고랭지 배추·무 주산지 출하 속보’는 “9월 상순 배추 출하량은 평년보다 5%가량 적겠지만 물량 공급이 크게 부진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올해 고랭지 배추 산지(産地) 사정은 어떨까. 수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질까. 8월 26~27일 고랭지 배추 본격 출하철을 맞은 주산지인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왕산면 일대의 배추 수확 현장을 찾아나섰다.

‘채소 지존’ 고랭지 배추

늘 설레기 마련이다, 새로움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라면. 서울을 출발해 승용차로 3시간 남짓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여정도 따분하지 않다. 왜 안 그렇겠는가. 숙지지 않을 것만 같던 유난한 무더위도 한풀 꺾였겠다, 첩첩산중에 펼쳐진 아주 특별한 ‘채소 곳간’을 둘러보러 가는 길이니.

8월 26일 오전 11시10분, 평창군 대관령면 유천리의 한 배추밭. 1만6500㎡(5000평)에 달하는 산비탈에서 인부 예닐곱 명이 뙤약볕을 고스란히 등에 진 채 배추 수확에 한창이다. 밑동을 잘라 밭이랑에 쭉 뉘여놓은 배추들을 출하용 플라스틱 상자에 가득 담고, 그 상자들을 1t 화물차 적재함에 차곡차곡 쌓는 일련의 작업이 2개 조(組)로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났건만, 대낮의 중노동이어선지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연신 훔쳐내기에 바쁘다. 상자를 잔뜩 쌓은 1t 화물차는 좁은 밭길을 용케 지나 밭 아래 대로변에 대기 중인 5t 화물차로 실어 나르길 반복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피니 왠지 인부들 죄다 이방인 분위기가 묻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30대 남성에게 말을 붙여도 묵묵부답. 한참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수줍은 듯 “한국말 잘 못해요” 한다. 중국인이다.

배추 수확 작업은 고되다. 한철 일거리인 데다, 일일이 사람 손이 닿아야 해서다. 팔다리와 허리를 장시간 써야 해 3D 업종으로 통한다. 자연히 한국 사람은 일을 꺼리고, 그만큼 일손 구하긴 버겁다. 빈자리는 중국인, 베트남인, 몽골인 등 외국인 노동자가 채운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옛말은 대체로 맞다. 때마침 같은 시각, 배추밭엔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 일행이 현장 방문해 고랭지 배추의 생육 상황과 수급 및 가격 동향을 점검하면서 박병승 대관령원예농협 조합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이 배추들은 6월 22일 정식(定植·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다 심는 일)한 것을 7월 22일 농협이 포전(圃田·남새밭)째 인수해 가꿔오다 오늘 출하하는 겁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예년보다 이 일대 배추의 생육이 다소 부진하지만, 8월 말까지 대부분 출하를 끝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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