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입력2013-09-25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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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보다 높은 서울의 방사선량률
    • 후쿠시마, 반핵운동 속에서도 평온
    • 농업 경기 죽고 건설 경기 살아난다
    • 오염 지하수 막으려 땅 얼리고 유리기둥 세워
    • 일본, 원전 해체의 최강국이 될 수 있다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서울의 방사선량률

    9월 1일, 서울 충정로역에서 5호선 지하철을 탄 기자는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에서 빌린 환경방사선 측정기 전원을 눌렀다. 측정 단위는 시간당 마이크로시버트. 0.074로 나온 값이 지하철이 속도를 내면서 변해갔다. 소수점 표기가 불편하게 느껴져 정수로 읽게 됐다(74로 읽는다. 이하 동일).

    74는 75로 변했다가 72→69→71→72→77→84→83→62→72→79→80이 됐다. ‘100점 만점’에 익숙해선지 80이 넘는 값이 나오자 강한 방사선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 강남의 측정값이 100~150이란 걸 알면서도 ‘제발 100 가까이로는 가지 마라’며 초조해했다. 그러다 김포공항역에 내리자 104가 나와 수치 변화에 더 민감해졌다.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서울보다 낮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항공편을 운항하는 항공사들은 2011년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후 계속된 방사성 물질 유출 괴담(怪談)으로 여객이 줄어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후쿠시마 1발전소 밑을 지난 지하수가 바다로 흘러들어 해양을 오염시킨다는 보도와 그 지하수를 담아놓은 탱크에서 방사선량률이 높게 나왔다는 보도가 쏟아져 괴담은 날개를 달았다. 수산업계도 된서리를 맞았다.

    괴담의 실체를 살피러 가는 길이니 이왕이면 일본 항공기를 타고 가는 게 좋겠다 싶어 ANA기를 선택했다.



    지하 1층으로 올라오니 수치는 132로 올라갔다. 무빙워크 공사 때문에 높은 수치가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의 ANA 카운터 앞에 서자 101→95→121→112→113→125로 변해갔다. 김포공항은 서울 지하철보다 방사선량률이 더 높았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승객들은 태연히 몸 검사, 짐 검사를 받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자 87→78→80→77→76→84→94→91로 떨어졌다. 마음이 좀 놓였다.

    보딩 브리지에서는 56, 46이 나왔는데 이는 한국에서 본 가장 낮은 수치였다. 보딩 브리지는 건물 밖에 있다. 왜 지하철이나 공항 같은 건물 안보다 바깥의 방사선량률 수치가 낮은 걸까. 이유는 콘크리트에 있다. 콘크리트는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러나 전혀 위험하지 않은 수준이라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아도 된다.

    ANA기 안에선 수치가 35로 떨어졌는데 이륙 후 순항고도에 오르자 176→180→192→204→205를 찍었다. 1시간 넘게 비행한 뒤에도 185→181→207→197→191을 기록했다. 하늘에서 오는 방사선인 ‘우주선(宇宙線)’ 때문임이 분명했다. 여객기는 고도 10km 안팎에서 날아가니 승객들은 지상에 있을 때보다 강한 방사선을 쐬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우주선은 태양에서 온다. 핵융합을 하는 수소폭탄은 핵분열을 하는 원자폭탄보다 1000여 배 강한 에너지를 낸다. 지구보다 109배 큰 태양이 핵융합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그 에너지 덕분에 지구상의 생물이 살아간다. 그러나 에너지와 함께 나오는 방사선은 1억5000여 만km라는 먼 거리와 대기권 때문에 지구상의 생물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자 우주선이 줄어든 탓인지 7→9→14→9라는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항공업 종사자들은 서울보다는 도쿄의 방사선 수치가 낮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사실이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자 34→25→22→24→27→29→26으로 변했다. 가이드의 차를 타고 도쿄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도 24~30 사이였다.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일본의 방사선량률

    도호쿠(東北)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조금 올랐다(60~80). 얼마 전엔 일본에 도착하면 ‘후쿠시마는 한국인 여행 금지구역입니다’라는 외교부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오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후쿠시마를 더 이상 위험지역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일까.

