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드는 사람들

  • 남동철 씨네21 기자

    입력2006-12-21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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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천년을 맞은 지금, 영화가 차지한 입지는 비좁고 불안해 보인다. 전자매체와 정보통신혁명이 가져온 변화는 영화가 누려온 권좌를 당장이라도 박탈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체가 변한다고 언어가 사라지지 않듯 영화언어의 혁신을 꾀하는 창작자들에게 주어질 찬사와 기대는 21세기에도 변함 없을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감독 7명과 하나의 영화운동집단은 그런 찬사와 기대를 받아 마땅한 이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정신과 환상을 대변할 남녀배우 1명씩을 덧붙였다. 》
    기타노 다케시 - 성(聖)과 속(俗)의 양면성 지닌 일본 감독

    일본영화 개방 1호로 국내에 소개된 ‘하나비’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여러 모로 현대 일본의 얼굴을 대변한다. 97년 그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지만 이전까지 일본에서 그를 ‘기타노’라고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일본에서 그는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 훨씬 널리 알려져 있다. 비트 다케시는 TV에서 1주일에 9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정상급 코미디언.

    가학적이고 선정적인 오락프로 사회자인 저속한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의 또 다른 얼굴은 83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이 영화에서 그는 잔인한 겐조 상사로 출연했는데 스크린에서 비트 다케시를 확인한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뜻밖이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심각한 연기를 보며 포복절도하는 관객들에게 그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89년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일본에서 야쿠자 영화의 대가로 통하는 후쿠사쿠 긴지 감독의 영화 ‘그 남자 흉포하다’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후쿠사쿠 긴지 감독이 일정문제로 연출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기타노는 갑작스레 연출까지 맡았다. 그는 여기서 ‘더티 하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못지않은 폭력형사로 등장, 경찰과 범죄의 공생관계를 드러냈다.

    감독 기타노의 역량은 과연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와 쌍벽을 이룰 만한 것이었지만 진정한 평가는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뒤에야 이뤄졌다. 93년작 ‘소나티네’가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고 96년작 ‘키즈 리턴’은 역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상영됐다.



    기타노는 이들 영화에서 폭력과 순수, 격정과 체념, 집착과 달관의 대칭적 세계를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포착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직접 연기하는 경우 자기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버린 채 카메라 앞에 등장했다. 침묵과 무표정은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의 존재를 잊으라는 주문인 동시에 허무의 극단으로 돌진하는 영화의 에너지, 그 자체였다.

    기타노가 연기한 ‘하나비’의 주인공 니시 형사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야쿠자의 빚독촉, 불치병에 걸린 아내, 동료의 죽음 등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삶의 문제들에 대해 니시 형사는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며 죽음을 맞이하는 니시 형사에게서 일본인들은 ‘그들의 죄를 대신하는 희생양’의 이미지를 본다.

    기타노는 90년대 일본 영화를 대변하는 인물인 동시에 일견 저속해보이는 일본 대중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聖)과 속(俗)을 한 몸에 안은 기타노의 세계는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워쇼스키 형제 - 만화적 상상력으로 ‘매트릭스’ 만든 SF 감독

    ‘매트릭스’를 21세기형 SF영화라고 부르는 게 과장일까?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시각스타일, 홍콩 누아르를 닮은 총격전과 액션장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성경에서 따온 신화적 이야기 구조, 장자와 선불교의 세계관 등 ‘매트릭스’를 구성하고 있는 날줄과 씨줄은 그 정교한 이음새로 새로운 세기의 미학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에게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시카고에서 태어난 래리(34)와 앤디(31) 워쇼스키 형제는 타란티노처럼 어린 시절 대중문화의 세례를 잔뜩 받았다. 만화는 이들 형제의 영화적 상상력을 키워준 요람이었는데 실제로 그들은 대학을 중퇴한 뒤 마블 코믹스라는 만화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이 점이 또 다른 형제감독 코언 형제와 다른 대목이기도 한데 코언 형제는 수많은 장르영화에서 자기들의 어법을 발견했다.

