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일본, 왜 지금 ‘혐한류(嫌韓流)’인가

‘한류가 日 우익 이데올로기 위협’… 정치적 의도로 적대감 조장

  • 장팔현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 박사·일본사 jan835@hanmail.net

    입력2005-09-29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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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왜 지금 ‘혐한류(嫌韓流)’인가

    이시하라 신타로도쿄지사는 도쿄의 한류 잠재우기에 앞장섰다.

    극우보수주의자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9월8일 타이완 타이베이시를 방문해 마잉우 타이베이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영화를 비하했다. 그는 “대만 영화가 품질이건 수량이건 모두 한국 영화보다 좋고 내용도 풍부하다. (그런데도 한국 영화가 일본에서 인기 있는 것은) 일본 중년층과 노년층이 한국 영화 보기를 좋아하며 한국 영화 다수가 1940년대와 1950년대 일본 풍경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시하라 도지사의 한류 비판은 논쟁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근거가 박약하고, 상대에 대한 편견과 무시로 가득하다. 한국 영화계가 경청할 만한 조언도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근거 없는 한류 때리기, 혐한의 분위기는 일본에서 점점 더 세를 얻어가고 있다. 일본 사회 여론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매스미디어, 대중문화계, 그리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유력 인사들이 ‘혐한류’를 조장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최근 도쿄의 매스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류 깎아내리기’는 빈번하고 집요하다.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접근해도 무리가 없다.

    한국인 TV 출연시켜 한국 비하

    요즘 일본 TV들은 혐한류의 주요 매개체 노릇을 한다. 지난 1월29일 니혼TV는 ‘제네장’이란 한류 스페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혐한류’가 주내용이었다. 일본인 출연자들은 “한류는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게 아니고, 당시 조선의 총리 이완용씨가 합방조약서에 서명한 것이다. 정당한 절차로 맺어진 합방조약인데 왜들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한일합방은 조선이 원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프로그램은 한류 비하에서 점차 한국 역사 비하로 방향을 틀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출연진이 공중파 방송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한류 비하 발언이 대부분 만화 ‘혐한류’에 나오는 대사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한국을 비하할 때 동원된 논리 구조도 똑같다. 만화 ‘혐한류’는 혐한류의 바이블이 되어 TV 등을 통해 혐한(嫌韓) 분위기를 일본사회에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 민영방송인 TBS 등은 오전 10시와 오후 3시경 집중적으로 한국 관련 가십성 뉴스를 내보낸다. 이들 프로그램은 혐한류를 왕성하게 퍼뜨리는 대표적 매체다. 한국에서 일어난 비상식적인 뉴스들이 조롱의 대상으로 올라온다. 이러한 프로그램엔 친일(親日) 성향의 한국인이나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입을 통해 한국을 비판하니 훨씬 설득력이 높아 보이는 것이다.

    변진일, 백진훈, 오선화가 대표적

    대표적 인사는 한국 전문가로 자처하는 변진일씨(‘코리아리포트’ 편집장).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 유력 정치인 백진훈씨도 단골로 출연해 극우인사들과 별반 다름없는 발언으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교묘히 자극한다. 그는 “한국에선 양친의 허락이 없으면 결혼을 못한다”고 하는가 하면 “북한의 생화학 무기 공격에 대비해 한국의 경찰 등은 의무적으로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일본 TV에 출연하는 한국인 대다수는 역사 문제, 독도 문제, 문화교류 문제에서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동원된 소품에 불과하다. 이들은 한국의 보편적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극우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며 일본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들이다. TBS 방송의 ‘선데이 재팬’ 프로그램에는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을 지낸 시게무라씨가 자주 출연한다. 그의 서울 비하는 걸쭉하기 이를 데 없다.

    TV는 일본 대중에게 인기 있는 극우인사들의 한국 비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기도 한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오쿠노 세이료오, 이시바 시게루, 시마무라 요시노부,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우익 인물들은 TV에 자주 등장해 한국 비하의 분위기를 잡아 나간다.

    여성 뉴스캐스터 출신 사쿠라이 요시코는 혐한류 확산에 앞장선 방송인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위한 모금광고에도 나온다. 그는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한국 인사들에게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질문하면 통상 한국에서 보이는 거센 반발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김 의원이나 신 대표의 발언을 왜곡해 전달한 것이다.

    일본, 왜 지금 ‘혐한류(嫌韓流)’인가

    최근 일본에서 혐한류 바람을 일으킨 만화.