    도쿄에서 후쿠시마로 가려면 차로 3시간여를 달려야 한다. 2시간여를 달려 어둠이 깔릴 무렵 터널 하나를 지나게 됐는데 수치가 갑자기 높아졌다. 130이던 것이 211→275→259→255→243→227→295를 거쳐 526을 찍고 515→500이 됐다.

    ‘후쿠시마에 가까워지니 방사선량률이 도쿄보다 10~20배 높아지는구나. 나를 지키는 방호(防護)법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500대 수치는 5분쯤 지나자 197로 떨어졌다. 8시쯤 후쿠시마 역 앞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자 서울과 비슷한 77→84→91→93→102가 나왔다.

    후쿠시마에 사람이 ‘잘’ 산다

    기내식 말고는 먹은 게 없어 바로 식당을 찾아나섰다. 불을 켜놓은 이자카야(居酒屋)로 들어가니 손님이 제법 있었다. 젊은이들이 모인 테이블에선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사능 오염 지역이라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잘들 지내고 있었다. 아사히 맥주와 함께 그곳 주방장이 그곳 식재료로 만들었을 밥과 안주를 시켜 먹었다. 생선으로 만든 안주도 있었지만 원산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시에 사람이, 그것도 태연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을 나서자 도로 가운데 ‘핵병기(核兵器) 폐절(廢絶) 평화선언 도시’라고 쓰인 광고탑이 보였다. 후쿠시마에도 반핵운동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었다. 도로 한가운데로 들어가 탑 앞에서 측정하자 295라는 높은 수치가 나왔다. 지도에서 후쿠시마 발전소로 가는 114번 국도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 후 출발했다. 목적지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릴 듯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수치가 높아졌다. 436→520→489. 길가에 ‘제염(除染)작업중’이란 현수막 여러 개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제염’이란 단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차에서 내려 살펴보기로 했다. 작업자들이 불도저로 흙을 얇게(3~5cm 정도) 밀어 모은 다음 포클레인으로 떠서 플라스틱 통에 담고 있었다.

    안전봉을 들고 교통 안내를 하던 작업자는 사진 촬영을 하는 ‘이방인’을 전혀 제재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옮겨 다니면서 측정기를 보니 482→430→831→430→482→695→891→915→789→831로 치솟았다. 915를 봤을 땐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작업자들은 일반 작업복에 일반 마스크만 쓰고 일하고 있었다. 그곳은 안전지대이지만 다른 데보다 방사선량률이 높았다. 이 때문에 오염된 토양이 바람이나 빗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걷어서 통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통에 담은 흙은 반감기가 지나면 다시 농사용 흙으로 사용한다.

    용기를 내 차를 몰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수치는 1511→1676→1812로 급격히 상승했다. 2252를 찍었을 때 도로 진입을 막는 통제소가 눈에 들어왔다. ‘가와마타초(川·#53701;町)’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이었다.

    ‘통행제한 중’이라고 쓴 노란 간판이 걸린 통제소에 가서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다. 사진을 찍어도 좋은가?”라고 물었다. 근무자들은 “도죠(그렇게 하라)”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찍히는 것은 싫은지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들도 일반 작업복, 일반 마스크에 헬멧만 쓰고 있었다. 헬멨 아래로 흰 머리칼이 드러났다. 60~70대 노인들이었다.

    측정기를 꺼내자 3067을 기록했다가 기자의 움직임에 따라 3033→3268→3358→3088로 바뀌어갔다. 수치가 너무 높아 뒷골이 땅기는 느낌이었다. 노인일수록 방사선에 취약한데 왜 노인을 고용해 통제 임무를 맡겼을까. 그들에게 “이곳의 방사선량률 수치다”라며 측정기를 보여줬지만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하루 6시간 반씩 교대로 근무한다고 했다.

    그때 경찰차가 다가오자 근무자들은 대화를 끊고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간 경찰차에서 경찰관 한 명이 내렸다. ‘통제선까지 와서 방사선량률 측정을 하는 취재를 방해하면 어쩌는가….’

    경례를 하며 다가오는 그에게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했더니 기자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느냐”고 농담을 하며 동아일보 신분증을 내주니 이리저리 훑어봤다. 그러고는 수첩을 꺼내 한자로 매체 이름과 성명을 써달라고 한 후 차로 되돌아갔다. 그의 가슴에 ‘시즈오카(靜岡)경찰’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시즈오카 현은 도쿄 서쪽에 있는, 후쿠시마에서 상당히 먼 곳이다.