    만화출판사에서 워쇼스키 형제는 클라이브 바커의 ‘헬레이저’ 대사를 손보는 작업을 했고 그 뒤 ‘어쌔신’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리쎌웨폰’ 시리즈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너가 연출한 ‘어쌔신’은 실베스터 스탤론과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으로 영화화됐는데 워쇼스키 형제는 자신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제작방향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자기 의도대로 영화를 만들려면 감독이 되는 길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고 95년 ‘바운드’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선댄스 영화제에 처음 소개된 뒤 ‘획기적인 발상으로 만든 필름누아르’라는 평을 얻은 ‘바운드’는 이른바 레즈비언 필름누아르였다. 두 여자가 갱조직의 내분을 이용해 조직의 돈을 가로챈다는 내용의 ‘바운드’는 이전까지 필름누아르에 등장하던 요부 이미지를 거꾸로 활용해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냈다.

    저예산으로 작업한 ‘바운드’가 성공하자 그들에게 진짜 기회가 왔다. 키아누 리브스를 주연으로 첨단 특수효과가 들어간 SF영화 ‘매트릭스’를 만들게 된 것. 사실 그들은 ‘바운드’를 만들기 전부터 ‘매트릭스’ 시나리오를 완성해 놓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혼란스러운 줄거리와 알 수 없는 시각효과로 가득한 이 영화에 제작비를 대줄 영화사가 없었기에 ‘바운드’를 데뷔작으로 찍었지만 ‘매트릭스’에는 워쇼스키 형제의 상상력이 아주 투명하게 들어있다.

    그들은 만화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겨온 다양한 표현법을 영상에 옮겼고 자신들이 바라본 미래를 관객 모두의 것으로 바꾸었다. 워쇼스키 형제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와 ‘ET’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꿈의 공간을 N세대의 디지털 코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그마 - 영화예술의 순결을 맹세한 집단

    “반드시 촬영은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질 것. 사운드는 촬영현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카메라는 정지된 상태여서는 안 된다. 필름은 컬러여야 하며 옵티컬 작업과 특수조명은 불가능하다. 피상적인 행위가 아닌 실제 행위를 담아야 한다. 시간적·공간적으로 지금 이곳에서 영화는 진행되어야 한다. 장르영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필름규격은 35mm이고, 감독은 엔딩크레딧에 나와선 안 된다. ”

    컴퓨터그래픽과 특수촬영이 타이타닉호가 두 동강 나는 장면을 실감나게 재현하는 요즘 시대에 가당치 않아 보이는 이 선언은 95년 칸영화제에서 ‘도그마95 순결의 맹세’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자본과 테크놀로지로 오염되고 있는 영화를 태초의 순수한 상태로 되돌리려는 이 야심 찬 기획은 흡사 수도사 프란체스코의 종교정화운동을 연상시킨다. 영화인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이런 엉뚱한 제안을 내놓은 인물이 라스 폰 트리에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몽환적 세계에 탐닉하는 젊은 테크니션 라스 폰 트리에가 자기 작품을 부정하는 미학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결의 맹세에 서명한 감독들은 속속 자기 영화를 선보였고 그들의 영화는 상찬을 받았다.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들’,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셀레브레이션’, 소렌 크라그 야콥슨의 ‘미후네의 마지막 노래’는 모두 굵직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그들은 정말 최소의 자본과 테크놀로지만으로 진실이 담긴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유일한 작품 ‘셀레브레이션’만 봐도 도그마의 성격은 한눈에 드러난다. 온 가족이 모인 생일파티에서 아버지의 근친상간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셀레브레이션’은 시종 흔들리는 카메라로 한 가족의 여러 가지 표정을 포착한다. 일가족이 짓고 있는 기쁘고 우울하고 슬프고 난처하고 얄미운 표정 하나하나는 생동감 넘치지만 그 내면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상처투성이 과거를 통해 아버지 세대를 단죄하는 ‘셀레브레이션’은 6mm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다음 35mm필름으로 재생해 거친 영화지만 굵고 성긴 입자에 놀라운 힘을 실어나른다. 아마 그것이 도그마의 에너지일 것이다.

