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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중국의 부상, 미국의 견제, 한국의 딜레마

  • 정재호·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중국의 부상, 미국의 견제, 한국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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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등장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이렇게 등장한 “중국이 과연 위협인가”라는 질문에 집중된다. 이 질문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크게 두 개의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부상’하는 중국은 위협적인 세력일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봉쇄’(containment)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이 봉쇄보다는 ‘개입과 교류’(engagement)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논의 대부분이 봉쇄 또는 교류 주체인 ‘우리’(미국을 위시한 서방으로서의 ‘we’)와 항상 그 객체로서의 ‘그들’(중국을 의미하는 ‘they’)을 상정하는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이 과연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을 채용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중국의 부상’과 관련하여 한국에서 이루어진 학술회의는 별로 없었으며 공식적인 논쟁 또한 없었다. ‘중국의 등장’과 관련하여 발표자 모두가 한국학자들로 이뤄진 회의에서도 한국적 함의와 이에 대한 우리 나름의 전략적 대안에 대한 제안이나 평가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논의 거의 모두가 영어로 번역하면 서방학자들의 논의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할 만큼 서방의 관점을 그대로 빼닮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포괄적 포용정책’, 다극화, 중국의 Su-27, 동풍-41, SSBN, 항공모함, 공중급유능력 등이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한국에서 바라볼 때 왜 중요한지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맥락에서 중형국가(中型國家)로서 한국이 가져야 할 시각이 과연 미국이나 강대국들의 시각과 동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 우선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위협으로 작동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작업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능력, 의지, 인식이 그것이다.



우선 능력(capabilities) 부분은 앞에서도 논의했다시피 중국의 고성장이 상당기간 지속되기만 한다면 그 증가하는 재원중 부분적인 투자를 통하여 충분한 방어력 및 투사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성장 속도가 늦춰진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동원체제인 중국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능력, 의지, 인식

중요한 것은 의지(will) 부분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상당히 독특한 유형과 행태를 통하여 주변국들에 자신의 힘을 투사해왔다. 예를 들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맞았을 경우 그냥 쉽게 물러나서 대국으로서의 ‘체면’(面子)을 손상시키기보다는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맞붙어 저항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 이후 1년여 만에, 핵을 보유한 초강대국 미국과 국제연합을 상대로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이러한 행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당시 중국은 사천과 티베트에서 국민당과 내전을 계속하고 있었고, 수백%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1969년 문화대혁명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핵무기 사용위협에도 불구하고 소련과의 군사충돌을 주저하지 않았던 진보도(珍寶島 Damansky Island) 사건 또한 중국의 독특한 행태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반면에 비교적 수월한 상대에 대하여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후 상당한 수준의 절제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62년 10월 인도와의 국경분쟁과 관련한 군사충돌의 경우 인민해방군은 인도군에 확실한 우위를 보인 후 중국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경계선까지 일방적으로 후퇴하고 정전을 선언한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많은 중국문헌들이 주장하듯이 이러한 제한적인 무력사용 방법과 행태가 반드시 중국이 가진 ‘인덕형(仁德型)의 전략문화’를 의미한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강한 중국은 곧 위협’이라는 등식에 대하여 우리는 좀더 비교적이며 역사적인 시각을 도입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시간 대학의 전쟁원인연구그룹이 작성한 대규모 데이터를 사용하여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하버드대학 존스톤(Alastair I. Johnston) 교수의 실증적인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영토분쟁과 관련한 경우에 가장 빈번히 무력을 사용하였으며 자신에게 맞는 국제적인 위상을 추구하기 위하여 군사분쟁에 개입한 경우도 많았다. 보다 중요하게는 전반적으로 국력의 획기적인 증대에도 불구하고 개혁기(특히 1990년대)에 들어 - 개혁, 개방의 성공과 함께 자신감과 국제적 위상이 제고되면서 - 중국의 군사분쟁 개입 빈도가 상대적으로 현저히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기간에 걸쳐 성장과 발전의 여지가 많은 중국이 나름대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도 전에 임의로 중국은 위협적일 것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어쩌면 서방국가들이 자신들의 근대국가 형성시기에 대한 기억을 중국에 무차별적으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인식(perceptions)의 측면이다. 곧 중국의 ‘(비)위협적’인 행태가 모두에게 똑같이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정학적, 역사적, 문화적인 변수들에 의하여 중국에 대한 인식이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또 양자관계의 다양한 요인들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기에 중국에 대한 획일적인 이미지 부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더구나 우리 나름의 잘 맞는 ‘렌즈’를 갖추지 못한 채 중국의 미래에 대한 그림을 외부에서 주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어느모로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중관계의 발전 그리고 한·미관계에 대한 도전

최소한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중국은 이미 등장하였으며 또 등장한 중국이 반드시 위협이 아닐 수도 있다면, 한국에 있어서 과연 중국은 어떠한 존재인가? 그리고 이 시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가까워진 한·중관계가 한·미관계에 던지는 질문들은 무엇인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지난 20여 년간, 특히 1992년 8월24일 양국의 수교 이후 급속도로 발전했다. 우선 1950년대 이후 근 30년간 적대적이거나 상호 무관심 또는 무정책으로 특징지워졌던 양국 관계를 수교로까지 이어지게 했던 경제관계를 살펴보자.

한·중교역은 1979년 홍콩, 싱가포르나 동경을 경유한 간접교역 1900만 달러에서 18년 만인 1997년에는 무려 1249배 증가한 237억 달러에 이르렀다. 수교 이전인 1991년에 이미 58억달러의 교역규모를 이루었던 것을 볼 때, 한·중 경제관계는 그 시작부터가 상당히 특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영향으로 1982년 이후 한·중 교역규모가 처음으로 감소했던 1998년에도 양국은 서로 제3대 교역국의 자리를 지켰으며, 1999년에는 225억 달러 규모의 교역이 이루어져 1997년 수준을 거의 회복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992년의 수교 이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대중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규모 또한 1998년에 54억 달러, 1999년에는 48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해외투자에 있어서도 그 실제 투자액 기준으로 65억 달러가 투자된 미국 다음의 제2 투자대상국이 중국(41억 달러 이상)이다. 한국의 대미 투자는 시기적 제한이 없었으나 대중 직접투자는 1988년 이후에야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중국 투자의 급속한 성장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한국은 중국의 해외투자 제7대 대상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어서 중국이 갖는 정치, 외교적인 함의는 무엇인가?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중국은 한반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고 또 적지 않게 개입하고 관여해 왔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이 그러했고,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 그러했다. 또한 중국이 종래의 남북한을 지칭하는 ‘당사자 해결원칙’의 견지로부터 일정부분 벗어나 정전협정 당사자 자격으로 1997년 4자회담에 참여한 것을 보면 동북아지역 그리고 한반도에서 급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느낄 수가 있다.

더구나 중국이 소지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상당한 수준의 대북한 영향력은 중국의 정치, 외교적인 힘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저간의 경제위기를 그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중국에 의한 식량 및 에너지 무상원조 또는 ‘우의가격(友誼價格)’에 의한 유상제공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지원이 실제로 어떠한 상황 하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구체적인 영향력으로 전환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나라도 북한에 대해 중국과 같은 잠재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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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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