    겁 없는 빈집털이범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안전지역 가운데 방사선량률이 높은 곳의 표지토양을 걷어내 통에 담는 제염작업.

    2011년 3월 사고가 일어나자 일본은 발전소 반경 20km 이내 주민을 피난소로 강제 소개(疏開)했다. 그리고 안정되자 그 폭을 10km로 좁혔다가 조금씩 더 좁혀가고 있다.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데, 후쿠시마 현에는 편서풍이 불어 방사선량률 수치는 정서(正西) 방향으로 갈수록 높게 나온다. 따라서 정서 방향으로 길쭉하게 남기는 형태로 10km 지역을 좁혀나가고있었다. 가와마타초는 한 달 전인 8월 8일 통제가 해제됐다.

    일본은 주민을 완전 소개하는 ‘귀환 곤란 지역’, 성묘나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방문은 할 수 있는 ‘거주 제한구역’으로 통제구역을 나눠 관리한다. 그곳은 가재도구도 오염됐기에 주민들은 몸만 옮겨갔다. 통제가 풀린 지역에서 일부 주민은 귀환했으나 일부는 모든 것이 황폐해지고 불안해져 고향에서의 삶을 포기했다.

    통제선 안팎으로는 빈집과 묵은 농토가 즐비했다. 통제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잘 지은 전원형 카페가 있었는데 주인이 안 돌아온 탓인지 마당에 웃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한 집은 낡은 트랙터로 마당을 막아놓았는데, 2년 이상 방치된 탓인지 트랙터가 주저앉아 있었다.

    이렇다보니 빈집털이범들이 기승을 부렸다. 하루쯤 높은 방사선을 쐬어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체득한 좀도둑들은 통제선을 뚫고 들어가 발전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집도 턴다고 한다.

    경찰은 물론 소방국과 자치단체가 방범순찰에 총력을 기울였다. 후쿠시마 현 경찰로는 손이 모자라 전국의 경찰이 교대로 지원하게 했다. 기자를 검문한 시즈오카 경찰관이 그런 경우다. 외지 번호판을 단 차가 통제선에 있는 것을 보고 신분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일본인들은 어떤 상태에서 피난했을까 궁금해 빈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가이드가 “개인 주택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CCTV에 찍히면 문제가 된다”며 말렸다. 방금 경찰관을 만나놓고도 그들의 방범활동을 간과했던 것이다.

    피난소는 ‘슬픔의 장소’라고 한다. 일본의 농촌도 우리처럼 대개 노인들만 사는 곳이 됐다. 지병이 있는 그들이 낯선 이들과 공동생활을 하게 되니 불편한 점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차피 가족은 오지 않을 것이고, 병치레하는 몸을 남에게 보이고 사는 것도 싫어 여러 노인이 자살했다. 이 때문에 ‘아주 위험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주장이 일었지만, 일본은 답답한 ‘매뉴얼 사회’답게 원칙을 바꾸지 않고 있다.

    잠시 후 도로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지프가 도착하더니 도쿄전력 작업복을 입은 이들이 내려 방사선을 측정했다. 그들의 계기에 찍힌 수치는 2858이었다. 그런 식으로 도쿄전력과 지자체 등은 지점을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마다 방사선량률을 측정하고 있다. 역시 일본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답답하지만 매우 정확한 사회다.

    후쿠시마 시로 돌아오는 길에 통제선 출입증을 붙인 소형버스, 트럭 여러 대와 마주쳤다. 후쿠시마 현장에 들어가는 인부와 자재를 실은 차량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의 농업 경기는 무너졌지만 건설 경기는 붐을 맞은 듯했다. 후쿠시마 방호공사 때문에 전국에서 기술자와 인부, 자재가 몰려든 탓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라면집도 건설 관계자들로 붐볐다.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라면집 부근에는 이렇다 할 마을도 없는 것 같았지만 대형 슈퍼마켓 3개가 나란히 영업하고 있었다. 9월 5일 한국에서 수입금지 조치를 한 홋카이도(北海道)산 등 인접 지역의 수산물과 후쿠시마산 농산물이 진열돼 있었다. 한국을 뒤흔들고 있는 ‘후쿠시마 괴담’이 정작 후쿠시마엔 없었다.