    도그마는 감독의 이름이 아니다. 도그마는 순결의 맹세에 서명하고 그들이 맹세한 미학을 실천하는 집단을 이르는 말이지만 21세기 영화의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물론 도그마의 실천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영화 역사상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는 자식들은 늘 있어 왔고 도그마도 그들 중 하나. 도그마가 다른 점은 그들의 패기와 도발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왕가위 - 홍콩영화의 영광을 지켜가는 감독

    본토 반환을 전후해 홍콩영화는 확실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오우삼, 서극, 우인태, 진가신, 주윤발 등은 할리우드로 가버렸고 영화산업에 유입되는 돈은 급격히 줄었으며 동남아를 평정했던 스타들의 영향력도 급속히 줄었다. 홍콩영화 시대는 정말 끝난 것일까? 그렇다. 하지만 그래도 홍콩영화가 궁금하다면 그건 왕가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왕가위는 한때 유행처럼 다가왔지만 자신을 그럴 듯한 상품으로 포장하는 데 치중한 감독이 아니다. 그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정서에서 삶에 대한 지혜와 희망을 찾았다. 97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해피투게더’는 지구 반대편 남단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지는 두 남자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발에 밟히는 유리조각 같은 아픔을 안고 헤어지는 연인들이 그 상처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은 세상 반대편이거나 동성간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같은 주제를 변주하며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스텝프린팅, 광각렌즈 등을 이용한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현란한 화면은 왕가위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로 젊은이들의 열광적 호응을 얻었다. 90년대 후반 한국영화가 왕가위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정도. 그러나 그를 흉내낸 어떤 감독도 왕가위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데뷔 이전 그의 경력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별로 없다. 5살 때 홍콩에 이주한 그는 홍콩이공대학 설계과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사진도 공부했다. 80년 졸업 뒤 방송국 드라마제작 교육코스를 수료하면서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고, 82년 그만둔 뒤 87년까지 13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데뷔작은 88년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가 주연을 맡은 ‘열혈남아’. 당시 유행하던 홍콩 누아르의 이야기 구조를 차용하면서 왕가위는 스치듯 지나지만 시간이 갈수록 깊어가는 사랑을 그렸다. 90년 ‘아비정전’은 당초 2부작으로 기획했다 1부만 찍고 끝낸 작품.

    왕가위의 관심사는 여기서 분명해지는데 그는 순간의 만남에서 영원할 것 같은 감정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를 통해 그는 해외 평단의 주목을 얻었는데 특히 ‘동사서독’은 김용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무협영화 중 가장 독특한 영화로 꼽힌다.

    ‘아비정전’부터 왕가위 영화는 크리스토퍼 도일이라는 촬영감독의 손을 거쳐 탄생했는데 둘의 파트너십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다. 왕가위는 2000년 장만옥, 양조위가 출연하는 ‘화양연화’라는 영화를 내놓을 예정이다.

    94 년 ‘애정만세’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대만 감독 차이밍량은 허우샤오시엔, 양더창 등 80년대 대만 뉴웨이브 작가들의 대를 이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그는 이야기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으로 도시인의 소외와 단절을 전하는데 예를 들어 ‘애정만세’에서 양귀매의 울음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전후 맥락에 대한 구차한 설명 없이도 보는 이의 감정을 사로잡아 유명해졌다. 이는 서정적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그의 선배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한데 그는 대단히 건조하고 단순한 형식으로 대만의 현재를 그려왔다.

    1957년 말레이시아에 태어난 차이밍량은 1977년 대만으로 이주해 문화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시나리오 작업과 TV연출로 경력을 쌓았다. 1992년 데뷔작 ‘청소년 나타’는 그의 영화에서 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우 이강생과 한 첫 작업이기도 한데 10대들의 방황과 우울한 미래를 담아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애정만세’는 그의 두 번째 영화로 서로 엇갈리는 두 남자와 한 여자를 그리고 있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이뤄지는 이들의 엇갈림은 소통불능의 현대사회를 가장 단순하면서도 투명하게 표현한다.