    신문에서는 극우 칼럼니스트들이 혐한의 분위기를 잡아간다. 조오치(上智)대 와타나베 쇼이치 교수는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같은 우익 신문에 한국을 공박하는 칼럼을 자주 게재한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일협정으로 모두 끝난 문제입니다. 한국인 스스로 끝내자고 도장을 찍어놓고 이제 와서 뭔 소리입니까” 하는 식이다. 이들 언론인과 언론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들은 역사 문제, 독도 문제를 한류 바람을 누그러뜨리는 데 적극 활용한다.

    9월4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취재진이 ‘용사마’ 배용준씨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 있자 “(배용준이 ‘미소의 귀공자’라면) 나는 ‘벌레의 귀공자’”라고 말했다. 일본 스포츠신문은 ‘다케시, 용님에게 대항?’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불평은 농담이라기보다는 한류에 대한 적개심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쇼쿤, 세이론, 사피오, 플레시

    일본의 시사잡지, 서적, 만화는 혐한류에 이론적 근거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혐한류의 온상이다. 극단적 혐한론자들에게 ‘쇼쿤(諸君)’ ‘세이론(正論)’과 같은 월간지, ‘사피오(SAPIO)’ ‘플레시’ 등의 주간지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원고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4대 혐한 잡지’.

    네 잡지의 기사 대부분은 한국 비하 내용으로 채워진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터지자 이들 잡지는 반색을 하며 한국 비난의 사례로 대거 인용했다. 이들은 ‘혐한 상업주의’로 재미를 보고 있다. 최근 이들 잡지의 주된 관심사는 한국인 필진을 동원해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에 큰 도움을 줬다는 논리를 확산하는 일이다.

    서적도 혐한류를 끝없이 용솟음치게 하는 샘물과 같다. 한류가 확산될수록 혐한 서적의 종류와 수는 더 많아진다. 요즘은 한국인이 지은 혐한 서적이 특히 잘 팔린다. 대표적 작가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오선화씨(49·다쿠쇼쿠대 교수). 오씨는 한국 대중문화와 한국 젊은층을 조롱하는 내용의 저서를 수십권 출판했다. 오씨는 저격수처럼 ‘한류’를 정확하게 겨냥한다.

    오씨는 지난 7월 ‘문예춘추’에 ‘용사마와 결혼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한류 드라마에서 비쳐지는 것과는 딴판으로 한국 남성은 결혼 상대로는 지구상에서 최악”이라고 썼다. 그는 “드라마를 보고 한국 남성을 로맨티스트로 생각한다면 오산. 한국 남성은 연애할 때는 온갖 미사여구를 써가며 여성을 유혹하지만 결혼하면 바람기와 폭력, 남존여비, 남아선호, 고부갈등으로 여성을 견딜 수 없이 괴롭힌다”고 썼다.

    그의 글에선 한국 여성도 최악이다. 오씨는 ‘스커트의 바람-일본 영주를 목표로 하는 한국의 여자들’이라는 책에서 젊은 한국 여성들을 ‘싸구려’로 비하했다. 이어 ‘반일 한국에 미래는 없다’라는 책으로 엄포를 놓더니 급기야 ‘한국 병합에의 길’을 내기에 이른다. 균형감을 잃은 논리로 가득 차 있지만 한국인 여성이 썼다는 점, 한류를 집요하게 비난했다는 점이 먹혀든다. 중국 동포인 김문학·명학 형제도 일본에서 ‘한국민에 고함’ 등의 혐한 작품을 잇따라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TBS 기자 출신으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원인 이자와 모토히코는 혐한류의 선봉에 선 작가다. ‘역설의 일본사’ ‘야망패자’ ‘무사’ 등이 그의 저서인데 한국에서도 번역출판됐다. 그런데 오선화씨나 김씨 형제, 이자와씨는 서로 친분을 나누는 사이다. 도요타 아리쓰네도 혐한류에 일조하는 작가다. 그는 ‘적당히 해라, 한국’이라는 책에서 “일본은 한국의 분풀이 국가. 일본은 한국에 기술원조를 하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못 듣는다”고 했다.

    “설기현이 팔꿈치로 상대선수 가격”

    일본 젊은층에서 혐한류 바람이 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야마노 샤린이 제작한 만화 ‘혐한류’다. 이 책은 아마존재팬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앞서 언급했듯 혐한류를 고취하는 일본 TV 등 매스컴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주로 한국을 비하하는 관점에서 한일 역사 문제, 한국의 대중문화·스포츠를 다룬다. 이 만화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이 불공정한 판정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설기현이 포르투갈 선수를 팔꿈치로 때려 포르투갈 선수가 나뒹굴고, 최진철이 포르투갈 골키퍼를 밀쳐도 주심이 못 본 체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또한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 문화를 훔친 것이라고 폄훼하며, 한국 매스컴에 대해서도 반일 컴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공격한다. 안중근 의사를 어리석은 테러리스트로 묘사하고, 조선총독부가 비로소 한글을 문자로 체계화했다고 설명한다. 이 만화는 일본 매스컴도 공격한다. 이시하라 도쿄도지사가 “세계 여러 나라가 동의해 일한병합이 이뤄졌다”고 말했는데도 일본 TV 등 언론이 이를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며 비판하는 것.