    다음 날 오전 기자는 도쿄전력 본사를 방문해 히토스기 요시미 홍보과장 등을 만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당신처럼 찾아오면 정확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는 외국 언론이 드물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쿠시마 사고는 가동 중이던 발전소 1, 2, 3호기로 물이 공급되지 않아 핵연료가 녹아내리고, 녹아내린 핵연료의 열로 원자로가 훼손(구멍이 뚫림)돼 일어났다. 전원이 복구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물을 넣어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는 것이었다. 두 달 동안 모든 방법을 다 써서 훼손된 원자로 안으로 물을 넣는 데 집중했다.

    트렌치 오염 놓쳤다

    그 결과 1, 2, 3호기 안으로 물이 들어가 녹은 핵연료를 냉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집어넣은 물이 훼손된 원자로 탓에 새어 나오게 됐다. 현재로서는 훼손 부분을 막을 방법이 없기에 새어 나온 물을 회수하는 데 주력했다. 결국 새어 나온 물을 완벽히 수거해 식히고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필터링을 한 다음 다시 원자로 안으로 주입해 녹은 핵연료를 식히는 사이클을 구축했다. 이 사이클은 완벽하기에 녹은 핵연료와 접촉한 물이 원자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원자로 이외의 시설로 가는 물은 완벽하게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수소폭발 등으로 생긴 균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발전소 밑에는 케이블과 각종 배관을 집어넣은 지하공동구인 ‘트렌치(trench)’가 있다.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데 집중할 때, 원자로 이외 시설로 들어갔다가 흘러나온 물이 트렌치로 흘러들어 꽉 채우자, 트렌치 맨홀 등으로 샘물처럼 솟아올라 바다로 흘러갔다.

    트렌치 안에 오염된 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황급히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 물의 오염도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급한 대로 퍼 올려 강철 탱크에 담아 놓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볼트로 조인 접합부에 틈이 있었는지 물이 새어 나와 탱크 주변을 심각하게 오염시켰다(9월 3일 도쿄전력은 물 누설이 많았던 2개의 탱크 하단에서 시간당 2200밀리시버트의 높은 방사선량률이 검측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모든 물탱크의 조임 부분을 용접해 더는 물이 새어 나오지 않게 하려고 한다. 도시바(東芝)가 개발한 필터링 장비로 이 물에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도 할 것이다. 필터링 작업으로 방사선량률 수치가 크게 떨어진 물은 바다로 방류한다. 하지만 트렌치 안에는 여러 구조물이 있어 물을 모두 퍼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물이 트렌치의 균열을 통해 땅속으로 스며들어 발전소 밑의 토양을 오염시켰다.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후쿠시마 괴담 때문에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자 한국원양산업협회는 일본이 아닌 베링해에서 잡은 동태를 한국에 공급하고 있다는 신문광고를 냈다.

    사건 직후 수소폭발로 원자로 건물이 훼손됐고 그 틈으로 빠져나간 방사성 물질 상당량이 발전소 주변 땅에 떨어졌다. 이 물질이 비를 맞으며 토양으로 스며든 것이 확실하다. 발전소 뒤에 있는 산에서 하루 800여 t의 지하수가 나오는데, 그중 400여 t이 사고를 낸 1, 2, 3호기 아래를 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지하수가 트렌치 균열로 스며든 물과 토양에 떨어졌다가 빗물로 스며든 방사성 물질을 만나 오염된 상태로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지난 7월 도쿄전력이 이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영토의 70%가 세슘에 오염됐다’ ‘세계 5대 과학잡지인 PNAS가 일본 전체가 오염된 방사능 지도를 발표했다’ ‘핵연료와 접촉한 물이 바다로 흘러들면 100km 이내의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한다’ ‘우리가 수입하는 동태의 90%가 일본산이니 먹으면 안 된다[진실은 일본산 2%, 러시아산 97%]’, ‘후쿠시마에서 괴물 해바라기 등 돌연변이가 발견됐다’는 허황된 괴담이 돌았다).