    1996년작 ‘하류’는 부자지간의 동성애를 암시, 베를린영화제에서 대단한 충격을 던져준 작품. 차이밍량은 이 영화에서 무기력한 인간들이 직면하는 삶의 비애를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의 붕괴를 통해 보여준다.

    참혹한 현실과 암담한 미래를 다룬 전작들과 달리 1998년작 ‘구멍’에선 가냘프지만 가슴 설레게 하는 희망이 제시된다. 세기말의 대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벌레처럼 변해 죽어간다. 위층 남자 이강생과 아래층 여자 양귀매가 사는 단절된 공간에 수도공사로 구멍이 생기고, 이들은 이 작은 구멍으로 연결된다. 여자를 엿보던 남자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자를 향해 손을 뻗고 여자는 그의 손을 잡고 위로 오른다.

    프랑스-독일의 합작으로 아르테TV가 기획한 세기말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구멍’ 이후 차이밍량의 신작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관이냐 낙관이냐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결말이 어느 쪽이든 도시생활자들의 고독과 소외감을 형상화하는 그의 솜씨는 언제나 경탄할 만한, 대가 수준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 욕정과 이상심리에 집착한 스페인 감독

    알 모도바르의 영화세계는 욕정과 이상심리로 뒤범벅된 난장판이다. 원색의 기괴한 의상을 걸친 인물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펼치는 그의 영화들은 늘 소수의 지지자를 몰고 다녔다.

    1951년 스페인의 칼자다 드 칼라트라바에서 태어난 알모도바르는 16살 때 마드리드로 상경, 전화국에서 일하다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과 교분을 트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아방가르드 연극집단인 로스 골리아도에 들어가 웃기는 대사를 썼고 가공의 국제적 포르노스타 페티 드푸사란 필명으로 추억담을 써서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74년 슈퍼 8mm로 영화를 찍었고 그 뒤 몇 편의 단편영화를 더 찍었다.

    80년 ‘페피, 루시, 봄’으로 데뷔한 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개성으로 똘똘 뭉친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국내에 비디오로 나온 ‘마타도르’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욕망의 낮과 밤’‘하이힐’ 같은 영화들은 허름한 비디오 가게 에로비디오 코너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학, 피학적 음란증과 시체애호증이 뒤범벅된 ‘마타도르’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자를 겁탈하려 하고, 사람들의 욕망을 어이없을 정도로 순박하게 드러내는 ‘욕망의 낮과 밤’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이 연모하는 포르노 여배우를 납치해 묶어놓고 사랑을 고백한다.

    연출자의 이성이 마비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순간이 알모도바르 영화에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런 요소들이 너무 즐비해서 그 자체가 새로운 미학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때문에 영화평론가 폴 줄리언 스미스는 “알모도바르는 서구의 페미니즘 및 퀴어 이론을 지배하고 있는 정체성의 정치학을 10년 앞서 예고한 바 있다”고 썼다.

    그는 1999년 칸 영화제에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17살 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30대 후반 여인이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아들을 위해 사라진 남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인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알모도바르가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좌충우돌 소동극의 대가였던 그는 여기서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올리는 드라마를 선보여 평단의 격찬을 받았는데 경쾌하고 도발적인 개성파 감독이 마침내 거장의 길로 들어섰음을 입증한 것이다.

    홍상수 -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시선

    1996 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이 나왔을 때 홍상수라는 인물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고 세 번째 영화 ‘오! 수정’이 촬영중인 지금 홍상수는 한국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왜 홍상수인가? 그것은 그가 일종의 전환점을 제공한 인물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리얼리즘의 명제가 영화감독들의 강박관념에 머물면서 현실과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홍상수 영화는 가장 좁고 깊게 들어가는 시도에 성공했다.

    등장인물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자세히 보여주는 그의 영화는 80년대에 머무르던 문제의식을 동시대로 따라잡았으며 결코 온전한 전체를 이룰 수 없는 욕망의 덩어리들을 어긋난 모양새 그대로 시야에 밀어넣었다.