    매스컴과 서적류를 통해 간접 체험하게 되는 혐한류는 거리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우익단체들의 집회나 행진이 그것이다. 이들은 대개 ‘정심숙(正心塾)’과 같이 ‘ 숙’이라는 이름을 쓰며 우익세력과 야쿠자의 결탁으로 결성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긴장을 높이기 위해 한국, 중국과의 갈등을 조장한다. ‘한국은 다케시마에서 당장 나가라’는 구호는 이들의 단골 메뉴다.

    일본, 왜 지금 ‘혐한류(嫌韓流)’인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배용준 주연의 영화 ‘외출’ 시사회. 한류는 2005년에도 여전히 강세다.

    한류에 대한 역풍으로 혐한류의 기세가 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혐한류는 최근 발생한 현상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혐한류는 역사적 기반 위에 흘러오고 있다. 최근에 그 기세가 표면으로 자주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혐한류의 기원은 19세기 정한론(征韓論)에서 출발한다. 에도시대에도 200여 년 동안 12차례에 걸친 조선통신사 왕래를 통해 한류 붐이 일었었다. 그러나 사쓰마와 쇼오슈우 지방의 무사들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중심의 정권을 수립하는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자마자 조선에 일왕을 황제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조선이 이를 거절하자 일본 정권에선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이 일었다. 정한론은 막부시대 한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며 조선에 대한 우월감, 조선에 대한 혐오감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정한론’ 후손이 ‘혐한론’ 퍼뜨려

    정한론은 일제 강점기 때 절정에 다다라 한국 민족을 아예 지워버리는 민족말살정책으로 발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북한을 극도로 경멸하고 한국을 무시하는 혐한론으로 이어졌다.

    현재 일본 정치, 경제, 사회, 매스미디어를 지배하며 ‘혐한론’을 퍼뜨리는 세력은 정한론을 주창한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 세력과 혈연관계에 있다. 일본 우익으로선 현재의 한국은 20세기 초반과 같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 감정적으로 혐한류를 퍼뜨리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류는 이제 일본의 중년층뿐 아니라 젊은층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40, 50대 주부들은 배용준에 열광한다. 그러나 가수 비의 도쿄 공연장엔 10대, 20대가 주로 찾는다. 일본 축구는 여전히 한국 축구보다 우위에 있지 못하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단발성이 아닌, 롱런하는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 정보통신, 주거문화 수준은 일본이 무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양국간 민간교류는 일시적 부침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대하는 추세다. 한국에서도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부분 사라졌다. 일본이 형평성을 문제삼으며 한국 대중문화를 거부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한류의 고착화’가 진행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혐한류의 정치공학

    세계화 시대에 한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즐기는 것은 일본의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국익에 손상을 주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일본에선 한류를 폄하하려는 혐한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자연스런 반작용이라기보다는 의도된 작업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한류의 확산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극우세력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우세력은 자신들이 일본을 이끌어가야 하는 명분을 천황 중심의 배타적 민족 이기주의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주변 민족과의 우호적 공생관계가 확대되는 분위기에서 민족주의는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다. 한류에 힘입어 한국과의 우호 관계가 태동하는 것은 일본 극우세력으로선 처음 접하는 낯설고 위협적인 현상이다. 이는 자신들이 내세우는 지배이념의 효용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다.

    다른 민족과의 경쟁구도, 대결구도가 심화될수록 민족주의는 힘을 얻는다. 평화는 민족주의의 적(敵)이다. 타자(타민족)와의 갈등이 커질수록 이데올로기의 실존적 가치가 증대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만큼 비통합적인 이념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에 적대적이면서 군사력도 강한 중국, 북한은 일본 우익의 최대 후원자일지 모른다. 더구나 중국과 북한의 지배층도 권력의 명분을 중화사상, 주체사상 등 변형된 민족주의에 두고 있다. 일본, 그리고 중국·북한의 지배세력은 서로 적대적인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이상적 파트너들인 셈이다.



    여기에 반일감정을 지닌 한국이 변함없이 일본과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주면 더 좋다고 일본 우익은 이심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류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의 1월에 왜 일본의 극우세력은 별 실익도 없는 독도 영유권 분쟁을 일으켜 역사 이래 가장 가까워지려는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었을까. 일본 사회의 혐한류는 대중문화현상이 아니다. 혐한류엔 고도의 정치공학이 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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