    지하수로 인한 바다 오염을 막기 위해 바다와 발전소 사이 부지에 강철 빔을 막고 빔 사이에 철판을 넣는 차수벽 공사를 했다. 동시에 발전소 부지 여러 곳에 우물을 파고 오염된 지하수를 뽑아 올려 강철 탱크에 담고 있다. 조만간 발전소 아래 땅을 인공적으로 얼리려고 한다. 발전소 밑을 얼려버리면 지하수는 언 땅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우회해 바다 오염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땅 얼리고 유리벽 친다

    땅을 얼리는 것은 불가능한 기술이 아니다. 터널 공사를 하다보면 지하수가 쏟아지는 곳에 콘크리트를 쳐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곳 일대를 얼려 지하수를 다른 데로 흐르게 한 후 콘크리트를 타설해 양생한다. 콘크리트가 굳으면 땅을 녹여 지하수가 다시 흐르게 한다. 그러나 후쿠시마 1발전소처럼 넓은 지역을 얼리는 일은 해본 적이 없어, 현재는 사전 평가작업과 타당성 조사 등을 하고 있다.

    발전소 밑을 얼리는 것과 함께 유리벽을 치는 본공사도 한다. 지하수가 전혀 흐르지 않는 곳까지 구멍을 뚫고 들어가 그 안으로 유리화 약재를 주입하는 것이다. 고압으로 주입된 유리화 약재는 주변 암석으로 스며들어 암석과 함께 거대한 ‘유리기둥’이 된다. 이러한 유리기둥을 발전소 사방에 2중으로 촘촘히 설치해 지하수가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안에 갇힌 지하수는 우물을 통해 계속 뽑아내 필터링으로 제염한다. 현재 바다 쪽에서는 유리기둥 공사를 시작했고 곧 산 쪽에서도 실시해 연말 안에 끝낼 계획이다.

    11월부터는 발전소 안에 있는 모든 사용후핵연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사고를 낸 1, 2, 3호기 등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한 후 완전히 해체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해체까지는 30~40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민에게 죄송하다”

    설명이 끝난 뒤 질의응답을 했다.

    ▼ 1, 3호기의 원자로 건물은 수소폭발로 훼손된 것이 분명하다. 훼손 부위로 계속 기체 상태의 방사성 물질이 나가는 것은 어떻게 하고 있나.

    “우리는 1호기 원자로 건물을 완전히 덮는 작업을 끝냈다. 지금은 3호기에서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

    ▼ 지진과 쓰나미가 다시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건가. 이미 균열이 생긴 건물이니 더 큰 균열이 일어나 많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겠나.

    “과거 우리는 그곳으로 올 수 있는 쓰나미를 5.7m로 봐왔는데 15m짜리가 왔다. 그래서 높이 15m짜리 방파제를 건설했다. 지진과 쓰나미가 다시 올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전기가 나가는 것이다. 전기가 없으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므로 상당한 수준의 내진 공사, 방수 공사, 비상발전시설 공사를 해놓았다. 그러한 대비 중의 하나가 ‘발전차’다. 이 차는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면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다가 끝난 후 달려와 전기를 공급한다.”

    ▼ 피해보상은.

    “정부는 거주지를 떠나게 된 주민은 물론, 방사선 피해를 보진 않았지만 생업을 못하게 된 주민들에게도 보상하라고 했다. 우리는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지난 8월 23일 현재 정리된 총 보상액은 2조7677억 엔(약 20조8000억 원)이다. 우리는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사고 지역을 정밀 조사하면서 하루빨리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한국인들도 크게 걱정하고 있다.

    “한국민들까지 불안하게 한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고 직후보다 많이 안정됐다. 지하수 문제와 탱크 누설은 과거에도 있었는데 지금 발견해 불안해진 것이다. 현재의 불안은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형성된 측면이 있다. 최선을 다해 지하 오염수 유출을 막아 일본 국민은 물론 이웃 나라 국민도 더 불안해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도쿄전력 사무실의 방사선량률 수치는 82(0.082)로 나왔다. 수치를 보여주며 “후쿠시마 통제선까지 갔더니 무려 3358(3.358)이 나왔다”고 하자, 물끄러미 측정기를 살펴보더니 “단위가 시간당 마이크로시버트네요” 하고는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그리고 ‘3.358마이크로시버트×6.5시간×365일=8밀리시버트(mSv) 이하’라는 답을 보여주며, “8밀리시버트는 전혀 위험한 수준이 아니다. 통제선에 근무하는 노인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연간 2.4밀리시버트 정도의 방사선을 받고 있는데, 이를 자연방사선이라고 한다. 자연방사선은 우주와 콘크리트, 암석 등 여러 곳에서 나온다.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면 머리는 2.8, 복부와 가슴은 각각 5.7, 11.5밀리시버트의 방사선량을 더 받게 된다.