    불륜에 빠진 삼류소설가와 유부녀, 그 유부녀의 남편과 삼류소설가를 사랑하는 극장 매표원 처녀 등 네 인물의 에피소드를 이어붙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지리멸렬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통해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이들이 매일 당면하는 문제들을 건드린다. 사소한 거짓말, 메워지지 않는 거리감, 자기만족적인 행동들이 엉뚱한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웃는 웃음이란 결과적으로 가슴 아픈 기억이 되고 만다.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은 한 여대생과 그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대학강사라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두 단락으로 나눠 진행하는 영화다. 마치 전혀 연출하지 않은 듯한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관습적 드라마 틀을 벗어나 진행되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사랑’은 발가벗은 모습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불륜에 빠진 남자주인공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눈물어린 사랑고백이나 죄의식에서가 아니라, 그가 술집 여자와 무미건조한 섹스를 하거나 여대생에게 ‘입으로 해달라’고 요구할 때다.

    더러 잔인하다는 느낌마저 드는 홍상수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그 자신이 영향받았다고 말하는 오즈 야스지로나 로베르 브레송의 세계와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는 데 성공한 셈이다. 홍상수는 세 번째 영화 ‘오! 수정’을 흑백필름으로 찍는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적은 없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팀 버튼 - 샘솟는 상상력, 공포영화 감독

    팀 버튼은 B급 공포영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할리우드 안에서 가장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30년대 유니버설영화사에서 만든 공포영화에 매혹됐던 그는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뒤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82년 그는 첫 단편영화 ‘빈센트’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자신의 어린 시절 우상이던 공포영화 전문배우 빈센트 프라이스가 주인공인 6분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84년에는 프랑켄슈타인처럼 변한 강아지가 등장하는 단편영화 ‘프랑켄위니’를 만들었고 이후 디즈니에서 나와 장편영화를 찍는다.

    그의 데뷔작은 ‘피위의 대모험’. 소수의 열광을 받았던 스타 피위 허먼을 연상케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알린 팀 버튼은 곧이어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에서 연출 제의를 받는다. 공포소설 작가 마이클 맥도웰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유령수업’은 아직 무명이던 팀 버튼에게 ‘배트맨’ 감독직을 선사한 출세작이다. 팀 버튼은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배트맨’ 주인공으로 마이클 키튼을 기용, 지극히 암울한 분위기의 영화로 완성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배트맨’은 대성공을 거뒀고 팀 버튼은 제작비 5000만달러가 넘는 블록버스터를 만들면서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는 드문 감독으로 할리우드의 기린아가 됐다.

    다음 영화 ‘가위손’은 그가 다시 동화적 세계로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가위손은 마을사람들의 오해를 받고 쫓겨나지만 세상을 저주하는 대신 아름다운 선물로 불신과 미움을 지우고자 한다는 이 따뜻한 이야기는 만화 속 세상 같은 세트 안에 끝없이 머무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다음 작품 ‘배트맨 2’는 ‘배트맨’보다 더 어두운 분위기의 블록버스터였다. 배트맨, 캣우먼, 펭귄 등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그늘진 표정을 보여주고 선악의 기준은 모호하기만 하다. 제작을 맡은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는 디즈니의 착하고 예쁜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했으며 흑백영화 ‘에드 우드’에서는 전설적인 B급영화 감독 에드 우드에게 경의를 표했다. 60년대 풍선껌 시리즈에 나오는 그림에서 출발한 ‘화성침공’에서 정말 만화 같은 SF영화를 보여준 그는 최근 동화 같은 공포영화 ‘슬리피 할로우’로 다시 나타났다. 팀 버튼의 상상력은 마르지 정말 않는 샘물 같다.