    통제선에 근무하는 노인들이 1년간 더 받게 된 방사선량은 가슴 부위에 CT 촬영 한 번 할 때 받은 것보다 적은 양이다. CT 촬영을 하는 환자도 견뎌내는 피폭량을 건강한 노인들이 못 견뎌낼 리 없다. 그러니 소일 삼아, 용돈벌이 삼아 일반 작업복을 입고 태연히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연간 100밀리시버트를 더 받아도 문제가 없다. 일본은 후쿠시마 발전소에 들어가는 작업자는 연간 50밀리시버트만 더 받게 관리하고 있다.

    피폭 사망자 全無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은 모든 원전(54기) 가동을 중단했다. 대신 화력발전소와 가스발전소 등을 전부 가동해 대응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양의 연료를 수입하게 됐다. 그 결과 2011년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2조4927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7월에는 한 달 무역적자가 1조240억 엔으로 치솟았다. 17개월간 이어진 일본의 무역적자 누적액은 16조5200엔에 달한다.

    지난 20여 년간 불황이 이어진 일본에서는 우익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에서 중국의 공격이 집요해지자 일본 우익들은 엉뚱하게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그전부터 ‘혐한류(嫌韓流)’를 뿌리고 다니던 이들이었다. 세계적인 히트곡이 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그런 분위기 탓에 방송을 타지 못해 일본에서는 전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 반작용으로 우리는 반일의식을 고양시켰다. 그즈음 한국에서 원전 비리 사건이 불거지고 후쿠시마의 오염 지하수 유출 사실이 알려지자, 순식간에 후쿠시마 괴담이 퍼져나갔다. 괴담의 저변에는 얄미운 일본 우익을 갈겨주고 싶다는 보복 심리가 깔려 있다. 그런데 비리를 빼고는 멀쩡한 한국 원자력계와 한국 관광업계, 한국 수산업계가 이 괴담 때문에 목이 조이고 있다.

    괴담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한 사람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후쿠시마 발전소에서는 쓰나미로 인한 익사자 2명이 나왔을 뿐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나간 큰 사고였지만 사후관리는 잘되고 있다. 일본은 매뉴얼에 없는 쓰나미와 완전 정전 사태를 맞았을 때 결단력 있게 대처하지 못해 사태를 키웠지만, 사건이 터진 다음에는 매뉴얼대로 잘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지하수 오염과 탱크 누설을 몰랐다는 것이다.

    혐한류를 뿌리는 일본 우익은 미워하되, 일본 우익이 원하는 길로 갈 수는 없다. 일본 수산물에 대한 검사는 강화하되 우리 수산업까지 죽일 이유가 없다. 한국도 일본처럼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모두 멈추면 무역수지가 단번에 적자로 돌아서고 전기값이 올라간다. 그렇다면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윈-윈’하는 길이 된다.

    제대로 된 克日을 하자

    현재 세계에는 400여 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데 이 중 100기 가까이가 설계수명을 다했거나 다 해가고 있다. 이러한 원전은 해체해야 하는데, 해체는 매우 어려운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원전 해체는 원전을 새로 짓는 것만큼이나 주목받는 산업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방재로 인해 어떤 나라도 해본 적이 없는 대규모 원전 해체를 경험하게 됐다. 구멍난 원자로 안의 핵연료를 안전하게 식히고, 대기오염과 지하수 오염을 막는 방법도 찾아냈다. 따라서 원전 해체 시장이 열리면 ‘절대 강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시기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경이 될 것이다. 일본이 한층 정밀한 원전 기술을 갖추기 전에 한국 원전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한다. 때마침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도 원전 세일즈 깃발을 들어 올렸다. 제대로 방향을 잡아 달린다면 우리는 진짜로 극일(克日)하는 기회를 잡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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