    이원 맥그리거 - 청년문화의 상징이 된 영국배우

    스 타란 분출하는 청년문화가 동시대에 남기는 증거물이다. 제임스 딘에서 톰 크루즈로 이어지는 젊고 잘생긴 남자배우들의 계보는 90년대에 등장한 이원 맥그리거로 이어진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처, 전형적인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93년 ‘립스틱 온더 컬러’로 데뷔했지만 이원 맥그리거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뭐니뭐니해도 대니 보일 감독의 97년작 ‘트레인스포팅’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마약에 빠진 젊은 백수건달로 등장, “인생을 택해라, 직업을 택해라, 경력을 택해라, 가족을 택해라, 망할 놈의 텔레비전을 택해라…”라고 선동한다. 영화에서 자신이 보여줄 행동과 정반대 되는 이 독백은 90년대 젊은이들이 당면한 고민과 절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진, 첨단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자신감, 의욕, 낙관적 전망, 열정 등이 없는 공허한 젊음, 그것은 그들이 마약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셸로우 그레이브’에 이은 대니 보일의 두 번째 영화이기도 한 ‘트레인스포팅’은 이원 맥그리거를 단숨에 90년대 젊은 우상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그런 점에서 96년 7월 미국 개봉을 앞두고 ‘타임’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콜리스가 “64년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한 것과 맞먹는 사건”이라 평한 건 과장이긴 해도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지적이긴 하다. 게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오비완 케노비로 출연한 사실은 이원 맥그리거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게 한다. 이원 맥그리거가 ‘스타워즈’에서 맡은 배역이 과거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해리슨 포드가 했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더 그렇다.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했지만 그는 아직 LA로 이사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돈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할리우드가 싫기 때문이다. 반항적 기질과 영국적 자존심을 함께 갖춘 이원 맥그리거라면 가뿐히 90년대를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캐서린 제타 존스 - 시대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배우

    최근 마이클 더글러스와 결혼할 거라는 소식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캐서린 제타 존스는 리타 헤이워드, 마릴린 먼로 이후 군웅이 할거하던 육체파 여배우 계보를 단숨에 정리했다.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검은 머리에 황갈색 눈동자가 빛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미국인들은 라나 터너와 에바 가드너 이후 잊고 지냈던 또 다른 관능의 영토를 발견했다.

    그녀가 ‘마스크 오브 조로’에서 터질 듯한 가슴의 굴곡을 선보였을 때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꼬았던 다리를 푸는 0.5초간의 아찔함 같은 것을 경험한 관객이라면 ‘엔트랩먼트’ 포스터에서도 쉽사리 눈길을 떼지 못할 것이다. 도둑질하는 데 필요한 복장치곤 지나치게 야하지만 영화선전에 그만큼 효과적인 옷차림은 흔치 않다. 그것은 짧은 순간 뇌리를 스치는 이미지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끝없는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엔트랩먼트’에서 캐서린 제타 존스가 적외선 감시망 사이를 유연하게 통과하는 광경이 자극하는 성적 상상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영국 웨일즈 태생으로 아역 배우출신인 그녀는 ‘벅시 맬론’ ‘42번가’ 등 많은 뮤지컬에 등장했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은 ‘5월의 사랑스런 처녀들’이라는 TV미니시리즈였다. 막 20살이 된 그녀는 단숨에 섹스심벌로 떠올랐고 파파라치의 표적이 됐다. 런던의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캐서린 제타 존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이 시기에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라스, 가수 믹 허크낼, 영화사 조 피터스 등과 염문을 뿌리며 타블로이드 신문의 표제를 차례로 장식했다.

    파파라치에게서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녀는 1995년 할리우드로 날아갔다. 그러나 성공한 영국 TV스타에게 할리우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팬텀’에서 악녀로 등장한 캐서린 제타 존스는 영화가 실패하면서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CBS 미니시리즈 ‘타이타닉’에서 그녀를 본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했고 ‘마스크 오브 조로’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캐서린 제타 존스는 이 영화에서 그 동안 품고 있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뿜어냈고 곧이어 ‘엔트랩먼트’와 ‘혼팅’에 출연했다. 물론 아직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유보된 상태지만 한 시대의 성적 판타지로서 그녀의 이미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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